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월 31일 금요일

레이버 데이 (Labor Day)

탈옥수를 집에 숨겨주는 젊은 어머니


프랭크(조쉬 블로린·왼쪽)와 아델(케이트 윈슬렛)이 부엌에서 춤을 추고 있다.

공식적으로 여름철이 끝나는 레이버 연휴 동안에 일어나는 탈옥수와 그를 숨겨주는 젊은 어머니 간의 촛농이 피부에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여성용 최루물이다. 신파극의 정형과도 같은 영화로 로맨틱하고 또 에로틱한 멜로드라마이자 서스펜스 기운이 담긴 스릴러이기도 하다. 조이스 메이나드가 쓴 소설이 원작으로 젊은 감독 제이슨 라이트만의 인물들에 대한 연민과 이해 그리고 차분한 연출이 가슴에 와 닿는다. 볼만한 작품이다.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분출구가 막힌 고독한 여인이 탈옥수를 자기 집 안에 숨겨주면서 밀폐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3자간의 미묘한 감정적 인간적 관계를 그렸다. 영화는 아들의 관점에서 얘기된다(토비 맥과이어의 내레이션.)
1985년. 8월의 마지막 주말 노동절 연휴. 매서추세츠주의 교외에서 13세난 조숙한 아들 헨리 윌러(개틀린 그리피스)와 단 둘이 사는 이혼녀인 아델(케이트 윈슬렛)은 남자의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불안정한 여자다.
아델이 개학을 앞둔 행크(헨리의 애칭)와 함께 아들의 옷을 사려고 동네 수퍼에 들렀다가 탈옥수 프랭크 체임버스(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델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그를 자기 집안에 숨겨준다. 프랭크는 아내 살인죄로 20년형을 살고 있던 중이었다. 그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얘기되는데 이 부분이 현재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프랭크는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라기엔 무척 민감하고 자상하며 또 상냥한 사람이다. 이런 프랭크가 아델과 행크의 삶에 개입하면서 아델에게는 남편 그리고 행크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랭크는 행크에게는 자동차 타이어 바꾸는 법과 야구공 받는 법을 가르쳐 주고 아델에게는 파이 굽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이 가족의 일원이 되다시피 한다.
이로 인해 아델은 그동안 갈급했던 애정의 수분을 프랭크로 부터 마음껏 빨아들이면서 영육이 다시 활짝 피어나고 행크도 나름대로 성장한다. 그러나 행크는 프랭크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겠다는 본능과 함께 프랭크로부터 자신을 남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갈등에 빠진다.
둘 다 서로가 필요한 고독한 두 남녀의 눈물 짜는 멜로물이자 소년의 성장기로 노골적인 섹스신은 없으나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아델과 프랭크가 서로에게 조심조심 접근하면서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애정의 작은 제스처와 표정이 매우 에로틱하다. 영화에서 가장 자극적인 장면은 프랭크가 아델의 손을 잡고 파이 굽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다. ‘고스트’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드미 모어를 뒤에서 끌어안고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을 생각나게 만드는 섹시한 장면이다.
늘 무언가를 동경하는 듯한 슬픈 눈동자를 지닌 윈슬렛이 섬세하면서도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고 노스탤지어 무드를 자아내는 꿀빛나는 촬영도 좋다. 지난해 말에 골든 글로브(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위해 1주일간 상영했다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전국적으로 상영된다. PG-13. Paramount. 전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제86회 아카데미상 후보작

단편 라이브 액션, 만화영화상 부분



‘부어맨의 문제’
제86회 아카데미상 단편 라이브 액션과 만화영화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이 31일부터 2월13일까지 뉴아트(11272 Santa Monica Blvd. 310-473-8530)와 오렌지카운티의 리전시 사우스코스트 빌리지 3에서 상영된다. 두 부문은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뛰어난 작품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영화는 과거 이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탄 감독들이 소개한다. 금년도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3월2일에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열리며 ABC-TV가 중계한다.

*라이브 액션

▲ ‘내가 아니었어요'(That Wasn't Me-스페인 24분)
내전중인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의료봉사 차 온 여의사가 소년 병사들에게 납치된 뒤 죽음 직전에 이르는 경험을 한다. 그 후 의사는 자기를 납치한 소년 병사를 오히려 구해주면서 둘의 삶이 영원히 연결된다. 강렬하다.
▲ ‘모든 것을 다 잃기 직전에'(Just Before Losing Everything-프랑스 30분)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여자가 10대인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마켓으로 피신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 서스펜스와 스릴 있게 도주과정을 그렸다.
▲ ‘헬리움'(Helium-덴마크 23분)
어릴 때 동생을 병으로 잃은 병원 청소부가 불치의 병을 앓는 소년에게 환상적인 얘기를 통해 삶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저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 ‘내가 다 해야 해요?'(Do I Have to Take Care of Everything?-핀란드 7분)
두 어린 딸과 남편의 시중을 혼자서 들어야 하는 시니와 온 가족이 참석해야 할 결혼식 날에 늦게 일어나 식에 늦지 않으려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온 가족이 헐떡거리면서 뛰어간 결혼식장엘 도착해 보니. 귀염성 있고 우습다.
▲ ‘부어맨 문제'(Voorman Problem-영국 13분)
교도소에 수감 중인 부어맨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람의 정신감정을 위해 정신과 의사 윌리엄이 교도소를 방문한다. 끝의 반전이 아이로니컬하다.

*만화영화

▲ ‘늑대소년'(Feral-미국 13분)
숲 속에서 야생적으로 살던 늑대소년이 사냥꾼에 의해 발견된 뒤 문명세계로 돌아온다. 소년은 학교에 다니면서 새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가 숲에서 하던 대로 행동하나 급우들의 조롱만 받는다. 결국 소년이 돌아갈 곳은 야생의 세상이다. 데생 식으로 그린 흑백그림이 훌륭하다.
‘빗자루 위의 방’
▲ ‘겟 어 호스!'(Get a Horse!-미국 6분)-월트 디즈니의 첫 단편 만화영화에 바치는 기념작품으로 미키 마우스와 그의 여친 미니가 마차를 타고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다가 본의 아니게 헤어지면서 미키가 미니를 찾으러 나선다. 손으로 그린 흑백 그림과 컬러 컴퓨터 그래픽을 합성했다.
▲ ‘위블로씨'(Mr. Hublot-프랑스 11분)
기계 부품과 고철 등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 사는 미래 세계(프리츠 랭의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케 한다)에 사는 위블로씨는 외출을 꺼려하는 내성적인 사람. 그가 어느 날 로봇 강아지를 거리에서 주워 다 키우면서 위블로씨의 삶이 엉망진창이 된다. 디자인이 좋다.
▲ ‘귀신 들린 남자'(Possessions-일본 14분)
18세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숲 속을 가던 수선공이 비를 피해 작은 사당엘 들어가자 사당이 다른 세상의 방으로 변한다. 남자는 여기서 속에 한을 품은 찢어진 우산들과 키모노를 정성껏 수선하자 날이 밝는다. 그림과 컬러가 섬세하고 아름답고 화려하다.
▲ ‘빗자루 위의 방'(Room on the Broom-영국 25분)
자기가 늘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와 새와 개구리를 차례로 자기 빗자루 위에 태운 친절한 마녀가 새 친구들에 의해 입에서 불을 뿜는 용으로부터 구원을 받자 고마움의 표시로 멋진 새 빗자루를 만들어 모두 함께 하늘을 비행한다. 마법적 매력을 지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월스트릿의 늑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기꾼들의 방탕, 있는 그대로 담았어요”



1980년대 말 월스트릿의 20대 날사기꾼 조단 벨포트(52)의 한탕성 급성장과 탐욕 그리고 호화방탕과 무분별 및 비도덕과 무책임 끝의 몰락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자 광란의 소극인‘월스트릿의 늑대’(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벨포트로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39)와의 인터뷰가 뉴욕의 런던 호텔서 있었다. 디카프리오와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이 다섯 번째로 손잡고 만든 영화로 벨포트가 쓴 자전적 글이 원전. 디카프리오는 벨포트 역으로 12일에 열린 2014년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연상(코미디/뮤지컬)을 탔다. 이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이다. 얼굴과 코 밑에 잔 수염을 해 나이에 비해 동안인 모습이 다소 어른스럽게 보이는 디카프리오는“그동안 잘들 있었습니까”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인터뷰장에 들어섰다. 흰 셔츠에 단정한 정장차림의 미남 신사인 그는 약간 사무적이요 차갑게 보이긴 했지만 겸손하게 질문에 답했다.     

- 당신은 벨포트와 몇 달간을 함께 지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그런데 벨포트는 사실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을 착취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한 서푼짜리로 그는 보다 큰 월스트릿의 거물 사기꾼들의 축소형일 뿐이다. 난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가 복용한 약물을 비롯해 자세한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 물었다. 벨포트는 월스트릿 당시를 돈과 여자와 약물에 빠졌던 제정신이 아닌 시기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개과천선했다.”  

- 당신은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어떤 활동을 했나.
“요즈음에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난잡하고 영화의 한계를 밀어 올리는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다. 스튜디오들은 이런 규모가 방대한 R등급(16세 미만 관람 때 부모나 성인 동반요)의 드라마를 만들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스튜디오 밖의 독립자본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월스트릿의 탐욕과 방탕과 과도를 극한적으로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다. 제작자로서 각본과 캐스팅을 비롯해 모든 부문에 관여했다.”

