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CHIPS


폰치(왼쪽)과 조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TV시리즈‘고속도로 순찰대’리메이크 영화


‘이 영화는 결코 캘리포니아 하이웨이 패트롤(CHP)의 승인을 받지 않았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지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 TV시리즈의 리메이크다. 
두 CHP 경찰인 존 베이커와 프랭크 ‘폰치’ 폰체렐로의 우정과 의리와 액션을 그린 시리즈에서 존으로는 래리 윌칵스가 그리고 폰치로는 에릭 에스트라다가 각기 나왔었다. 그런데 에스트라다는 리메이크 끝에 구급차 요원으로 캐미오로 나오나 윌칵스는 시리즈의 영화화에 반대하는 성명까지 냈었다.
영화를 보면서 윌칵스가 리메이크에 반대한 까닭에 수긍이 갔다. 코미디언 댁스 쉐파드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도 한 액션 코미디는 전형적인 저급한 할리웃 메이저 작품으로 거칠고 조야하고 상스럽고 음탕하다. 
얘기란 터무니없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대신 폭발과 파괴, 자동차와 오토바이 추격과 스턴트 그리고 저속한 농담과 음담패설과 성적 제스처 및 노출된 여자의 젖가슴 등이 나오는 영화로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성격이 정 반대인 두 남자가 한 팀이 돼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의 다른 점을 극복하고 우정과 충성과 의리로 뭉쳐 나쁜 놈들을 소탕하는 ‘버디 캅’ 영화요 ‘브로맨스’ 영화로 ‘배드 보이즈’와 ‘리설 웨펀’의 모조품과도 같다.       
40대의 존 베이커(쉐파드)는 X-게임 모터사이클리스트로 온 몸의 뼈가 다 부러졌을 정도로 몸이 나빠져  현장에서 은퇴하고 진통제를 밥 먹듯이 하면서 산다. 그리고 허영에 들뜬 아내 캐런(크리스튼 벨-쉐파드의 실제 아내)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그래서 존은 새 출발을 하고 아내와 재결합을 추진하려고 CHP 대원모집에 응한다. 존은 모터사이클을 기차게 잘 타 합격한다. 존의 파트너인 폰치(마이클 페냐)의 본명은 카스티요로 그의 진짜 직업은 마이애미의 베테런 FBI요원. 영화는 처음에 카스티요의 마이애미에서의 마약범 소탕장면을 보여준다. 
카스티요가 폰치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CHP 대원이 된 까닭은 연쇄 현금 무장 호송차의 강도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인데 사건의 배후에 CHP 대원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폰치라는 이름으로 존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폰치는 섹스 중독자다. 
분주히 티켓을 발부하는 고지식한 존과 뒷골목 범죄 수사에 능한 거들먹거리는 베테런 폰치는 사사건건 대립을 하는데 존이 뒤늦게 폰치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둘은 합세해 강도사건을 해결한다. 
강도사건의 혐의자 중 하나가 고참 CHP 대원 레이 커츠(빈센트 도노프리오). 그리고 존과 폰치는 각기 동료 대원 에이바(로사 살라자르)와 린지(제시카 맥나미)로부터 적극적으로 구애를 받는다. 
폰치는 사건을 해결한 뒤 CHP가 좋아 LA에 남는데 이 영화가 히트하면 속편이 나올 것이다. R. WB. 전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란츠(Frantz)


아드리엔(왼쪽)과 안나가 호수가에서 서로의 의중을 탐지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아름답고 슬픔을 치유하며 또 증오를 화해와 용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그린 프랑스영화다. 프랑스의 프랑솨 오종 감독의 작품으로 무대가 독일이어서 대사가 대부분 독일어이며 또 흑백이다. 
흑백촬영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작품인데 내용은 매우 심오하고 복잡하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죽음과 슬픔 또 화해와 용서를 말한 평화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특히 주인공들의 내밀한 내면 묘사가 좋은 연기와 함께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감동이 서서히 가슴 속으로 밀려드는 작품이다.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올덴부르크. 아름답고 총명한 안나(파울라 베어)는 전사한 약혼자 프란츠(안톤 폰 룩케)의 엄격하나 마음은 자상한 의사인 아버지 한스 호프마이스터(에른스트 스퇴츠너)와 그의 부드러운 아내 마그다(마리 그루버)와 함께 산다. 
어느 날 안나는 프란츠의 무덤에 한 젊은 남자가 꽃을 놓는 것을 목격한다. 이 남자는 안나에게 자기는 프란츠가 전쟁 전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그와 절친해진 아드리엔(피에르 니네이)이라고 소개한다(회상 장면이 칼러로 나온다). 그리고 안나는 아드리엔을 프란츠의 부모에게 소개한다. 
모든 프랑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한스는 처음에는 아드리엔을 받아들이기를 망설이나 안나와 마그다는 프란츠를 잘 아는 아드리엔을 통해 프란츠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아드리엔이 마을에 묵는 동안 안나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안나는 서서히 이 신비로운 적국의 남자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그리고 한스와 마그다도 아드리엔을 마치 아들처럼 받아들인다. 한편 마을의 나이 든 크로이츠(요한 폰 뷜로)는 자기를 마다하는 안나에게 끈질기게 구혼한다.
아드리엔이 귀국한 뒤 안나의 편지에 대답이 없자 안나는 그를 찾아 프랑스에 도착한다. 안나는 한스가 귀족집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안나는 프랑스에 머물면서 한스와 마그다에게 편지를 쓴다. 끝이 관객이 예상하던 길에서 벗어난다. 
PG-13. Music Box. 뉴아트(310-473-8530) 웨스트팍8(어바인) 리전스(라구나 니겔),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해리엣 로빈스




