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할리웃 보울의 토니 베넷




사람이 90세까지 살기도 드문 일인데 9순에 무대에서 춤까지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야 말로 하늘의 복을 타고난 일이다. 오는 8월 3일로 91세가 되는 ‘샌프랜시스코에 마음을 두고온 남자’ 토니 베넷의 할리웃 보울 공연은 그의 히트송 ‘이츠 어 굿 라이프’처럼 베넷의 보통 사람과 가수로서의 길고 좋은 인생을 팬들과 함께 자축하는 파티와도 같았다.
지난 달 14일 저녁 이제 보면 마지막 보는 것이 되리라는 다소 쓸쓸한 마음을 안고 보울에서 노래하는 베넷의 노래를 들으러 갔다. 그러나 나의 이런 운명론적인 생각은 생기발랄하고 원기왕성한 베넷이 1시간여를 쉬지 않고 불러대는 노래들로 인해 생명예찬으로 돌아섰다.
이날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사진)의 반주라는 이색적인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1부는 LA필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과 ‘나부코’ 서곡과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영화 ‘샤레이드’와 ‘문 리버’의 음악연주로 진행됐다.
제2부가 시작되면서 베넷이 종종걸음으로 무대에 나오자 팬들이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그를 맞았다. 나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재즈와 팝가수인 베넷은 특유의 약간 갈라지는 듯한 쇳소리로 ‘스테핑 아웃 위드 마이 베이비’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 ‘후 캔 아이 턴 투’ 등 스탠다드 20여곡을 불렀다. 어딘가 약간 답답한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베넷이 까칠까칠한 비단결을 지닌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클럽에서 스카치를 마시면서 들으면 딱 좋을 노래들로 나는 특히 베넷이 요절한 컨트리 싱어 행크 윌리엄스의 히트송을 편곡해 부른 ‘콜드, 콜드 하트’를 좋아한다.
베넷은 꼿꼿이 서서 왼 손에 마이크를 잡고 미소를 지으면서 ‘저스트 인 타임’ ‘아우어 러브 이즈 히어 투 스테이’ ‘더 웨이 유 루크 투나잇’ 등을 쉬지 않고 노래했는데 반주는 주로 그와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어온 4인조 밴드가 했다. LA필은 베넷의 노래를 몇 곡 반주했지만 들러리 같은 역할이었다.
베넷의 음성은 재즈가수답게 달콤하면서도 로맨틱하지만 강한 고음에 오를 때면 오페라 가수 못지않게 강렬한데 특히 그는 노래 마지막에 이 강한 고음을 자주 사용한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강렬하다.
베넷은 절제되고 깨끗한 제스처를 쓰면서 군더더기 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히트송들인 ‘랙스 투 리치즈’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즈’ ‘아이 갓 리듬’ ‘셰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디스 이즈 올 아이 애스크’ 등을 듣고 있자니 ‘올디즈 벗 구디즈’의 기분에 젖어 갖고 간 레드와인을 거푸 마셨다. 그의 노래하는 모습은 우아하고 세련됐는데 생의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노래도 청중보다 자기가 더 즐기는 듯했다. 춤까지 추어가면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는데 끝나는가하면 “즐기고들 있나요” “가기 전에 한 곡 더 들을래요”라면서 또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불이 켜져 이제 끝나나 했더니 베넷은 “계속하자”면서 다시 노래, 청중의 커튼콜에 답례했다. 베넷의 간판곡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랜시스코’. 공연 말미에 노래했는데 이날 ‘랙스 투 리치즈‘ 등 일부 노래는 짧게 줄여 메들리 식으로 불렀다.
베넷의 첫 히트곡은 그가 1951년에 음반으로 취입한 ‘비커즈 오브 유’. 그 뒤로 지금까지 무려 66년간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의 큰 업적은 음반을 통해 거쉬인과 어빙 벌린 및 줄 스타인 등 미국 작곡가들의 미국 정통노래들을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도록 편곡해 알려준 것. 지금까지 팔린 음반은 수천만 장이며 그래미상을 무려 19개나 받았다.
이탈리아계로 뉴욕 퀸즈의 아스토리아에서 태어난 베넷은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젊었을 때 노래하는 웨이터로도 일했다. 그림 솜씨가 프로급이어서 그의 그림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됐을 정도다. 베넷은 2차대전시 벌지전투에서 싸운 베테런이며 마틴 루터 킹과 함께 셀마에서 민권운동 행진을 한 인본주의자다. 이 행진에 베넷과 함께 참가한 사람이 유명 흑인 가수이자 배우인 해리 벨라폰테로 벨라폰테도 올 해 90세가 되었다.
베넷은 본명은 앤소니 도미닉 베네데토. 그가 제대 후 뉴욕에서 뮤지컬 배우로 일 할 때 그의 노래를 듣고 반한 밥 호프가 무대 뒤로 베넷을 찾아와 LA로 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름을 토니 베넷으로 고쳐주었다.
베넷은 인본주의자로서의 업적으로 인해 UN으로 부터 ‘세계의 시민 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라이브라리 오브 콩그레스에 의해 ‘거쉬인 프라이즈 포 포퓰라 송’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른 작곡가들의 노래를 해석해 부른 가수가 이 상을 받기는 베넷이 처음이다. 베넷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결코 은퇴를 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 리브 토니 앤 시 유 어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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