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1월 8일 화요일

바비 비



모든 것이 저물고 떨어지는 이 늦가을 조락의 계절에 내가 10대 때 들으며 즐거워하던 팝송을 부른 가수가 또 한 명 세상을 떠났다. 본명이 로버트 토머스 벌라인인 바비 비(Bobby Vee·사진)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지난 10월 24일 73세로 미네소타주 로저스에서 타계했다.
그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역시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인 ‘위치타 라인맨’ ‘라인스톤 키우보이’ 및 ‘젠틀 온 마이 마인드’를 부른 록과 컨트리가수 글렌 캠블이 생각났다. 그도 지금 이 질병을 앓고 있는데 지난해에 생애 마지막 순회공연을 한 바 있다.
바비 비하면 제일 먼저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테이크 굿 케어 오브 마이 베이비’다. 자기를 버리고 간 애인의 새 남자에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얘기를 하면서 잘 보살펴 주라”고 청승맞은 부탁을 하는 노래다. 비가 1961년에 불러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었는데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빅히트, 다방과 음악감상실과 라디오 방송의 DJ들이 계속 틀어댔었다.
귀엽게 생긴 비는 1959년 그의 첫 싱글 ‘수지 베이비’가 히트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해 이어 ‘테이크 굿 케어 오브 마이 베이비’ 등 히트곡들을 줄줄이 내놓으며 10대들의 우상이 되었다. ‘수지 베이비’는 비와 묘한 인연이 있는 모범생처럼 생긴 안경을 낀 록가수 버디 할리의 히트곡으로 템포가 빠른 ‘페기 수’를 본 따며 이 곡을 치하한 노래다.
내가 고등학생 때 들어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노래들은 한두 곡이 아니다. “굿나잇 하기 전에 마지막 키스를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원 라스트 키스’와 “그의 입술이 내 입술보다 더 네게 키스를 잘 해준다면 내 자존심을 잊을 테니 그에게 달려가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하는 ‘런 투 힘’ 그리고 “나는 네가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르겠으나 그 어느 것이든지 너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아무르 푸’식의 사랑을 고백하는 ‘데블 오어 에인절’ 등이다. 틴에이저였던 내 가슴에 와 닿았던 노래들이다. 틴에이저란 국적을 불문하고 마음이 같았다.
또 “나는 너를 내일엔 두 곱으로 사랑할 것이며 말로 할 수 없게끔 사랑한다”는 ‘모어 댄 아이 캔 세이’와 “사람들이 널 돌아다니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데 내게 시치미 떼고 거짓말 해 봐야 난 알게 되지. 밤이 천개의 눈을 가졌으니까”라고 은근히 애인을 겁주는 ‘더 나잇 해즈 어 다우전드 아이즈’ 그리고 “난 고무공처럼 계속해 네게 튀어 돌아온다”는 ‘러버 볼’ 및 “널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이 온통 달라졌다”고 어른 같은 소리를 하는 ‘신스 아이 멧 유 베이비’ 등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 덕택에 영어실력이 좀 늘었다.
생애 100개 히트곡 차트에 38곡이 오르고 그 중 10곡이 탑20 안에 들어갔던 비가 가수가 된 경우는 아주 특이하다. 1959년 2월3일. ‘댓일 비 더 데이’와 ‘페기 수’ 같은 히트송을 부른 버디 할리(22)와 ‘라 밤바’와 ‘다나’ 등 히트송을 노래한 히스패닉 리치 발렌스(17) 및 빅 바퍼(28) 등 ‘윈터 댄스파티’ 순회공연팀이 탄 경비행기가 다음 목적지인 미네소타주 모어헤드로 가다 추락, 모두 사망했다. 이 얘기는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가 발렌스로 나온 영화 ‘라 밤바’에서 생생히 그려졌다.
이 때 15세로 할리의 팬이자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비가 할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교 동급생들로 급조된 5인조 밴드 ‘쇄도즈’를 이끌고 고향인 노스다코타주 화고(영화와 TV 시리즈로 잘 알려진 도시)로부터 모어헤드에 도착, 공연을 한 것이 성공을 하면서 비의 가수로서의 생애가 시작됐다. 이 비극적 날은 단 맥클린이 부른 ‘아메리칸 파이’에서 ‘음악이 죽은 날’로 추모되었고 비는 1963년에 추모앨범 ‘아이 리멤버 버디 할리’를 출반했다.
비의 음성은 한 때 잠깐 그와 함께 순회공연을 한 뒤로 친구지간이 된 올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의 표현이 아주 정확하다. 딜런은 “비의 음성은 금속성의 모가 진 톤을 지녔으며 은종의 소리처럼 음악적이다”고 말했는데 비의 부음을 듣고 다시 들은 그의 노래 소리가 낭랑하기 짝이 없다. 딜런은 믹 재거와 마돈나를 비롯해 자기와 함께 노래를 부른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이 바비 비라고 말한 바 있다.
바비 비는 알츠하이머 진단이 나온 2011년까지 노래를 불렀는데 그 해 3월 로카빌리 홀 오브 페임 전당에 이름이 올랐고 지난 2014년 2월 가족과 친구들에 의해 비의 마지막 앨범 ‘어도비 세션즈가’ 나왔다.
바비 비도 가고 이제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즐겨 듣던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이 몇 안 남았다. 폴 앵카, 브렌다 리, 바비 라이델, 바비 빈튼, 닐 세다카, 해리 벨라폰테, 자니 마티스, 앤디 윌리엄스, 엥겔버트 험퍼딩크, 탐 존스, 토니 베넷 그리고 알 마티노와 비치보이즈의 브라이언 윌슨… 이들도 불원 노래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테니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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