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날것(Raw)


쥐스틴이 냉장고에서 날고기를 꺼내 씹어 먹는다.

동물, 가금류 그리고 인간을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생고기를 씹고 뜯어 먹는 피로 뒤범벅이 된 장면 때문에 작년 칸영화제서 상영 시 관객들이 구토를 하고 퇴장을 하는 소동을 벌였던 날 것에 맛을 들인 여대생의 소품 공포영화로 프랑스와 벨기에 합작이다. 
프랑스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의 데뷔작인데 눈 뜨고 보기에 끔찍하지만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스타일이 멋있어 외면하기가 힘들다. 
B급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넘어섰는데 따귀와 비게 뺀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얘기가 온 몸에 소름 돋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일종의 여대생의 성장기이자 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자매간의 사랑과 대결 의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언니 알렉시아(엘라 룸프)가 다니는 수의과대에 입학한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입학하자마자 다른 신입생들과 함께 상급생들에 의해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영화 ‘캐리’를 본 딴 동물의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는가 하면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쥐스틴이 채식주의자라는 것. 쥐스틴은 죽을상을 하면서 토끼 간을 먹는데 아뿔싸 이를 어쩌나 한번 먹어본 생고기 맛에 중독이 돼 그 뒤로 쥐스틴은 생고기를 안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 마약중독자처럼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잠을 못자 고통 한다.               
그래서 쥐스틴은 햄버거의 빵을 빼고 고기만 슬쩍 훔쳐 실험복 주머니에 넣고 냉장고의 생고기를 꺼내 게걸들린 듯이 씹어 먹는다. 쥐스틴의 식욕은 갈수록 강해져 급기야 인간의 고기마저 먹게 되는데 그 희생자 중 하나가 쥐스틴의 동성애자 룸메이트 에이드리엔(라바 나잇 우펠라). 그리고 쥐스틴은 가위를 들고 알렉시아와 다투다가 언니의 손가락을 자르는데 그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긴다. 
드라큘라 영화와 산송장 영화의 분위기를 갖춘 예술적 피범벅 공포영화인데 쥐스틴이 식욕을 채우지 못해 고통하고 또 날고기를 먹은 뒤 후회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마릴리에의 수줍고 소심하면서도 똘똘한 연기와 룸프의 공격적이며 대담한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루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모든 사람의 기호에 어울릴 영화는 아니지만 공포영화 팬들에겐 아주 색 다른 작은 수작이다. 너무 끔찍해서 탈이지만. R.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