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불어 닥친 대여성 성폭행 폭로운동인 ‘미투’의 표적 중 한 사람으로 지목 받던 영화와 연극배우이자 대학교수인 조민기가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2009년 신성 장자연(당시 27세)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영화감독과 회사사장 및 신문사 간부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다 못해 자살한 것과 역설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배역을 미끼로 여배우들로부터 섹스를 착취하던 소파를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고 일컫는다.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미투’의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세계적인 감독 김기덕(57^사진)이다. 최근 3명의 여배우들이 김 감독으로 부터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이런 소식이 국제적 뉴스감이 되고 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다”면서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하에 육체적 교감을 나눈 적은 있다”고 교언영색적인 단어를 써가며 자기를 변호했다.
그런데 김 감독의 성폭행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으나 유야무야 되곤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의 대여성 성폭행의 근원은 한국적 전통인 남성위주와 권위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기덕의 영화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가 “그는 왕이었다”고 김 감독의 절대 권력을 표현한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 한국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씩 패야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나라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대여성 성폭력이 만연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김기덕의 영화들은 대부분 어둡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데 특히 여성들은 강간이나 성매매의 희생자들로 자주 나온다. ‘섬’ ‘악어’ ‘나쁜 남자’ ‘사마리아’ 및 ‘파란 대문’ 등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는 새디스트다. 그런데 성매매를 다룬 ‘나쁜 남자’의 주연남우 조재현도 김기덕과 함께 ‘미투’에 의해 성폭행자로 거명되고 있다.
나는 김기덕의 ‘수취인 불명’이 2001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둘이 한국식당에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자신의 폭력에 대해 “나는 어두운 것을 통해 밝은 곳에로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다”면서 “내 폭력은 어둡지만 유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가 2004년 7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의 홍보 차 LA에 왔을 때 다시 만났다. 그 때 그는 “제 영화는 한국에서 안 봐요”라며 한탄을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2006년에는 “더 이상 내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 없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폭탄선언은 후에 오리발선언이 되었지만. 내가 김기덕과 두 차례 만나고 느낀 점은 그가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하긴 하나 다분히 궤변론자라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의 거리화가 출신인 영화인 김기덕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은 보통 영화들과 파격적으로 다르다. 그는 자기 말대로 ‘불편한 대중성’에 아랑곳 않고 자기 뜻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강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예술 지향적이어서 팬들이 극히 제한돼 있긴 하나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이 매년 세계 유명 영화제들인 칸과 베니스와 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김기덕은 한국에서는 푸대접을 받을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박찬욱과 홍상수 처럼 큰 대접을 받는 감독이다.
그는 2004년에는 원조교제를 다룬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그리고 같은 해에 남편의 집착과 소유욕으로 피폐해진 여자의 드라마 ‘빈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받았다. 이어 2012년에는 끔찍하게 가학적인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한국에서는 지금 김기덕을 사법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성폭행 문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미국의 하비 와인스틴 사건의 한국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김기덕에 대한 ‘미투’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의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세계 영화계로선 큰 손실이나 이를 계기로 한국영화계에서 ‘캐스팅 카우치’의 악습이 사라지게 되기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캐스팅 카우치’가 존재하는 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젊은 연예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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