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범죄자’의 케빈 코스너




“내 인생과 가족과 아이들, 모두가 큰 축복”


액션 스릴러‘범죄자’(Criminal)에서 죽은 CIA 요원의 기억을 이식 받은 흉악범 제리코로 나온 케빈 코스너(61)와의 인터뷰가 지난 1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안경을 끼고 간편한 차림에 늠름한 모습을 한 코스너는 굵은 음성으로 미소를 지어가면서 유머러스하게 인터뷰에 응했는데 나이가 먹어서인지 옛날의 다소 뻣뻣하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았는데 농담을 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는 잃지 않았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누구의 것을 택하겠는가.
“내 아내다. 그래서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또 내가 왜 늘 그 생각을 제대로 이해 할 수가 없는지를 알고 싶다. 역사적 인물로는 링컨이다. 위기의 때에 나라를 단결시키려고 노력한 그의 생각을 알고 싶다.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그의 두뇌가 절실히 필요할 때다.”

-이 영화는 솔직히 말해 내용이 비현실적인데 당신도 각본을 읽었을 때 그렇게 느꼈는가.
“맞다. 이 영화는 팝콘영화다. 사실 난 이 영화 출연을 두 번 거절했었다. 제작자와 감독이 어떻게 해서 내가 이런 폭력적인 인물 역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을 맡기로 한 뒤로 나는 완벽한 폭력적 악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관객들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 받는다는 영화의 주제를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억을 못하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노인들에겐 큰 문제인데.
“나도 그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난 나보다도 우선 내 부모가 날 잊지 말기를 바란다. 어서 과학이 발달돼 그 같은 질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를 바란다.”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지 못한 재능 중 당신 두뇌에 더하고 싶은 재능은 무엇인가.
“그림 그리는 것이다. 난 오렌지조차 그릴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그리는 것을 보면 쉬운 것 같은 데도 난 안 된다. 그밖에도 바라는 것이 많지만 난 지금 매우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기에 더 이상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다. 내 인생과 가족과 아이들이 다 큰 축복이다.”

-당신은 열렬한 환경보호자로 알고 있는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은 멋진 광고를 내는 석유회사들이다. 늘 사람을 이끌어온 돈이 문제다. 사람들은 돈을 위해 죽이고 파괴하고 또 그것으로 권력을 산다. 내 회사는 지금 석유회사들이 쓴 물을 정화시키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으로 농업용수를 만들기 위해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실험 중이다.”  
명 수사관의 기억을 이식 받은 범죄자역 의 케빈 코스너.

-바야흐로 선거철인데 정치적 의견이 개인적 편견으로 추락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남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기 음성만이 중요하다. 정치란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따라서 정치가란 우리나라의 이상을 앞서 나가게 할 수 있는 거대한 이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도로 성숙해야 한다. 요즘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오겠다는 사람들의 토론을 보면 토론이 아니라 고함지르는 것이다. 아이 같은 짓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난 솔로몬이 아니다. 모르겠다.”

-당신에게 있어 좋은 액션영화란 어떤 것인가.
“이야기가 액션에 상응해야 한다. 플롯에 구멍이 안 나야 훌륭한 액션영화다. 이 영화는 액션이 멋있지만 플롯에 다소 구멍이 난 것도 사실이다. 난 이 영화의 액션장면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긴다. 역을 위해 머리를 흉측하게 깎은 것을 보고 내 어린 딸이 ‘엄마 아빠가 사람들하고 싸워’라고 물었다. 요즘 영화는 이야기에서 멀어지는 대신 특수효과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아직도 신체 강건하고 또 젊음을 유지하는가.
“영화를 위해 불린 12파운드의 체중을 영화가 끝나면서 말끔히 제거했다. 내가 얼마나 젊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막내딸을 위해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강한 남자가 되려고 애쓴다. 그 아이가 자기 남자를 찾기 전까지는.”

-제리코는 감정이 없는 사람인데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자신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제거하고 싶은가.
“나는 공포가 사람들을 주춤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난 그것을 물리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다. 삶에 있어 높낮이가 있긴 했지만 뒤돌아보니 난 내가 살고자 하는 그대로 살아 왔다. 난 세트에 나갈 때면 나와 일할 사람들이 내게 대해 어떤 위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서로 협력해 일을 잘 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긴장했을 때보다 느슨할 때 더 연기를 잘 한다.”

-당신 부모는 어떤 사람들인가.
“난 캘리포니아의 캄튼에서 검소하게 자랐다. 나의 아버지는 경제공황 때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와 평생 한 직업에만 종사했다.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이 야구를 하면 놓치지 않고 보러 왔다. 우리에게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었다. 난 어렸을 때 우리 마당을 왕국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집에 풀이 있는 것을 보기 전까진. 가난했지만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부모가 당신에게 해 준 조언은.
“아버지는 내게 내가 하는 일에 바른 제목을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캔디가 먹고 싶은데 돈을 내고 사면 그것이 하는 일에 옳은 제목을 다는 것이고 배가 고프다고 그냥 집어가면 그것은 그른 제목을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는 일에 바른 제목을 달아야 그것이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고 했다. 우린 가난해서 아버지와 나는 식당엘 가도 추가로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 이런 일이 늘 마음에 걸렸는지 그 후 난 내 친구를 식당에 초대하면 사이드 오더 시키라고 권하곤 한다. 어머니는 사랑에 빠지기란 아주 쉬워 데이트 상대를 신중하게 고르라고 했다. 누구를 만나든지 최소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떻게 지금의 아내와 사랑하게 됐는가.
“내가 처음 아내(크리스틴 바움가르텐은 모델이다)를 만난 것은 영화 ‘워터월드’(1995)의 제작이 끝난 뒤 단 30분 동안이었다. 그 때 난 막 이혼했을 때로 난 늘 크리스틴의 미모에 끌렸었다. 크리스틴은 그 때 아마 20세가 아니면 21세였을 것이다. 그 뒤로 우린 6년을 못 만났다.  어느 날 내가 식당엘 갔는데 크리스틴이 내게 다가와 자기를 기억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얘기를 나눴는데 내가 그에게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언제’라고 하더라. 그래서 2주 후라고 그랬더니 크리스틴은 다소 당황한 기색이었다. 내가 2주라고 말한 것은 그 때 막 이혼을 해 치를 일들이 많았고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우린 헤어졌는데 난 다음 날로 크리스틴에게 전화를 걸어 그 때 찍고 있던 ‘13일’의 세트로 초대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일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세트에 있었고 촬영이 끝나자 난 그를 저녁에 초대, 그 뒤로 우린 7년을 데이트했다. 난 평생 단 두 여자와 데이트 했는데 그들과 다 결혼도 했다.”  

