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슈테판 즈바이크: 유럽이여 안녕(Stefan Zweig:Farewell to Europe)


슈테판 즈바이크가 아내와 함께 차창을 통해 불타는 사탕수수밭을 바라보고 있다.

지적이고 아름답게 그린 유명작가의 브라질 망명생활


1920년대 토마스 만과 함께 독일어 작가로서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유대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즈바이크의 브라질에서의 망명생활을 시각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깊고 아름답게 그린 전기영화다.
다작인 그의 소설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이 ‘모르는 여인의 편지’. 옆 아파트에 이사 온 멋쟁이 피아니스트를 소녀 시절부터 성장해서 까지 사랑한 여인의 얘기로 이 글은 막스 오펄스가 감독한 루이 주르단과 조운 폰테인 주연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몇 개의 특별한 순간들을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1930년대 중반에서 1942년 그가 두 번째 부인 로테(애네 슈바르츠)와 함께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살할 때까지의 삶을 5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심리적으로 통찰력 있고 감정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감독(공동 각본)은 배우이기도 한 여류 마리아 슈라더로 독어 대사에 영어자막.
작가의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가의 성격과 끊임없는 망향을 절실하고 품위있게 묘사하면서 육신은 안전하나 자기 언어의 고향인 조국을 떠나온 작가의 방황하는 마음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즈바이크(요젭 하더)를 환영하는 브라질 대통령궁에서의 만찬장면으로 시작된다. 즈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1934년 런던으로 망명했다가 브라질에 정착하는데 영화는 그가 자기를 찬양하는 대도시와 시골마을의 독자들을 찾아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뿌리 없는 망명생활의 모습이다.
이어 193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작가회의. 여기서 즈바이크는 나치정권을 비판하라는 요청을 거절한다. 이유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비판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즈바이크는 이어 아내와 함께 바히아주로 여행을 하는데 차창을 통해 타오르는 사탕수수밭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은 불타는 자신의 조국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엄격한 영화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시골마을의 엉성한 시장과 그의 직원들이 즈바이크의 방문에 채 때를 못 맞춰 준비하느라 법석을 떠는 장면. 우수와 경쾌함이 병행된 장면으로 넌센스 코미디 같다.
그리고 즈바이크는 1941년 뉴욕에 사는 전처 프리데리케(바바라 주코바)를 방문한다. 여기서 그와 프리데리케는 조국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친구들과 친지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논의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즈바이크 부부의 시신이 침실에서 발견된다. 배우들의 연기가 위엄이 있고 촬영도 훌륭하다. 일부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황금 투구(Caque D‘or·1952)


저주 받은 사랑의 두 주인공 마리(왼쪽)와 조르지.

질투에 무참히 파괴되는 비극적 사랑
프랑스 명장 자크 베케의 흑백 걸작


프랑스의 명장 자크 베케의 비극적인 흑백 로맨스 걸작이다.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숭고한 동화이자 20세기 문턱의 파리의 지하세계의 후진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사실적이요 아름답게 그린 탁월한 작품이다. 
가난하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두 남녀의 사랑과 정열이 타인의 욕정과 질투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는 내용을 시적으로 정감 짙게 그렸다. 특히 제목을 뜻하는 투구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한 금발의 명우 시몬 시뇨레의 모습과 연기가 황홀하다.
1900년께. 파리교외 벨빌의 갱두목 펠릭스의 졸개 롤랑의 애인 마리(시뇨레)는 패거리들과 함께 교외로 놀러 갔다가 만난 목수 조르지(세르제 레지아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 때문에 롤랑과 조르지 사이에 주먹다짐이 일어난다. 그런데 펠릭스도 마리를 탐낸다. 
조르지가 갱의 소굴로 마리를 만나러 갔다가 롤랑과 칼부림을 하게 되고 이어 롤랑이 조르지의 칼에 찔려 죽는다. 조르지와 마리는 시골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고 둘은 짧지만 로맨틱한 목가적인 날들을 보낸다.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는 펠릭스는 간계를 꾸며 조르지의 친구로 자기 졸개인 레이몽에게 롤랑의 살해범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이를 안 조르지는 자수한다.
한편 마리는 조르지를 구해내려고 펠릭스에게 자기 몸까지 주나 펠릭스는 마리를 배신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조르지는 호송 도중 탈출해 길에서 만난 조르지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마지막 장면은 마리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조르지를 목격하는 것으로 끝난다. 
마리가 단두대가 놓인 교도소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여관에서 애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대사가 별로 없는 단순하고 미적인 영화로 촬영이 감각적이다. 
시뇨레(배우이자 가수인 이브 몽탕의 아내였다)가 가장 아끼는 영화로 예술 혼이 가득하다.
이 영화와 함께 장-폴 사르트르의 희곡이 원작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는 멕시코 깡촌에서 만난 상처 입은 영혼을 지닌 두 프랑스 남녀(제라르 필립과 미셸 모르강)의 사랑과 처절한 운명을 그린 ‘오만한 남자와 미녀’(The Proud and the Beautiful·1953년·이브 알레그레 감독)가 19일(오후 7시30분) 에어로(Aero)극장(1328 Montana Ave. Santa Monica)에서 동시 상영된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가 만난 폴란스키