- 영화에서 가장 광적인 장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난장판 집단 섹스 신으로 현대판 칼리귤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자기밖에 모르는 자들의 과다와 방탕의 블랙 코미디다. 우리는 월스트릿의 사람들에 대해 연구한 뒤 그들의 과도와 방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 영화는 탐욕에 관한 것인데 당신은 탐욕을 어떻게 생각하나. 
“탐욕은 삶의 내성에 속한 것이다. 기회주의와 탐욕 없이는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적인 삶의 형태인 우리는 남을 착취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서로 화목하게 공존하면서 진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궁극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소비하고 남을 전연 무시하고 가능한 한 많은 부를 취하겠다는 개념이 팽배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런 생각이 모든 잘못의 뿌리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전까지는 영원히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 당신이 콸루즈라는 약물을 복용한 뒤 부작용으로 쓰러져 몸부림치는 장면이 있는데 대역이라도 썼나.
“아니다. 그 장면을 촬영하다가 등을 몹시 다쳐 촬영을 하루 중단해야 했다. 내가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은 유튜브에 있는 약물을 섭취한 뒤 진짜로 경련을 일으킨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모방했다.”

- 영화에서 코케인을 밥 먹듯이 하는데 그 가루가 무엇인가.
“아기용 비타민이다. 하루 종일 그것을 코로 들여 마시느라 코가 다 헐었다. 그런데 가장 안전한 비타민이라는 B-12를 너무 많이 섭취하는 바람에 마치 진짜 약물을 복용한 듯이 들뜬 기분이었다.”

- 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벨포트가 회사원들을 상대로“열심히 돈벌라”고 독려하고 있다.
“인정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진실은 개인이 그것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연기와 작품이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내 영화에 관해 선전한다고 해도 개인들의 그것에 대한 반응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 조단 벨포트를 연기하면서 당신 성격에 어떤 변화라도 일지 않았는가.
“난 근본적으로 착한 사람이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그를 매일 같이 연기하다 보니 그의 성격이 나를 어느 새 잠식하고 든다는 느낌을 경험했다. 그래서 때로 나 자신을 조절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기 힘든 역도 없었다.”              

- 어떻게 해서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을 맡게 되었는가.
“그와 난 이 영화를 7년 전쯤에 만들려고 했었는데 예산문제가 해결이 안 돼 중단했다. 그 뒤 레드 그래닛이라는 독립영화사가 날 보고 제작비를 대겠다고 제의하면서 내용과 표현에 한계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난 영화를 만들려고 7년간이나 별렀던 차여서 스코르세지에게 가서 예술적으로 전연 한계를 두지 않을 테니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스코르세지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영화제작에 응했고 우린 둘이 각본의 초기단계에서부터 함께 일했다.” 

- 힘과 부와 명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과도와 과다를 적절히 조절하는가.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당신 주변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통제해 주는 사람이 필요다. 나도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과다 과도하게 산 적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일찍 나를 통제해 줄 사람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세계는 결국 예술과 자신의 업적에 기반을 둔 상상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의 내 인생은 불과 10년 전과도 매우 다른 것이다.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 제작자로서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는가.
“먼저 나를 위한 보다 나은 작품을 찾기 위해 제작자가 되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제작사는 서서히 성장하면서 내가 연기하지 않는 작품들을 구해 내 제작사의 특성이 드러난 영화들을 만들게 되었다. 나는 제작하는 영화의 감독에게 절대적 권한을 준다. 그러나 내가 주연을 겸할 경우는 철저히 간섭한다. 제작자로서의 보람은 스튜디오의 간섭을 떠나 철저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 주식이나 증권에 투자하는가.
“안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70~80년을 주기로 한 번씩 붕괴되곤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 없는 시장경제에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이득을 취하려 들게 마련이다. 그런 체제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균형과 견제를 요하는 새 법이 필요하다. 내가 과다하게 무언가를 취득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술품이다. 미술시장도 완전히 날라리 시장이다. 나도 사선 안 될 미술품들을 사긴 했지만 재미는 봤다.”

- 당신은 영화에서 천재적 세일즈맨으로 나오는데 그런 기술로 여자를 어떻게 유혹하겠는가.
“근본적으로 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남아야겠다.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봐야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늘 만나게 될 사람이라면 만나게 마련이라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억지로 되는 수가 없다.”

- 팬들과 당신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젊었을 때는 팬들의 관심을 즐겼다. 그러나 그 뒤로 그런 것은 쉽게 뒤집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배우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팬들은 내가 개인으로서 선택하는 역에 반응하게 마련이다. 난 그들이 내가 늘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고 예술가로서 진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믿는다.”

- 당신에게 있어 가장 큰 유혹은 무엇인가.
“재킷이다. 난 재킷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 난 멋진 차나 비행기는 없지만 재킷은 많다.”

- 당신은 부를 도에 넘치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채울 다른 것이 없을 경우 부에 더욱 집착하게 마련이다. 난 그런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영양을 섭취할 기본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물론 나도 성공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집념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당신 나이 39세인데 지금까지 이룬 것 중에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우며 앞으로 5~10년간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난 16세 때 배우가 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는데 바로 이처럼 배우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 나의 큰 자랑이다. 배우로서 난 늘 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많은 기회를 포착하려고 애쓰고 있다. 난 환경보호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난 지난 한 해를 거의 쉬면서 나 자신과의 재연결을 시도했다. 인생에는 연기만큼 흥미 있는 다른 일도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도 중요하다.”

-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중요한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일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주의나 경고성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응분의 결과를 받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몽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다.”  

- 당신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가.
“이제 더 이상 극단적인 운동은 하지 않는다. 그냥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적당한 운동을 하고 쉬면서 죽을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내 건강 유지법이다.”

- 지금까지 산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인가.
“어머니에게 사 준 집과 워홀의 그림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불관용

한국 경제학회가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관용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31위로 나타났다. 판단의 근거로 장애인 배려와 관용성 및 외국인 수용 3가지를 제시했는데 여기서 꼴찌를 한 것이다.
난 이 보도를 읽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뜻 최근 다시 한국 컴백설에 휩싸였던 가수 겸 배우 유승준(38)이 생각났다. 유승준은 2002년 입대를 앞두고 과거 군에 복무하겠다던 자신의 다짐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 복무를 면피, 국민감정을 건드린 괘씸죄로 지금까지 10여년간 반역자 취급을 받으며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살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입국이 금지되고 있는데 ‘경제 질서 또는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사람’이라는 항목에 걸린 것 같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이현령비현령식의 법조항이다.
그리고 유승준이 병역의무가 최종 면제되는 나이인 만 41세가 넘어 입국을 시도하더라도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유승준이 무슨 솔제니친도 아닌데 한국은 그를 영원한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 짐작엔 정부가 그의 입국을 심사할 의도가 있더라도 국민감정이 무서워 망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인인 유승준이 식언하고 입대를 회피한 행위는 기릴 만한 것은 아니나 한국의 또 다른 공인들인 국회의원과 고관대작 본인이나 그들의 아들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법이 저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거나 유승준에 대한 격앙된 국민감정이 이들에 대해서도 발화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법이나 국민감정이나 모두 차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너무 감정적인 것이 탈이다.
한국의 관용도를 재는 기준의 하나인 외국인 수용에 인색한 것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얘기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인데 이 폐쇄성이 병세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민족주의에로까지 이르게 마련이다.
한국에는 혼혈가정이 해가 갈수록 증가, 2020년이 되면 혼혈가정 수가 100만여명에 이르고 전체 청소년의 20%가 혼혈가정 출신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자기와 다른 피부 색깔과 사상과 믿음을 지닌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등과 공존의식에 대한 자각이 절실히 요구된다.
흑인을 ‘깜둥이’ 혼혈아를 ‘튀기’라고 멸시하지 않는 것이 관용이다. 관용이란 의식수준이 상향조정될 때 베풀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식수준이 급격히 성장한 물질수준을 미처 못 따르는 것 같다. 저임금을 노리고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임금을 착취하고 아동 노동을 시키는 것도 모두 타인종 멸시와 물질수준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1958년 인기절정이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에 징집되자 팬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를 암살하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그런데 엘비스는 연예병 특과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2년간 독일서 보통 군인으로 복무한 뒤 제대했다. 난 유승준 논쟁이 일 때마다 왜 그가 내가 복무했을 때와는 달리 복무기간도 짧고 또 구타도 없는 민주화한 군 입대를 피했을까 하고 궁금해지곤 한다. 엘비스도 하고 나도 했는데.
인간의 끈질긴 불관용을 통렬하게 고발한 대하 서사적 영화가 D.W. 그리피스의 ‘불관용’(Intoleranceㆍ1916)이다.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이 3시간반짜리 무성영화는 바빌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여를 지나오면서도 치유되지 않는 인간의 불관용을 병행하는 4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페르시아의 바빌론 정복과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고 프랑스 구교도들의 신교도 대학살 및 범죄와 구제에 관한 20세기의 멜로드라마 등 4편의 얘기는 관용과 사랑의 상징인 영원한 어머니(릴리안 기쉬)가 아기가 담긴 요람을 흔드는 장면(사진)에 의해 연결된다.
유승준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나는 계속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불관용의 제물인 예수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용서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유승준을 용서하라.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글로리아 (Gloria)