-행동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가 아니면 유전적 인자에 의해 형성되는가.
“유전적 인자라고 생각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당신 어머니가 당신에게 할리웃은 험악한 곳이라고 했다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7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70년을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이 어리고 젊었을 때는 매주 영화 가는 것이 습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리웃에 관한 가십을 잘 알았다. 가십 내용과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본능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래층 사람들(The Ones Below)


테레사(왼쪽부터 시계방향)와 존 부부 그리고 케이트와 저스틴 부부가 저녁을 들고 있다.

아래층에 이사온 부부… 악몽처럼 변해버린 삶


대낮 양지바른 곳에서도 기분이 나쁠 정도로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잘 짜인 심리 드라마로 시종일관 보는 사람을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불안감에 잡아가둔다. 이런 공포는 노골적이요 자극적이라기보다 소매치기의 솜씨처럼 민감하니 마음 안으로 파고들어 심적 부담감을 더 준다. 
영국 영화로 연출 솜씨가 빼어난데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엉겨드는 클로스업과 귀기 서린 자장가 같은 음악이 두려움을 바글바글 끓여댄다. 마치 살균된 무균실 같은 분위기 속에 얘기의 중요 부분이 아파트에서 일어나 협소감이 겹쳐 좌불안석하게 만든다.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와 히치콕의 ‘이창’을 연상케 하는 영화로 이웃집 사람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만든다. 
런던 북부 이슬링턴에서 안정된 직업과 넉넉한 살림 그리고 10년을 같이 살면서도 여전한 서로의 애정 또 곧 낳을 아기로 인해 남부러울 것이 없는 부르좌 부부 저스틴(스티븐 캠벨 모어)과 케이트(클레망스 포에지)의 쾌적한 삶은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존(데이빗 모리시)과 그의 북구 태생의 활기찬 육체파 아내 테레사(로라 번)로 인해 서서히 악몽처럼 변하게 된다. 그런데 테레사도 임신 중이다. 
재정 전문가인 존은 무례할 정도로 직선적이요 무뚝뚝한데 존과 테레사는 저스틴과 케이트와는 정반대형. 이를 나타내듯이 존의 실내장식은 야하고 아이들 방처럼 장식했고 저스틴의 실내장식은 이와 반대로 은근하다. 그런데 명랑한 테레사와 조용한 케이트가 가까워지면서 케이트가 존 부부를 저녁에 초대한다.
식탁에서 존이 저스틴에게 묻는 질문이 매우 공격적인데 여기서 뜻밖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모두 의심과 고통 그리고 심리적 공포에 휘말려들게 된다. 그리고 테레사는 케이트에게 “넌 네 안의 것을 가질 자격이 없어”라고 저주를 한다. 이어 존 부부는 다시 안 돌아 온다는 쪽지를 남기고 독일로 이사 간다.
케이트는 아들을 낳고 얼마 후 존 부부가 다시 돌아와 화해를 제의하면서 다정한 이웃 행세를 한다. 이 때부터 분위기가 스산해지기 시작한다. 아이는 밤 내내 계속해 울고 아파트 밖의 자동차 알람이 툭하면 울리면서 케이트 부부는 잠을 제대로 못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 이렇게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케이트를 보면서 우리는 그녀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나 아니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이 너무 작위적인 것이 흠이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포에지가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다. 데이빗 화 감독. 성인용.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X-멘: 아포칼립스(X-Men: Apocalypse)


세상 종말을 놓고 싸우는 좋은 수퍼히로들과 나쁜 수퍼히로들.

