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설리


설리 기장이 침착하게 승객들을 기내에서 대피시키고 있다.

여객기의 긴급 수상착륙 실화‘허드슨강의 기적’


솜씨 좋은 목공이 만든 보기 좋은 가구 같은 영화로 모양은 그럴싸 하나 깊이와 감정이 결여된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재난영화인데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보고 즐길 만은 하나 허전한 구석이 많다.
2009년 1월15일 뉴욕의 라과르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에어웨이즈 여객기가 공중에 오른지 얼마 안 돼 새떼들과 충돌하면서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 난다. 이에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탐 행스)는 40년의 비행경력에서 얻은 지혜를 동원, 기수를 돌려 라과르디아 공항에 착륙하는 대신 허드슨강 위에 불시착, 155명의 승객이 모두 생명을 건졌다.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불린 이 사건을 이스트우드는 영웅찬가 식으로 묘사했는데 영화는 우리가 잘 모르는 미운송안전위(NTSB)의 설리와 부기장 제프리 스카일즈(아론 에카르트)에 대한 청문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법정드라마 형식을 취한 재난 드라마요 스릴러로 그저 무난한 중간급 영화다.
영화는 호텔방의 설리가 자기가 모는 비행기가 맨해턴 도심에 추락하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악몽을 비롯해 실제 여객기의 사고와 불시착 장면 그리고 설리의 젊은 시절 회상 등이 플래시백으로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영화의 리듬과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또 말이 많은데 특히 설리와 그의 아내(로라 린니가 완전히 소모품이 됐다)와의 전화통화가 너무 잦다.
엔진이 고장 나면서 설리는 육지에 착륙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허드슨강 위의 불시착을 시도한다. 이 과정이 제법 스릴 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감은 없다. 
비행기가 무사히 강 위에 내려앉고 설리는 영웅이 된다. 차분한 성격의 설리는 자기는 할 일을 했다며 영웅이 아니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는 매스컴에 의해 일약 미국인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보통 사람이 비상상황에 빨려들어 영웅이 되는 영웅 찬가다. 
그러나 설리와 스카일즈는 곧 이어 NTSB의 조사를 받기 시작한다. 조사의 초점은 왜 라과르디아에 착륙하지 않고 허드슨강 위에 내렸는가 하는 점. 이를 위해 여러 차례 불시착 모의실험까지 해가면서 청문회가 계속되는데 청문회 과정이 쓸데없이 길다. 그리고 청문회 부분은 본격적인 법정드라마의 스릴이나 긴장감도 결여됐는데 이스트우드는 NTSB를 멍청한 기관으로 묘사하면서 조롱하고 있다. 
질서정연한 드라마라가 되지 못하고 초점을 잃은 중구난방식의 얘기가 되면서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긴 했지만 행스의 연기 하나는 정말 좋다. 도무지 티를 안 내고 침착하고 절제된 연기로 거의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원맨 쇼라고 해도 되겠다. 
PG-13.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