국제적 도망자인 명장 로만 폴란스키(83)의 오디세이는 언제나 끝날 것인가. 폴란스키는 지난 1977년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세난 모델 지망생 새만사 가이머를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종 형을 선고 받기 직전 파리로 달아난 뒤 미 사법당국으로부터 지명수배가 내려 지금까지 ‘페르소나 논 그라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 가이머(54)가 LA 형사법정에 출두, 판사에게 폴란스키에 대한 법적 소송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또 다시 폴란스키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가이머는 “나는 이미 과거의 불상사를 극복한지 오래 된다”면서 “폴란스키에 대한 소송절차를 철회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을 지난 40년간 따라다닌 미디어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아울러 폴란스키도 여행의 자유를 가지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폴란스키는 당시 재판 끝에 90일간의 교도소 정신병동 수감 형을 선고 받은 뒤 42일을 살고 출소했다. 폴란스키는 이로써 형을 완료했다고 믿었으나 담당판사가 당초 약속을 어기고 폴란스키에게 남은 48일을 교도소에서 마저 살고 그 뒤에 자진출국 하든지 아니면 더 긴 형을 내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달아난 것이다. 그 후 폴란스키는 지금까지 미국과 범인 인도협정을 맺은 나라에는 가지 않고 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공포와 집념 그리고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 일탈을 자주 그리고 있다. 그의 데뷔작 ‘물속의 칼’과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충격적인 심리극 ‘리펄션’ 그리고 미아 패로가 나온 ‘로즈메리의 아기’ 및 폴란스키가 주연도 한 ‘테넌트’ 등이 다 그렇다.
폴란스키가 할리웃에서 만든 영화로 가장 유명한 것이 잭 니콜슨과 페이 더나웨이가 공연한 ‘차이나타운’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자기 소년시절의 참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피아니스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당시 흥분에 들뜬 폴란스키가 비디오영상으로 오스카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폴란스키를 지난 2011년 10월 파리에서 만났었다(사진) 그가 만든 연극이 원작인 4인 드라마 ‘카니지’ 홍보의 일환이었다. 작달막한 키의 폴란스키는 당시 78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장난기 짙은 약간 쥐 상의 아이 같은 얼굴에 총기가 번득이는 눈을 한 그는 쾌활하고 유머와 위트가 있었다. 매우 솔직해 모든 것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할리웃 귀환 의도에 대해 “요즘은 할리웃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할리웃의 친구들과 단골 식당이 그립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운명론자일지도 모른다면서 “내가 할리웃에 계속해 있었다면 내 생애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스키는 도망자로서의 자기신세를 자조하면서 “여러분들이 ‘카니지’로 내게 골든 글로브상을 줘도 난 할리웃에 가지 못하니 일찌감치 다른 사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의 이유를 일단 유전자 탓으로 돌린 뒤 “스포츠하고 좋은 음식 먹고 시가를 빼고 금연하기 때문”이라고 그 비결을 고백했다. 폴란스키는 이어 반세기가 넘도록 영화를 만드는 동기의 원동력을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도전정신”이라며 “그러나 작품의 주제가 날 움직여야한다”고 덧 붙였다. 폴란스키의 아내는 배우인 에마뉘엘 세녜(50)로 폴란스키는 아내와 해리슨 포드를 사용해 서스펜스 스릴러 ‘프랜틱’을 만들었다.
유대인인 폴란스키는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폴랜드로 이주했다. 2차대전이 나면서 그의 부모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어머니는 개스 처형됐다. 그 후 폴란스키는 크라카우의 유대인게토를 탈출, 시골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선한 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폴란스키의 많은 영화들이 보는 사람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는 그의 이런 어린 시절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또 할리웃에서 활동할 당시인 지난 1969년 임신한 아내로 배우인 샤론 테이트(26)가 현재도 수감 중인 맨슨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법이 이제 그만 관용을 베풀어 폴란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할리웃에 돌아와 탁월한 재주와 실력을 발휘해 만든 영화를 보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원더 우먼’갤 가돗




“약점 있고 따스한 인간적 원더 우먼 그리려 노력”


DC 코믹스 만화가 원전인 영화 ‘원더 우먼’에서 아마존의 여전사 공주인 다이애나 역을 맡아 수퍼 파워를 지닌 ‘원더 우먼’이 된 이스라엘 태생의 갤 개돗(32)과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의 한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가슴골이 깊이 드러난 검은 드레스에 긴 갈색머리를 한 팔등신 미녀 개돗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지난 3월에 난 둘째 딸 마야를 젖 먹여 키우느라 등이 아프다며 서서 인터뷰에 응했다. 개돗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고 상냥하게 물음에 대답했는데 아직도 자기가 ‘원더 우먼’이 된 것을 못 믿어하는 표정이었다. 미스 이스라엘이었던 개돗은 이스라엘 시민의 의무인 군 복무를 했다. 
‘원더 우먼’은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히트했었다.

▲자랄 때 존경하고 그처럼 되길 원했던 모범 여성은 누구였는가.
“미국의 시인이요 작가이며 민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다. 난 그가 말한 메시지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 둘째 딸의 이름도 마야로 지었다. 그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할머니다.”

