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할리웃의 아시안


CBS-TV의 인기 수사시리즈 ‘하와이 화이브-0’에 수사관으로 나오는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사진 왼쪽서 두 번째와 첫 번째)이 출연료 문제로 8회째 시즌 촬영에 앞서 도중하차를 발표, 다시 한 번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차별론이 대두되고 있다.
두 사람은 4명의 수사관 중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2명의 백인 수사관 역의 알렉스 오러플린과 스캇 칸(배우 제임스 칸의 아들-사진 오른쪽서 첫 번째)보다 출연료가 적다는 이유로 시리즈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니얼과 그레이스의 8회째 시즌부터 인상된 출연료는 에피소드 당 각기 19만5,000달러로 이는 알렉스와 스캇의 출연료보다 5,000달러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웃이 소수계인 아시안을 서자 취급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적으로 아시안을 묘사한 것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여기서 미키 루니가 뻐드렁니를 한 일본인으로 나와 어릿광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분기가 탱천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처우는 어느 정도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ABC-TV의 아시안 아메리칸 가족에 관한 인기 코미디 시리즈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대만인 가장으로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이 나오고 AMC 채널의 인기 산송장 시리즈 ‘워킹 데드’의 고정 출연 배우 중 하나로 스티븐 연이 나온 것이 그 실례다. 그러나 아직도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은 고작해야 단역이나 배경 인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리웃에서 활동한 한국계 배우의 원조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 그는 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역시 모두 단역들. 얼마 전에 다시 본 윌리엄 홀든과 제니퍼 존스가 나온 로맨스 영화 ‘모정’에서도 필립은 단역으로 거의 대사가 없는 제니퍼의 외삼촌으로 나온다. 그나마 할리웃은 필립 안의 업적을 기려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그의 이름을 새겼는데 이 것은 코리안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로비의 결과다.
할리웃의 궁극적 목표는 흥행 성공이다. 따라서 할리웃이 아시안 배우를 괄시하는 것은 인종차별에서 라기 보다 흥행성 때문이라고 봐야 옳다. 그래서 올 해 나온 일본만화가 원작인 ‘고스트 인 더 쉘’의 주인공으로 스칼렛 조핸슨을 썼고 작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아시안 남자 도사 역에 틸다 스윈턴을 썼다가 논란거리가 됐었다. 또 올 해 나온 꼴불견 ‘만리장성’의 주연도 맷 데이먼이다.
그나마 할리웃이 요즘 신주단지 모시 듯 하는 아시안이 중국인이다. 이는 중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할리웃의 시장인데다 막대한 중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의 하나다. 요즘 할리웃 스튜디오들의 영화를 보면 내용과 별 관계도 없이 중국 배우들이 나오고 또 중국에 관한 에피소드를 삽입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한 중국 배우의 말처럼 그 역이란 것이 말 한 마디 정도 하는 배경 인물인 ‘화병’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할리웃이 괄시하는 것은 비단 아시안 뿐만이 아니다. 비 백인이 다 찬밥 신세다. 그래서 아카데미도 최근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힐난을 받고나서야 부랴부랴 외국의 영화인들과 미국 내 소수계와 여성 영화인들을 회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로써 봉준호, 김기덕, 이병헌, 송강호 등 여러 명의 한국인 영화인들이 오스카 회원이 됐다.
현재 할리웃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들로는 올해 오스카 회원으로 영입된 존 조와 성 강, 릭 윤, 스티븐 연, 대니얼 김, 랜달 박, 저스틴 전, C.S. 리 및 그레이스 박(캐나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스크린에서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내가 지금 보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화가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에 단역으로 나온 저스틴 전이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국’(Gook-8월18일 개봉)이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인 ‘국’은 4.29 폭동 당시 가업인 사우스 LA의 구둣가게를 지키는 두 형제의 이야기로 올 선댄스영화제서 ‘넥스트 오디언스’상을 탔다. 그리고 ‘스타 트렉’시리즈로 잘 알려진 존 조가 주연하는 소품 인디드라마 ‘콜럼버스’(8월4일 개봉)도 기대가 크다.
나는 오래 전에 대니얼을 골든 글로브 파티에서 만났고 그 후 하와이에서 ‘하와이 화이브-0’를 찍고 있던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하고 소박해 금방 친근감이 갔다. 할리웃에서 인기 높은 작품 출연을 거부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다. 끼리끼리 싸고도는 영화사와 TV사들이 소위 ‘말썽’ 피우는 배우들을 은연중에 보이콧하고 있는 것이 공개된 비밀이다. 대니얼과 그레이스의 출연 거부가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의 건투를 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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