해리엣 로빈스는 죽음의 침상에서도 영화를 봤다. 귀가 잘 안 들려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들을 봤는데 해리엣은 원래 외국어 영화에 정통하고 또 그 것들을 사랑했다. 해리엣이 얼마 전 96 세로 타계했다.
나는 해리엣을 생전 나의 ‘영화 대모’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었다. 해리엣과 역시 영화통인 해리엣의 남편 샘과 나는 종종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해리엣의 집에서 술을 들면서 영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샘은 해리엣 보다 두 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가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고 부른 까닭은 내가 해리엣 때문에 LA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이 됐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등산모를 쓰고 다니던 해리엣을 알게 된 것은 영화담당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장에서였다.
LAFCA 회원이던 해리엣은 나를 볼 때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구성된 LA의 코리안 커뮤니티를 대신해 미스터 팍이 우리 회원이 되기를 권한다”며 나를 동료 회원들에게 소개하면서 즉석 로비를 하곤 했다.
이와 함께 내가 LAFCA 회원이 되는데 큰 힘을 써준 사람이 홍보회사 포가쳅스키사(현재의 MPRM)의 한국계 부사장 로라 김이었다. 로라는 한편으로는 주저하는 나를 다그치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LAFCA회장이었던 엠마누엘 레비(현재 나와 함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회원)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하면서 나를 밀어줬다.
내가 LAFCA 회원 가입을 망설였던 이유는 한국어로 영화평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라 오피니언 기자와 스페인어로 방송하는 유니비전 기자가 LAFC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영어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는 나의 가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두 스페인어 언론매체는 LAFCA 회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적극적 지원 속에 나는 지난 1998년 4월 해리엣과 LA타임스의 영화비평가 케네스 투란의 추천과 회원들의 심사와 투표를 거쳐 LAFCA 회원이 되었다. 당시 LA타임스, 타임, 뉴스위크, 버라이어티, 할리웃 리포터 및 USA 투데이 등 막강한 언론매체의 기자들로 구성된 LAFCA에 가입했으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 불러왔었다.
지난 1975년에 창립된 LAFCA는 LA지역에서 활동하는 활자, 방송 및 전자매체 영화비평가들로 구성된 권위 있고 영향력 강한 단체로 현 회원은 54명. 나는 지난 2006년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이 됨으로써 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셈이다. 해리엣 덕분이라고 하겠다.
부산 피난시절 꼬마가 혼자서 대낮부터 무성영화를 보면서 영화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란 것을 깨달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백일몽을 꾸고 있다.
해리엣은 지난 1940년대 초 뉴욕에서 LA로 이주, 권위 있는 액터즈 랩과 관련해 일하면서 연극과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이어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 극단 레이버 디어터 작품을 유엔을 위해 공연하는 일을 돕다가 이 도시에서 만난 샘과 결혼, 1950년대 초 둘이 함께 다시 LA로 돌아왔다.
이어 독립영화 배급사에 고용돼 영화를 사기 위해 연중 내내 영화시장과 칸, 토론토 및 몬트리얼 등 영화제를 찾아 다녔다. 나도 오래 전에 업무 차 토론토영화제에 온 해리엣과 샘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해리엣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인 감독과 배우들을 알게 됐고 외국어영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나도 해리엣과 샘처럼 할리웃영화 보다는 외국어영화를 더 좋아해 우린 만나면 주로 외국어영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었다.
배급회사를 떠난 해리엣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비평을 써 영화를 선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여러 미디아에 기고를 하면서 지난 1980년대 초 LAFCA회원이 되었다. 이와 함께 해리엣은 필르멕스영화제를 포함해 LA지역 영화제와 특별행사에 관여했고 LA 인근 베니스의 폭스베니스극장의 외국어 영화상영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해리엣은 이밖에도 UCLA 필름&TV 아카이브의 ‘비평가들의 선택’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독립영화인인 찰스 버넷감독 등의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다.
해리엣과 파이프 담배를 즐기던 샘은 늘 시사회에 함께 참석하곤 했다. 나는 이들을 친구 겸 부모처럼 여기면서 우정을 즐겼었다. 항상 명랑하고 활기찬 만년 소녀 같던 해리엣은 양로병원의 침상에 누워서도 LAFCA회원들에게 외국어영화를 갖다 달라고 부탁해 영화를 봤다.
내가 해리엣에게 은혜를 갚은 것이 있다면 해리엣이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쓸 매체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신문에 그의 글을 번역해 게재한 것이다. 이제 해리엣은 하늘에서 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날 만나면 늘 “H.J.”하며 반가워하던 해리엣의 음성이 귓전을 맴돈다. 굿바이 해리엣.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007 두 번 산다’여주인공 - 미에이 하마


일본식 결혼을 한 제임스 본드(션코너리)와 키시 수즈키(미에이 하마).

“나는 차분한 사람… 정상적인 삶 살려고 은퇴”


현재의 미에이 하마
올 해는 007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007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1967)의 개봉 50주년이 되는 해다. 제1대 제임스 본드인 션 코너리가 다섯 번째로 007역을 맡은 작품으로 일본과 런던에서 찍었다.
냉전 시대 지구궤도를 비행하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이 공중에서 실종되면서 본드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외딴 섬으로 침투, 우주선 납치의 주범으로 국제범죄조직인 ‘스펙터’(SPECTRE)의 두목 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도널드 플레전스)와 대결한다.
비평가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대박을 터뜨린 이 영화의 감독은 루이스 길버트로 그는 후에 로저 모어가 본드로 나온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와 ‘문레이커’(1979)도 감독했다.
이 영화에는 일본의 팔등신 미녀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본드는 키모노를 입고 그 중 하나인 키시 수즈키와 결혼까지 한다.
뉴욕 타임즈는 최근 영화 개봉 50주년을 맞아 동양 최초의 본드 걸 키시 수즈키 역의 미에이 하마(73)를 하코네의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하마는 영화에서 비키니를 입고 출연하면서 플레이보이지에도 실려 ‘일본의 브리짓 바르도’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하마는 영화 출연 몇 년 후 스크린에서 은퇴했는데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은퇴했다”고 밝혔다.
하마는 은퇴 후 라디오와 TV쇼의 사회로 활동하면서 여성들의 큰 인기를 모은 아이 양육과 여성의 예절과 자아발견 등에 관한 책을 14권이나 썼다. 그녀는 또 오래된 농촌과 농경법을 지키는 운동에 힘을 쏟았는데 아울러 일본 전통 공예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그러나 신문은 하마의 집에는 포스터를 비롯해 007영화와 함께 1960년대 초 일본영화의 황금기에 빅 스타였던 그녀가 나온 많은 영화들의 소품은 단 한 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고 덧 붙였다. 하마는 이에 대해 “그런 것들은 다 지하실에 있다”면서 “나는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하마는 버스 차장 노릇을 하던 16세 때 토호영화사에 의해 발견돼 은막에 데뷔한다. 곧 바로 스타가 됐으나 영화를 안 찍을 때면 배낭을 지고 유럽과 인도를 여행하면서 연기 생활을 더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로 고심했다고 한다.
하마가 1966년 본드 걸 역을 위해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그녀는 이미 온갖 장르의 영화 70 편에 나온 베테런이었다. 하마는 길버트 감독이 자기를 선정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이 킹 콩이 사랑하는 여자로 나온 일본 괴물영화 ‘킹 콩 대 고질라’(1962)를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마는 영화를 찍기 위해 런던에 갔을 때 고독에 시달려야 했는데 이런 자기를 위로하고 도와 준 사람이 션 코너리였다고. 아직도 그를 ‘션 코너리-산’이라고 부르는 하마는 코너리에 대해 자기처럼 노동자 계급 출신의 코너리는 연기를 안 할 때면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나 “액션”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순식간에 신사 스파이 킬러로 변신했다고 회상했다.
하마는 이어 코너리는 매일 아침 자기에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면서 그 때 코너리와 더 자주 대화를 못 가진 것에 대해 후회했다. 두 사람은 이 영화 이후 다시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 일본에서 찍은 이 영화로 인해 하마는 토시로 미후네와 마치코 교와 함께 할리웃에 진출한 몇 안 되는 일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현대적 미를 지닌 그녀는 비록 신장이 5피트 5인치 밖에 안 되지만 일본의 남자 스타들은 물론이요 서양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스타였다.    
하마는 이 영화 이후 자신에게 주어지는 많은 할리웃 영화들을 다 거절했다. 역들이 다 남자 배우의 비키니를 걸친 장신구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퇴를 단행하고 TV의 중역인 남자와 결혼해 4남매를 낳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녀가 농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0세 때 차를 타고 시골을 지나다가 댐건설을 위해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농민들을 보고나서였다. 그래서 그 후 지금까지 30년간 팬들에게 일본의 고유한 것의 가치를 알리는데 진력하고 있다.
하마가 최근에 출판한 책은 ‘고독은 멋있는 것이 될 수 있다’로 여자들에게 남이 반대할지라도 자신에게 진실 되게 살라고 조언한 책이라고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가 야수의 궁전에서 춤을 추고있다.

