영화 이야기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제리 루이스


내가 철이 덜 든 어른 같은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를 화면을 통해 처음 본 것은 루이스가 그의 명콤비였던 딘 마틴과 함께 나온 ‘화가와 모델’이었다. 중학생 때 서울의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봤는데 어찌나 우습고 재미있었던지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었다.
내가 정신 나간 얼간이 같은 루이스를 실제로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1월 내가 속한 LA영화 비평가협회가 그에게 생애업적상을 주었을 때다. 나는 그 때 시상만찬에 참석한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난 당신 영화 보며 컸어요”라고 감개무량해 했더니 루이스는 옆에 동석한 사람에게 “이 친구 내 영화 보며 컸대”라며 웃었었다. 그 날 루이스는 연단에 올라가 상을 받은 뒤 “이 상을 받아 기쁜데 염병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라고 투덜대(?)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었다.
제리 루이스가 지난 달 20일 91세로 타계했다. 고무 얼굴에 키들 키들대면서 미친 사람처럼 과장된 동작과 함께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굴어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던 루이스는 무대와 TV와 스크린을 누비면서 고단하고 우울한 세상에 웃음을 선사한 천재 코미디언이었다.
나는 루이스(사진)를 작년에 그가 은퇴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나온 감상적인 ‘맥스 로즈’를 위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와의 기자회견 때 다시 만났다. 루이스는 지팡이를 짚고 윌체어를 타고 회견에 임했는데 상소리를 섞은 유머와 위트를 유감없이 구사하면서 청산유수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에 “왓 왓”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미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곡예사 같은 동작으로 사람을 웃기던 그의 이런 모습을 보자니 세월의 속절없음에 가슴에 구멍이 생기듯 허전해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90이 오히려 좋고 스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 이제 걷기도 보기도 듣기도 힘들지만 그 것이 내가 내야할 렌트라면 괜찮다”며 세월을 수용했다.
루이스는 자기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과 함께 주연도 한 만능 재주꾼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은 ‘벨 보이’(1960). 그의 대표작인 ‘정신 나간 교수’도 루이스가 1인3역을 한 영화다. 그런데 루이스는 미국 비평가들보다 유럽 특히 프랑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의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이 때문인지 루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비평가들은 창녀들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고 독설을 해댄바 있다.
루이스는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구는데 그는 이에 대해 “내 영화가 아이들의 행동에 바탕을 둔 이유는 아이들이 즐기는 재미야 말로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행복하고 웃을 때는 좋은 영화를 만들 때라는 루이스는 그러나 요즘 미국영화에 대해서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화들이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946년부터 10년간 명콤비였던 딘 마틴을 그리워하면서 “우린 마법적인 관계로 서로를 극진히 사랑했다”면서 “그와 갈라선 후 오래 동안 서로의 의견 차로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며 후회했다. 둘은 함께 모두 1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루이스는 깔깔대고 웃으며 농담도 잘 했지만 이와 함께 삶을 충분히 산 현자와도 같은 말도 많이 했다. 자기 삶에 대한 후회가 없느냐는 물음에 “후회란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 것을 계속해 생각하고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죽은 뒤에는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 기억되든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루이스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준 것처럼 실제로도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준 매일의 24시간을 즐기며 산다”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삶을 예찬했다.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글을 쓰고 가끔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지난 36년간 사랑해온 아내 샌디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루이스의 잊지 못할 평생 친구는 케네디와 채플린. 케네디는 자기처럼 영화광으로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 뜻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플린으로 부터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 채플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것 같았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루이스에게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당신은 우울하거나 고독할 때면 어떻게 그 것에서 벗어나느냐”고 물었다. 이에 루이스는 “묘지를 찾아가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 한다”고 이죽거렸다. 그러던 그가 이제 묘지에서 쉬게 됐다. 루이스의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에 올라 그는 지금 자기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 앞에서 천국 코미디쇼를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로부터 루이스의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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