▲단 시일에 할리웃에서 급속도로 상승하는 스타가 되었는데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그것에 신경 안 쓴다. 그것은 단지 부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난 이미 이스라엘서 오래 동안 유명했기 때문에 명성과 파파라지에 모두 익숙하다. 명성이 좋은 단 하나 이유는 더 이상 오디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젠 각본을 읽고 좋으면 출연하고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도전받은 것은 무엇인가.
“‘원더 우먼’이 힘이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를 냉정하거나 남자들을 사정없이 처치하는 여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에 신경을 썼다. 모든 사람이 ‘원더 우먼’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려고 했다. 그가 위대한 전사이면서도 약점이 있고 회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이 영화가 여자에게 어떤 의미로 중요하다고 보는가.
“첫째 딸 이름은 히브리어로 우주를 뜻하는 알마다. 난 그들을 이 세상으로 데려온 것이 매우 기쁘다. 난 이 영화가 여자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자에게 있어 여성 권력 쟁취란 중요하지만 그것은 남자를 교육시키지 않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

▲ ‘원더 우먼’은 인간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의 인간관은 어떤 것인가.
“난 사람들을 사랑한다. 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로부터 최선의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난 낙천가로 우린 모두 같은 열망과 필요와 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더 우먼’은 이런 것들을 친절하고 따스하게 또 수용과 사랑으로써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원더 우먼’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린 보다 나은 사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럼 도널드 트럼프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각자의 기호 문제다. 그러나 난 분명히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언제 자신을 원더 우먼처럼 느끼는가.
“내 딸들을 가졌을 때다. 좀 유치한 것 같지만 아기를 낳을 때 내가 신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것은 어머니가 되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영화를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는가.
“난 12년간 댄서였는데 격투 동작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승마가 재미있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타보니 매우 고통스러웠다. 무기 중에선 ‘진실의 올가미’라 불리는 채찍이 좋았다. 그것은 칼처럼 공격적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더 우먼이 칼과 방패를 무기 삼아 적과 맞서고 있다.

▲ ‘원더 우먼’이 완벽한 사람이 아닌 허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허점이 약점으로 보일 우려가 있지 않은가.
“‘원더 우먼’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지상 세계로 나오면서 물 떠난 물고기가 된 셈이다. 그는 선을 믿는 젊은 이상주의자로 세상을 매우 단순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원더 우먼’은 인간의 삶이 복잡하다는 것을 모르는데 이 자체만으로도 그는 벌써 허점을 지닌 것이다. 난 그것을 약점으로 보진 않는다. ‘원더 우먼’은 허점이 있기에 영화의 다양한 상황에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원더 우먼’의 의상은 1970년대 TV시리즈의 것보다 현대화 했는데 디자인에 자기 의견을 반영했는지.
“옷을 입고 1주일에 6일씩 6개월 간 촬영을 했는데 아주 편했다. 싸우고 연기를 하기 위해선 편해야 했는데 몸에 강렬한 감각을 느끼긴 했으나 편했다. 다자인에 대해선 별 조언을 안 했다. 내가 이미 ‘원더 우먼’으로 나왔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입은 옷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를 보면 한 벌의 옷과도 같지만 실은 일곱 벌의 다른 옷들이다.”

▲연기하다 다치기라도 했는지.
“몸 곳곳에 멍이 들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격투장면을 찍다가 섬게에 발을 찔린 것이다. 그 밖에는 안전했다.”

▲영화를 어디서 찍었는가.
“이탈리아와 파리에서도 찍었지만 대부분 런던서 찍었다. 겨울에 야외에서 찍었는데 몸을 노출한 ‘원더 우먼‘의 옷을 입어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런던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태양을 즐기면서 너무 많이들 먹어 모두들 체중이 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이 영화를 비롯해 대형 액션영화에 자주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영화들이 마음에 든다. 난 자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이었고 표현 수단으로 내 몸을 사용했다. 날 액션배우라고 정형화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런 역을 정말로 즐긴다. 언젠가 무거운 드라마도 할 기회가 오겠지만 난 이런 영화들이 좋다.”

▲이스라엘에서 영화나 TV에 나올 의향이라도 있는지.
“언제나 나올 용의가 있다. 난 배우로서 대부분 할리웃에서 일했지만 모국어로 연기한다는 것은 매우 편하다. 따라서 좋은 감독과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만 있다면 하시라도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 군에서 받은 훈련과 영화를 위해 받은 훈련이 어떻게 다른가.
“군 훈련이 훨씬 더 강력하다. 매일 하루에 6-7시간 씩 훈련을 받았는데 정말로 고되다.”

▲여류감독 패티 젠킨스와 일한 경험은 어떤가.
“패티는 함께 일하는 배우에게 창조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영화 촬영 내내 그는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의견을 교환하면서 상호 교감했다. 난 사람들이 여자가 주인공이니까 여자가 감독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착잡한 감정이다. 패티가 이 영화를 맡게 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바로 영화에 적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역을 얻게 됐는가.
“몇 년 전 미국에 왔을 때 다른 영화들을 위해 여러 차례 오디션에 참석해 지쳐 연기를 거의 포기할 상태였다. 카메라 테스트 후에 퇴짜 당하기가 일쑤였다. 난 배우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됐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배우가 내 직업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영화의 제작자인 잭 스나이더가 영화 이름도 안 밝히고 나보고 오디션에 나오라고 해서 참가한 뒤 이스라엘로 귀국했다. 얼마 후 스나이더가 전화로 미국에 와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라면서 ‘원더 우먼’이라고 들어 봤느냐고 물었다. 사연인즉 그렇다.”

▲어디에 사는가.
“텔아비브와 이곳이다.”