수퍼히로 총동원, 아수라장과 같은 혼란의 극치


현재 히트 중에 있는 마블만화의 주인공들로 구성된 수퍼히로들의 대난장판인 ‘어벤저스: 시빌 워’에서도 초능력을 지닌 수퍼히로들이 막 싸우더니 또 다른 마블만화가 원작인 이 영화에서도 역시 초능력을 지닌 수퍼히로들이 막 싸운다. 몇 주 사이를 간격으로 나온 두 영화를 보면서 하도 많은 수퍼히로들이 나와 소란을 떨면서 치고받는 바람에 도대체 누가 누구인 줄을 분간할 수가 없어 머리가 다 아프다. 제목처럼 세계 종말을 맞은 아수라장과도 같은 혼란의 극치다. 
물론 이 시리즈의 팬들은 즐기겠지만 그냥 수퍼히로들이 나와 닥치는 대로 싸우는데 서술이 뒤죽박죽인 데다가 가능한 한 많은 수퍼히로들을 집어넣자는 식으로 총동원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아이들 장난 같은 영화다. 이 시리즈를 만든 브라리언 싱어 감독이 다시 연출한 4번째 시리즈다. 
첫 장면은 기원 전 3,600년 이집트의 나일 계곡의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이 무너지면서(특수효과가 엉성하다) 그동안 5,600년간을 동면하시던 무지무지하게 강한 초능력을 지닌 사악한 신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작-베이가스의 ‘블루 맨’쇼의 주인공을 닮았다)가 깨어난다. 그가 깨어난 시간은 1983년.
두 말할 것 없이 이 신은 세계를 박살내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야망을 지니고 있기에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수퍼히로들이 각자의 초능력을 발휘하면서 아포칼립스가 고용한 다른 수퍼히로들과 싸우는 것이 얘기의 전부다. 
영화는 이집트에서 시작해 폴란드와 영국과 카이로 그리고 미국의 CIA 본부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데 아포칼립스는 우선 자기 졸개로 어려서 부모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은 폴 마그네토(마이클 화스벤더)를 고용한다. 아포칼립스는 마그네토에게 그의 처참한 과거를 보여주면서 그의 내면에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준다.
아포칼립스와 대적할 수퍼히로들은 X맨 교수 찰스 자비에르(제임스 매카보이)가 교장으로 있는 천부의 초능력을 지닌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의 제자들. 물론 이들은 다 돌연변이들이다. 
아포칼립스는 세계를 박살내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핵미사일을 발사시키게 만드는데 세상종말 이전에 인류를 구할 자들은 자비에르 교수의 제자들과 함께 미스티크(제니퍼 로렌스)와 비스트(니콜라스 훌트) 같은 수퍼히로들. 그리고 울프맨(휴 잭맨)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잠깐 나와 이들을 돕는다. 143분 동안 액션은 많으니 액션 팬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으나 심심하니 시끄러운 영화다. PG-13.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뮤지컬 ‘로마의 휴일’




사슴처럼 맑고 큰 눈을 한 오드리 헵번을 대뜸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로맨틱 코미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내년 5월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극장에서 초연되는데 이어 가을에 브로드웨이로 옮겨질 뮤지컬의 제목은 ‘로마의 휴일-코울 포터 뮤지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뮤지컬은 영화 내용에 코울 포터의 음악을 사용한다.
포터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작 뮤지컬을 작곡한 브로드웨이의 대명사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들로는 ‘트루 러브’ ‘나잇 앤 데이’ ‘비긴 더 베긴’ ‘아이브 갓 유 언더 마이 스킨’ ‘인 더 스틸 오브 더 나잇’ 및 ‘아이 러브 패리스’ 등이 있다.
명장 윌리엄 와일러(벤-허)가 감독한 ‘로마의 휴일’은 할리웃이 만든 로맨스 영화들 중에서도 으뜸 갈만치 아름답고 정결하고 청순하며 또 미풍과도 같은 감촉을 지닌 흑백명화다. 이 영화로 스튜디오 영화에 첫 주연한 헵번이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주연상(드라마)을 탔고 오스카 의상상과 함께 각본상도 탔다.
특히 여성 미용사에 길이 남을 것이 골체미를 지닌 헵번의 짧은 헤어스타일. 이 ‘헵번 헤어스타일’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유행되면서 한국의 많은 젊은 여성들도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었다. 당시 방년 24세의 헵번의 소녀처럼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아름다움 때문에 빛이 나는 작품으로 공연한 그레고리 펙도 말했듯이 “헵번은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되겠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도 끝에 가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데 사랑하는 공주 앤과 작별을 나누고 돌아서는 평민 조의 착잡하면서도 행복했노라 하는 듯한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유럽의 한 소국의 공주 앤이 로마 방문 중 형식과 절차에 시달리다 못해 밤에 혼자 몰래 숙소인 대사관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먹은 진정제로 인해 시내 벤치에서 잠에 빠진 앤을 발견한 사람이 조. 조는 앤의 정체를 발견한 뒤 세계적 특종을 할 욕심에 사진기자 친구 어빙(에디 앨버트)을 불러내 자기와 함께 로마관광에 나선 앤의 일거수일투족을 라이터 카메라로 찍게  한다. 그러나 조는 앤을 사랑하게 되면서 공주의 비밀을 곱게 지켜주기로 한다.
이 영화는 로마 관광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조와 앤은 시내 관광명소란 명소는 다 찾아다닌다.  먼저 ‘스페인 계단’. 이 계단을 아이스크림을 아이처럼 빨아 먹으면서 걸어 내려오는 헵번(사진)의 모습이 귀엽다. 여기서 만난 두 사람은 트레비 분수를 찾아간다. 영화 ‘애천’과 ‘달콤한 인생’에도 나온 이 분수를 등에 지고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로마에는 분수가 곳곳에서 물을 내뿜고 있는데 레스피기는 교향시 3부작에서 ‘로마의 소나무’와 ‘로마의 축제’와 함께 정오의 트레비 분수를 포함해 ‘로마의 분수’를 찬미한바 있다.
이어 조와 앤은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에 있는 커다란 석조얼굴상의 벌린 입 앞에 선다. 이 입은 ‘진실의 입’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입 안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고대 거짓말 탐지기인데 조가 입 안에 넣었던 손이 잘려나간 제스처를 쓰자 이를 보고 질겁한 앤이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재미있다. 물론 이것은 조의 속임수인데 이에 앤이 두 손으로 조의 넓은 가슴을 다듬이질 하듯 두드리면서 둘 사이에 사랑의 불길도 달아오른다. 이 장면은 펙의 아이디어이고 헵번의 놀란 반응도 즉흥적인 것이다.
나도 몇 년 전 로마에 갔을 때 이 영화를 따라 조와 앤이 들른 곳을 찾아갔었다. ‘스페인 계단’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앤을 뒤에서 훔쳐보던 조의 흉내도 냈고 트레비 분수에서는 유로동전도 던졌는데 아뿔싸 소원 비는 것을 까먹어 본전 생각이 간절했었다. 그리고 ‘진실의 입’ 안에 손을 넣었으나 손이 지금도 멀쩡한 것을 보면 나는 꽤 진실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는 멋쟁이 신사배우 펙에게 남다른 선물을 안겨준 작품이다. 그가 영화 촬영을 위해 로마로 가던 중 파리에 들렀을 때 파리 스와르지의 여기자 베로니크 파사니와 인터뷰를 하고 목적지로 갔다. 그 후 촬영이 끝나고 펙이 다시 파리에 왔을 때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베로니크에게 점심 데이트를 요청하자 장시간 침묵이 이어진 뒤 오케이를 받았다고 한다.        
펙이 베로니크와 점심을 먹으면서 “왜 그렇게 오래 대답이 없었느냐”고 묻자 베로니크가 “오늘 오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사르트르를 인터뷰하기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더라고 펙은 자신의 기록영화에서 회고했다. 베로니크는 펙의 두 번째 아내가 되어 펙이 지난 2003년 87세로 LA에서 타계할 때까지 남편의 곁에 있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매기의 계획(Maggie's Plan)