원작 만화영화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디즈니가 1991년에 만든 동명 만화영화의 라이브액션 뮤지컬로 초호화판이다. 만화영화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히트했다. 촬영, 의상, 프로덕션 디자인과 안무 등이 화려하기 짝이 없고 주인공 처녀 벨 역의 엠마 왓슨이 역에 잘 어울리는데다가 연기를 잘 한다. 
원작의 노래들인 ‘뷰티 앤드 비스트’ ‘벨’ ‘비 아우어 게스트’ 등 로맨틱하고 흥겹고 정다운 노래들이 다 나오고 말하는 촛대와 시계 및 찻주전자 등도 그대로 다 나오는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아주 어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다. 
감독은 ‘시카고’와 ‘드림걸즈’ 등 뮤지컬을 만든 빌 콘돈이 맡았는데 기술적으로 완벽한 보기 좋은 영화이긴 하나 특수효과와 세트와 음향과 음악을 비롯해 모든 것이 너무 과도하고 과다해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약한 점이 결점이다. 그래서 보기에 숨이 찰 정도인데 좀 절제를 했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것이다. 
영화는 끝의 무도회 장면에서 벨에게 구혼하는 가스톤의 하인 르 푸가 동성애자임을 보여주는데 디즈니의 등급 PG영화에서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영화를 보이콧하겠다는 극장과 부모들이 있다.        
발명가인 아버지 모리스(케빈 클라인)와 단 둘이 사는 벨(왓슨)은 아름답고 독립적이고 진보적이며 책벌레인 처녀로 여자에겐 글을 안 가르치는 사회 관습을 무시하고 어린 여아에게 글을 가르치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자다. 
이런 벨을 사랑하면서 그녀에게 끈질기게 구혼하는 남자가 표리가 부동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이기주의자 가스톤(루크 에반스가 거드름 빼는 연기를 잘 한다). 가스톤 곁에는 그에게 아첨하나 가스톤 보다 지능이 한 수 위인 동료 르 푸(조시 개드)가 따라다닌다.
어느 날 모리스가 일보러 파리에 갔다 오다가 눈보라를 피해 들른 야수(댄 스티븐스)의 성(디자인이 눈부시다)에서 장미꽃을 따면서 이에 분노한 야수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성에 달려온 벨이 아버지 대신 야수의 포로가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가 전반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흉측하고 무섭게 생긴 야수는 왕자 때 연민과 사랑을 모르는 냉정한 마음 탓에 저주를 받았는데 자기를 외모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나야 저주에서 벗어난다. 
분노와 좌절 그리고 회한에 잠겨 있는 야수는 총명하고 아름답고 용감한 벨로 인해 서서히 굳었던 마음에 녹는데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이 둘의 이런 관계 묘사다. 벨로 인해 야수는 유머까지 구사하게 된다.   
둘을 둘러싸고 프랑스 액센트를 구사하는 촛대 뤼미에르(이완 맥그레고 음성)와 추가 달린 시계 칵스워드(이안 맥켈런) 그리고 옷장 가드로브(오드라 맥도널드) 등이 수다를 떨면서 보조역을 재미있게 한다. 이 밖에도 엠마 톰슨이 사기 찻주전자 미시즈 파츠, 구구 엠바타-로가 깃털 먼지떨이로 그리고 스탠리 투치가 하프시코드 카덴자로 각기 나온다. 
번거로울 정도로 화사한 온 가족용 영화인데 이 영화와 함께 ‘미녀와 야수’의 최고걸작인 장 콕토가 감독하고 장 마레와 조젯 데이가 나온 흑백 프랑스판(1946)을 보기를 권한다. 로맨틱하고 환상적이며 황홀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전 지역 상영.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태풍 후(After the Storm)


료타는 아내 교코와 아들 신고와의 재결합을 시도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하고 가슴 아픈 가족영화


‘스틸 워킹’(Still Walking)과 ‘부전자전’ 및 ‘우리들의 막내 여동생’ 등과 같은 영화에서 가족의 얘기를 담담하고 소박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치도록 진실하게 그린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카주 감독의 또 하나의 아름답고 가슴 싸하니 아픈 가족영화다.
대사와 연기 위주의 영화로 달곰씁쓸한 인간 코미디인데 부드럽고 상냥하며 단순하고 솔직하다.
서서히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매력적인 영화로 세상사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얘기를 연민과 통찰력으로써 다정다감하게 그렸다.
아무렇게나 옷을 입었으나 키가 크고 잘 생긴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름다운 부인 교코(마키 유코)와 이혼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와 12세난 아들 신고(요시자와 타이요)와 재결합을 하려고 애 쓴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사람이 무표정하게 매서운 소리 잘 하는 작은 투 베드룸 아파트에 사는 료타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킬린). 료타에겐 누나가 있는데 아버지는 막 별세했다.    
료타는 과거 상을 탄 소설작가이나 그 뒤로 15년간 글을 못 쓰고 지금은 소설을 위한 자료 수집을 한다는 명분하에 젊은 동료를 데리고 다니는 사설탐정소의 직원이다. 료타와 교코의 이혼 이유가 분명히 밝혀지진 않으나 료타는 철이 덜 든 몽상가인 반면 교코는 현실적인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료타가 서푼짜리 도박꾼이라는 점도 이혼 사유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교코는 료타를 만날 때마다 아들 양육비를 조른다.
료타는 외도하는 기혼남녀들의 사진을 찍어 받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자전거 경마장에서 날리거나 빠찡꼬장에서 탕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까지 복권의 재미를 전파한다.
오매불망 교코를 못 잊는 료타는 아내 뒤를 정탐하다가 아내가 돈 많은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을 목격하고 대경실색한다. 그리고 어느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 밤 료타는 어머니의 응원을 받아 가면서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아내와의 재결합을 시도한다.
태풍이 끝나고 영화는 이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끝나는데 결말이 아주 사실적이다. 료타가 사람이 좋아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교코와 재결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글쎄 세상일이란 그렇게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으니까.
부드러운 코미디와 우수가 배인 현실을 균형 있게 묘사한 내 이웃의 얘기 같은 영화로 연기들이 뛰어나다. 모두 지극히 사실적이요 빈 틈 없이 완벽하고 절묘한데 특히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가차 없이 깎아 내리는 소리를 해대는 킬린의 연기가 볼만하다.
성인용. Royal 등 일부 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교향곡 제5번