▲젠킨스가 감독한다면 ‘원더 우먼’ 속편에 나오겠는가.
“젠킨스가 감독한다면 어떤 영화에라도 나오겠다. 만약 속편을 만든다면 ‘원더 우먼’이 제3차 대전을 미리 막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의 사촌 레이철’(My Cousin Rachel)


상복을 입은 레이철과 필립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신비의 미망인은 살인자인가 고상한 여인인가


의심과 정열 그리고 죽음과 회한이 뒤엉킨 스산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심리 로맨틱 스릴러이자  복수의 미스터리 드라마로 마치 고전 귀신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시종일관 우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미망인 레이철의 심중 의도를 의심하게 되면서 서스펜스에 긴장하게 되는데 이런 의문은 영화가 끝이 나서도 풀리지 않는다. 과연 레이철은 살인자인가 아니면 순진한 사람인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로맨스영화로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운 폰테인이 주연한 영화 ‘레베카’의 원작 소설을 쓴 영국의 여류작가 대프니 뒤 모리에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은 지난 1952년 리처드 버튼(할리웃 데뷔작)과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1830년대 영국의 남부 해변 마을의 대저택에 사는 순진하고 부유한 청년 필립 애슐리(샘 클래플린-마이클 화스벤더를 똑 닮았다)가 자기 보호자이자 사촌인 앰브로즈의 미망인 레이철(레이철 바이스)이 이탈리아에서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앰브로즈는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필립은 앰브로즈가 보내온 편지를 읽으면서 서서히 앰브로즈의 죽음이 병사가 아니라 레이철에 의한 독살이라고 믿게 된다. 편지 속에 앰브로즈가 이를 시사하는 글을 남겼다.
복수심에 불타는 필립 앞에 검은 상복을 입은 레이철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필립은 대뜸 이 여자의 깊고 고매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이어 레이철은 이 집안의 안주인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레이철에 매료된 풋내기 필립은 레이철이 마땅히 앰브로즈의 재산을 상속 받아야 된다고 결정하고 모든 재산을 그에게 물려주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는 필립의 대부(이에인 글렌)와 그의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로 필립을 짝사랑하는 루이즈(할러데이 그레인저)와 필립의 변호사 등이 다 필립의 이런 성급한 조치에 반대를 표명하나 세상물정 모르는 필립은 자기 뜻을 고집한다. 필립의 이런 호의에 레이철이 감사의 키스를 하면서 키스는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후 필립은 레이철의 행동에서 다시 수상한 점을 느끼게 되면서 이 여자가 재산을 노린 살인자라고 깊게 의심한다. 그리고 필립은 레이철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끝이 아름답도록 충격적이다.  
기만과 술수와 의문이 기득한 영화로 안에 잠복한 짙은 선정성이 자극적인데 이런 의문과 억제된 성적 매력을 연기파인 바이스(007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가 침착하고 어둡고 고혹적으로 표현한다. 성격 드라마이기도 한데 중간 부분에서 다소 느슨해지는 기운이 있지만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는 영화로 촬영과 세트와 의상과 음악도 다 좋다. 
로저 미첼 감독(각색 겸).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웨스트우드와 피코).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저녁 식사의 비애트리즈’(Beatriz at Dinner)


비애트리즈(왼쪽)가  부자들의 저녁식사에서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눈에 비친 가진 자의 오만


영적인 영화로 심각한 생각과 느낌에 젖게 된다. 부유한 자들과 없는 자들 간의 차이와 계급간의 갈등과 함께 정치적 사회적 논평을 날카로운 위트를 구사해 표현한 코미디이자 드라마로 얘기가 대부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진행돼 연극 같은 느낌이 든다.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대사들이 있는 시적 분위기마저 지닌 드라마로 논쟁의 두 당사자로 나오는 셀마 하이엑과 존 리트가우의 언어의 대결에서 흐르는 전류가 감각적이다. 둘이 연기도 잘 하는데 특히 하이엑의 코믹하면서도 심오한 연기가 눈부시다.
영화 끝이 거의 초현실적으로 마치 마법적 사실주의 분위기를 지녔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영화다.
집에서 개와 염소를 키우는 마사지사이자 암 환자센터에서 정신적 요법으로 환자를 돌보는 비애트리즈(하이엑)는 치유와 생명을 사랑하고 그 것들에 헌신하는 여자. 비애트리즈가 자기 손님인 엄청나게 부유한 캐시(카니 브리튼)에게 마사지를 해주려고 뉴포트비치에 있는 집에 갔다가 차가 고장이 나자 캐시가 비애트리즈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캐시가 비애트리즈를 이렇게 대접하는 이유는 비애트리즈의 요법 때문에 자기 딸의 암이 치유됐기 때문. 저녁 식사의 손님은 돈이 최고인 부동산업자 재벌 덕(리트가우) 부부와 또 다른 부부. 잘 차려 입은 이들은 모두 거부들로 덕은 처음에 평상복을 입은 비애트리즈를 하녀로 오인한다.
저녁 식사가 시작되면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란 모두 돈에 대한 것. 돈이 된다면 비리도 마다 않는 덕의 오만에 얌전히 앉아 있던 비애트리즈가 반박을 하면서 둘 사이에 적대 의식과 함께 논쟁이 벌어진다.
식사 후 자리를 옮겨 대화가 이어지는데 덕이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사살한 코뿔소 사진을 자랑하자 비애트리즈가 이를 격렬히 비난한다. 비애트리즈의 덕에 대한 증오를 묘사한 상상에 이어 비애트리즈는 토우트럭을 타고 귀가하다 바닷가에 차를 세운다.
트럼프 시대에 잘 맞는 영화로 모두 자기보다 키가 훨씬 큰 물질주의자들 사이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키가 작은 비애트리즈가 틈틈이 이들의 말을 비판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진지하다. 그런데 감독 미구엘 아르테타는 덕을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적으로 묘사, 그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도록 처리했다. 랜드마크 등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6월 5일 월요일

원더 우먼(Wonder Woman)


원더 우먼이 1차대전 전선에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있다.