존이 집필 중인 소설에 대해 매기(왼쪽)와 얘기하고 있다.

진짜 사랑 찾아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유식하고 똑똑하고 지적이며 또 복잡한 성격을 지녔으나 어딘가 빈 곳과 결점이 있는 뉴요커들의 위트 있고 경쾌하며 빼딱한 로맨틱 코미디로 뉴욕이라는 배경과 말 많은 대사 그리고 진짜 사랑 찾아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우디 알렌의 영화를 많이 닮았다.  
아서 밀러의 딸 레베카 밀러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는데 주인공들인 세 남녀의 자연스럽고 빼어난 연기와 함께 사랑과 제 임자 찾기와 운명의 이야기가 분주하게 사이클을 이루면서 잽싸게 돌아가는데 때로 샛길로 빠지는 듯한 얘기가 터무니없이 우스워 마치 소극을 보는 것 같다. 우디 알렌 팬들이 좋아할 영화로 대중적이진 않다. 
뉴욕의 대학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진로 자문을 맡고 있는 매기(그레타 거윅)는 남자와 오랜 관계를 가지지 못해 늘 혼자인데 그를 위로하는 사람은 오랜 친구인 토니(빌 헤이더)와 토니의 부인 펠리시아(마야 루돌프). 
매기는 이들에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며 아기를 인공수정으로 낳겠다고 선언한다. 아빠 후보가 매기의 대학동창으로 수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오이지 공장 주인인 가이(트래비스 핌멜). 가이는 매기에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임신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는다. 그러나 인공수정은 여차여차해 불발된다.
매기가 같은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면서 소설을 쓰는 어른 아이 같은 존(이산 호크)과 알게 되면서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존은 유식하고 콧대 높은 덴마크 태생의 인류학자인 아내 조젯(줄리안 모어)과의 사이에 두 남매를 뒀으나 사랑이 식어 매기에게 청혼을 한다.
그로부터 3년 후 매기는 딸 릴리를 낳고 존과 행복하게 사는데 이기적인 존은 완전히 책 쓰는데 매달려 생계와 육아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임무를 매기가 충실히 수행하는데 종종 매기는 존의 두 아이까지 돌본다.
그러다 보니 매기의 존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는데 매기는 이를 되살리려고 오만 수단을 다 써보나 별무효과. 이런 과정에서 매기는 조젯을 알게 되는데 조젯은 알고 보니 존이 말한 것과는 달리 아주 인간적인 여자로 아직도 존을 사랑하고 있다. 
여기서 매기는 기찬 계획을 마련한다. 다시 존과 조젯을 결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기는 별 생각이 없는 존을 조젯이 참석한 퀘벡의 인류학자 모임에 등을 밀다시피 해 보낸다. 과연 매기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지.
삼빡하게 상쾌한 영화로 자주 내면의 공허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여자 노릇을 아주 잘 하는 소녀 모습과 순진성을 지닌 거윅이 덤벙대면서 잘 하고 자기 멋에 취한 철 덜든 존 역의 호크와 도도한 것 같지만 인간적인 조젯 역의 모어도 매우 잘 한다. 성인용. Sony Pictures Classic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웃 2: 여대생 동아리의 봉기(Neighbors 2: Sorority Rising)


여동생 동아리와 싸우는 테디(가운데서 오른쪽으로)와 맥과 켈리.

섹스와 대마초, 술과 파티의 난장판 영화


참으로 한심한 저질 코미디로 대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섹스와 대마초와 술과 파티의 난장판 영화로 2004년에 나온 ‘이웃’의 속편이다. 여대생을 비롯한 모든 여성에 대한 모욕적이요 치욕적인 쓰레기 같은 영화로 대학생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즐긴다면 미국의 장래가 암담할 뿐이다. 플리즈 그로 업!
처음부터 섹스와 구토로 시작되는 구역질나는 영화로 멍청하고 터무니없는 각본과 인물들의 행패나 다름없는 짓거리를 참고 보자니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대로 첫 편은 새롭고 우습고 재미가 있었지만 속편은 완전히 억지다. 
전편에서 이웃에 남자 대학생 동아리회원들이 이사와 파티로 날을 지새우다시피 해 혼이 난 부부 맥과 켈리(세스 로건과 로즈 번)가 이번에는 여대생 동아리회원들이 이사와 주야로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죽을 고생을 한다는 얘기다. 
대학 1년생인 쉘비(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가 맹하니 목석같은 연기를 한다)가 친구 베스와 노라와 함께 독자적으로 동아리를 조직하고 월세 5,000달러짜리 맥의 이웃으로 이사 온다. 문제는 월세를 조달하는 것. 
이를 돕는 사람이 전편에서 맥의 이웃에 살면서 맥 부부의 삶을 지옥과도 같이 만들었던 테디(잭 에프론이 웃통을 벗고 근육미를 자랑한다). 대학을 졸업한 실업자 테디는 함께 살던 친구로부터 쫓겨나면서 쉘비네 집에 얹혀살게 된다. 명분은 쉘비 3인조의 인생자문관 정도로 빈 방을 여대생들에게 세를 놓아 집세를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이제 맥과 켈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더구나 켈리는 두 번째 아기를 임신, 부부는 집을 팔고 교외로 이사 갈 예정인데 옆집에 공부는 언제 하는지 주야로 파티를 벌이는 여대생 동아리가 사니 집이 팔리겠는가. 이에 구원의 천사로 나타나는 것이 뜻밖에도 쉘비로부터 쫓겨난 테디. 여기서부터 양쪽 집 간에 백주 대마초 절도와 야밤 빈대 살포 등 온갖 소란스런 공격과 반격의 전투가 벌어진다. 난 한 번도 웃지를 않은 코미디다. 니콜라스 스톨러 감독. R. Universal.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5월 16일 월요일

