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3일 월요일

헛것 많이 보는 봉준호




봉준호감독(49)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실한 대학생 같은 모습과 자세가 마찬가지다. 7년 전에는 ‘마더’ 홍보 차 LA에 온 그를 만났고 최근에는 스트리밍업체 네트플릭스가 제작한 ‘옥자’를 위해 와 만났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콧수염을 한 것.
지난 5월 칸영화제서 경쟁부문에 올랐던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자기가 10년간 키운 수퍼 돼지 옥자가 미 대기업 식품업체 「미란도」에 의해 뉴욕으로 끌려가자 옥자를 찾아 미국에 오면서 일어나는 모험과 액션을 그렸다.
봉감독은 작품의 아이디어에 대해 지난 2010년 차를 몰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높이 3^4층짜리의 순하고 내성적인 거대한 돼지가 나타나 방황하는 모습이 보인 뒤로 그 돼지의 앞날이 궁금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봉감독은 “나는 이처럼 헛것을 많이 본다”며 웃었는데 이 헛것이란 예술가의 비전일 것이다.
‘스노피어서’로 국제적 감독이 된 봉감독은 ‘옥자’로 그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됐는데 이 영화는 칸영화제 상영 시 극장 상영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공개되는 영화라는 점 때문에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그래서 한국의 대형극장 체인들도 28일에 개봉된 ‘옥자’를 보이콧했다.
봉감독은 이에 대해 “극장 측 입장도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온라인 개봉은 영화 관람의 새 형식으로 나는 이 것과 극장 관람이 평화공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사실 이를 둘러싼 문제는 궁극적으로 영화업계의 것이지 창작자들의 문제는 아니다”고 덧 붙였다.    
봉감독은 네트플릭스가 자기 일에 일절 관여치 않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음악과 편집 등에서 한국인들을 기용한 것도 다 내 의도대로였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최근 한국영화계에 대해 예산규모도 커지고 작업환경과 대우도 많이 개선됐다고 말하고 영화의 질적 개선도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영화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마더’의 김혜자씨가 권위 있는 LA영화 비평가협회에 의해 주연상을 받았듯이 조만간 오스카상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보이는 봉감독은 ‘스노피어서’와 ‘옥자’를 만드느라 근 7년간 해외생활을 하다시피 했다면서 두 영화에 다 나온 틸다 스윈튼과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스윈튼은 ‘옥자’ 구상 때부터 제작에 개입, 자신의 대사를 본인이 수정하기도 했다.
돼지 이름을 옥자로 지은 것에 대해서는 순 한국적인 것과 유전자를 조작해 수퍼돼지를 생산하는 대기업 「미란도」간의 동^서양 및 신^구식의 대조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봉감독은 스릴러를 잘 만드나 장르감독이 아닌 오퇴르(작가주의 감독)다. 그가 비평가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도 장르의 변형적 연출을 통해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강한 예술성을 훌륭히 결합하기 때문이다. 봉감독은 장르를 따지기 전에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여긴다.
봉감독은 이어 미자 역의 안서현은 ‘하녀’를 비롯해 꼬마 때부터 영화와 TV작품에 나온 베테런이라며 ‘옥자’의 캐스팅이 처음에 매우 힘들었으나 안서현을 고른 뒤로 잘 풀려나갔다고 안서현을 칭찬했다.
봉감독의 멘토는 김기영 감독과 쇼헤이 이마무라. 그리고 히치콕도 좋아한다. 그래서 ‘마더’의 어머니는 히치콕의 ‘사이코’의 어머니로부터 다소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알려줬다.
봉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주한미군 방송인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이 때 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가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서스펜스 가득한 ‘공포의 보수’. 그는 특히 바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영화를 빼지 않고 끝까지 보기 위해 오줌을 참느라고 혼이 났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앞으로 송강호를 기용해 작은 영화를 만들 계획인데 한국영화건 미국영화건 간에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라고 가볍게 야단을 쳤다. 봉감독은 제작자에 대한 예의로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하거나 내용을 타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오퇴르다.
헤어지면서 샌디에고 인근에 사시는 한국영화계의 원로 정창화감독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액션영화를 잘 만드신 감독인줄 알고 있다”면서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었다. 다음에 LA에 오면 함께 정감독을 방문하자고 제의했다. 봉감독과 나는 정답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는데 급히 다음 인터뷰 차 떠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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