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월 31일 금요일

불관용

한국 경제학회가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관용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31위로 나타났다. 판단의 근거로 장애인 배려와 관용성 및 외국인 수용 3가지를 제시했는데 여기서 꼴찌를 한 것이다.
난 이 보도를 읽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뜻 최근 다시 한국 컴백설에 휩싸였던 가수 겸 배우 유승준(38)이 생각났다. 유승준은 2002년 입대를 앞두고 과거 군에 복무하겠다던 자신의 다짐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 복무를 면피, 국민감정을 건드린 괘씸죄로 지금까지 10여년간 반역자 취급을 받으며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살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입국이 금지되고 있는데 ‘경제 질서 또는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사람’이라는 항목에 걸린 것 같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이현령비현령식의 법조항이다.
그리고 유승준이 병역의무가 최종 면제되는 나이인 만 41세가 넘어 입국을 시도하더라도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유승준이 무슨 솔제니친도 아닌데 한국은 그를 영원한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 짐작엔 정부가 그의 입국을 심사할 의도가 있더라도 국민감정이 무서워 망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인인 유승준이 식언하고 입대를 회피한 행위는 기릴 만한 것은 아니나 한국의 또 다른 공인들인 국회의원과 고관대작 본인이나 그들의 아들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법이 저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거나 유승준에 대한 격앙된 국민감정이 이들에 대해서도 발화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법이나 국민감정이나 모두 차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너무 감정적인 것이 탈이다.
한국의 관용도를 재는 기준의 하나인 외국인 수용에 인색한 것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얘기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인데 이 폐쇄성이 병세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민족주의에로까지 이르게 마련이다.
한국에는 혼혈가정이 해가 갈수록 증가, 2020년이 되면 혼혈가정 수가 100만여명에 이르고 전체 청소년의 20%가 혼혈가정 출신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자기와 다른 피부 색깔과 사상과 믿음을 지닌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등과 공존의식에 대한 자각이 절실히 요구된다.
흑인을 ‘깜둥이’ 혼혈아를 ‘튀기’라고 멸시하지 않는 것이 관용이다. 관용이란 의식수준이 상향조정될 때 베풀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식수준이 급격히 성장한 물질수준을 미처 못 따르는 것 같다. 저임금을 노리고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임금을 착취하고 아동 노동을 시키는 것도 모두 타인종 멸시와 물질수준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1958년 인기절정이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에 징집되자 팬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를 암살하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그런데 엘비스는 연예병 특과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2년간 독일서 보통 군인으로 복무한 뒤 제대했다. 난 유승준 논쟁이 일 때마다 왜 그가 내가 복무했을 때와는 달리 복무기간도 짧고 또 구타도 없는 민주화한 군 입대를 피했을까 하고 궁금해지곤 한다. 엘비스도 하고 나도 했는데.
인간의 끈질긴 불관용을 통렬하게 고발한 대하 서사적 영화가 D.W. 그리피스의 ‘불관용’(Intoleranceㆍ1916)이다.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이 3시간반짜리 무성영화는 바빌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여를 지나오면서도 치유되지 않는 인간의 불관용을 병행하는 4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페르시아의 바빌론 정복과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고 프랑스 구교도들의 신교도 대학살 및 범죄와 구제에 관한 20세기의 멜로드라마 등 4편의 얘기는 관용과 사랑의 상징인 영원한 어머니(릴리안 기쉬)가 아기가 담긴 요람을 흔드는 장면(사진)에 의해 연결된다.
유승준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나는 계속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불관용의 제물인 예수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용서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유승준을 용서하라.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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