‘덴마크 여자’의 알리시아 비칸더




“3년 만에 영화계 스타, 믿어지지 않아 날 꼬집기도”


영화‘덴마크 여자’(The Danish Girl)에서 의학사상 최초로 지난 1931년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덴마크의 화가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의 부인으로 역시 화가인 게르다 역을 섬세하게 표현해 올해 아카데미 여배우 조연상을 탄 스웨덴 태생의 알리시아 비칸더(27)와의 인터뷰가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 때 샹그릴라 호텔에서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긴 갈색머리 그리고 수수한 차림을 한 비칸더는 북구라파 사람답지 않게 자그마했지만 지적인 미모의 소유자다. 마치 소녀 같았는데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액센트가 있는 어조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똘똘이 스타일로 겸손해 친근감이 갔다. 연기파로 수퍼스타의 위치를 향해 급속히 수직상승하고 있는 비칸더는 오는 9월에 개봉될 드라마‘우리들 사이의 빛’(The Light Between Us)에서 공연한 연기파 마이클 화스벤더와 사랑이 싹이 터 현재 열애 중이다. 

-에디와 공연한 경험이 어땠는가.
“에디가 극중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아이나에서 릴리로 변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그저 놀라웠을 뿐이었다. 내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 위해 처음에는 잠깐 아이나로 분장한 에디와 함께 몇 장면을 찍었다. 이어 난 잠시 분장실에 들러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테스트장에 나가 에디를 찾았으나 그는 간 곳이 없었다. 조금 있어서야 난 에디가 릴리로 변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에디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최선을 다 하는 배우다. 그는 참으로 멋있고 민감하며 또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가 처음에 여자가 됐을 때 다소 불편해 하는 연기와 차차 여성적인 것에 익숙해지면서 보여주는 후반 연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출중한 연기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연기다.”

-영화는 정체성의 얘기인데 당신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여자라는 존재로서 내 정체성을 알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성의 정체성이란 어느 정도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전환자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는 나의 그것과 범주가 달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은 안다. 다행히 나는 내가 편하게 느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무엇이 분명한 남자이며 또 여자인가를 지적하라면 쉽게 되질 않는다.”

-요즘 여자들이 자신들의 여성적인 성향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어떤 성을 지녔던지 스스로가 순수하고 자기에게 진실하다면 그 때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가장 강할 수가 있다. 모두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또 그 것을 서슴없이 공개할 때 강해질 수 있다.”          

-패션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신의 패션은 어떤가.
“난 통상 패션을 그냥 편안하게 여기며 산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패션은 일종의 감정표현의 한 수단이다. 에디와 내가 서로 맡은 인물에 대해 연구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패션에 있어 매우 표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둘 다 예술가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패션에서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당신은 불과 3년 만에 스타가 됐는데 느낌이 어떤가.             
“정말로 많은 일이 그 사이에 일어났다. 정신없이 분주했는데 난 지금도 그런 일이 믿어지지가 않아 날 꼬집기도 한다. 스크린에서 보면서 만나서 내 사랑을 표시하고 싶었던 에디와 탐(후퍼-이 영화의 감독) 등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떤 감독을 좋아하는가. 
게르다(오른쪽)는 성전환한 남편 릴리를 적극 지원한다.
“라스 본 트리어다.”

-갑자기 찾아온 명성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겨울 정도다. 난 인생과 직업 모두에서 아직 어리지만 스스로를 지킬 줄 알며 또 정신적으로 그것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 이렇게 언론과 만나는 것도 새로운 일이어서 신경이 쓰이지만 머리 안에서는 준비가 다 돼 있다.”

-당신은 매우 옷을 수수하게 입는데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난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아름다운 의상도 여러 번 입어 봤다. 그러나 별로 그런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를 위해서 그런 의상들을 입고 유명 사진사들의 촬영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아직 그것에 익숙하지가 못하다.”

-일 안 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런던에 아파트를 샀기 때문에 지금 부엌을 새로 단장하고 있다. 그래서 공항에 갈 때마다 실내장식 잡지들을 사는데 지금 20여권이 있다. 부엌 디자인이 지금 내게 있어 하나의 집념처럼 되었다.”

-고국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는가.
“물론 있다. 고국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작품만 좋다면 할리웃 스튜디오 영화나 스웨덴 영화를 막론하고 찍을 용의가 있다.”

-당신은 영혼의 반려자라는 것을 믿는가. 그런 사람 만났는지.
“그것을 믿고 싶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각본을 읽었을 때 느꼈다. 만나는 즉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나와 그렇게 즉각적으로 연결이 될 사람은 서로가 동등해야만 한다.”

-오늘 입은 옷은 누가 디자인한 것인가.
“바지는 루이뷔통이고 상의는 클럽 모나코다. 그리고 구두는 니콜라스 커크우드다.”