며칠 전 차를 타고가면서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는 KUSC를 듣고 있는데 프로그램 진행자가 신청곡을 틀겠다면서 신청자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신청자는 9세난 데이빗의 어머니. 데이빗은 자폐성 장애자로 클래식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데 데이빗의 부모는 음악인이 아닌데도 데이빗은 모든 악기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
데이빗의 어머니는 내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고 싶다면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부탁했다. 진행자가 “데이빗,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이다”라며 ‘타 타 타 타’로 시작되는 음악을 틀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데이빗의 어머니가 이 곡을 신청한 이유가 평생을 청각장애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위대한 음악을 작곡한 베토벤의 불굴의 투지와 인간승리의 정신을 아들의 영혼과 교감시켜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음악의 치유 능력이다.
교향곡 제5번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들을 때마다 전율을 느끼게 되는 베토벤의 ‘운명’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말러의 제5번일 것이다. 이 교향곡은 말러가 아내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인 느리고 로맨틱한 제4악장 아다지에토로 유명하다. 이 음악은 루키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효과적으로 쓰였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제5번. 이 곡은 어둡도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음악도 음악이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을 작곡한 이유로 더 유명해진 교향곡이다. 그가 자아 비판적인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까닭은 1934년에 초연된 자신의 오페라 ‘므첸스크 디스트릭의 레이디 맥베스’ 때문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불행한 결혼생활에 시달리는 부농의 아내가 하인 농부와 간통한 뒤 독재자 같은 시아버지와 무기력한 남편을 살해하나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얘기다. 나는 이 오페라를 오래 전에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 키로프 오페라 공연으로 관람했었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풍자적 위트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초연 시 비평가와 관객의 큰 호응을 받은 이 오페라를 1936년 스탈린이 모스크바에서 보다가 도중에 퇴장한데 이어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사설로 이 작품을 타락한 것이라고 공격하면서 쇼스타코비치는 여생을 정치적 박해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쇼스타코비치가 ‘메아 쿨파’로 작곡한 것이 제5번 교향곡이다. 그는 이 곡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실용적이요 창조적인 대답’이라는 부제를 붙이면서 스탈린에게 백배 사죄를 했다.  
이렇게 작곡된 교향곡은 1937년에 초연돼 비평가들의 호평과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는데 퇴폐적인(?) ‘므첸스크 디스트릭의 레이디 맥베스’와는 달리 여러 모로 정상적인 음악의 틀에 정착한 모범적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특히 감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제3악장(초연 시 청중들이 울었다고 한다)에 이은 제4악장의 요란한 승전가와도 같은 코다는 사기를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것이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찬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이 코다에 대해 “넘쳐나는 아첨의 의상을 입은 속이 공허한 독재자에 대한 풍자적 그림”이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
나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의 음악은 러시아음악 특유의 서정성과 비극성 그리고 우울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희롱기가 있다. 그의 음악의 이런 풍자성과 희롱기는 예술가의 창조성과 자유혼을 핍박하는 공산체제에 대한 신랄한 야유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12일 디즈니 컨서트 홀에서 LA필이 연주한 두 곡은 모두 평생을 고뇌와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이었다. 지휘는 오는 2018년 시즌부터 뉴욕필의 상임 지휘자 직을 맡을 네덜랜드 태생의 얍 환 즈베덴(56).
운동선수처럼 단단한 체구를 지닌 즈베덴은 표정이나 태도가 모두 매우 진지했는데 강건하고 강렬한 지휘로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를 제어하다시피 했다. 지휘 스타일이 크고 튼튼하면서도 서정적이요 섬세한 부분까지도 철저했지만 대체적으로 다부지고 역동적이었다.
7세 때 바이얼린을 든 즈베덴은 15세 때부터 줄리아드에서 수련, 19세에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체르토헤보 오케스트라 사상 최연소의 컨서트 매스터가 되었다. 즈베덴은 내가 잘 아는 한국인 음악교수의 제자다. 그가 1990년대 중반에 지휘자로 변신을 한 것은 그의 지휘를 본 레너드 번스타인의 권유에 의해서라고 한다.
자폐성 장애자 아들을 갖고 있는 즈베덴은 1997년 부인과 함께 자폐성 장애아동의 부모를 위한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 음악을 통해 음악 치료사와 음악가들이 장애아동들을 돕는데 기여하고 있다. 자폐증 장애자의 어머니가 신청한 곡과 자폐증 장애자의 아버지가 지휘한 곡이 모두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존 윅: 챕터 2’(John Wick: Chapter 2) 키아누 리브스




현재 히트하고 있는 액션 영화 ‘존 윅: 챕터 2’(John Wick: Chapter 2)에서 피로 맺은 약속 때문에 은퇴했다 다시 총을 잡으면서 무려 100여명의 인명을 살해하는 킬러로 나온 키아누 리브스(52)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50대라곤 믿어지지 않게 씩씩한 미남 청년 같은 리브스는 평소의 무뚝뚝한 태도를 버리고 매우 상냥하고 활기에 넘쳐 인터뷰가 재미있었다. 얼굴에 홍조를 띠고 수줍은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유머를 섞어 진지하고 차분하게 대답을 했는데 대단히 지적이요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존을 제거하려는 무리가 그의 머리에 7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거는데 머리 값이 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니다. 값이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존을 노리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700만 달러를 선선히 지불하려는 것이다. 존은 그의 적에겐 매우 위험한 표적이기 때문에 그를 처치하려면 그 만큼의 대가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전설적인 킬러 존을 처치해주는 사람에겐 그 돈도 모자란다.”

- 영화 클라이맥스 장면의 ‘거울의 방’에서의 총격전과 육박전은 오손 웰즈의 ‘샹하이로 부터 온 여인’과 브루스 리가 나온 ‘용쟁호투’의 장면을 빌려다 쓴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야겠다. 채드 스탈스키 감독은 과거의 영화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존 윅도 과거의 것들로 부터 실마리를 취해 자신의 직물을 직조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그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가.
“실제로 거울의 방을 만들었다. 터널과 넓은 방 그리고 회전 문 등이 있는 것으로 감독이 거울에 반영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방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혼에 대한 내적 통찰이요 반영되고 동시에 사라지는 다양한 뜻을 내포한다.”

- 액션 훈련은 얼마나 힘들었는가.
“제 1편 때와 비슷했지만 한 단계 높은 것이다. 유도와 주지추 그리고 자동차 몰기와 다양한 무기 다루는 훈련을 받았다. 첫 편 찍을 때 이미 배운 것들이어서 이번에는 보다 나았고 따라서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셈이다.”