50대 후반의 이혼녀 고독에 몸부림

글로리아가 카시노바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50대 후반의 이혼녀가 고독에 굴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만족을 찾아 자신의 삶을 재확인하는 치열하게 감정적이요 육감적이며 또 도전적인 드라마로 칠레영화다.
인생 황혼의 초입에 들어선 여자가 자신의 감정의 내밀한 속살과 주름이 잡히고 흐늘흐늘하는 육체를 당당히 노골적으로 노출시키면서 대담하고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아울러  가족을 비롯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도외시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존과 욕망의 이야기다. 그리고 개인적 재생의 드라마다.
자칫하면 감상적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세바스치안 레일로 감독은 냉철하고 또 뜨겁게 제3자의 관점에서 관찰하면서 이 여자를 깊이 이해하고 아울러 연민하고 있다.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감수성 예민한 작품이다.
오래 전에 이혼한 글로리아(파울리나 가르시아)는 장성한 아들 페드로(디에고 폰테실라)와 딸 아나(화비올라 사모라)가 있으나 둘 다 자기 사느라 바빠 어머니와의 접촉이 거의 없다. 아직 직장을 다니는 커다란 안경을 낀 글로리아는 밤이면 자기 또래의 싱글들이 다니는 클럽을 찾아 춤을 추면서 고독을 떨쳐버리는데 어느 날 여기서 막 이혼한 상냥한 로돌포(세르지오 에르난데스)를 만난다.
글로리아가 큰 안경 속의 눈으로 로돌포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가련토록 아름답다. 둘은 그 날로 글로리아의 집에 가 섹스를 하는데 나이 먹은 두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육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섹스신이 사실적이다.
유원지를 소유한 로돌포는 착하나 소심한 남자로 아직도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는 전처와 장성한 두 딸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글로리아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개인적 일에 가족을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면서 기족에게 글로리아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글로리아는 이와 반대로 로돌포를 페드로의 생일파티에 데리고 가는데 중간에 로돌포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다. 로돌포는 국외자로서의 위치를 견디지 못해 사라진 것인데 후에 글로리아에게 사죄한다며 며칠 함께 있기로 하고 묵는 호텔에서 또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가정이라는 함정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 영화로 카메라가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가르시아가 다면한 얼굴과 자태로 표현하는 겁 없는 맹렬하고 당당한 연기가 훌륭하다. 고독하나 결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여자의 불패적이요 비타협적인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아다지에토와 마지막 장면에서 글로리아가 노래 ‘글로리아’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을 비롯해 음악도 적재적소에 맞게 쓰고 있다.
성인용. Roadside Attractions. 랜드마크(웨스트우드와 피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부전 자전 (Like Father, Like Son)

바뀐 신생아… 두 소년과 가족 이야기


노노미야 부부와 케이타(왼쪽 3명) 그리고
사이키 부부와 류세이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카주 감독은 사람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흥분하지 않고 또 무리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기쁘고 아프고 또 동정하고 연민할 줄 아는 심장의 좌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는 가족영화 그 중에서도 ‘노바디 노즈’와 ‘아이 위시’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의 부모와의 결별과 고독 그리고 어리지만 자립하고 독립할 줄 아는 지혜와 조숙함을 아주 자연스럽고 또 사실적이면서 아울러 감정 가득히 묘사하는데 이 영화도 아이들을 주제로 한 가족 드라마다.
신생아 때 부모가 바뀐 두 소년의 얘기를 통해 과연 부모란 무엇인가, 피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키운 것이 더 중요한 가를 묻고 있는데 서술형태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며 경쾌하고 맑고 신선하다. 어둡고 비극적일 수도 있는 얘기를 센티멘탈리티를 배제하고 짓궂은 유머와 위트 그리고 소박한 삶의 진실을 섞어 매력적으로 그렸는데 순진한 아이들을 통한 어른의 궁극적 구제의 얘기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영화다.
도쿄에 사는 젊은 건축가 노노미야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사람은 착하나 성공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부르좌로 똑똑한 여섯 살짜리 아들 케이타(케이타 니노미야)와 고분고분한 아내 미도리(오노 마치코)가 있지만 일 때문에 가정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미도리가 아들을 출산한 미도리의 친정 동네병원에서 호출통지가 날아든다. 둘은 병원 측으로부터 케이타가 남의 집 아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보를 받는다.
케이타의 친 아버지와 엄마는 동네에서 전구상을 하는 털털한 소시민 유다이(릴리 프랭키)와 유카리(마키 요코) 사이키로 이들이 키운 아들 류세이(황 쇼-젠)가 노노미야네 진짜 아들이다. 그런데 사이키네는 류세이 외에도 어린 남매가 있다.
가족회의 열리고 두 집은 일단 주말마다 두 아이를 바꿔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기로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아이가 새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기들을 키워준 부모를 그리워한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습고 재미있으면서 아울러 인간의 본심을 드러내는 일들이 일어난다.
돈이면 매사가 다인 줄 아는 료타는 유다이에게 돈을 줄 테니 류세이를 자기에게 주면 자기가 류세이와 케이타를 함께 키우겠다고 제안해 유다이에게 뺨을 맞는다.
류다이네는 사람들이 진솔하고 소박해 이런 어려운 처지를 씁쓸한 유머와 지혜로서 받아들이나 특히 가슴을 아파하는 사람은 미도리. 진짜 자기 아들인 류세이가 도쿄의 아파트에서 답답해 하면서 개천이 흐르는 시골집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끝이 난다. 촬영과 연기가 좋은데 꼬마들과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잘 하고 특히 릴리 프랭키가 어술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낸다. 반면 여자들은 역이 약하다. 가족용. Sundance. 일부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2014년 1월 26일 일요일

물 먹은 탐과 로버트

탐 행스
16일 발표된 2014년도 오스카상 각 부문 후보명단에서 탈락된 사람들 중 가장 심한 충격을 받은 둘은 아마도 탐 행스와 로버트 레드포드일 것이다.
행스는 ‘필립스 선장’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화물선 선장으로 나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으나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레드포드는 1인극 ‘올 이즈 로스트’에서 침몰하는 범선을 탄 채 바다를 표류하는 남자로 77세 생애최고의 연기라는 평을 받았으나 역시 주연상 후보에서 밀려났다.
로버트 레드포드
행스는 과거 주연상을 두 번이나 타 덜 섭섭할지 모르겠으나 인생 황혼기에 들어선 레드포드는 아직 연기상을 한 번도 타지 못해(‘오디나리 피플’로 감독상 수상) 이번 탈락이 매우 서운했던 것 같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탈락은 ‘올 이즈 로스트’가 너무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됐기 때문이라며 배급사인 라이언스게이트의 홍보부족을 나무랐다.
행스는 이번에 여러모로 수모를 당했다. 그가 월트 디즈니로 나온 ‘세이빙 미스터 뱅스’는 오스카 회원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인데도 작품상을 비롯해 호평을 받은 행스 역시 조연상 후보에서 탈락했다. 소설 ‘메리 파핀스’의 영화화를 놓고 디즈니와 저자 P.L. 트래버스 간의 실랑이를 그린 이 영화에서 트래버스 역을 호연한 엠마 탐슨도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또 작품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필립스 선장’의 감독 폴 그린그래스와 역시 작품상 등 총 5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허’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모두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된 것도 뜻밖이다. ‘허’에서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자와 음성으로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을 민감하게 연기한 와킨 피닉스가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된 것도 작은 이변 중 하나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을 타고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포크송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가 달랑 촬영과 음향믹스상 후보에만 오르고 다른 모든 주요 부문에서 탈락된 것이야말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훌륭한 흑인영화들이 여러 편 나온 지난해에 백악관에서 모두 8명의 대통령의 시중을 든 흑인집사의 실화인 ‘버틀러’에서 주연한 포레스트 위타커와 그의 부인으로 나온 오프리 윈프리의 남녀 주·조연상 후보 탈락도 화제거리다.
영화의 내용을 놓고 비평가들과 팬들이 모두 극단적인 찬반론을 벌인 ‘월스트릿의 늑대’가 작품을 비롯해 남우주·조연과 감독 및 각색상 등 모든 주요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것도 주지할 만한 일이다. 1980년대 말 월스트릿을 무대로 활약한 젊은 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인 이 영화는 섹스와 드럭과 알콜이 난장판을 이뤄 극단적인 것을 꺼려하는 오스카 회원들의 호응을 못 받을 것이라는 예진을 받았었다.
벨포트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탐 행스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수상 후보에서 밀려났고 이 영화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르세지는 이번으로 모두 8번째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냈다.
특히 벨포트의 하수인으로 나온 조나 힐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매우 뜻밖이다. 그는 2년 전에도 ‘모니 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또 해마다 오스카 만화영화상을 독식하다시피 해온 픽사의 ‘몬스터 대학’이 후보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번에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 중 대부분이 독립영화들이다. 메이저 영화는 ‘그래비티’와 ‘네브래스카’와 ‘필립스 선장’ 3편뿐이다. 또 지난해와 달리 각 부문에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영화들 중 여러 편이 흥행서 크게 성공했다.
둘 다 작품상 등 총 10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후보작들이 된 ‘그래비티’와 ‘아메리칸 허슬’의 지금까지 국내 총수입은 각기 2억5,700만달러와 1억1,700만달러. ‘필립스 선장’은 총 1억500만달러 그리고 ‘월스트릿의 늑대’는 총 9,1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3월2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열릴 2014년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케이트 블랜쳇이 ‘푸른 재스민’으로 그리고 재렛 레토가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각기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탄다는 것이다.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의 매튜 매코너헤이 그리고 감독상은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받을 것이 유력하다. 가장 점치기 어려운 것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작품상 부문. ‘12년간 노예’와 ‘그래비티’ 그리고 ‘아메리칸 허슬’의 3파전인데 현재로선 어느 작품이 상을 탈지 예측불허다. 나의 2013년도 베스트 무비는 ‘그래비티’였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01.24.2014 한국일보>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경멸(Contempt)

부부관계·영화제작 다룬 고다르 작품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브리짓 바르도)는 신념없는 남편 폴(미셸 피콜리)을 경멸한다.