-게르다는 매우 강한 여자인데 그런 역을 한 소감은.
“내가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의 역을 한 것이야말로 특혜다. 그가 받는 고통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살았던 때는 그런 문제를 남들과 얘기할 수도 없던 때여서 둘의 곤란과 역경은 매우 지독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게르다는 남편에게서 릴리를 발견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릴리의 변신이야말로 이기적이라고도 하겠는데 게르다는 그래도 남편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다.”

-에디가 영화에서 완전히 갈비씨가 됐는데 어떤 특수의상이라도 입었는지.
“처음에는 릴리의 몸의 느낌을 지녀보려고 했는지 코르셋을 입었으나 막상 영화를 찍을 땐 입지 않았다. 그가 너무 말라 난 더욱 그를 정성껏 돌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과 여행이다.”

-할리웃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가.
“고국에서 일할 때와 매우 다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스튜디오영화에 나왔을 때와 인디영화에 나왔을 때 언론이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다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둘이 다를 것이 없다.”

-할리웃에서 당신이 발견한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인가.
“유럽 영화에서보다 모든 면에서 인원과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외엔 영화 만드는 일은 다 비슷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


페니(왼쪽부터)와 마리앤과 해리와 폴은 여름 섬에서 섹스 4인극을 펼친다.

네 명의 사랑과 성적 유혹, 그로 인한 비극


너무 서서히 타들어가서 그렇지 성적 욕망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성적 긴장감과 충돌 그리고 그것을 미끼로 한 희롱이 마치 더미로 싸놓은 채 불을 지른 장작불처럼 불꽃을 피우며 활활 타오르다가 급기야 주위의 것들을 소진시키고 마는 섹스 4인극이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발가벗은 풍광이 수려한 섬과 육체를 마음껏 노출한 선남선녀들 그리고 음악과 대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유혹과 파괴의 작품으로 틸다 스윈튼이 주연하는데 그가 나온 또 다른 극단적인 감정의 문제를 다룬 ‘나는 사랑이다’(I Am Love)를 만든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했다. 
대사는 영어지만 다분히 유럽풍의 작품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풀이 마치 프랑솨 오종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 에로틱 스릴러 ‘스위밍 풀’을 생각나게 한다. 풀과 함께 영화에서 간신히 가릴 곳만 가리고 남의 연인을 유혹하는 위험한 작은 여정으로 나오는 다코타 잔슨이 ‘스위밍 풀’의 뤼디빈 사니에를 닮았다. 사니에가 훨씬 더 고혹적이요 치명적이지만. 
예술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것인 이 영화의 결점은 다소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작품의 정수인 강렬한 감정을 짓누르고 있으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느린 것. 이와 함께 결론이 거의 희화적으로 터무니가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거슬린다. 어떻게 그런 결말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작품의 전체적 톤과 너무 안 어울려 공허할 뿐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화산지대 섬 판텔레리아. 처음부터 대뜸 나체의 두 남녀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성기가 노출된 전면 나체 등 나체장면이 굉장히 많다). 인기 락스타 마리앤 레인(스윈튼)은 성대수술을 한 뒤 회복을 위해 연하의 애인 폴(마티아스 쇠네어츠)과 함께 이 곳에서 쉬고 있다. 마리앤은 말을 하면 안 돼 제스처가 아니면 간신히 들리는 쉰 목소리로 가끔 말을 한다. 그런 만큼 스윈튼의 연기가 조용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리앤의 전 애인이자 음반제작자인 생명력이 지나치게 넘쳐흐르는 수다쟁이 해리(레이프 화인즈가 과장에 가까운 연기를 맹렬하게 한다)가 22세난 매혹적인 딸 페니(잔슨)를 데리고 나타나면서 마리앤과 폴의 평화로운 일상에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해리는 과거 마리앤과의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이 여자를 폴에게 물려주다시피 했는데 문제는 해리와 마리앤이 아직도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점. 물론 마리앤은 폴을 깊이 사랑하고 있기는 하다. 공격적인 해리의 다변과 행동에 열세로 몰리는 폴은 어쩔 줄 몰라 하고 마리앤 역시 접근하는 해리를 물리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폴을 간신히 가릴 곳만 가린 페니가 빤히 바라다보면서 유혹을 하는데 페니는 해리와 아버지 이상의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폴에게 해리가 자기 친 아버지인지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페니는 22세인가. 페니는 21세기 판 롤리타이다. 
마리앤과 해리가 장을 보러 인근 마을로 가고 폴과 페니가 인근 바위가 많은 해변으로 나들이를 간 날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성적 욕망과 갈등과 긴장과 적대의식이 요동을 치면서 일이 난다. 영화 끝은 이탈리아로 건너오는 보트피플들을 부유하고 방종한 사람들의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애매하게 끝난다.        
배우들의 선정이 완벽한데 뛰어난 연기들이다. 가장 약한 것은 쇠네어트. 락과 클래시컬 뮤직을 잘 쓴 음악과 촬영도 훌륭하다. 특히 카메라가 벗은 인체의 엉덩이와 허리와 목과 발과 젖가슴 등을 핥다시피 하면서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성인용.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랑과 우정(Love & Friendship)


레이디 수전(왼쪽)이 자기를 사랑하는 연하의 레지널드와 대화하고 있다.