1차 대전에 간 여전사 ‘원더 우먼’ 액션장면 장관


DC 코믹스 만화의 여전사 원더 워먼의 액션과 모험을 그린 환상영화로 경쾌하고 단순한 옛날 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원더 우먼의 얘기는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 히트했었다. 남자 영웅 대신 여자 영웅이 맹활약하는 이 영화는 전쟁액션영화요 로맨틱 코미디이자 여자 영웅의 성장기로 액션이 볼만하고 유머도 충분해 오락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순진한 영화로 상영시간이 2시간20분이나 돼 후반부에 가서 얘기가 지지부진한 감이 있다.
원더 우먼 역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의 갤 개돗이 맡았는데 개돗은 지난 해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에서 이미 이 역을 맡았었다. 그런데 개돗의 표정 연기가 지극히 단순하다. 
영화는 여전사들인 아마존들이 사는 저 세상 낙원의 섬에서 시작된다. 여왕 히폴리타(카니 닐슨)의 딸인 어린 다이애나는 이모 앤티오피(로빈 라이트)에 의해 싸움 잘 하는 여전사로 성장한다. 
이 섬에 1차 대전에서 영국정보부를 도와 활약하는 미국인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탄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다이애나는 처음으로 인간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스티브를 추격해온 총을 든 독일군들이 섬에 도착하면서 활을 쏘는 아마존들과 격전을 벌인다. 
다이애나는 스티브로부터 처참한 1차 대전의 얘기를 듣고 인간을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스티브와 함께 런던으로 간다. 원더 우먼은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 열린 마음을 지닌 낙천적인 여자 영웅이다.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이름을 한 원더 우먼이 처음 보는 세상 구경에 얼떨떨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이어 원더 우먼은 스티브와 세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유럽의 전장으로 진출한다. 원더 우먼의 적은 독일군 장성(대니 휴스턴이 만화 속 인물처럼 그려졌다)과 인간을 증오하는 독성 화학물질의 발명자인 이사벨 마루(엘레나 아나야).                
방패와 긴 칼 그리고 진실의 올가미를 무기로 원더 우먼이 스티브와 함께 독일군들을 무찌르는 액션장면이 박진감 있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은 정말로 장관이다. 원더 우먼과 스티브는 함께 적을 무찌르다가 로맨스마저 꽃 피운다. 속편이 반드시 나올 영화다. 
여류 패티 젠킨스  감독. PG-13. WB.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과거의 삶(Past Life)


세피(왼쪽)와 나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간다.

아버지의 미스터리한 과거 파헤치는 두 자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두 자매가 과거 폴란드에서의 아버지의 삶을 캐들어 가면서 처참한 과거와 직면한 뒤 이 과거의 족쇄로부터 자신들 뿐 아니라 부모까지 해방시키고 아울러 화해와 용서를 찾는 실팍한 성격 드라마로 이스라엘 영화다. 실화에 바탕을 뒀다.  
과거를 함구하는 아버지의 삶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서스펜스와 긴장감 팽팽하게 감도는데 플롯이 이중삼중으로 얽혀들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특히 영화를 위해 작곡한 합창곡이 아름답고 두 자매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    
1977년 예루살렘. 이 해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 이스라엘과의 평화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던 해다. 주인공들인 두 딸 중 언니 나나(넬리 타가르)는 저널리스트로 사사건건 대결하는 스타일. 나나의 동생은 천상의 음성을 지닌 음악학도 세피(조이 리거)로 작곡가 지망생. 이들의 아버지 바룩 밀히(도론 타보리)는 엄격한 산부인과 의사로 결혼한 나나와 만나면 언쟁이 잦다. 둘의 어머니(에브게니아 도디나)는 상냥한 전형적 모범주부.
콘서트 출연 차 서베를린에 갔던 세피는 공연 후 리셉션 장에서 갑자기 나이 먹은 폴란드여인(카타르지나 그니브코우스카)로 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네 아버지는 살인자야”라는 말을 듣는다. 이를 말리는 남자가 이 여인의 독일인 아들로 작곡가인 토마스 질린스키(라파엘 스타초비악).
세피가 이런 사실을 귀국해 언니에게 알리자 나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함께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정신을 동원해 마다하는 세피를 부추겨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 간다. 그러나 이 노력이 뜻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나나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과거를 이실직고하라고 도전한다.
이에 바룩은 자신의 나치 점령 하 폴란드에서 행적을 상세히 기록해 낭독하나 나나는 여전히 이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나와 세피는 폴란드까지 찾아가 아버지의 행적을 탐문한다.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바룩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세피의 음성과 함께 개인적 매력에 이끌린 토마스가 매스터 클래스 차 이스라엘을 방문, 세피에게 과거와의 직면을 독려하면서 세피의 부모의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마지막 폴란드에서의 합창곡 연주회 장면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눈물과 함께 평화와 화해가 영그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타가르와 리거가 대조적인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타가르의 맹렬한 연기가 훌륭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아비 네쉐르 감독(각본 겸). 일부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워 머신(War Machine)