전형적 영화제작의 틀을 뒤집어엎는 프랑스 감독 장-뤽 고다르의 1963년 작으로 개봉 반세기를 기념해 복원된 작품이 재개봉 된다. 무너져 내리는 부부관계와 스튜디오 체제가 붕괴된 후의 국제 합작영화 제작 그리고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다룬 이색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영화다.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정오의 귀신’.
영화 제목은 여주인공 카미유가 남편인 영화 각본가 폴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나타낸다. 고다르의 영화여서 쉬운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예술영화 팬들에겐 큰 만족감을 줄 영화로 브리짓 바르도의 맨살 엉덩이가 탐스럽고 독일 감독 프리츠 랭이 영화 속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고다르가 랭의 조감독으로 나온다.
로마·프랑스의 영화 각본가 폴(미셸 피콜리-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입에 문채 목욕을 한다)은 연극작품을 쓰는 것이 꿈이다. 그의 무르익은 육체를 지닌 아내로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바르도)는 낭비벽증자.
폴에게 미국인 영화제작자 제레미(잭 팰랜스)가 호머의 ‘오디세이’를 영화화할 예정이라며 각본을 써 줄 것을 제의한다. ‘오디세이’는 독일감독 프리츠 랭이 연출하는데 영화 속의 영화 장면과 함께 영화제작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폴이 각본을 쓰는 것을 알고 카미유는 쉽게 팔려 다니는 신념 없는 남편을 더욱 경멸한다. 그리고 카미유는 제레미에게 접근한다. 제레미와 카미유는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몰고 달리다 대형 트럭과 충돌, 둘 다 트럭 타이어 밑에 깔려 죽는다.
국제 합작영화 제작의 여러 가지 함정과 시네마스코프(랭은 이 형태를 싫어했다) 그리고 고전적 주제에 관한 심리적 해석 및 바르도의 엉덩이에 관한 영화로 지적으로 자극적인 영화다. 진공상태와도 같이 장식 없는 폴의 아파트에서 폴과 카미유가 장시간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한 번도 아파트 밖으로 떠나지 않는 실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은 고다르의 영화를 여러 편 찍은 라울 쿠타르 촬영감독의 솜씨가 역연한 장면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외눈 안경을 쓴 랭의 냉소적인 모습도 재미있다. 조르지 들르뤼의 음악과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 등 경치도 아름답다. 성인용. Rialto. 로열과 플레이하우스 7(310-478-3836).  


잭 라이언: 그림자 신병 (Jack Ryan: Shadow Recruit)

맨해턴 폭파 음모 테러리스트를 잡아라



라이언(크리스 파인)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테러리스트를 쫓아 맨해턴을 질주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 많고 독창성 없는 스파이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로 얼마 전 작고한 스파이소설 작가 탐 클랜시의 잭 라이언 연작 시리즈가 원작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인 CIA 스파이 잭 라이언역은 해리슨 포드와 알렉 볼드윈 그리고 벤 애플렉 등이 차례로 맡았었다.
이번에 라이언 역은 젊은 크리스 파인(스타 트렉)이 맡아 이 시리즈에 젊은 층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깎다 만 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파인이 영 카리스마가 없는데다가 연기도 신통치 못해 영화가 배급사인 패라마운트 뜻대로 빅히트를 해 속편을 만들게 될지 지극히 의문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셰익스피어 전문 무대 및 영화와 TV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 공연하고 케빈 코스너와 키라 나이틀리 등 거물 스타들이 나온 영화로선 기대치에 못 이르는 타작에 불과하다. 볼 것이 있다면 겨울 모스크바에서 찍은 현지 촬영.
런던의 경제학 전공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잭 라이언(파인)은 9.11 테러를 TV로 목격하고 박사학위 따기를 중단하고 해병에 입대, 소위로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투입된다. 그리고 헬기가 탈레반의 로켓에 맞아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는다. 라이언은 얼굴에도 큰 상처를 입었는데 퇴원 후 보니 말짱하다. 하기야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는 스파이를 누가 보러 오겠는가.
라이언은 오랜 물리치료소 생활 끝에 퇴원하는데 여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여자 캐시(나이틀리는 완전히 소모품)와 애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CIA 소속 신참 스파이 발굴자인 해군장교 토머스 하퍼(코스너)에 의해 발탁된 뒤, 정부 돈으로 런던서 중단했던 공부를 마친다. 
이어 라이언은 월가의 국제적 거래를 하는 대규모 투자회사에 분석가로 위장하고 취직한다. 라이언은 재정에 바탕을 둔 테러리즘을 분석하는 것이 임무로 동거하는 캐시에게조차 자신의 진짜 신원을 감춘다.
라이언은 자료 분석을 하다가 러시아의 거부 빅터 체레빈(브라나가 심한 액센트를 구사하는 영어를 쓴다)의 구좌에서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심각한 이상을 발견하고 빅터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언은 거구 흑인 킬러의 공격을 받는데 이 장면은 007시리즈 ‘골드핑거’의 격투 신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부터 데스크 잡을 보던 라이언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선 스파이가 된다.  
매력과 잔인함을 겸비한 빅터는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러시아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테러리스트로 그는 미국 내 잠복해 있는 재정과 폭파전문 스파이들을 동원해 맨해턴 다운타운을 폭파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킬 준비를 다 해놓았다.
이를 막을 자가 물론 라이언인데 느닷없이 캐시가 모스크바에 도착, 빅터에게 납치되면서 라이언은 조국과 애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고군분투한다. 
클라이맥스는 맨해턴에서 벌어지는데 스릴러인 만큼 붐비는 모스크바와 맨해턴에서 요란한 차량(모터사이클 포함) 추격신이 일어난다. 그렇게 모진 액션을 겪고 나서도 살아남으니 라이언은 과연 수퍼맨이다. PG-13. 전지역.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12년간의 노예생활’.

`아메리칸 허슬' 3개부문 수상 최다 상복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의 사회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상이 영화사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인심 좋은 행사였다.
여기서 유독 제외된 영화사가 유니버설과 선전의 귀재 하비 와인스틴의 와인스틴사다.
특히 와인스틴은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의 단골 수상자로 이번에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에서 후보에 오른‘필로메나’와‘8월: 오세이지 카운티’가 완전히 무시당해 심술첨지 와인스틴의 심기가 지금까지도 몹시 불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필로메나’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영국 배우 주디 덴치는 최근에 받은 무릎수술로 인해 이날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영화와 TV 스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는‘아메리칸 허슬’로 남우주연상(코미디/ 뮤지컬) 후보에 오른 크리스천 베일도 참석을 못했는데 그는 지금 스페인에서 찍고 있는‘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아 불참했다.
상(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이 골고루 주어진 가운데에서도 3개 부문에서 상을 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영화가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1970년대 말 정치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뉴저지주의 날사기꾼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작품(코미디/뮤지컬)과 여자주연(에이미 애담스) 및 여자조연상(제니퍼 로렌스)을 받았다. 방년 23세의 로렌스는 지난해에는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으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을 수상, 2년 계속해 상을 받은 실력파다.
감독상 알폰소 쿠아론.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남북전쟁 이전 미 북부의 해방된 노예가 노예장수들에게 납치돼 남부농장에 팔려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시 자유를 찾은 솔로몬 노덥의 실화를 다룬 ‘12년간의 노예생활’(12 Years a Slave)이 탔다.
그런데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모두 7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수상 후보작이었던 이 영화는 각본, 감독(스티브 매퀸), 남우주연(치웨텔 에지오포) 및 여우조연(루피타 니옹고)상 부문에서도 수상이 유력시 됐었으나 작품상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메리칸 허슬’에 이어 유일하게 복수로 상을 탄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Dallas Buyers Club). 멕시코에서 에이즈 사제 약을 밀반입해 환자들에게 판 에이즈 환자 론 우드러프의 실화에서 론으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가 남우주연상(드라마)을 그리고 그의 파트너로 역시 에이즈 환자인 성전환자 역을 맡은 재레드 레토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은 1980년대 말 월가의 젊은 날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다룬 다크 코미디 ‘월스트릿의 늑대’(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조단으로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받았다.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코미디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그의 수상은 다소 뜻밖으로 디카프리오보다는 크리스천 베일(아메리칸 허슬)이나 브루스 던(네브래스카)이 더 유력한 수상 후보들이었다.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푸른 재스민’(Blue Jasmine)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여동생 집에 얹혀살려고 짐을 싸들고
여우주연상(드라마) 케이트 블랜쳇.
온 호화와 사치를 누리며 살다가 알거지가 된 월가의
미망인으로 나온 케이트 블랜쳇이 탔다.
이 영화를 감독한 우디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의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의 수상자로 그는 예상했던 대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알렌 대신 수상 소감을 말한 사람은 그의 영화에 여러 편 나온 알렌의 전 애인 다이앤 키튼. 키튼은 “알렌은 지금까지 자기 영화에서 모두 179명의 여배우들을 기용했으며 스크린에 개성이 강한 여자들을 창조한 여배우들의 친구”라고 칭찬한 뒤 ‘메이크 뉴 프렌즈’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소감을 마쳤다.
이 날 시상식에는 알렌의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인 메릴 스트립(‘8월: 오세이지 카운티’로 코미디/뮤지컬 부문 주연상 후보)과 다이앤 위스트 그리고 매리엘 헤밍웨이(헤밍웨이의 손녀)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이 열리고 있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우주·조연상 에이미
애담스(오른쪽)와 제니퍼 로렌스.
감독상은 우주 스릴러 ‘그래비티’(Gravity)를 연출한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이 탔다. 각본상은 젊은 남자와 컴퓨터의 인공지능인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허’(Her)를 쓴 스파이크 존즈(감독 겸)가 받았다. 감독상과 각본상 역시 ‘12년간의 노예생활’이 탈 것이 유력시 됐었기 때문에 존즈의 수상은 깜짝 상감이다.
또 다른 기대와 예상을 너머 상을 탄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탄 이탈리아의 ‘그레이트 뷰티’(Great Beauty). 이 상은 모두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프랑스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r)이 탄다고 예측했었다.
남우주·조연상
매튜 매코너헤이(왼쪽)와 재렛 레토.
음악상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바다의 생존 투쟁기인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가, 만화영화상은 디즈니의 ‘프로즌’(Frozen)이 탔다. 주제가상은 ‘만델라: 자유에로의 긴 걸음’(Mandela:,Long Walk to Freedom)의 주제가 ‘오디나리 러브’를 부른 U2가 받았다.
그런데 U2의 프론트맨인 보노는 이 날 뜻밖에도 사회자인 에이미 폴러로부터 뜨거운 키스세례를 받아 참석자들의 폭소와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폴러가 TV 시리즈 ‘파크스 앤 리크리에션’으로 여주연상(코미디/뮤지컬) 수상자로 발표되자 보노 옆에 앉았던 폴러가 상을 받으러 일어나면서 그의 무릎에 올라 앉아 보노에게 키스를 쏟아 부은 것. 물론 이 키스는 가짜다.      
이 날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로 올랐으나 빈손으로 돌아간 영화들은 ‘필립스 선장’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8월: 오세이지 카운티’ 및 ‘네브래스카’ 등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1.17.2014>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2090만명



