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우주와 바다

중력이 있는 우주와 그것에 매달린 바다는 서로 거꾸로 엎질러 놓은 것처럼 닮았다. 둘은 절대성을 지닌 쌍둥이다. 인간은 이런 절대치 앞에 서면 참으로 보잘 것 없이 작아진다.
신년 연휴에 우주와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생존투쟁을 다룬 두 영화 ‘그래비티’(Gravity)와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다시 보면서 내 존재가 콩알만 해지는 경험을 했다.
두 영화는 형태와 내용 면에서 거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그래비티’는 우주작업 중 타고 온 셔틀이 파괴되면서 혼자 살아남은 여우주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락)이 우주를 표류하면서 지구로 귀환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공상과학 스릴러다.
J.C. 챈도르가 감독한 ‘올 이즈 로스트’는 우주의 지상판인 인도양에서 고장 난 범선을 타고 표류하면서 뭍을 찾아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로버트 레드포드)의 해양 스릴러다. 둘 다 망망대해 공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의 생존투쟁이라는 점이 우선 닮았다.
이 두 1인극(‘그래비티’를 이렇게 불러도 될 것이다)은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와도 같은데 화면에 가득한 침묵과 정적이 웅변보다 훨씬 더 극의 내용을 뒤에서 강하게 떠 받쳐주고 있다. 또 둘 다 검소한 미니멀리즘 영화로 거의 공포영화의 분위기마저 느껴지는데 말 대신 정적과 음향과 교향시적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 보는 사람의 감관을 사로잡는다.
내가 이 두 영화를 다시 보면서 겪은 최우선적 경험은 절대성 앞에서의 인간의 무기력감과 운명감이다. 그것은 공포감과도 같은 것으로 영화를 보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선험적이요 초월적인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스톤이 영원한 우주 미아가 돼버린 동료 우주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에게 유언식으로 “(네살 때) 죽은 내 딸에게 내 사랑을 전해 달라”고 독백하는 것이나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절망 끝에 “갓”을 부르짖는 것이나 비슷한 심정이다.
그런데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내가 보기엔 스톤이나 남자나 다 신을 믿는 사람들 같지가 않다. 고작해야 나처럼 교회에 나가면서도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볼 때나야 ‘아, 저 어딘가에는 이 세상과 존재들을 초월한 보다 강력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자들처럼 여겨진다.
이 밖에도 두 영화는 닮은 데가 많다. 스톤이 타고 온 셔틀을 파괴한 버려진 인공위성의 파편들은 범선을 손으로 모는 남자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폭우라고 하겠다. 또 남자가 침몰하기 직전의 범선을 버리고 옮겨 탄 구명정은 스톤이 번갈아가며 몸을 의지한 우주에 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우주 정거장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력은 바다의 격랑이다.
드러매틱한 스릴러인 두 영화는 또 불락과 레드포드의 ‘원 맨(우먼) 쇼’로 두 사람의 연기는 매우 용감하고 지적이며 또 감정적으로도 강렬한 가상한 것이다. 위험과 생사를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결코 침착과 이성을 잃지 않는 스톤과 남자의 내적 강인함도 오누이처럼 닮았다.
특히 나이 77세의 레드포드가 자신의 얼굴과 목과 손을 비롯한 온 육신의 나이테를 그대로 노출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주는 연기는 경외스러울 정도다. 나는 지난해에 레드포드(사진)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그는 “이 영화는 저 예산 영화여서 하루 종일 물속에 있다가 밖에 나와 잠시 쉴 때도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가 없어 고생이 막심했다”면서 “이 영화는 어디 까지나 J.C.의 영화”라고 감독의 노고를 치하하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 주었다.
상대역 없이 혼자 하는 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안다면 불락과 레드포드의 연기는 단연 상감이다.
두 영화의 촬영도 모두 수려하다. ‘올 이즈 로스트’의 수중촬영도 아름답고 준수하지만 황홀무아지경인 것은 ‘그래비티’의 우주의 신비와 미 그리고 두려움을 아찔하게 찍은 에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다. 기술적으로도 혁신적인 촬영이다. ‘그래비티’는 3월2일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놓고 ‘12년간의 노예생활’과 치열한 양자대결을 벌일 것이다.
두 영화의 끝은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을 수도 또 다를 수도 있다. ‘그래비티’의 결말은 마치 스탠리 쿠브릭의 철학적 공상과학 우주영화 ‘2001: 우주 오디세이’의 새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결말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올 이즈 로스트’의 결말은 아주 애매모호하다. 과연 남자는 살았는가 아니면 죽었는가. 전연 다른 줄 알았던 우주와 바다가 이렇게 같은 줄은 두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1.10.2014.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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