- 3편이 나올 듯이 끝나는데 그런가.
“그 문제는 순전히 관객에게 달렸다. 나나 감독이나 얘기를 계속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존을 사랑하며 그가 창조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알고 싶다. 난 온갖 역경에 맞서는 존의 편이다.”

- 다음 편에선 여자와 사랑을 하겠다고 감독에게 요청 할 것인가.
“그렇잖아도 그에 관한 얘기가 있었다. 감독은 이 영화에는 고정된 규칙이란 없다고 말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피로 맺은 약속 때문에 은퇴 했다가 다시 총을 잡은 킬러 존 윅은 무려 100여명을 살해 한다.

- 당신이 부엌에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던데 음식 잘 만드는가.
“난 음식 만들 줄 모른다. 그러나 먹는 것은 잘 한다. 누구 집에 초대 받으면 먹은 접시 닦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다. 영화에서 커피 끓이는 장면도 한참 연습한 것이다.”

-당신은 물건에 집착하는가. 예를 들면 편지나 사진 같은 것에 대해 애착을 갖는가.
“그렇다. 할러데이나 어떤 기념일을 맞아 보내온 편지나 카드 같은 것은 매우 소중히 여긴다. 상자에 사진과 편지들을 넣어 놓고 가끔 꺼내 본다.”

- 영화를 로마에서 찍었는데 로마 방문 소감은.
“정말 황홀한 도시다. 도시는 아름답고 함께 일한 사람들은 다 훌륭했다. 로마의 여러 명소에서 찍었는데 밤새 촬영을 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 갈 때 인적이 끊긴 로마를 보는 것은 정말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다. 관광 시즌이 아닌 1월에 찍어 조용한 로마를 즐길 수 있었다.”

- 당신은 음악인이기도 한데 음악이 당신의 영화와 연기에 어떤 영향이라도 미친다고 보는가.
“그렇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내가 맡은 역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감정과 에너지를 제 자리에 놓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위해선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존을 위해선 음악을 듣지 않았다.”

- 제 3편에 대해서도 처음과 같은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다. 감독과 제작자와 내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느낀 도전은 왜 우리가 이 얘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냈다. 제3편도 마찬가지다. 무슨 얘기를 할 것이냐가 우리의 도전이다. 난 이 역이 아주 편하다. 난 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가 매우 궁금하다. 그래서 그의 얘기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들려주는 데 관심이 깊다.”    

- 이 영화의 각본에 참여하는가.
“어느 정도 참여한다.”

- 당신은 유명한 세계적 스타이면서도 사생활을 잘 지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난 외출을 잘 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일한다. 명성이란 알려진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의미에서 난 관객과 동료 영화인들에게 알려진 것을 좋은 일로 여긴다. 팬들의 사랑과 동료 영화인들의 인식이 영화인으로서의 내 삶의 기둥이나 마찬 가지다.”

- 당신은 레바논에서 태어났는데 그 곳에 가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머니가 21세 아버지는 22세 때 태어났다. 두 사람은 레바논의 해변과 문화를 즐기면서 나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어릴 때 거기를 떠난 후로 다시 가보질 못 했다. 그 것이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다. 언젠가 가게 되기를 바란다.”

- 당신이 모터사이클을 직접 고안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난 아치 모터사이클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주문 받는 특수 모터사이클을 제작한다.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다. 내게 있어 그 것은 내 정열의 소산인 창작이다. 그러나 그 것은 아주 비싸다. 30,000달러 이상 나간다. 햄버거가 아니다.”

- 당신이 만든 모터사이클을 자주 타는가. 세계 여행 할 때도 그 것을 이용하는가.
“물론이다. 난 외국 여행 때도 모터사이클을 이용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 갔을 때도 탔다. 유감인 것은 여러 곳에서 타고 다니고 싶었는데도 타지 못 한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 북부는 타고 가 봤으나 아직 남미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타질 못 했다. 죽기 전에 하고픈 일이다. 내가 벌써 죽기 전에 하고픈 일들의 리스트(버켓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왔다니.”

- 당신의 사랑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사랑을 받고 주는 것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우리가 바라고 찾는 것에 매어달려 있다.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사랑은 변하고 자라고 또 끝나며 계속된다고 본다. 그 것은 반드시 연인과의 것만은 아니다. 친구와 가족과도 연계된 것이다. 사랑은 힘이며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색깔과 책임감과 수행의 의무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없다는 것은 포도 덩굴에 물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것이 없으면 우리는 멸종돼 죽고 만다. 그 것은 개인을 초월해 집단의 것으로 승화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 당신 개인의 사랑은 어떤가.
“98만4,000번째의 사랑이라고 해야겠다. 수천 번 사랑해 봤다. 난 보통 사람으로 살 것이다. 결혼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내 개인적 사랑에 대해선 난 아는 바가 없다. 언젠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가.
“유전자 탓이다.”

- 특별히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가.
“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데 좀 삼가야 하겠다. 수년간 함께 일한 트레이너와 신체 단련하는 것이 전부다.”

- 좋아하는 음료수는 무엇인가.
“목마를 때 마시는 한 잔의 냉수다. 그 밖에는 적포도주와 위스키다. 좋아하는 포도주는 1982년 산 오베론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콩: 해골 섬(Kong: Skull Island)