골든 글로브 레드카펫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팬들은 스타들이 카펫을 밟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아, 아”하며 죽는 소리를 내고 카메리맨들과 기자들 역시 스타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셔터를 눌러대고 인터뷰 하자며 아우성들을 쳐댔다.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한 NBC-TV 측은 카펫 옆 야외석에 앉은 팬들에게 카메라를 향해 “골든 글로브, 골든 글로브”를 외치라고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난 이 날 이런 도떼기시장이 열린 레드카펫을 오락가락하면서 입장객들에게 “어서들 안으로 들어가세요”라며 밀어대는 시큐리티 노릇을 했다. 그래 봐야 내 말 듣는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시상식이 열리는 하오 5시가 가까워 오면서 스타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날 작품상(드라마)을 탄 ‘12년간의 노예생활’을 감독한 스티브 매퀸과 마이크 타이슨은 만나서 반갑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고 ‘네브래스카’로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후보에 오른 브루스 던은 시종일관 딸이자 배우인 로라 던의 손을 잡고 카펫을 걸었다.
헬렌 미렌과 그의 남편인 감독 테일러 핵포드, 마이클 더글러스, 탐 행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리타 윌슨, 제니퍼 로렌스, 제시카 채스테인, 루피타 니옹고,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샌드라 불락, 콜린 패럴, 마이클 J. 팍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트레이시 폴랜, 드루 배리모어, 어셔, 매튜 매코너헤이, 케이트 블랜쳇, 올랜도 블룸, 줄리아 로버츠, 치웨텔 에지오포 및 엠마 톰슨 등이 잇따라 카펫을 밟았다.
빅스타일수록 도착이 늦는데 이 날 맨 꼴찌로 카펫을 밟은 사람은 맷 데이먼. 스타들은 또 자기들대로 서로 반갑다며 끌어안고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레드카펫의 교통체증은 공사 중인 405프리웨이를 방불케 했다.
레드카펫은 일종의 비공식 패션쇼 장이기도 하다. 특히 여자 스타들의 드레스가 황홀무아지경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12년간의 노예생활’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루피타 니옹고의 빨간 실크 케이프가운이 그의 검은 피부색깔과 치열한 적과 흑의 대결을 이뤘다.
이 날 ‘푸른 재스민’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을 탄 케이트 블랜쳇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아한 검은 망사 가운과 곧 엄마가 될 드루 배리모어의 붉은 꽃무늬가 화사한 드레스 그리고 검은 띠로 액센트를 한 제니퍼 로렌스의 백색 드레스도 눈부시게 곱다.
그런데 이 날 ‘아메리칸 허슬’로 여우조연상을 탄 로렌스는 젖가슴을 간신히 덮은 드레스 끝이 내려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는 듯 제시카 채스테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사진 왼쪽) 연신 드레스를 끌어올렸다. 나는 얼마 전 로렌스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영화 속 노브라에 대해 물어 “별 얄궂은 질문도 다 한다”는 가벼운 핀잔을 받은 터여서 가서 도와줄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남자 스타들 중에 눈에 띄는 멋쟁이는 이 날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남우주연상(드라마)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 검은 깃으로 조화를 이룬 벨벳 초록 턱시도가 강렬했다. 스타들이 카메라맨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패션쇼 모델 저리 가라로 멋있다. 하긴 그 것도 연기의 한 동작이겠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는 중에 진행되는 즉흥적이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기는 쇼다. 딱딱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오스카 시상식과는 전연 다른 경쾌한 이지 고잉 스타일의 쇼다. 식이 진행 중인데도 식장에 붙은 오픈 바에 가서 술 시켜 마시는 배우들도 종종 눈에 띈다. 나도 그렇지만.
그런데 사실 골든 글로브는 시상식보다 식후의 파티가 더 인기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워너브라더스와 인 스타일이 공동 주최하는 파티를 비롯해 HBO와 팍스와 NBC-유니버설 그리고 와인스틴이 마련하는 파티는 새벽 2시까지 흥청망청 대면서 계속된다. 타락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여기서는 보타이를 풀어 헤친 스타들과 팬들이 서로 하나가 돼 즐긴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함께 TV 부문에도 시상하는데 올 시상식을 TV로 본 시청자 수는 총 2,09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년만에 처음 이룬 최고의 기록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치솟은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본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다. 재치 있고 귀엽고 우습고 희롱하고 꾸밈이 없어 보기에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내년에도 사회를 본다.
HFPA의 한 회원(이 날 ‘하우스 오브 카드’로 TV시리즈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탄 션 펜의 전처 로빈 라이트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를 ‘괴짜들의 무리’라고 불렀다)으로서 내가 투표한 시상식을 2,090만명이 봤다니 기분이 괜찮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7.2014. 한국일보>    


우주와 바다

중력이 있는 우주와 그것에 매달린 바다는 서로 거꾸로 엎질러 놓은 것처럼 닮았다. 둘은 절대성을 지닌 쌍둥이다. 인간은 이런 절대치 앞에 서면 참으로 보잘 것 없이 작아진다.
신년 연휴에 우주와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생존투쟁을 다룬 두 영화 ‘그래비티’(Gravity)와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다시 보면서 내 존재가 콩알만 해지는 경험을 했다.
두 영화는 형태와 내용 면에서 거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그래비티’는 우주작업 중 타고 온 셔틀이 파괴되면서 혼자 살아남은 여우주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락)이 우주를 표류하면서 지구로 귀환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공상과학 스릴러다.
J.C. 챈도르가 감독한 ‘올 이즈 로스트’는 우주의 지상판인 인도양에서 고장 난 범선을 타고 표류하면서 뭍을 찾아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로버트 레드포드)의 해양 스릴러다. 둘 다 망망대해 공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의 생존투쟁이라는 점이 우선 닮았다.
이 두 1인극(‘그래비티’를 이렇게 불러도 될 것이다)은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와도 같은데 화면에 가득한 침묵과 정적이 웅변보다 훨씬 더 극의 내용을 뒤에서 강하게 떠 받쳐주고 있다. 또 둘 다 검소한 미니멀리즘 영화로 거의 공포영화의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말 대신 정적과 음향과 교향시적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 보는 사람의 감관을 사로잡는다.
내가 이 두 영화를 다시 보면서 겪은 최우선적 경험은 절대성 앞에서의 인간의 무기력감과 운명감이다. 그것은 공포감과도 같은 것으로 영화를 보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선험적이요 초월적인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스톤이 영원한 우주 미아가 돼버린 동료 우주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에게 유언식으로 “(네살 때) 죽은 내 딸에게 내 사랑을 전해 달라”고 독백하는 것이나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절망 끝에 “갓”을 부르짖는 것이나 비슷한 심정이다.
그런데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내가 보기엔 스톤이나 남자나 다 신을 믿는 사람들 같지가 않다. 고작해야 나처럼 교회에 나가면서도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볼 때나야 ‘아, 저 어딘가에는 이 세상과 존재들을 초월한 보다 강력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자들처럼 여겨진다.
이 밖에도 두 영화는 닮은 데가 많다. 스톤이 타고 온 셔틀을 파괴한 버려진 인공위성의 파편들은 범선을 손으로 모는 남자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폭우라고 하겠다. 또 남자가 침몰하기 직전의 범선을 버리고 옮겨 탄 구명정은 스톤이 번갈아가며 몸을 의지한 우주에 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우주 정거장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력은 바다의 격랑이다.
드러매틱한 스릴러인 두 영화는 또 불락과 레드포드의 ‘원 맨(우먼) 쇼’로 두 사람의 연기는 매우 용감하고 지적이며 또 감정적으로도 강렬한 가상한 것이다. 위험과 생사를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결코 침착과 이성을 잃지 않는 스톤과 남자의 내적 강인함도 오누이처럼 닮았다.
특히 나이 77세의 레드포드가 자신의 얼굴과 목과 손을 비롯한 온 육신의 나이테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주는 연기는 경외스러울 정도다. 나는 지난해에 레드포드(사진)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그는 “이 영화는 저 예산 영화여서 하루 종일 물속에 있다가 밖에 나와 잠시 쉴 때도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없어 고생이 막심했다”면서 “이 영화는 어디 까지나 J.C.의 영화”라고 감독의 노고를 치하하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 주었다.
상대역 없이 혼자 하는 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안다면 불락과 레드포드의 연기는 단연 상감이다.
두 영화의 촬영도 모두 수려하다. ‘올 이즈 로스트’의 수중촬영도 아름답고 준수하지만 황홀무아지경인 것은 ‘그래비티’의 우주의 신비와 미 그리고 두려움을 아찔하게 찍은 에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다. 기술적으로도 혁신적인 촬영이다. ‘그래비티’는 3월2일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놓고 ‘12년간의 노예생활’과 치열한 양자대결을 벌일 것이다.
두 영화의 끝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을 수도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래비티’의 결말은 마치 스탠리 쿠브릭의 철학적 공상과학 우주영화 ‘2001: 우주 오디세이’의 새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결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올 이즈 로스트’의 결말은 아주 애매모호하다. 과연 남자는 살았는가 아니면 죽었는가. 전연 다른 줄 알았던 우주와 바다가 이렇게 같은 줄은 두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0.2014. 한국일보>


                   

