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는 '남녀관계'
인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리엣과 로미오’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려고 인도에 간 약혼녀가 있는 프랑스 작곡가 앙트완(마크 뒤자르당)과 인도 주재 프랑스대사(크리스토퍼 램버트)의 부인 안나(엘사 질버스타인)와의 사랑을 코믹터치를 가해 로맨틱하게 그린 ‘사랑이 이끄는 대로’(Un+Une)의 감독인 프랑스의 노장 클로드 를루슈(79)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를루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사랑’에 대해 무척 강조했다. 철학이 있는 예술가의 깊이가 느껴져 감동적인 인터뷰였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 질버스타인이 통역을 했다. 각기 남성 부정관사와 여성 부정관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를루슈가 50년 전에 연출한 사랑의 명화 ‘남과 여’(A Man and a Woman·1966)의 변형이라고 하겠는데 음악 역시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러브스토리’의 음악도 작곡)가 지었다.
-영화 제목이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는 부정관사로 감독이 50년 전에 만든 ‘남과 여’를 연상시키는데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가.
“난 그 영화 이후 50여년 간에 걸친 남녀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를 본 것이 남녀관계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했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매우 강해졌다. 이젠 여자가 남자 없이도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 이런 변화를 실제로 개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다섯 명의 다른 여자로부터 7명의 아이들을 보았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 여자들은 나보다 월등한 존재다. 이 영화는 내 개인적 얘기인 셈이다.”
-영화음악을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했는데 그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지.
“어떤 면에서 그는 또 다른 나다. 내가 이미지를 만들 듯이 그는 음악을 짓는다. 그동안 우린 함께 35편의 영화에서 일했다.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오마지이자 프란시스 레이에 대한 오마지이다.”
안나(왼쪽)와 앙트완은 인도여행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
-50여년 간의 남녀관계의 변화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앙트완은 어떤 면에서 아직도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마초맨(남성 우월주의자)이다. 그는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이다. 그동안 남녀 간의 문제는 엄청나게 변해 이젠 남자들이 여자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녀관계가 쉽지가 않다. 아직 서로 매력은 느낄지 몰라도 상호 신뢰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관계에 접어들기 전에 그 것의 안전을 위한 보험부터 생각한다. 그들은 과거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 큰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나 자신도 죄의식을 느낀다. 영화에서 안은 앙트완의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앙트완은 진실로 안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앙트완은 안이 매우 강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젊었을 때보다 여자를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결코 여자를 무서워한 적이 없다. 난 여자를 날이면 날마다 더욱 더 사랑한다. 좌우간 내가 여자들이 얼마나 멋들어진 사람들인가를 이해하는데 평생이 걸렸다. 이 영화는 여자에 대한 오마지이기도 하다.”
-여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난 내가 관계한 여자들로부터 늘 배운다. 매번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난 이제 함께 시간을 보낼 마지막 여인을 찾았다. 전에는 여자들이 매번 날 다른 여자들에게로 안내하는 일을 했는데 이제 바른 여자를 찾았다고 느낀다. 내가 만드는 러브 스토리는 또 다른 궁극적 러브 스토리를 위한 준비인 셈이다. 나의 러브 스토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러브 스토리가 매우 변질되고 있다. 그 것으로 사람 찾기가 쉬워졌는지는 몰라도 갈수록 올바른 사람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지금 세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쉬운 때라고 본다.”
-왜 인도로 장소를 정했는가.
“그동안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이 내게 계속해 인도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들은 나의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이 인도를 그리기에 아주 적합하다며 꼭 인도에 갈 것을 권유했다. 나도 인도처럼 죽음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인도는 영원의 나라다. 난 그 점을 다루고 싶었다.
인도가 또 하나 멋있는 점은 질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해야 배운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삶에 있어 가장 좋은 학교는 고통이다. 난 내 영화들 중 성공한 것들보다 실패작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우리를 보다 좋게 만든다. 모든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인도가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자랐다. 내 영화들도 이런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난 단지 세상의 관람자일 뿐이다. 난 내 작품의 인물을 통해 내가 삶으로부터 느낀 점을 얘기하고 있다.”
-러브 스토리란 무엇인가.
“그 것은 두 사람간의 긴 대화다. 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사랑이며 침묵은 러브 스토리의 끝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계속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감독과 음악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음악은 우리의 무의식을 향해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룰 수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내게 음악은 신의 음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음악은 영원을 뜻한다. 거기엔 죽음이 없다. 나는 의기소침해지거나 기분이 상할 때면 음악을 듣는다. 그 것이 내 첫 번째 약이다. 스포츠인들 중에는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난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작곡하고 배우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한다. ‘남과 여’를 찍을 때도 세트에 음악을 보내 배우들이 걷고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을 듣도록 했다. 내 모든 영화에서 같은 방식을 취한다. 난 음악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하는 하나의 인물로 쓰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녹음한다.”
-그러면 프란시스 레이는 각본에 따라 작곡을 하는가.
“내가 영화 내용을 맨 먼저 얘기해 주는 사람이 레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의 얘기를 음악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어 우린 함께 주제에 관해 일한다. 대작업이다. 우린 다른 방법으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는가.
“그 때가 바로 자신보다 남을 보다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때이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면서 보다 관대해지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물은 러브 스토리로 사랑이란 연약하고 복잡한 것이나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것이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사랑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의 완전범죄이다.”
-자신이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그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술가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영화인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정열적인 사람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힘들다. 정열은 다른 것과 공유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보다 내 작품을 더 소중히 여겼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옆으로 달려갔지만 그 것이 해결되면 아이들 곁을 떠났다. 그래서 난 과거 한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배우나 감독이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로 대중이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다. 마릴린 몬로가 그 좋은 예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행복하기가 힘들다. 내가 이제껏 만난 수퍼스타 중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장-폴 벨몽도다. 그는 아이로 머물러 살고 있는데 아이로 머물러 있으면 개인적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그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미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어렸을 때 미국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난 미국에서 살 수는 없으나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블락버스트들은 보고 있기가 쉽지 않다. 영화란 인물과 성격에 관한 것인데 미국영화보다는 유럽영화들이 이들을 지키고 있다. 물론 우디 알렌, 스코르세지, 코폴라 등은 다르다.”
-이 영화는 매우 영적인데 감독도 영적인 사람인가.
“그럴 수 있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경한다. 그 것은 슬프거나 방황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들 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나도 영적인 순간을 가질 때가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