킹콩이 공룡과 한판 겨루기 전에 가슴을 치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산더미만한 킹 콩이 다시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올해가 이제 불과 석 달 째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있어 올해 최악의 영화로 이야기란 보잘 것 없는 특수효과 위주의 꼴불견이다. 후반이 전반보다 더 엉터리인데 특수효과가 판을 치면서 얘기가 초점을 잃고 영화 속 인물들처럼 갈팡질팡하면서 질질 끌고 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킹 콩 영화는 스톱모션으로 킹 콩을 만든 페이 레이 주연의 ‘킹 콩’(1933)과 제시카 랭이 나오는 ‘킹 콩’(1976) 및 네이오미 와츠가 주연한 ‘킹 콩’(2005) 등 여러 편이 있는 인기 품목인데 이번 것은 3류에 속한다.
이 허우대만 거대한 영화는 ‘킹 콩’과 베트남 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짬뽕한 액션모험 영화인데 내용이나 특수효과 등이 다 터무니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온다. 본의 아니게 코미디가 된 영화로 크기만 하다고 잘 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타작이다.
서론 식으로 1944년 태평양 상공에서 두 대의 전투기가 섬으로 추락한다. 하나는 미군 파일롯 말로가 모는 전투기요 다른 하나는 일본전투기. 둘이 총과 칼을 사용해 격투를 벌이는데 절벽 아래서 킹 콩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주인공은 여러 배우가 아니라 신장이 산의 높이만한 킹 콩이다.
이어 때와 장소는 베트남 전이 한창인 1973년의 워싱턴 D.C.로 이동한다. 고고학자로 추정되는 빌 란다(존 굿맨)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얻어내 태평양 상의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섬을 탐험하러 떠나면서 일단 사이공에 도착한다. 여기서 빌을 도와 이 섬으로 함께 가는 자가 막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팩카드 중령(새뮤얼 L. 잭슨이 아이가 만화 보며 즐기듯이 엉터리 영화를 즐긴다)과 그의 부하 채프맨 소령(토비 케벨)과 이들의 부하들.
여기에 반전주의자인 여자 사진작가 메이슨 위버(브리 라슨-작년에 ‘룸’으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탐험가이자 길잡이인 콘래드(톰 히들스톤-올해 TV시리즈 ‘나잇 매니저’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 수상).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왜 이 영화에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섬의 탐험에 나서면서 자기가 사는 신성한 지역을 침범한 것에 노발대발한 킹 콩이 이들이 탄 헬기를 비롯해 인간들을 찢고 밟고 씹으면서 유린하는데 킹 콩 뿐 아니라 거대한 공룡과 메뚜기와 파충류들이 이에 합세해 사람들을 도륙한다. 킹 콩은 사람만 잡을 뿐 아니라 공룡을 비롯한 자기 이웃들과도 싸우느라 바쁜데 킹 콩과 거대한 낙지(문어?)와의 대결이 가관이다. 킹 콩이 생 낙지 다리를 소주도 없이 맛있게 씹어 먹는다.
탐험대는 잃어버린 종족인 원주민들과 함께 사는 수염을 잔뜩 기른 말로(존 C. 라일리)를 만나고 킹 콩의 무차별 살육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그와 함께 귀국한다. 킹 콩이 물에 빠진 위버를 구출해 자기 손 바닥 위에 올려놓는 장면과 킹 콩과 공룡의 격투 그리고 잃어버린 원주민 등은 다 1933년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PG-13. 조단 보그트-로버츠 감독.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날것(Raw)


쥐스틴이 냉장고에서 날고기를 꺼내 씹어 먹는다.

동물, 가금류 그리고 인간을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생고기를 씹고 뜯어 먹는 피로 뒤범벅이 된 장면 때문에 작년 칸영화제서 상영 시 관객들이 구토를 하고 퇴장을 하는 소동을 벌였던 날 것에 맛을 들인 여대생의 소품 공포영화로 프랑스와 벨기에 합작이다. 
프랑스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의 데뷔작인데 눈 뜨고 보기에 끔찍하지만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스타일이 멋있어 외면하기가 힘들다. 
B급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넘어섰는데 따귀와 비게 뺀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얘기가 온 몸에 소름 돋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일종의 여대생의 성장기이자 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자매간의 사랑과 대결 의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언니 알렉시아(엘라 룸프)가 다니는 수의과대에 입학한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입학하자마자 다른 신입생들과 함께 상급생들에 의해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영화 ‘캐리’를 본 딴 동물의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는가 하면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쥐스틴이 채식주의자라는 것. 쥐스틴은 죽을상을 하면서 토끼 간을 먹는데 아뿔싸 이를 어쩌나 한번 먹어본 생고기 맛에 중독이 돼 그 뒤로 쥐스틴은 생고기를 안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 마약중독자처럼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잠을 못자 고통 한다.               
그래서 쥐스틴은 햄버거의 빵을 빼고 고기만 슬쩍 훔쳐 실험복 주머니에 넣고 냉장고의 생고기를 꺼내 게걸들린 듯이 씹어 먹는다. 쥐스틴의 식욕은 갈수록 강해져 급기야 인간의 고기마저 먹게 되는데 그 희생자 중 하나가 쥐스틴의 동성애자 룸메이트 에이드리엔(라바 나잇 우펠라). 그리고 쥐스틴은 가위를 들고 알렉시아와 다투다가 언니의 손가락을 자르는데 그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긴다. 
드라큘라 영화와 산송장 영화의 분위기를 갖춘 예술적 피범벅 공포영화인데 쥐스틴이 식욕을 채우지 못해 고통하고 또 날고기를 먹은 뒤 후회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마릴리에의 수줍고 소심하면서도 똘똘한 연기와 룸프의 공격적이며 대담한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루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모든 사람의 기호에 어울릴 영화는 아니지만 공포영화 팬들에겐 아주 색 다른 작은 수작이다. 너무 끔찍해서 탈이지만. R.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지상 최대의 쇼’