글렌 맥매언 장군(브래드 핏)이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전쟁 미치광이 장군 통해 아프간전 풍자


전쟁과 전쟁을 이끄는 군 장성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을 쥔 계급에 대한 새카만 풍자영화로 황당무계할 정도로 터무니없고 우습다. 현재 싸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미국과 전쟁이 직업인 군인들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공격으로 코미디이자 전쟁의 현실을 폭력적이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톤이 다소 고르진 못하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반전 풍자영화들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캐치-22’ ‘매쉬’ 및 ‘3명의 왕들’을 연상케 하는데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주인공 장군이 마치 전쟁놀이를 즐기는 아이 같아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런 구세주적 망상에 빠진 장군으로 브래드 핏(제작 겸)이 나오는데 과장됐을 정도로 으스대는 동작과 표정이 장군모를 쓴 아이 같아 혀를 차게 된다. 마치 꼭두각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한데 그것이 풍자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영화는 2009~2010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내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을 비롯해 정부 고위인사들을 싸잡아 비난해 해고당한 스탠리 A. 맥크리스탈 장군의 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글렌 맥매언 장군(핏)이 부관들을 이끌고 으스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맥매언은 “우린 이 전쟁에 이길 거야”라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에 예스 맨들인 부하들은 “옛 서”하며 동의한다. 이들도 우스꽝스런 전쟁 미치광이들로 묘사됐다. 
맥매언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내복바람으로 7마일을 뛰고 잠도 잘 안자는 골수분자 군인으로 아프간전쟁은 미국의 화력이 아니라 건드리지 못할 막강한 이상 때문에 이긴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오바마가 더 이상 아프간에 군대를 투입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4만 명의 병력 증강을 요청한다. 배짱 하나 큰 친구다. 
맥매언은 첫 공격지로 탈레반의 요충이나 반군들이 없는 헬만드를 선정한다. 맥매언은 공격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카르자이 대통령(벤 킹슬리가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묘사된 것은 흠이다)을 방문한다. 이어 그는 유럽 국가들의 병력지원을 얻어내려고 프랑스와 독일 등을 방문한다. 맥매언은 독일의 기자회견에서 여기자(틸다 스윈튼)로부터 날카로운 질문 공격을 받는다. 
맥매언이 이끄는 부대가 헬만드를 공격하면서 코미디의 톤이 전쟁 액션의 사납고 튼튼한 근육질로 변한다. 매우 긴장감 있고 조마조마한 처리다. 맥매언의 몰락은 그가 롤링스톤 잡지의 부대 취재를 허락하면서 초래된다. 그가 자기 속에 있는 워싱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마구 내뱉은 것이 그대로 집지에 실리면서 그는 오바마로부터 소환 당한다. 
감독은 호주 태생의 데이빗 미초드(‘애니멀 킹덤’). R등급. Netflix 작품으로 일부 극장 상영과 함께 TV로 스트리밍 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를린 신드롬(Berlin Syndrome)


안디(오른쪽)가 자기의 포로인 클레어의 몸을 닦아주고 있다.

납치된 여성과 가둔 자의 심리대결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여자를 수집하는 사이코의 아름답게 충격적인 드라마 ‘콜렉터’를 연상시키는 심리 스릴러이자 공포영화로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육체적 심리적 폭력과 상처 그리고 심리전을 재치 있게 그린 작품이다. 
호주의 여류 감독 케이트 쇼트랜드의 기민하고 질서 정연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긴장감 감도는 영화로 시종일관 협소한 공간에서 얘기가 진행돼 심신으로 느끼는 서스펜스의 강도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감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피랍자의 심리상태를 애매모호하게 설정해 과연 이 사람이 베를린판 스톡홀름 신드롬의 희생자가 된 것이나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다.
호주서 배낭 하나 등에 지고 베를린으로 휴가 겸 구 동독 건물들의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사 클레어(테레사 팔머)는 길에서 만난 핸섬하고 상냥한 영어선생 안디(막스 리멜트)에게 호감을 갖는다. 
여행자의 방탕기와 자유가 발동해 클레어는 첫 대면 후 다시 안디를 찾아 간다. 둘은 정례적인 데이트 과정을 거쳐 안디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안디는 폐건물과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혼자 사는데 여기서 그와 클레어는 격렬한 섹스를 치른다. 
이튿날 클레어가 잠에서 깨어나니 안디는 출근했는데 아파트에서 나가려고 해도 문과 창문이 모두 굳게 잠겨 있다. 안디가 돌아오자 클레어가 따지니 안디는 키를 두고 나간 줄 알았다고 둘러댄다.
다시 이튿날이 되어도 문이 잠겨있자 그제야 클레어는 자기가 안디의 포로가 된 것을 안다. 그리고 안디도 본격적으로 납치자의 근성을 드러내 냉혹하고 폭력적이 되면서 클레어의 악몽이 시작된다. 그런데 안디는 아버지와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 대해 증오하고 있다. 마더 신드롬이다. 
안디에게 폭력을 행사한 뒤 탈출하려던 것이 실패하면서 클레어는 자신의 감금 상태를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평화작전을 쓰기도 하고 또 안디에게 아양을 떨면서 섹스작전마저 사용한다. 과연 클레어는 정말로 안디에게 정을 느끼는 것일까 또는 연극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클레어는 이 두 개의 마음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이론적으로 너무 비약하는 점이 있긴 하나 팔머의 가라앉은 연기와 촬영과 음악 등이 다 좋은 즐길만한 영화다. R등급.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007 로저 모어