나의 베스트 텐





할리웃은 2013년 총 109억달러에 이르는 흥행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2013년은 영화의 질과 다양성에서 모두 훌륭했던 해로 특히 흑인문제를 다룬 좋은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다.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전기 ‘42’와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돌본 백악관의 흑인 집사의 얘기 ‘리 대니얼스의 버틀러’ 그리고 북가주 오클랜드 전철역의 흑인 청년 총격 피살사건을 다룬 ‘프루트베일 스테이션’ 및 노예문제를 다룬 ‘12년간의 노예생활’ 등은 모두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됐다.
2013년은 또 1980년대 액션영화의 우상들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67)과 아놀드 슈워제네거(66)가 양수겸장으로 흥행서 죽을 쑨 해이기도 하다.
2013년 기자가 본 300편에 가까운 영화들 중 거의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나의 최고의 영화는 우주 스릴러 ‘그래비티’(Gravityㆍ사진)다.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한 이 입체영화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영화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영적이요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심오한 작품이다.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 그리고 두려움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획기적 영화로 샌드라 불락과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
‘그래비티’에 이은 나의 2103년도 베스트 텐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2.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인도양을 항해 중이던 요트가 사고로 배 옆구리에 큰 구멍이 나면서 배를 몰던 남자(로버트 레드포드)가 온갖 지혜와 용기를 구사해 가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다. 레드포드(77)의 원맨쇼로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와도 같다.
3. ‘자정 이전’(Before Midnight)-리처드 링크레이터 감독의 ‘해 돋기 이전’(1995)과 ‘해 지기 이전’(2005)에 이은 대사 위주의 로맨스 3부작의 마지막 편. ‘해 돋기 이전’에서 유로레일 안에서 만나 사랑이 싹텄으나 헤어졌다가 ‘해 지기 이전’에서 재회한 미국인 제시(이산 호크)와 파리지엔 셀린(줄리 델피)은 이제 파리에서 살면서 딸 쌍둥이를 둔 중년의 커플. 여름 휴가차 그리스에 온 둘이 먹고 마시고 걷고 대화를 나누면서 다투고 화해하고 후회하고 포옹하면서 중년 부부의 공통된 삶의 권태와 아픔과 함께 기쁨과 사랑을 재확인한다. 삼삼하게 매력적인 로맨스 영화다.
4.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r)-고교 시니어인 여학생과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 간의 격정적이요 영육을 불사르는 사랑. 러브신이 극사실적으로 노골적인 프랑스영화.
5. ‘이너프 세드’(Enough Said)-둘 다 이혼한 싱글 페어런트들인 중년 남녀(제임스 갠돌피니와 줄리아 루이스-드라이퍼스)의 두 번째 기회인 사랑을 사실적이요 촉촉한 봄비의 감촉처럼 부드럽게 그렸다. 얼마 전 로마서 급사한 갠돌피니(토니 소프라노)의 유작 중 하나다.
6. ‘프랜시스 하’(Francis Ha)-뉴욕에 사는 젊은 댄서의 꿈과 좌절과 우정과 사랑 등 일상사를 날듯이 상쾌하게 그린 흑백 소품. 프랜시스 역의 키 큰 요정과도 같은 그레타 거윅의 사뿐한 모습과 연기가 아름답다. 아! 청춘의 기쁨과 슬픔이여. 그런데 프랜시스의 성은 하씨가 아니다.
7. ‘허’(Her)-가까운 미래의 LA. 연애편지 대필가인 젊은이(와킨 피닉스)가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인 여자(스칼렛 조핸슨의 음성)와 사랑한다. 첨예화한 기계시대의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의 아쉬움과 고독을 차분하고 로맨틱하고 또 소슬하게 묘사했다.
8. ‘보이지 않는 여인’(The Invisible Woman)-찰스 디킨스(레이프 화인스 감독 주연)와 그가 숨겨둔 정부이자 뮤즈(펠리시티 존스)인 여인과의 관계.                  
9. ‘네브래스카’(Nebraska)-몬태나주에 사는 노인(브루스 던)이 100만달러 경품에 당첨됐다는  통보를 받고 돈을 받으러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네브래스카주로 향한다. 향수감 짙은 흑백 코미디 드라마.
10. ‘스펙태큘라 나우’(The Spectacular Now)-고교 시니어들인 두 10대 남녀 학생의 사랑과 갈등과 이별과 재회를 사실적이요 절실하니 곱게 그렸다.
이 밖에도 ‘과거’(The Past) ‘필립스선장’(Captain Phillips) ‘머드’(Mud) ‘사냥’(The Hunt) ‘공격’(The Attack) ‘부전자전’(Like Father Like Son) ‘바람이 인다’(The Wind Rises) ‘필로메나’(Philomena) ‘차일즈 포즈’(The Child’s Pose) ‘어네스트와 셀린’(Earnest & Celine) ‘숏 텀 12’(Short Term 12) 및 ‘메이지가 아는 것’(What Maise Knew) 등이 기억에 남는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3.2014. 한국일보>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영화평] 부부관계·영화제작 다룬 고다르 작품 - 경멸 (Contempt)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브리짓 바르도)는 신념없는 남편 폴(미셸 피콜리)을 경멸한다.

전형적 영화제작의 틀을 뒤집어엎는 프랑스 감독 장-뤽 고다르의 1963년 작으로 개봉 반세기를 기념해 복원된 작품이 재개봉 된다. 무너져 내리는 부부관계와 스튜디오 체제가 붕괴된 후의 국제 합작영화 제작 그리고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다룬 이색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영화다.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정오의 귀신’.
영화 제목은 여주인공 카미유가 남편인 영화 각본가 폴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나타낸다. 고다르의 영화여서 쉬운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예술영화 팬들에겐 큰 만족감을 줄 영화로 브리짓 바르도의 맨살 엉덩이가 탐스럽고 독일 감독 프리츠 랭이 영화 속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고다르가 랭의 조감독으로 나온다.
로마·프랑스의 영화 각본가 폴(미셸 피콜리-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입에 문채 목욕을 한다)은 연극작품을 쓰는 것이 꿈이다. 그의 무르익은 육체를 지닌 아내로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바르도)는 낭비벽증자.
폴에게 미국인 영화제작자 제레미(잭 팰랜스)가 호머의 ‘오디세이’를 영화화할 예정이라며 각본을 써 줄 것을 제의한다. ‘오디세이’는 독일감독 프리츠 랭이 연출하는데 영화 속의 영화 장면과 함께 영화제작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폴이 각본을 쓰는 것을 알고 카미유는 쉽게 팔려 다니는 신념 없는 남편을 더욱 경멸한다. 그리고 카미유는 제레미에게 접근한다. 제레미와 카미유는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몰고 달리다 대형 트럭과 충돌, 둘 다 트럭 타이어 밑에 깔려 죽는다.
국제 합작영화 제작의 여러 가지 함정과 시네마스코프(랭은 이 형태를 싫어했다) 그리고 고전적 주제에 관한 심리적 해석 및 바르도의 엉덩이에 관한 영화로 지적으로 자극적인 영화다. 진공상태와도 같이 장식 없는 폴의 아파트에서 폴과 카미유가 장시간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한 번도 아파트 밖으로 떠나지 않는 실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은 고다르의 영화를 여러 편 찍은 라울 쿠타르 촬영감독의 솜씨가 역연한 장면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외눈 안경을 쓴 랭의 냉소적인 모습도 재미있다. 조르지 들르뤼의 음악과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 등 경치도 아름답다. 성인용. Rialto. 로열과 플레이하우스 7(310-478-3836).  

[영화평] 맨해턴 폭파 음모 테러리스트를 잡아라

잭 라이언: 그림자 신병 (Jack Ryan: Shadow Recruit) 


라이언(크리스 파인)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테러리스트를 쫓아 맨해턴을 질주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 많고 독창성 없는 스파이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로 얼마 전 작고한 스파이소설 작가 탐 클랜시의 잭 라이언 연작 시리즈가 원작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인 CIA 스파이 잭 라이언역은 해리슨 포드와 알렉 볼드윈 그리고 벤 애플렉 등이 차례로 맡았었다.
이번에 라이언 역은 젊은 크리스 파인(스타 트렉)이 맡아 이 시리즈에 젊은 층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깎다 만 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파인이 영 카리스마가 없는데다가 연기도 신통치 못해 영화가 배급사인 패라마운트 뜻대로 빅히트를 해 속편을 만들게 될지 지극히 의문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셰익스피어 전문 무대 및 영화와 TV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 공연하고 케빈 코스너와 키라 나이틀리 등 거물 스타들이 나온 영화로선 기대치에 못 이르는 타작에 불과하다. 볼 것이 있다면 겨울 모스크바에서 찍은 현지 촬영.
런던의 경제학 전공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잭 라이언(파인)은 9.11 테러를 TV로 목격하고 박사학위 따기를 중단하고 해병에 입대, 소위로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투입된다. 그리고 헬기가 탈레반의 로켓에 맞아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는다. 라이언은 얼굴에도 큰 상처를 입었는데 퇴원 후 보니 말짱하다. 하기야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는 스파이를 누가 보러 오겠는가.
라이언은 오랜 물리치료소 생활 끝에 퇴원하는데 여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여자 캐시(나이틀리는 완전히 소모품)와 애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CIA 소속 신참 스파이 발굴자인 해군장교 토머스 하퍼(코스너)에 의해 발탁된 뒤, 정부 돈으로 런던서 중단했던 공부를 마친다. 
이어 라이언은 월가의 국제적 거래를 하는 대규모 투자회사에 분석가로 위장하고 취직한다. 라이언은 재정에 바탕을 둔 테러리즘을 분석하는 것이 임무로 동거하는 캐시에게조차 자신의 진짜 신원을 감춘다.
라이언은 자료 분석을 하다가 러시아의 거부 빅터 체레빈(브라나가 심한 액센트를 구사하는 영어를 쓴다)의 구좌에서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심각한 이상을 발견하고 빅터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언은 거구 흑인 킬러의 공격을 받는데 이 장면은 007시리즈 ‘골드핑거’의 격투 신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부터 데스크 잡을 보던 라이언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선 스파이가 된다.  
매력과 잔인함을 겸비한 빅터는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러시아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테러리스트로 그는 미국 내 잠복해 있는 재정과 폭파전문 스파이들을 동원해 맨해턴 다운타운을 폭파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킬 준비를 다 해놓았다.
이를 막을 자가 물론 라이언인데 느닷없이 캐시가 모스크바에 도착, 빅터에게 납치되면서 라이언은 조국과 애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고군분투한다. 
클라이맥스는 맨해턴에서 벌어지는데 스릴러인 만큼 붐비는 모스크바와 맨해턴에서 요란한 차량(모터사이클 포함) 추격신이 일어난다. 그렇게 모진 액션을 겪고 나서도 살아남으니 라이언은 과연 수퍼맨이다. PG-13. 전지역.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12년간의 노예생활’.

