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러브 이츠 저스트 크레이지 러브”라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이 미친 사랑으로부터 날 놓아주세요”라고 하소연한 폴 앵카(75·사진)의 노래를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하던 나는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와 ‘다이애나’ 그리고 닐 세다카의 ‘오, 캐롤’을 들으면서 미 팝송의 팬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노래로만 듣던 앵카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지난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였다. 10대 때 들으며 따라 부르던 노래를 부른 앵카를 그 때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나 만나 악수까지 나눴으니 감격일색일 수밖에.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정열과 에너지가 넘쳐 흘렀는데 모두 나처럼 인생 노을기에 접어든 남녀팬들이 박수를 치고 아우성을 지르면서 앵카의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찡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철저한 쇼맨이었다. 세련되고 박력 있는 제스처를 구사하면서 자주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해 장내가 팬들과 가수의 혼연일체가 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기억이 난다.
앵카는 가수로서의 매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뉴욕타임스도 앵카를 “확신에 찼으나 뽐내지 않는 세련된 가수”라면서 “감상적인 노래들과 스윙송들을 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음성을 지닌 매력적인 가수로 쇼맨십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람이다”고 칭찬한 바 있다.
앵카의 첫 빅히트는 그가 16세이던 지난 1957년에 부른 ‘다이애나’이다. “아 임 소 영 앤 유아 소 올드”로 시작되는 노래는 캐나다 오타와 태생인 앵카가 동네 경찰서에서 비서로 일하던 4세 연상의 다이내나 아이웁에게 바친 구애의 노래다. 그런데 앵카는 다이애나로부터 어리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순식간에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앵카는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가수로서의 길을 터주었다.
내가 ‘돌체’에서 들은 앵카의 노래들은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외에도 ‘퍼피 러브’ ‘풋 유어 헤드 온 마이 숄더’ ‘유 아 마이 데스트니’ ‘론리 보이’ ‘텔 미 댓 유 러브 미’ 및 ‘돈 갬블 위드 러브’ 등.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려고 가사를 외워 공부하다시피 해 내 영어실력 향상에 일조를 했다.
앵카는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팝송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도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인으로서의 비결은 작곡이 먼저이고 노래는 그 다음이라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앤디 윌리엄스, 탐 존스, 소니와 셰어 및 엥겔버트 험버딩크(‘릴리스 미’로 유명한 험퍼딩크가 오는 24일 하오8시와 25일 하오 3시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서 공연한다) 등. 그가 작곡하고 노래한 영화 주제가로 유명한 것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사상 최대의 작전’의 주제가 ‘더 롱게스트 데이’다.
앵카가 작곡해 남에게 준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것이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다. 시내트라의 간판곡이 되다시피 한 이 노래는 앵카가 1967년 프랑스 칸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 머물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노래 ‘콤므 다비튀드’(애즈 유주얼)를 듣고 노래의 판권을 사 ‘마이 웨이’로 편곡을 한 것이다.
레바논계인 앵카는 10대 때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하루 5~6회 노래하고 받은 돈이 달랑 300달러. 그 때 앵카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공연한 가수들로는 후에 다 팝송의 수퍼스타들이 된 오티스 레딩, 에벌리 브라더스, 패츠 도미노 및 버디 할리 등이 있다. 앵카의 라이벌들로는 역시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바비 라이델, 프랭키 아발론, 바비 다린 및 제리 리 루이스 등.
앵카는 자서전에서 그 때를 고되나 즐거웠다고 회상하면서 그러나 순회공연 하느라 자신의 어린시절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앵카의 음악계 진출을 적극 지원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앵카의 히트곡 ‘마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앵카는 ‘파파’라는 노래도 불렀다.
자기 노래를 사랑과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앵카가 지금까지 작곡하고 노래 부른 곡은 자그마치 900여곡. 지금까지 팔린 레코드와 싱글은 1억만장에 이른다.
아직도 연 100회 공연을 하면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고 말하는 앵카는 칠순 중반에도 자신의 현재를 ‘내 생애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 생의 여정이 끝날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잡다한 것들과 집과 자동차 그리고 상들도 아니요, 이 여정이 끝날 때 나를 따뜻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줄 내가 남겨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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