케이트 베킨세일 주연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시대극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의 초기 중편 ‘레이디 수전’이 원작으로 무지무지하게 말이 많은데 사뿐하니 경쾌하나 초경량급이다. 남녀 간의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감정적 열기가 부족하고 깊이는 없지만 올스타 캐스트의 좋은 연기와 수려한 풍경과 화사한 의상 등 보고 즐길 만은 하다.
그러나 영화라기보다 연극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작품으로 부모와 그들의 자녀 등 직계가족은 물론이요 이들의 친척과 사돈의 팔촌을 비롯해 친구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다. 참고 기다리면 알게 되긴 하지만.
18세기 영국의 상류층 사람들의 생활과 관습 그리고 이들의 허세 부리는 태도와 함께 위선과 시기와 질투 및 경쟁의식 등을 악의 없이 비판하고 희롱하는 오스틴의 성질이 그대로 나타난 작품으로 인간의 선의를 믿으면서 맺어질 사람들이 다 맺어지는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은 남편도 없고 돈도 없는 레이디 수전(케이트 베킨세일). 수전이 거처를 시댁으로 옮기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수전은 잘 생기고 순진한 연하의 레지널드(사비에르 새뮤얼의 역과 연기가 왕년의 휴 그랜트를 연상케 한다)의 마음을 사는데 둘은 자주 대저택의 뜰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이어 학교에서 쫓겨난 혼기가 된 수전의 딸 프레데리카(모피드 클라크)가 도착하고 이와 함께 프레데리카를 아내로 삼으려고 애쓰는 나이 먹고 돈 많고 경박하고 멍청한 제임스경(탐 베넷이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이 도착한다. 수전은 이 집에서 있는 것이 불편해지면 런던에 사는 미국인 친구 알리시아(클로이 세비니)를 찾아가 둘이 재잘댄다. 
길고 잡다한 소재의 얘기를 하는 주체는 수전인데 가십을 비롯해 자기 비하와 함께 자기 합리화를 두루뭉술 엮어 계속해 지껄여댄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시대를 앞서 간 것들이다. 수전은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유혹녀이자 간교한 음모자요 바람둥이이며 또 치밀한 생존투쟁의 승리자로 그의 궁극적 목적은 남자를 잘 골라 자기와 함께 딸이 유복하게 사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 얼기설기 섞여들면서 얘기도 배배 꼬이는데 마지막은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식으로 끝이 난다. 수전 때문에 한 젊은 유부녀가 울게 되긴 하지만. 베킨세일이 잠시도 쉬지 않고 종알대면서 열심히 연기를 잘 하고 나머지 배우들도 다 잘 한다. 아일랜드에서 찍었다. 인디 영화의 표본인 윗 스틸맨 감독. PG. Roadside Attraction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총과 성경




새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왼손을 놓는 것이 성경이다. ‘검을 쓰는 사람은 검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 성경에 대통령이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나라에서 툭하면 대형 총기 살상사건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미국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성경과 총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나라다. 초기 미 서부개척자들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면서 총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살육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했다. 총 다음으로는 위스키로 인디언들을 주정뱅이로 만들어놓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인디언 거주지역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가 돼서 미국인들의 총기소지는 헌법으로 보장돼 있고 미국인들의 총기숭배는 물신숭배나 다를 바 없어 집집마다 총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공직 선거에 나선 어느 후보가 총기규제를 거론했다가는 막강한 미총기협회(NRA)의 미움을 사 낙선하기가 십상이다.
총은 있으면 쓰게 마련으로 미국에서는 버지니아텍이나 샌디 훅사건 같은 대규모 총기 살상사건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 마련에 주저하는 의회를 보다 못해 총기규제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이것은 별 힘이 없는 조치다. 집집마다 수저 갖고 있듯이 총을 보유하고 있고 또 장난감 가게에서 딱총 사듯이 총을 살 수 있으니 총기에 의한 대형 참사가 빈발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최근 미시시피주에서는 주지사가 총기훈련을 받은 특정인들이 교회에 총을 소지하고 들어가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한 법안에 서명했다. 예배를 보는 성소에서 인명을 살상하는 총을 소지하도록 허락함으로써 마침내 미 건국의 초석인 총과 성경이 2위1일체가 된 것이다. 이야말로 가히 희극적이라고 하겠다.  또 텍사스주에서는 대학교에 총을 갖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 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예배 보다가 또 공부하다가 수틀리면 총을 쏘게 됐다.
미 서부개척에 일등공신 노릇을 한 것이 레버로 작동되는 연발 라이플 윈체스터다. 그래서 이 총은 ‘서부를 쟁취한 총’으로 불리며 미국을 상징하는 무기로 취급받고 있다. 윈체스터는 미 서부사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이 다 사용했다.          
전설적 열차강도 제시 제임스와 말년에 콤비를 이뤄 미국을 돌며 ‘와일드 웨스트쇼’를 공연한 서부개척자 버필로 빌 코디와 톰보이 애니 오클리 그리고 커스터 장군의 미 기병대를 몰살한 수족 인디언의 용감무쌍한 추장 시팅 불 등이 다 이 총을 썼다. 많은 웨스턴에 나온 존 웨인이 들고 다니던 라이플도 윈체스터다.
존 웨인과 딘 마틴이 나온 웨스턴 ‘리오 브라보’에서 속사의 명수 콜로라도로 나온 베이비 페이스의 가수 릭키 넬슨은 라이플을 이렇게 찬미하며 노래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소떼들은 냇가로 내려가네/개똥지빠귀가 둥지에 몸을 풀면 카우보이가 꿈을 꿀 때라네/진홍빛으로 물드는 계곡이 내가 있을 곳이라네/내 좋은 세 친구들인 내 라이플과 말과 그리고 나와 함께.’
윈체스터가 영화의 주제로 사용되면서 미국인들의 총에 대한 집착을 묘사한 명작이 앤소니 맨이 감독하고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사납고 진지한 심리 웨스턴 ‘윈체스터 ‘73’다. 스튜어트가 캔사스주 다지시티의 미 독립기념일 축제 사격시합에서 1등 상품으로 탄 윈체스터를 라이벌로부터 강탈당한 뒤 총을 찾기 위해 광적이다시피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면서 폭력적인 액션이 일어난다.
스튜어트의 손을 떠난 윈체스터는 위스키 행상과 젊은 시팅 불(록 허드슨이 인디언으로 나온다)을 비롯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가는데 총을 잠시 소유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라이플을 보물단지처럼 여기며 마치 미녀를 보듯 찬미하고 감탄한다.
총에 관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피스톨이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고 또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아서 펜이 감독한 미학적 폭력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미 경제공황  시대 연인 은행연쇄강도 바니 파커(페이 더나웨이)와 클라이드 배로(워렌 베이티)의 이야기로 이들이 쓰는 피스톨은 바니의 욕정의 대상인 클라이드의 성기를 상징한다. 둘은 이 무기에 대한 사랑에 자극을 받아 로맨스에도 열기가 달아오른다.
피스톨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면서 아울러 강한 애정과 집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범죄영화가 허무하고 폭력의 카니벌과도 같은 ‘건 크레이지’(사진)다. 젊은 부부강도 바트(존 달)와 애니(페기 커민스)의 강도질과 살인행각을 그린 흥미진진한 필름 느와르다. 애니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6연발 피스톨을 든 채 호스로 자동차 연료통에 개스를 넣는 장면은 남녀 간의 섹스를 묘사한 기름 냄새 나는 러브신이다.
집집마다 총이 있으니 성질나면 쓰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대형 총기살상에 대한 유감 표명이 마치 주례행사처럼 되었다고 자조했겠는가. 총 차고 예배 보는 미국은 확실히 건 크레이지의 나라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5월 10일 화요일