내가 ‘십계’를 만든 세실 B. 드밀이 감독한 서커스영화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1952^사진)를 본 것은 중학생 때 서울 용산에 있던 성남극장에서였다. 찰턴 헤스턴, 코넬 와일드, 제임스 스튜어트, 베티 허튼. 글로리아 그래암 및 도로시 라모어 등 초호화 캐스트에 코끼리, 사자 그리고 호랑이 등이 나오는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 영화가 ‘하이 눈’과 ‘아일랜드의 연풍’ 및 ‘사랑은 비를 타고’ 같은 영화들을 제치고 오스카 작품상을 탄 것을 놓고 논란이 되긴 했지만 꼬마였던 나는 총천연색 만화경과도 같은 꿈의 세계에 빠져 넋을 잃고 구경 했었다. 이 영화는 미 최대의 서커스인 링글링 브라더스와 바넘 & 베일리의 쇼와 단원들 간의 애증과 경쟁의식을 다룬 것으로 진짜 서커스 단원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런데 이 ‘지상 최대의 쇼’를 지난 146년 간 제공해온 링글링 서커스가 오는 5월로 해체된다. 재정난 탓인데 특히 동물 애호가들의 압력에 굴복, 작년 5월부터 코끼리를 쇼에서 퇴출시킨 뒤로 관객이 부쩍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끼리들은 바넘이 지난 1882년 ‘점보’라 명명한 아시안 코끼리를 관객들에게 소개시킨 이래 이 서커스의 상징이 돼왔다. 이와 함께 인터넷 시대에 변화하는 대중의 취향도 해체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빅 탑이라 불리는 서커스는 한국에서는 곡마단이라고 했다. 곡마단은 아이들에겐 꿈과 환상과 마법의 세계여서 나도 어렸을 때 동네에 곡마단이 천막을 치면 어머니에게 졸라 돈을 타 구경을 하곤 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천막 안에 깐 거적 위에 앉아 접시돌리기, 외발 자전거 타기, 줄타기 그리고 마술과 광대의 익살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살빛 싸구려 스타킹을 신고 공중을 새처럼 훨훨 나는 그네 타는 소녀의 넓적다리였다. 모든 것이 초라한 곡마단의 공기 속에서 그네 타는 소녀의 표정 없는 얼굴에 발랐을 염가 분 냄새를 상상으로 들여 마시며 미열이 나는 흥분을 느꼈었다.
그네 타는 여자를 보고 반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빔 벤더스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단된 베를린에 대한 찬가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1997)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브루노 간츠)도 곧 해체될 서커스의 그네 타는 여자 마리옹(솔베이지 동마르탱)을 보고 매료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다미엘은 등에 닭털 날개를 단 곱슬머리 긴 금발에 날씬한 허리 그리고 곡선 진 몸매를 한 마리옹이 살빛 스타킹을 신은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내뻗고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고 반해 지상에서 그녀와 같이 있기 위해 불사의 천사 노릇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트라피즈 아티스트라 불리는 그네 타는 곡예사 마리옹이 천사와도 같다면 또 다른 서커스영화 ‘트라피즈’(Trapeze^1956)의 그네 타는 여자로 나오는 이탈리안 육체파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육체의 악마다. 육감적인 롤로브리지다를 사이에 놓고 두 그네 타는 남자 버트 랭카스터와 토니 커티스가 치열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육신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과시하는 세 남녀가 모두 탄탄한 육체에 꽉 끼는 옷을 입어 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영화도 성남극장에서 봤다.
유랑민들의 집단인 곡마단의 생태를 연민과 애정의 마음으로 묘사한 소설이 한수산의 ‘부초’다. 제목처럼 떠다니는 풀과도 같은 ‘일월 곡예단’ 단원들의 간난한 삶과 동지애와 사랑을 소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묘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었다.
작가는 산업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의 삶을 동병상련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어 작품에 애조가 드리워져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하명은 외줄타기 곡예사 지혜를 사랑하나 곡마단에서는 이성 간의 사랑이 금기로 돼 있어 둘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곡마단하면 무섭고 섬뜩한 생각부터 들었었다. 곡마단의 어른들이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밥 짓고 빨래하고 물 길어 나르게 하면서 학대하고 무자비하게 곡예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내게 곡마단은 비극의 공연장이요 유형자의 유배지처럼 느껴졌었다.
얼마 전에 현재 뉴욕에서 찍고 있는 폭스사의 서커스영화 ‘최대의 쇼맨’(The Greatest Showman)의 세트 구경을 갔었다.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창설자인 P.T. 바넘의 삶을 다룬 뮤지컬로 바넘으로 휴 잭맨이 나온다. 음악과 노래는 ‘라 라 랜드’로 오스카상을 탄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지었다. 이 영화는 ‘물랭 루지’ ‘시카고’ 및 ‘레 미제라블’ 등과 같은 호화 뮤지컬로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된다.
링글링 브라더스와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해체는 모든 것이 컴퓨터 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조치라고 보겠다. 옛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섭섭하긴 하지만 서커스가 지상에서 소멸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서커스 바가스, 빅 애플 서커스 그리고 실물 대신 실물 크기의 꼭두각시 코끼리를 쓰는 서커스 1903 및 입장료가 비싼 시르크 뒤 솔레유 등이 호객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3월 6일 월요일

로간(Logan)


화가 난 로간의 손에서 강철 손톱이 튀어 나온다.

노쇠한 울버린‘로건’낯선 소녀‘로라'를 만나


마블만화 ‘X-멘’의 주인공 중 하나로 손에서 날카로운 강철 손톱이 튀어나오는 돌연변이 늑대인간 울버린으로 빅스타가 된 휴 잭맨이 울버린 역에서 은퇴하는 마지막 영화다.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뇌하는 울버린은 여기서 피곤하고 지친 로간으로 나와 본의 아니게 어린 소녀를 돌보게 되면서 폭력을 가차 없이 구사한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유혈폭력이 자심하고 길지만(137분) 연출과 기술적인 면과 내용 그리고 연기 등이 다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일종의 속편이나 속편 같지 않게 독립해 혼자 따로 선 영화다.
느와르 분위기 속에 지구 종말 얘기와 웨스턴을 모방하고 있는데 알란 래드가 나온 ‘셰인’(Shane)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이 영화에 대해 경배를 하고 있다. 과도하게 끔찍한 폭력이 흠이긴 하나 액션 속에 유머와 감정과 감상 그리고 서정성 까지 내포하고 있는 볼만한 영화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겐 적당치 않아 등급이 R(17세 미만 관람 시 부모나 성인의 조언이 필요함)이다.
2029년. 돌연변이들은 이제 멸종 상태다. 남아 있는 것이 삶에 지쳐 술꾼이 된 채 리모 운전사로 연명하는 로간(잭맨)과 그가 돌보는 X-멘 리더 찰스(패트릭 스튜어트) 그리고 백변종인 캘리반(스티븐 머천트). 이들은 텍사스의 엘 파소 변두리에 있는 버려진 제철소에서 산다.     그런데 9순의 찰스는 뇌가 과거와 달리 작용을 제대로 못 해 막강한 텔레파시 힘을 자유재로 다루지 못 한다. 
어느 날 로간 앞에 현찰 더미를 들고 나타난 소녀 로라(대프니 킨)가 자기를 빨리 캐나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이에 로간과 로라 그리고 찰스가 대형 리모를 타고 미국의 중간을 가로질러 캐나다로 내빼면서 폭력과 액션이 일어난다. 강렬한 시선을 지닌 로라는 로간처럼 손에서 강철 손톱이 나오는 돌연변이로 로라와 다른 돌연변이 아이들을 멕시코의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사람은 사악한 생명공학자 라이스박사(리처드 E. 그랜트).
여기서 도주한 로라를 라이스의 하수인인 도널드 피어스(보이드 홀브룩)와 그의 인조인간 졸개들이 뒤를 쫓으면서 로라가 로간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맹렬한 추격과 도주가 있는 로드 무비로 이 과정에서 로간과 로라 간에 이뤄지는 부녀와도 같은 관계가 매우 감정적이다. 
잭맨이 폭력적이면서도 정감 있는 모습을 힘차고 다양하게 보여주고 과묵한 로라 역의 킨이 몸과 마음을 모두 안으로 팽팽하게 휘어감은 당찬 연기를 한다. 대성할 아이다. 울버린이 이 영화로 팬들과 작별을 고하긴 했으나 할리웃에선 죽은 사람도 되살아나는 것이 보통이어서 언제 다시 울버린이 부활해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유언(The Last Word)


해리엣이 고독을 술로 달래고 있다.

