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은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과 그의 질녀에게 이렇게 독백한다. 작곡가인 그는 자신의 존재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두 사람에게 먼저 프랑스 문학을 찬양한 뒤 “그러나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라면서 바흐와 베토벤의 이름을 든다. 내가 지난달 바그너를 매우 좋아하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독일을 기차여행한것도 이 음악 때문이었다.
뮌헨서 버스를 타고 1시간반 정도 바바리아 지방을 달려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수줍음 타는 왕 루드빅 II의 노이슈반슈타인성에 닿았다. 산정에 세운 거대한 성내 벽화들은 ‘탄호이저’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준다.  
넥카 강변의 그림엽서 같은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굳이 음악과 연결시키자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마리오 란자가 열창한 영화 속 노래 ‘세레나데’와 ‘드링킹 송’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쾰른에 짐을 푼 뒤 베토벤의 얼굴처럼 엄격한 마음을 품고 본의 그의 생가를 찾았다. 초상화 속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의 얼굴이 곱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쇠로 만든 작은 나팔모양의 보청기. 귀 먹은 작곡가의 고뇌가 금속성을 낸다. 베토벤의 머리칼도 있다. 아기 베토벤이 태어난 방은 참 작다. 친구가 “이런 작은 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우주를 울리는 음악을 짓다니”라면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뤼벡을 거쳐 날씨가 브람스 음악처럼 스산한 함부르크에 왔다. 브람스가 세례를 받은 세인트 마이클 교회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가 거닐었던 산책로를 답습했다. 브람스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선원들의 색주가는 어디쯤 있을까.  
이어 동독의 잿빛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소도시 루터슈타트 비텐부르크에 들러 루터호텔에 짐을 풀었다. 도시 이름을 비롯해 손수레에서 파는 루터소시지에 이르기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도시다. 루터가 시민들의 영육의 양식을 다 책임지고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한 루터는 종교인이요 혁명가이자 음악인이다. 그가 바티칸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한 캐슬처치의 문 앞에 선다.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내년은 그의 반박문 발표 500주년이 되는 해다.
라이프직을 거쳐 바그너가 유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고 후에 궁정지휘자로 일했던 드레스덴으로 내려왔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바그너의 시골 여름휴양지 그라우파의 집을 찾아갔다. 신록과 새소리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인 여기서 그는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이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베버의 집에 도착했다. 바그너는 9세 때 베버가 지휘하는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는 이 오페라의 서곡을 좋아한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피닉스처럼 부활한 드레스덴의 로열 팰리스 마당에서 이스라엘 교향악단의 일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이스라엘과 아랍음악을 들었다. 독일과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화음이 분쟁의 세상에서 인류 평화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의 외벽들이 전화에 그을린 숯빛의 돌들과 복원할 때 새로 사용한 흰색 돌들과 오묘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라이프직으로 갔다. 이 도시는 멘델스존과 전 뉴욕필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바톤을 잡았던 유서 깊은 라이프직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나치에게 끌려간 유대인들의 명판이 집 앞 보도에 깔린 멘델스존기념관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산뜻하게 정돈됐다. 악보와 기둥 위에 놓인 형광등으로 연주 악기를 대신한 음악실에서 지휘봉을 들고 멘델스존의 경쾌한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지휘했다. 그 옆방에서 멘델스존은 두 번의 심장마비 끝에 요절했다.
슈만이 클라라와 신혼을 보낸 집을 둘러봤다. 슈만의 서정미가 물결치는 교향곡이 나는 좋다.  이어 바흐가 음악장을 지낸 세인트 토마스교회를 찾았다. 바흐의 무덤이 있는 이 곳에서 때마침 라이프지거 보컬앙상블이 합창을 한다. 성스럽다. 교회 앞의 바흐기념관을 찾아보았다. 라이프직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최초의 오페라 ‘요정들’(Die Feen)을 관람했다. 피곤에 깜빡깜빡 졸면서 들었는데 그의 깊고 진중한 여느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이 밝고 경쾌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가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윽고 바그너의 본고장이라 부를 만한 바이로이트에 왔다. 도착한 날 22일은 마침 바그너의 생일이어서 기념관 구경이 공짜. 그가 건축하고 해마다 ‘링’사이클이 공연되는 페스트슈필 하우스는 보수 중이다. 바그너가 작곡을 하고 생활하다가 숨진 기념관이 된 반프리트 저택 뒤에 바그너와 그의 아내 코지마가 함께 묻힌 무덤(사진)이 있다. 잿빛 대리석 무덤에 이름이 없다. 개인적으로 결함이 많았던 천재 바그너는 죽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르게 존재하겠다는 것 같았다. 반프리트 바로 옆에 바그너의 친구이자 장인인 리스트기념관이 있다. 짧은 일정에 분주한 방문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내 심장은 음악처럼 율동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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