쉐이큰한 보드카 마티니와 여색을 즐기며 월터 PPK를 뽑아들고 악인들을 처치하는 불사신과도 같은 제임스 본드도 세월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스크린에서 세 번째로 살인면허 더블O를 소지한 영국 첩보부 MI6의 스파이 본드로 나왔던 로저 모어가 지난 23일 89세로 타계했다. 지금까지 본드로 나왔던 6명의 배우 중 제일 먼저 별세했다.
모어는 제1대와 제2대 본드역의 션 코너리와 조지 레이젠비에 이어 ‘리브 앤 렛 다이’(1973)에서 본드로 나온 이후 무려 12년간 총 7편의 007시리즈에 나왔다. 첫 영화에 이어 ‘맨 위드 더 골든 건’ ‘스파이 후 러브드 미’ ‘문레이커’ ‘포 유어 아이즈 온리’ ‘옥토푸시’ 및 ‘뷰 투 어 킬’ 등에 나온 뒤 지난 1985년 58세로 본드 역에서 퇴역했다. 본드 역을 가장 많이 한 배우다. 모어의 뒤를 이어 티모시 달턴과 피어스 브로스난을 거쳐 현재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본드다.
모어의 007시리즈 중 가장 훌륭한 것이 ‘스파이 후 러브드 미’(사진)다. 영화에서 본드 걸로는 바바라 박(비틀즈 멤버 링고 스타의 아내)이 본드의 악인으로는 독일배우 쿠르트 유르겐스가 각기 나왔다. 유르겐스의 하수인으로 금속이빨로 사람을 물어 죽여 ‘조스’라 불리는 거인으로는 리처드 킬이 나왔다. 난 언젠가 런던을 방문했을때 윌체어에 앉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본드를 혼 내주던 그가 윌체어에 앉은 모습을 보면서 세월무상을 느꼈었다.
역대 본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사납고 냉정하고 폭력적인 션 코너리다. 평소 농담 잘하던 모어도 “나를 빼곤 션이 가장 좋은 본드”라고 말했다. 코너리가 어둡고 거칠고 가차 없는 본드였다면 모어는 가볍고 코믹한 터치로 본드를 표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본드 영화도 시리즈 두번째인 ‘007/위기일발’이다.
그런데 실제로 영국 스파이였던 이안 플레밍이 쓴 본드 소설에서 그려진 본드는 모어보다는 코너리가 더 본드의 성질에 걸 맞는다. 현 본드인 크레이그는 코너리에 이어 이런 본드의 근성을 가장 잘 표현한 배우로 평가 받고 있다.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특징인 모어는 연기파가 못 된다. 그도 자신을 배우로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오래 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그를 본적이 있는데 그저 평범한 시민처럼 보였다.
그런데 모어는 실제로는 용감무쌍한 본드와는 전연 다른 성질을 지녔었다고 한다. 그는 지나치게 병을 의식했고 고지공포증자요 총을 싫어했다는 것. 그리고 본드가 즐겨 마시던 보드카 마티니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그런데도 007시리즈 초대 제작자인 고 알버트 브로콜리는 첫 본드로 모어를 골랐었다. 그러나 그 때 모어가 영국의 인기 TV시리즈 ‘세인트’에 출연 중이어서 역을 맡지 못 했다. ‘세인트’에서 모어는 현대판 로빈 후드인 사이먼 템플라로 나오는데 이 시리즈는 1962년부터 무려 7년간 방영됐다.
런던에서 태어난 모어는 엑스트라 노릇을 하면서 왕립 극예술 아카데미에서 수련했다. 이 때 동급생 중 하나가 총 14편의 본드영화에서 본드의 상관인 M의 여비서 모니페니로 나온 로이스 맥스웰이다. 모니페니는 본드를 연모하나 본드는 늘 이를 가볍게 넘겨버리곤 했다.
‘세인트’의 인기로 모어는 MGM과 계약을 맺게 된다. 007 시리즈 외에 그의 영화들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온 신파극 ‘내가 마지막 본 파리’와 리처드 버튼이 주연한 액션 스릴러 ‘와일드 기스’ 및 버트 레널즈가 나온 코미디 액션 영화 ‘캐논볼 런’ 등이 있다.
모어는 생애 후반기에 자기 친구였던 오드리 헵번이 생전에 맡았던 UN 국제아동비상기금의 친선대사로 활약했는데 이 공로로 영국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아 ‘서’로 불렸다.
“마이 네임 이즈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본드는 수많은 여자와 정사를 즐기면서도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안 하는 철저한 플레이보이다. 그런 본드가 여인을 사랑해 결혼까지 한 영화가 ‘여왕폐하의 007’이다. 호주 배우 레이젠비의 유일한 본드 역으로 그는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트레이시(다이애나 릭)와 결혼하나 결혼식 후 둘이 함께 애스턴 마틴을 몰고 가다 본드의 천적인 암살집단 스펙터의 두목 언스트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가 쏜 총에 맞아 트레이시가 숨진다.
본드는 죽은 트레이시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영화에서 터프 가이 본드가 흘린 첫 눈물이다. 이 사건 이후로 본드는 다시는 절대로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이 있다.
다음 007시리즈에는 크레이그가 다시 나올 예정이다. 크레이그가 본드 역에서 은퇴하면 바톤을 이어 받을 배우들로 탐 하디와 마이클 화스벤더 및 이드리스 엘바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영화



