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시카고, 마이 카인드 오브 타운’


‘윈디 시티’와 ‘세컨드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시카고의 2016년은 시 역사상 가장 명예로운
해이자 아울러 최악의 불명예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은 시카고 시민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것.
이와 반대로 시카고는 2016년 사상 초유의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한 무법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지난 10월 말 현재로 시카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총 614건으로 이는 지난 2003년 한 해 발생한 600건의 살인사건을 훌쩍 초과한 숫자다. 경찰에 의하면 올 살인사건의 특징은 갱 범죄라기보다 닥치는대로 식의 살인이라는 것. 이런 이유와 함께 경찰과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사우스와 웨스트사이드의 흑인 주민들 간의 불신의 폭이 넓혀지면서 사건해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꼭 이래서 만이 아니라 시카고 하면 선뜻 범죄도시로 생각하게 되는 까닭은 금주령 시대 이 도시를 말아먹었던 악명 높은 갱 두목 알 카폰(사진) 때문이다. 카폰은 금주령을 이용해 밀주제조와 판매 그리고 마약과 매춘으로 돈을 번 무자비한 자로 얼굴 왼쪽에 난 칼자국 때문에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폰과 시카고 하면 가장 유명한 사건이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 살육’이다. 1929년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에 카폰의 졸개들이 라이벌 갱 7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이 얘기는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 및 마릴린 몬로가 나온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도 묘사됐다.
카폰은 하도 유명해 여러 편의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먼저 금주령 시대인 1932년에 폴 뮤니가 카폰으로 나온 ‘스카페이스’가 치열하게 박진감 있고 로드 스타이거가 주연한 ‘알 카폰’(1959)도 흥미있다. 또 제이슨 로바즈가 나온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 매사커’(1967)도 야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알 파치노가 나온 ‘스카페이스’는 카폰 얘기가 아닌 쿠바 난민 갱스터 스릴러다.    
비교적 최근 것으로 잘 만든 카폰 영화가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카폰으로 나온 ‘언터처블즈’(1987).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에서 카폰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형사 엘리옷 네스로 케빈 코스너가 나오고 순찰경관으로 나온 션 코너리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체중을 늘린 드 니로가 야구방망이로 자기 졸개를 때려죽이는 무시무시하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제목은 실제 인물이었던 미 재무부 소속 금주령 위반 단속전담반 형사 네스와 그의 부하들을 일컫는 말로 ‘결코 부패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언터처블즈’의 활약은 로버트 스택이 네스로 나온 동명의 ABC-TV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시리즈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주한 미군 TV방송 AFKN을 통해 이 프로를 즐겨 봤다.
그런데 카폰은 부패한 시카고 경찰들에게 뇌물을 먹여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경찰이 아니라 국세청에 의해 세금포탈죄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감옥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금주령 시대 시카고의 이런 범죄와 부패와 타락상은 오스카 작품상을 탄 뮤지컬 ‘시카고’에서도 잘 그려진 바 있다.  
나도 시카고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도시의 특징은 디자인과 생김새가 멋있는 건물이다. 다양한 건축양식의 전시장과도 같은 도시로 많은 건물들이 1871년에 발생, 시카고를 폐허로 만들어놓은 대화재 후에 지은 것들이다. 마천루들이 도시에 깊은 계곡을 이루면서 서 있는데 길을 걷노라면 건물들의 큰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카고는 ‘배트맨’이 사는 중후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고댐시티로 안성맞춤이다. 크리스천 베일이 ‘배트맨’으로 그리고 사망한 히스 레저가 조커로 나온 ‘다크 나잇’도 여기서 찍었다. 나는 지난 2007년 이 영화 촬영 취재차 시카고에 갔었는데 그 때 관광을 하면서 지나친 건물 중에 카폰의 ‘스피크이지’(밀주판매 술집)도 있었다. 또 6.25 때 G.I.들이 던져주던 리글리검을 만드는 리글리빌딩도 남 다른 감회로 구경했었다.
시카고 하면 또 다른 명물이 재즈다.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피해 북상해 시카고에 정착하면서 재즈도 번성하게 되었다. 곳곳에 재즈바가 있는데 나도 시카고에 갔을 때 ‘백룸’이라는 재즈바에 들러 스카치와 재즈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시카고안들도 뉴요커들처럼 앤젤리노들 알기를 우습게 알긴 하지만 시카고는 매력적인 도시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시내트라도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라고 이 도시를 찬양했다.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야/시카고를 걷노라면 시카고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시카고는 온통 재즈야/매번 내가 시카고를 떠나려면 시카고는 내 팔소매를 잡아당기지/시카고는 리글리빌딩이야.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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