`아메리칸 허슬' 3개부문 수상 최다 상복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의 사회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상이 영화사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인심 좋은 행사였다.
여기서 유독 제외된 영화사가 유니버설과 선전의 귀재 하비 와인스틴의 와인스틴사다.
특히 와인스틴은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의 단골 수상자로 이번에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에서 후보에 오른‘필로메나’와‘8월: 오세이지 카운티’가 완전히 무시당해 심술첨지 와인스틴의 심기가 지금까지도 몹시 불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필로메나’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영국 배우 주디 덴치는 최근에 받은 무릎수술로 인해 이날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영화와 TV 스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는‘아메리칸 허슬’로 남우주연상(코미디/ 뮤지컬) 후보에 오른 크리스천 베일도 참석을 못했는데 그는 지금 스페인에서 찍고 있는‘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아 불참했다.
상(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이 골고루 주어진 가운데에서도 3개 부문에서 상을 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영화가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1970년대 말 정치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뉴저지주의 날사기꾼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작품(코미디/뮤지컬)과 여자주연(에이미 애담스) 및 여자조연상(제니퍼 로렌스)을 받았다. 방년 23세의 로렌스는 지난해에는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으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을 수상, 2년 계속해 상을 받은 실력파다.
감독상 알폰소 쿠아론.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남북전쟁 이전 미 북부의 해방된 노예가 노예장수들에게 납치돼 남부농장에 팔려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시 자유를 찾은 솔로몬 노덥의 실화를 다룬 ‘12년간의 노예생활’(12 Years a Slave)이 탔다.
그런데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모두 7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수상 후보작이었던 이 영화는 각본, 감독(스티브 매퀸), 남우주연(치웨텔 에지오포) 및 여우조연(루피타 니옹고)상 부문에서도 수상이 유력시 됐었으나 작품상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메리칸 허슬’에 이어 유일하게 복수로 상을 탄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Dallas Buyers Club). 멕시코에서 에이즈 사제 약을 밀반입해 환자들에게 판 에이즈 환자 론 우드러프의 실화에서 론으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가 남우주연상(드라마)을 그리고 그의 파트너로 역시 에이즈 환자인 성전환자 역을 맡은 재레드 레토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은 1980년대 말 월가의 젊은 날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다룬 다크 코미디 ‘월스트릿의 늑대’(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조단으로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받았다.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코미디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그의 수상은 다소 뜻밖으로 디카프리오보다는 크리스천 베일(아메리칸 허슬)이나 브루스 던(네브래스카)이 더 유력한 수상 후보들이었다.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푸른 재스민’(Blue Jasmine)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여동생 집에 얹혀살려고 짐을 싸들고
여우주연상(드라마) 케이트 블랜쳇.
온 호화와 사치를 누리며 살다가 알거지가 된 월가의
미망인으로 나온 케이트 블랜쳇이 탔다.
이 영화를 감독한 우디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의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의 수상자로 그는 예상했던 대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알렌 대신 수상 소감을 말한 사람은 그의 영화에 여러 편 나온 알렌의 전 애인 다이앤 키튼. 키튼은 “알렌은 지금까지 자기 영화에서 모두 179명의 여배우들을 기용했으며 스크린에 개성이 강한 여자들을 창조한 여배우들의 친구”라고 칭찬한 뒤 ‘메이크 뉴 프렌즈’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소감을 마쳤다.
이 날 시상식에는 알렌의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인 메릴 스트립(‘8월: 오세이지 카운티’로 코미디/뮤지컬 부문 주연상 후보)과 다이앤 위스트 그리고 매리엘 헤밍웨이(헤밍웨이의 손녀)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이 열리고 있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우주·조연상 에이미
애담스(오른쪽)와 제니퍼 로렌스.
감독상은 우주 스릴러 ‘그래비티’(Gravity)를 연출한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이 탔다. 각본상은 젊은 남자와 컴퓨터의 인공지능인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허’(Her)를 쓴 스파이크 존즈(감독 겸)가 받았다. 감독상과 각본상 역시 ‘12년간의 노예생활’이 탈 것이 유력시 됐었기 때문에 존즈의 수상은 깜짝 상감이다.
또 다른 기대와 예상을 너머 상을 탄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탄 이탈리아의 ‘그레이트 뷰티’(Great Beauty). 이 상은 모두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프랑스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r)이 탄다고 예측했었다.
남우주·조연상
매튜 매코너헤이(왼쪽)와 재렛 레토.
음악상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바다의 생존 투쟁기인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가, 만화영화상은 디즈니의 ‘프로즌’(Frozen)이 탔다. 주제가상은 ‘만델라: 자유에로의 긴 걸음’(Mandela:,Long Walk to Freedom)의 주제가 ‘오디나리 러브’를 부른 U2가 받았다.
그런데 U2의 프론트맨인 보노는 이 날 뜻밖에도 사회자인 에이미 폴러로부터 뜨거운 키스세례를 받아 참석자들의 폭소와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폴러가 TV 시리즈 ‘파크스 앤 리크리에션’으로 여주연상(코미디/뮤지컬) 수상자로 발표되자 보노 옆에 앉았던 폴러가 상을 받으러 일어나면서 그의 무릎에 올라 앉아 보노에게 키스를 쏟아 부은 것. 물론 이 키스는 가짜다.      
이 날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로 올랐으나 빈손으로 돌아간 영화들은 ‘필립스 선장’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8월: 오세이지 카운티’ 및 ‘네브래스카’ 등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1.17.2014>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주말산책] 2,090만명



골든 글로브 레드카펫은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팬들은 스타들이 카펫을 밟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아, 아”하며 죽는 소리를 내고 카메리맨들과 기자들 역시 스타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셔터를 눌러대고 인터뷰 하자며 아우성들을 쳐댔다.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한 NBC-TV 측은 카펫 옆 야외석에 앉은 팬들에게 카메라를 향해 “골든 글로브, 골든 글로브”를 외치라고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난 이 날 이런 도떼기시장이 열린 레드카펫을 오락가락하면서 입장객들에게 “어서들 안으로 들어가세요”라며 밀어대는 시큐리티 노릇을 했다. 그래 봐야 내 말 듣는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시상식이 열리는 하오 5시가 가까워 오면서 스타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날 작품상(드라마)을 탄 ‘12년간의 노예생활’을 감독한 스티브 매퀸과 마이크 타이슨은 만나서 반갑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고 ‘네브래스카’로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후보에 오른 브루스 던은 시종일관 딸이자 배우인 로라 던의 손을 잡고 카펫을 걸었다.
헬렌 미렌과 그의 남편인 감독 테일러 핵포드, 마이클 더글러스, 탐 행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리타 윌슨, 제니퍼 로렌스, 제시카 채스테인, 루피타 니옹고,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샌드라 불락, 콜린 패럴, 마이클 J. 팍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트레이시 폴랜, 드루 배리모어, 어셔, 매튜 매코너헤이, 케이트 블랜쳇, 올랜도 블룸, 줄리아 로버츠, 치웨텔 에지오포 및 엠마 톰슨 등이 잇따라 카펫을 밟았다.
빅스타일수록 도착이 늦는데 이 날 맨 꼴찌로 카펫을 밟은 사람은 맷 데이먼. 스타들은 또 자기들대로 서로 반갑다며 끌어안고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레드카펫의 교통체증은 공사 중인 405프리웨이를 방불케 했다.
레드카펫은 일종의 비공식 패션쇼 장이기도 하다. 특히 여자 스타들의 드레스가 황홀무아지경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12년간의 노예생활’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루피타 니옹고의 빨간 실크 케이프가운이 그의 검은 피부색깔과 치열한 적과 흑의 대결을 이뤘다.
이 날 ‘푸른 재스민’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을 탄 케이트 블랜쳇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우아한 검은 망사 가운과 곧 엄마가 될 드루 배리모어의 붉은 꽃무늬가 화사한 드레스 그리고 검은 띠로 액센트를 한 제니퍼 로렌스의 백색 드레스도 눈부시게 곱다.
그런데 이 날 ‘아메리칸 허슬’로 여우조연상을 탄 로렌스는 젖가슴을 간신히 덮은 드레스 끝이 내려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는 듯 제시카 채스테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사진 왼쪽) 연신 드레스를 끌어올렸다. 나는 얼마 전 로렌스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영화 속 노브라에 대해 물어 “별 얄궂은 질문도 다 한다”는 가벼운 핀잔을 받은 터여서 가서 도와줄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남자 스타들 중에 눈에 띄는 멋쟁이는 이 날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남우주연상(드라마)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 검은 깃으로 조화를 이룬 벨벳 초록 턱시도가 강렬했다. 스타들이 카메라맨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패션쇼 모델 저리 가라로 멋있다. 하긴 그 것도 연기의 한 동작이겠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는 중에 진행되는 즉흥적이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기는 쇼다. 딱딱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오스카 시상식과는 전연 다른 경쾌한 이지 고잉 스타일의 쇼다. 식이 진행 중인데도 식장에 붙은 오픈 바에 가서 술 시켜 마시는 배우들도 종종 눈에 띈다. 나도 그렇지만.
그런데 사실 골든 글로브는 시상식보다 식후의 파티가 더 인기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워너브라더스와 인 스타일이 공동 주최하는 파티를 비롯해 HBO와 팍스와 NBC-유니버설 그리고 와인스틴이 마련하는 파티는 새벽 2시까지 흥청망청 대면서 계속된다. 타락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여기서는 보타이를 풀어 헤친 스타들과 팬들이 서로 하나가 돼 즐긴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함께 TV 부문에도 시상하는데 올 시상식을 TV로 본 시청자 수는 총 2,090만명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년만에 처음 이룬 최고의 기록이다. 이렇게 시청률이 치솟은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본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다. 재치 있고 귀엽고 우습고 희롱하고 꾸밈이 없어 보기에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내년에도 사회를 본다.
HFPA의 한 회원(이 날 ‘하우스 오브 카드’로 TV시리즈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탄 션 펜의 전처 로빈 라이트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를 ‘괴짜들의 무리’라고 불렀다)으로서 내가 투표한 시상식을 2,090만명이 봤다니 기분이 괜찮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7.2014. 한국일보>     