제우스의 심술궂은 아들로 전쟁의 신인 에어리스가 인간의 마음에 폭력과 증오를 심어놓은 뒤로 인간은 지금까지 계속해 싸우고 있다. 구약은 피로 물든 전쟁사요 인간은 전쟁이 없으면 어떤 명분이라도 내걸고 전쟁을 한다.
전쟁은 무수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고 찬양하나 2차 대전 때 유럽전선에 참전해 혁혁한 무공을 세운 영화감독 샘 풀러는 이를 비웃는다. 그는 “군인들은 결코 그들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빼앗기는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터프 가이 풀러는 자기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한 ‘빅 레드 원’과 함께 한국전을 다룬 ‘픽스트 베이어넷!’과 ‘철모’(사진) 등 여러 편의 좋은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오는 29일은 메모리얼 데이다. 그런데 살육이 목적인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와 함께 사람들이 태양을 즐기는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에서 한국전에 두 번이나 종군했다가 두 번 다 죽은 사람이 윌리엄 홀든이다. 주제가가 아름다운 ‘모정’은 홍콩주재 미국기자와 유라시언 여의사 제니퍼 존스와의 애처로운 사랑을 그렸다. 홀든은 한국전에 종군기자로 파견됐다가 순직한다.
홀든은 ‘도곡리의 다리’에서는 미 제트기 파일롯으로 나와 북한 땅에 불시착했다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아내로 그레이스 켈리가 나왔다. 홀든은 이 밖에도 오스카 주연상을 탄 ‘제17 포로수용소’와 ‘콰이강의 다리’ 같은 전쟁영화에 나왔다.
‘도곡리의 다리’에서처럼 한국전에 참전한 일본 주둔 미 제트기 파일롯들의 얘기를 그린 것으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나온 ‘헌터즈’와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사요나라’가 있다. 그런데 브랜도는 전투는 안 하고 일본의 예쁜 연예인과 연애를 한다. 이 밖에 알랜 래드와 시드니 퐈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올 더 영 멘’과 한국전에 영국군 졸병으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헬 인 코리아’도 한국전 영화다.
풀러처럼 직접 2차대전에 참전, 큰 무공을 세운 뒤 할리웃 스타가 된 사람이 예쁘장하게 생긴 오디 머피다. 머피는 일반 병사로 유럽전선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위로 의회 명예훈장 등 무려 24개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한 개인이 받은 훈장으로는 미 역사상 최다의 것이다.
그는 제대 후 자기 경험을 다룬 액션이 박진한 ‘지옥의 전선’에 나왔다. 머피의 또 다른 훌륭한 전쟁영화로는 존 휴스턴이 감독한 남북전쟁 영화로 용기와 비겁의 뜻을 탐구한 ‘용기의 붉은 배지’가 있다.    
웨스턴과 전쟁영화로 미 국민의 영웅이 된 존 웨인은 계약사인 RKO가 손을 써 징집에서 제외됐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클라크 게이블 등 많은 할리웃 스타들이 종군한 것을 생각하면 이유야 어쨌든지 큰 덩지에 어울리지 않는 처사다. 웨인이 실전에서 못 한 무공을 스크린에서 세운 영화가 그가 용감무쌍한 고참 해병상사로 나온 이오지마전투를 그린 ‘유황도의 모래’다.
웨인은 극 보수파로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호전적인 ‘그린 베레’를 감독하고 주연도해 논란이 됐었다. 특수부대 그린 베레를 찬양한 노래가 ‘그린 베레의 발라드’다. 베트남전에 그린 베레로 참전, 부상한 배리 새들러가 불러 빅 히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전 영화는 올리버 스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플래툰’이다. 이 영화에는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비장하게 쓰여진다. 이에 비하면 역시 베트남전 영화인 ‘디어 헌터’는 약간 신파조다.
실전에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전한 5인의 명감독 존 포드, 존 휴스턴, 프랭크 캐프라, 조지 스티븐스 및 윌리엄 와일러가 전장에서 찍은 기록영화 ‘돌아온 5인’은 훌륭한 전쟁사다. 또 미 구축함과 독일 잠수함 간의 추격과 도주를 다룬 ‘상과 하’도 빼어난 전쟁영화다.
나의 올 타임 페이보릿인 ‘지상에서 영원으로’도 전쟁 드라마다. 내가 고집불통의 육군 졸병으로 나온 몬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반한 영화로 진주만 피습 직전과 직후의 하와이 주둔 군인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클리프트는 2차대전을 다룬 ‘젊은 사자들’에서도 역시 고집이 센 육군졸병으로 나와 동료들부터 왕따를 당한다.
반전 풍자영화의 금자탑인 스탠리 쿠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수준에는 못 미치나 26일 개봉된 ‘워 머신’(영화평 참조)도 시의에 맞는 재미있는 전쟁 풍자영화다. 영화에서 아프간전쟁에 투입된 한 미군이 “내가 여기서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회의하는 장면이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싸우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