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3월 6일 월요일

팜므 파탈‘살로메’




처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틴에이저 살로메가 한을 품으니 세례 요한의 목이 날아갔다. 성경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살로메 얘기를 극적으로 각색한 것이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이요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연극을 보고 오페라 ‘살로메’(Salome)를 작곡했다.
성경과 달리 오페라에서는 살로메가 세례 요한에게 애걸복걸하다시피 구애하다 퇴짜를 맞은데 앙심을 품고 자기를 탐내는 의붓아버지 헤롯왕에게 자기가 춘 ‘일곱 베일의 춤’의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살로메의 얘기는 욕정과 피, 집념과 복수가 얼키설키 엮어진 퇴폐적 향락주의로 채색된 내용으로 여성의 성적 힘을 노골화한 우먼 파워의 얘기이기도 하다. 병적이요 변태적이며 가학적 야만성을 지닌 야단스런 내용 때문에 살로메의 얘기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좋은 창작소재가 되어왔다.
살로메의 드라마는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요염한 선정성 때문에 ‘요부’라 불린 무성영화 시대 수퍼 스타 테다 바라가 1918년에 주연한 것에서부터 켄 러셀 감독의 ‘살로메의 마지막 춤’(1981) 까지 다양하다.
내가 중학생 때 수도극장에서 본 ‘살로메’(1953)도 그 중 하나다. 에로틱한 글래머 스타 리타 헤이워드가 주연인데 질은 떨어지나 값 싼 재미가 있다. 영화에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숨을 구하려다 실패한 뒤 예수의 복음에서 구원을 찾는다. 헤이워드가 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나긋나긋한 육체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면서 ‘일곱 베일의 춤’을 춰 헤롯(찰스 로턴)뿐만 아니라 어린 녀석이었던 나의 넋까지 빼앗아 갔었다.    
그리고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선셋 대로’의 마지막 장면에서 머리가 돌아버린 무성영화 시대의 빅 스타 노마 데즈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드밀 씨, 나 클로스-업 준비 다 됐어요”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연기하는 여인의 모습도 살로메의 것이다.
살로메의 오페라로는 마스네의 ‘에로디아드’도 있지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슈트라우스의 것이다. 1막짜리로 지난 1905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초연됐는데 대사도 원작인 와일드의 연극대사를 사용했다.
그런데 연극이나 오페라 모두 과격하고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판금과 공연불가 조치를 당하면서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오페라 ‘살로메’는 190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의해 미국에서 초연됐으나 역시 내용 때문에 단 1회 공연 후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내용이나 음악이 모두 혁명적인 오페라 ‘살로메’가 현재 LA오페라에 의해 LA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 공연 중이다(19일까지.) 살로메 역은 10대 소녀의 유연한 동작과 바그너 오페라의 강력한 음역을 지닌 소프라노를 겸비해야 하는 어려운 것이다. 살로메가 혼자 오페라를 어깨에 짊어지다 시피 한 것이어서 초인적인 스태미나를 요구한다.
LA오페라의 살로메는 50대의 패트리시아 라셋이 맡았는데 노래는 곱고 힘차며 연기는 육감적이었다. 중년 여인이 소녀 역을 맡아 독무대다 싶을 만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리 지르고 울부짖으면서 카리스마가 가득한 노래와 연기를 했다. 라셋의 노래 소리는 청아하고 결이 고우면서도 폭과 깊이를 갖춘 강렬한 것이었다. 동작은 율동적이며 고무공이 튀듯이 탄력이 있는데 애교를 부리면서 저돌적이기 까지 했다.
특히 감동적으로 강렬한 것은 살로메와 세례 요한(바리톤 토마스 토마슨)과의 이중창. 살로메가 자기를 마다하는 세례 요한에게 구애의 말들을 폭우처럼 쏟아놓는데 이야말로 불꽃 튀는 성의 대결이다. 이와 함께 살로메가 손에 든 세례 요한의 머리를 보면서 욕정과 복수의 말들을 토해내는 병적으로 섹시한 장면(사진) 역시 보는 사람의 감관을 사로잡을 만하다.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살로메가 추는 ‘일곱 베일의 춤’. 이 춤 때문에 세례 요한의 목이 날아가는데 라셋은 4명의 남자댄서들과 함께 정열적인 춤을 추다가 마지막에 완전 나체로 헤롯과 관객을 유혹했다. 충격적이다.
살로메의 세례 요한에게 보내는 대사가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시적이다(그런데 대사 중 일부가 반유대적이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흰 피부와 검은 머리 그리고 붉은 입술을 찬미하는데 살아서 못한 세례 요한에 대한 키스를 잘라진 머리의 입술에다 하면서 육욕과 복수에 환희하는 모습을 보자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살로메야말로 남자 잡는 팜므 파탈이다.
음악이 힘차고 격정적이며 사정없이 몰아대면서도 곱고 서정적인데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LA오페라 오케스트라가 훌륭하게 연주했다. 세트는 보잘 것 없었으나 토마슨을 비롯해 살로메를 짝사랑하다 자살한 근위대장 역의 테너 이사카아 새비지와 나사렛인 역의 한국계 바리톤 윤기훈 등이 다 노래를 잘 불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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