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6월 5일 월요일

전쟁영화



제우스의 심술궂은 아들로 전쟁의 신인 에어리스가 인간의 마음에 폭력과 증오를 심어놓은 뒤로 인간은 지금까지 계속해 싸우고 있다. 구약은 피로 물든 전쟁사요 인간은 전쟁이 없으면 어떤 명분이라도 내걸고 전쟁을 한다.
전쟁은 무수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고 찬양하나 2차 대전 때 유럽전선에 참전해 혁혁한 무공을 세운 영화감독 샘 풀러는 이를 비웃는다. 그는 “군인들은 결코 그들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빼앗기는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터프 가이 풀러는 자기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한 ‘빅 레드 원’과 함께 한국전을 다룬 ‘픽스트 베이어넷!’과 ‘철모’(사진) 등 여러 편의 좋은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오는 29일은 메모리얼 데이다. 그런데 살육이 목적인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와 함께 사람들이 태양을 즐기는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에서 한국전에 두 번이나 종군했다가 두 번 다 죽은 사람이 윌리엄 홀든이다. 주제가가 아름다운 ‘모정’은 홍콩주재 미국기자와 유라시언 여의사 제니퍼 존스와의 애처로운 사랑을 그렸다. 홀든은 한국전에 종군기자로 파견됐다가 순직한다.
홀든은 ‘도곡리의 다리’에서는 미 제트기 파일롯으로 나와 북한 땅에 불시착했다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아내로 그레이스 켈리가 나왔다. 홀든은 이 밖에도 오스카 주연상을 탄 ‘제17 포로수용소’와 ‘콰이강의 다리’ 같은 전쟁영화에 나왔다.
‘도곡리의 다리’에서처럼 한국전에 참전한 일본 주둔 미 제트기 파일롯들의 얘기를 그린 것으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나온 ‘헌터즈’와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사요나라’가 있다. 그런데 브랜도는 전투는 안 하고 일본의 예쁜 연예인과 연애를 한다. 이 밖에 알랜 래드와 시드니 퐈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올 더 영 멘’과 한국전에 영국군 졸병으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헬 인 코리아’도 한국전 영화다.
풀러처럼 직접 2차대전에 참전, 큰 무공을 세운 뒤 할리웃 스타가 된 사람이 예쁘장하게 생긴 오디 머피다. 머피는 일반 병사로 유럽전선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위로 의회 명예훈장 등 무려 24개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한 개인이 받은 훈장으로는 미 역사상 최다의 것이다.
그는 제대 후 자기 경험을 다룬 액션이 박진한 ‘지옥의 전선’에 나왔다. 머피의 또 다른 훌륭한 전쟁영화로는 존 휴스턴이 감독한 남북전쟁 영화로 용기와 비겁의 뜻을 탐구한 ‘용기의 붉은 배지’가 있다.    
웨스턴과 전쟁영화로 미 국민의 영웅이 된 존 웨인은 계약사인 RKO가 손을 써 징집에서 제외됐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클라크 게이블 등 많은 할리웃 스타들이 종군한 것을 생각하면 이유야 어쨌든지 큰 덩지에 어울리지 않는 처사다. 웨인이 실전에서 못 한 무공을 스크린에서 세운 영화가 그가 용감무쌍한 고참 해병상사로 나온 이오지마전투를 그린 ‘유황도의 모래’다.
웨인은 극 보수파로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호전적인 ‘그린 베레’를 감독하고 주연도해 논란이 됐었다. 특수부대 그린 베레를 찬양한 노래가 ‘그린 베레의 발라드’다. 베트남전에 그린 베레로 참전, 부상한 배리 새들러가 불러 빅 히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전 영화는 올리버 스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플래툰’이다. 이 영화에는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비장하게 쓰여진다. 이에 비하면 역시 베트남전 영화인 ‘디어 헌터’는 약간 신파조다.
실전에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전한 5인의 명감독 존 포드, 존 휴스턴, 프랭크 캐프라, 조지 스티븐스 및 윌리엄 와일러가 전장에서 찍은 기록영화 ‘돌아온 5인’은 훌륭한 전쟁사다. 또 미 구축함과 독일 잠수함 간의 추격과 도주를 다룬 ‘상과 하’도 빼어난 전쟁영화다.
나의 올 타임 페이보릿인 ‘지상에서 영원으로’도 전쟁 드라마다. 내가 고집불통의 육군 졸병으로 나온 몬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반한 영화로 진주만 피습 직전과 직후의 하와이 주둔 군인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클리프트는 2차대전을 다룬 ‘젊은 사자들’에서도 역시 고집이 센 육군졸병으로 나와 동료들부터 왕따를 당한다.
반전 풍자영화의 금자탑인 스탠리 쿠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수준에는 못 미치나 26일 개봉된 ‘워 머신’(영화평 참조)도 시의에 맞는 재미있는 전쟁 풍자영화다. 영화에서 아프간전쟁에 투입된 한 미군이 “내가 여기서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회의하는 장면이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싸우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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