81세 고약한 이혼녀… 뒤늦게 인생의 교훈 배워


8순의 베테런 스타 셜리 매클레인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춤까지 추면서 스크린을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니는 원 우먼 쇼와도 같은 달곰씁쓸한 코미디 드라마다. 얘기가 너무 틀에 박힌 대로 엮어진 대다 과다하게 감상적인 것이 흠이긴 하나 매클레인의 의기양양한 연기 하나만 봐도 즐길 수 있는 매클레인에게 보내는 찬사다.
올드 팬들을 위한 영화인데 한 여자가 드래곤 레이디에서 뒤 늦게 인생의 교훈을 배워 가슴이 넉넉해지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얘기를 인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렇게 내면적으로 가슴이 넉넉해지면서 동시에 실제 심장도 과다하게 커져 비로소 새 인생을 값지게 살아보려는 순간 의사로부터 슬픈 진단을 받는다. 
LA인근 허구의 마을 브리스톨에서 혼자 사는 81세난 해리엣 롤러(매클레인)는 심술꾸러기요 허영에 찼으며 퉁명스럽고 남 알기를 신발털이 깔개 정도로 아는 고약한 이혼녀다. 티 없이 깨끗한 큰 집에서 혼자 사는 해리엣은 고독을 달래기 위해 포도주를 상음하는데 어느 날 수면제에 포도주를 섞어 먹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리엣은 동네신문 브리스톨 가젯의 부음을 읽다가 문득 자기가 죽으면 어떻게 보도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래서 자기가 알기엔 모두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도 생전 훌륭하고 좋은 일을 한 사람으로 부음기사를 쓰는 신문의 여기자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을 찾아가 자기 부음기사를 위한 참고로 자기를 아는 100명의 이름을 주면서 기사 준비를 시킨다. 
그러나 앤이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해리엣에 관해 물어보니 모두 독한 소리만 한다. 심지어 동네 신부마저 해리엣을 증오한다고 고백한다. 해리엣에 대해 관용적인 유일한 사람이 그녀의 전 남편 에드워드(필립 베이커 홀). 
해리엣은 이제부터 좋은 일을 하겠다며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선다. 달동네의 9세난 당돌한 흑인소녀 브렌다(앤 주얼 리)의 후견인이 되고 관계가 소원했던 딸 엘리자베스(앤 헤시)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동네 라디오 방송국에서 옛 록뮤직을 트는 D.J. 까지 하면서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서의 재생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앤이 엘리자베스를 대신한 딸처럼 된다. 마크 펠링턴 감독. R. Bleecker Stree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팜므 파탈‘살로메’




처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틴에이저 살로메가 한을 품으니 세례 요한의 목이 날아갔다. 성경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살로메 얘기를 극적으로 각색한 것이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이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연극을 보고 오페라 ‘살로메’(Salome)를 작곡했다.
성경과 달리 오페라에서는 살로메가 세례 요한에게 애걸복걸하다시피 구애하다 퇴짜를 맞은데 앙심을 품고 자기를 탐내는 의붓아버지 헤롯왕에게 자기가 춘 ‘일곱 베일의 춤’의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살로메의 얘기는 욕정과 피, 집념과 복수가 얼키설키 엮어진 퇴폐적 향락주의로 채색된 내용으로 여성의 성적 힘을 노골화한 우먼 파워의 얘기이기도 하다. 병적이요 변태적이며 가학적 야만성을 지닌 야단스런 내용 때문에 살로메의 얘기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좋은 창작소재가 되어왔다.
살로메의 드라마는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요염한 선정성 때문에 ‘요부’라 불린 무성영화 시대 수퍼 스타 테다 바라가 1918년에 주연한 것에서부터 켄 러셀 감독의 ‘살로메의 마지막 춤’(1981) 까지 다양하다.
내가 중학생 때 수도극장에서 본 ‘살로메’(1953)도 그 중 하나다. 에로틱한 글래머 스타 리타 헤이워드가 주연인데 질은 떨어지나 값 싼 재미가 있다. 영화에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숨을 구하려다 실패한 뒤 예수의 복음에서 구원을 찾는다. 헤이워드가 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나긋나긋한 육체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면서 ‘일곱 베일의 춤’을 춰 헤롯(찰스 로턴)뿐만 아니라 어린 녀석이었던 나의 넋까지 빼앗아 갔었다.    
그리고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선셋 대로’의 마지막 장면에서 머리가 돌아버린 무성영화 시대의 빅 스타 노마 데즈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드밀 씨, 나 클로스-업 준비 다 됐어요”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연기하는 여인의 모습도 살로메의 것이다.
살로메의 오페라로는 마스네의 ‘에로디아드’도 있지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슈트라우스의 것이다. 1막짜리로 지난 1905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초연됐는데 대사도 원작인 와일드의 연극대사를 사용했다.
그런데 연극이나 오페라 모두 과격하고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판금과 공연불가 조치를 당하면서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오페라 ‘살로메’는 190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의해 미국에서 초연됐으나 역시 내용 때문에 단 1회 공연 후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내용이나 음악이 모두 혁명적인 오페라 ‘살로메’가 현재 LA오페라에 의해 LA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 공연 중이다(19일까지.) 살로메 역은 10대 소녀의 유연한 동작과 바그너 오페라의 강력한 음역을 지닌 소프라노를 겸비해야 하는 어려운 것이다. 살로메가 혼자 오페라를 어깨에 짊어지다 시피 한 것이어서 초인적인 스태미나를 요구한다.
LA오페라의 살로메는 50대의 패트리시아 라셋이 맡았는데 노래는 곱고 힘차며 연기는 육감적이었다. 중년 여인이 소녀 역을 맡아 독무대다 싶을 만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리 지르고 울부짖으면서 카리스마가 가득한 노래와 연기를 했다. 라셋의 노래 소리는 청아하고 결이 고우면서도 폭과 깊이를 갖춘 강렬한 것이었다. 동작은 율동적이며 고무공이 튀듯이 탄력이 있는데 애교를 부리면서 저돌적이기 까지 했다.
특히 감동적으로 강렬한 것은 살로메와 세례 요한(바리톤 토마스 토마슨)과의 이중창. 살로메가 자기를 마다하는 세례 요한에게 구애의 말들을 폭우처럼 쏟아놓는데 이야말로 불꽃 튀는 성의 대결이다. 이와 함께 살로메가 손에 든 세례 요한의 머리를 보면서 욕정과 복수의 말들을 토해내는 병적으로 섹시한 장면(사진) 역시 보는 사람의 감관을 사로잡을 만하다.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살로메가 추는 ‘일곱 베일의 춤’. 이 춤 때문에 세례 요한의 목이 날아가는데 라셋은 4명의 남자댄서들과 함께 정열적인 춤을 추다가 마지막에 완전 나체로 헤롯과 관객을 유혹했다. 충격적이다.
살로메의 세례 요한에게 보내는 대사가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시적이다(그런데 대사 중 일부가 반유대적이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흰 피부와 검은 머리 그리고 붉은 입술을 찬미하는데 살아서 못한 세례 요한에 대한 키스를 잘라진 머리의 입술에다 하면서 육욕과 복수에 환희하는 모습을 보자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살로메야말로 남자 잡는 팜므 파탈이다.
음악이 힘차고 격정적이며 사정없이 몰아대면서도 곱고 서정적인데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LA오페라 오케스트라가 훌륭하게 연주했다. 세트는 보잘 것 없었으나 토마슨을 비롯해 살로메를 짝사랑하다 자살한 근위대장 역의 테너 이사카아 새비지와 나사렛인 역의 한국계 바리톤 윤기훈 등이 다 노래를 잘 불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