[주말산책] 우주와 바다

중력이 있는 우주와 그것에 매달린 바다는 서로 거꾸로 엎질러 놓은 것처럼 닮았다. 둘은 절대성을 지닌 쌍둥이다. 인간은 이런 절대치 앞에 서면 참으로 보잘 것 없이 작아진다.
신년 연휴에 우주와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생존투쟁을 다룬 두 영화 ‘그래비티’(Gravity)와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다시 보면서 내 존재가 콩알만 해지는 경험을 했다.
두 영화는 형태와 내용 면에서 거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그래비티’는 우주작업 중 타고 온 셔틀이 파괴되면서 혼자 살아남은 여우주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락)이 우주를 표류하면서 지구로 귀환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공상과학 스릴러다.
J.C. 챈도르가 감독한 ‘올 이즈 로스트’는 우주의 지상판인 인도양에서 고장 난 범선을 타고 표류하면서 뭍을 찾아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로버트 레드포드)의 해양 스릴러다. 둘 다 망망대해 공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의 생존투쟁이라는 점이 우선 닮았다.
이 두 1인극(‘그래비티’를 이렇게 불러도 될 것이다)은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와도 같은데 화면에 가득한 침묵과 정적이 웅변보다 훨씬 더 극의 내용을 뒤에서 강하게 떠 받쳐주고 있다. 또 둘 다 검소한 미니멀리즘 영화로 거의 공포영화의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말 대신 정적과 음향과 교향시적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 보는 사람의 감관을 사로잡는다.
내가 이 두 영화를 다시 보면서 겪은 최우선적 경험은 절대성 앞에서의 인간의 무기력감과 운명감이다. 그것은 공포감과도 같은 것으로 영화를 보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선험적이요 초월적인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스톤이 영원한 우주 미아가 돼버린 동료 우주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에게 유언식으로 “(네살 때) 죽은 내 딸에게 내 사랑을 전해 달라”고 독백하는 것이나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절망 끝에 “갓”을 부르짖는 것이나 비슷한 심정이다.
그런데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내가 보기엔 스톤이나 남자나 다 신을 믿는 사람들 같지가 않다. 고작해야 나처럼 교회에 나가면서도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볼 때나야 ‘아, 저 어딘가에는 이 세상과 존재들을 초월한 보다 강력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자들처럼 여겨진다.
이 밖에도 두 영화는 닮은 데가 많다. 스톤이 타고 온 셔틀을 파괴한 버려진 인공위성의 파편들은 범선을 손으로 모는 남자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폭우라고 하겠다. 또 남자가 침몰하기 직전의 범선을 버리고 옮겨 탄 구명정은 스톤이 번갈아가며 몸을 의지한 우주에 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우주 정거장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력은 바다의 격랑이다.
드러매틱한 스릴러인 두 영화는 또 불락과 레드포드의 ‘원 맨(우먼) 쇼’로 두 사람의 연기는 매우 용감하고 지적이며 또 감정적으로도 강렬한 가상한 것이다. 위험과 생사를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결코 침착과 이성을 잃지 않는 스톤과 남자의 내적 강인함도 오누이처럼 닮았다.
특히 나이 77세의 레드포드가 자신의 얼굴과 목과 손을 비롯한 온 육신의 나이테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주는 연기는 경외스러울 정도다. 나는 지난해에 레드포드(사진)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그는 “이 영화는 저 예산 영화여서 하루 종일 물속에 있다가 밖에 나와 잠시 쉴 때도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없어 고생이 막심했다”면서 “이 영화는 어디 까지나 J.C.의 영화”라고 감독의 노고를 치하하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 주었다.
상대역 없이 혼자 하는 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안다면 불락과 레드포드의 연기는 단연 상감이다.
두 영화의 촬영도 모두 수려하다. ‘올 이즈 로스트’의 수중촬영도 아름답고 준수하지만 황홀무아지경인 것은 ‘그래비티’의 우주의 신비와 미 그리고 두려움을 아찔하게 찍은 에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다. 기술적으로도 혁신적인 촬영이다. ‘그래비티’는 3월2일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놓고 ‘12년간의 노예생활’과 치열한 양자대결을 벌일 것이다.  
두 영화의 끝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을 수도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래비티’의 결말은 마치 스탠리 쿠브릭의 철학적 공상과학 우주영화 ‘2001: 우주 오디세이’의 새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결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올 이즈 로스트’의 결말은 아주 애매모호하다. 과연 남자는 살았는가 아니면 죽었는가. 전연 다른 줄 알았던 우주와 바다가 이렇게 같은 줄은 두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0.2014. 한국일보>                    

[주말산책] 나의 베스트 텐





할리웃은 2013년 총 109억달러에 이르는 흥행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2013년은 영화의 질과 다양성에서 모두 훌륭했던 해로 특히 흑인문제를 다룬 좋은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다.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전기 ‘42’와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돌본 백악관의 흑인 집사의 얘기 ‘리 대니얼스의 버틀러’ 그리고 북가주 오클랜드 전철역의 흑인 청년 총격 피살사건을 다룬 ‘프루트베일 스테이션’ 및 노예문제를 다룬 ‘12년간의 노예생활’ 등은 모두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됐다.
2013년은 또 1980년대 액션영화의 우상들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67)과 아놀드 슈워제네거(66)가 양수겸장으로 흥행서 죽을 쑨 해이기도 하다.
2013년 기자가 본 300편에 가까운 영화들 중 거의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나의 최고의 영화는 우주 스릴러 ‘그래비티’(Gravityㆍ사진)다.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한 이 입체영화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영화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영적이요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심오한 작품이다.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 그리고 두려움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획기적 영화로 샌드라 불락과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
‘그래비티’에 이은 나의 2103년도 베스트 텐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2.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인도양을 항해 중이던 요트가 사고로 배 옆구리에 큰 구멍이 나면서 배를 몰던 남자(로버트 레드포드)가 온갖 지혜와 용기를 구사해 가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다. 레드포드(77)의 원맨쇼로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와도 같다.
3. ‘자정 이전’(Before Midnight)-리처드 링크레이터 감독의 ‘해 돋기 이전’(1995)과 ‘해 지기 이전’(2005)에 이은 대사 위주의 로맨스 3부작의 마지막 편. ‘해 돋기 이전’에서 유로레일 안에서 만나 사랑이 싹텄으나 헤어졌다가 ‘해 지기 이전’에서 재회한 미국인 제시(이산 호크)와 파리지엔 셀린(줄리 델피)은 이제 파리에서 살면서 딸 쌍둥이를 둔 중년의 커플. 여름 휴가차 그리스에 온 둘이 먹고 마시고 걷고 대화를 나누면서 다투고 화해하고 후회하고 포옹하면서 중년 부부의 공통된 삶의 권태와 아픔과 함께 기쁨과 사랑을 재확인한다. 삼삼하게 매력적인 로맨스 영화다.
4.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r)-고교 시니어인 여학생과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 간의 격정적이요 영육을 불사르는 사랑. 러브신이 극사실적으로 노골적인 프랑스영화.
5. ‘이너프 세드’(Enough Said)-둘 다 이혼한 싱글 페어런트들인 중년 남녀(제임스 갠돌피니와 줄리아 루이스-드라이퍼스)의 두 번째 기회인 사랑을 사실적이요 촉촉한 봄비의 감촉처럼 부드럽게 그렸다. 얼마 전 로마서 급사한 갠돌피니(토니 소프라노)의 유작 중 하나다.
6. ‘프랜시스 하’(Francis Ha)-뉴욕에 사는 젊은 댄서의 꿈과 좌절과 우정과 사랑 등 일상사를 날듯이 상쾌하게 그린 흑백 소품. 프랜시스 역의 키 큰 요정과도 같은 그레타 거윅의 사뿐한 모습과 연기가 아름답다. 아! 청춘의 기쁨과 슬픔이여. 그런데 프랜시스의 성은 하씨가 아니다.
7. ‘허’(Her)-가까운 미래의 LA. 연애편지 대필가인 젊은이(와킨 피닉스)가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인 여자(스칼렛 조핸슨의 음성)와 사랑한다. 첨예화한 기계시대의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의 아쉬움과 고독을 차분하고 로맨틱하고 또 소슬하게 묘사했다.
8. ‘보이지 않는 여인’(The Invisible Woman)-찰스 디킨스(레이프 화인스 감독 주연)와 그가 숨겨둔 정부이자 뮤즈(펠리시티 존스)인 여인과의 관계.                    
9. ‘네브래스카’(Nebraska)-몬태나주에 사는 노인(브루스 던)이 100만달러 경품에 당첨됐다는  통보를 받고 돈을 받으러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네브래스카주로 향한다. 향수감 짙은 흑백 코미디 드라마.
10. ‘스펙태큘라 나우’(The Spectacular Now)-고교 시니어들인 두 10대 남녀 학생의 사랑과 갈등과 이별과 재회를 사실적이요 절실하니 곱게 그렸다.
이 밖에도 ‘과거’(The Past) ‘필립스선장’(Captain Phillips) ‘머드’(Mud) ‘사냥’(The Hunt) ‘공격’(The Attack) ‘부전자전’(Like Father Like Son) ‘바람이 인다’(The Wind Rises) ‘필로메나’(Philomena) ‘차일즈 포즈’(The Child’s Pose) ‘어네스트와 셀린’(Earnest & Celine) ‘숏 텀 12’(Short Term 12) 및 ‘메이지가 아는 것’(What Maise Knew) 등이 기억에 남는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3.2014.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