캡튼 아메리카: 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


친구인 캡튼 아메리카(왼쪽)와 아이언 맨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아이언맨과 캡튼의 한판“싸움은 시작되었다”


마블만화의 주인공들이 총동원돼 도주하고 추격하면서 닥치는 대로 치고 박고 때려 부수고 설전을 나누느라 야단법석을 떨어 엄청나게 시끄러운 올스타 캐스트의 특수효과가 판을 치는 오락물 액션영화다. 이 번이 시리즈 세 번째로 시리즈 팬들이 무척 좋아하게 생겼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치곤 말끔하니 잘 만든 수준급 영화로 콩 튀듯 하는 박력 있는 액션 장면과 복잡할 정도로 얼기설기 엮은 내용 그리고 잘 개발된 인물들과 연기 등이 다 좋다. 
정의를 지키는 수퍼히로들과 세계를 말아 먹으려는 악인과의 결사투쟁이 이런 영화의 보통 주제인데 이번에는 선과 악의 대결에 한 수 더 떠 마치 현재 상영 중인 흉물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처럼 두 주인공 수퍼히로가 의견대립을 보이면서 주먹질을 하느라 영화의 소음이 곱으로 늘어난다.
먼저 세뇌를 당한 벅키(세바스티안 스탠)가 막강한 암살자 윈터 솔저로 변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비엔나에서 엄청난 테러가 발생하면서 윈터 솔저가 그 누명을 뒤집어쓴다. 
그런데 벅키는 캡튼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의 어렸을 때부터의 절친한 친구. 이로 인해 후에 윈터 솔저를 처치하려는 아이언 맨과 캡튼 아메리카 사이에 갈등이 인다.
그런데 캡튼 아메리카와 그의 수퍼히로 동지들인 어벤저스들이 세계 곳곳에서 악인들과 다투다가 본의 아니게 무고한 주위사람들과 재산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불만에 찬 여론이 뒤끓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유엔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캡튼 아메리카는 이에 반대하는 반면 아이언 맨은 찬성하면서 과거의 친구가 적대적인 관계로 변한다. 그래서 양측 간에 세상이 떠나갈 듯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볼만한 것은 독일 공항에서의 대결전.
나오는 수퍼히로들은 캡튼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 외에도 팰컨(앤서니 매키), 비전(폴 베타니),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 워 머신(단 치들),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및 앤트-맨(폴 러드) 등.
여기에 새로 등장하는 수퍼히로가 아프리카 왕국의 왕자로 부친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팬서(채드윅 보스만)와 스파이더 맨(탐 홀랜드-기차게 연기를 잘 한다. 대성하겠다.) 이들이 서로 패를 나눠 싸우는데 장관이다.
영화의 진짜 악인은 깊은 개인적 원한을 품은 헬무트 지모(대니얼 브륄). 서로 적처럼 싸우던 수퍼히로들은 나중에 힘을 합쳐 헬무트의 무섭고 막강한 무리들과 결전을 벌인다. 
정치적 의미와 함께 우정과 희생의 문제를 커다란 규모의 액션영화 속에 다룬 영화로 중심 플롯은 캡튼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의 갈등이다. 
앤소니와 조 루소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펠레: 전설의 탄생(Pele: Birth of a Legend)


17세의 펠레는 브라질 월드컵 승리의 주역이 된다.

브라질 전설 축구황제 펠레의 전기영화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황제 펠레의 전기영화인데 펠레 개인과 축구경기의 열정과 흥분과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하고 진부한 영화다. 전기영화의 상투적인 것은 모두 다 사용한 바람 빠진 축구공 같은 영화다.
얼마 안 있어 브라질에서 열릴 월드컵 경기를 겨냥하고 나온 것 같은데 영화의 첫 부분 절반을 어린 펠레의 가난한 생활과 공차기 재주 등으로 감상적으로 메워 지루하기 짝이 없다. 펠레가 입단한 브라질 대표팀의 코치로 미국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나와 서툰 액센트를 섞은 영어를 하고 1958년 스웨덴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맞붙은 스웨덴 코치로는 영국 배우 콤 미니가 나온다.
영화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월드컵으로 끝이 나는데 여기서 17세의 펠레가 맹활약, 우승을 하면서 국민영웅이 된다. 
어린 펠레는 한 때 축구선수였던 청소부 아버지와 하녀인 어머니 밑에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가난하게 자란다. 펠레의 유일한 낙은 동네 꼬마들과 함께 맨발로 천으로 만든 축구공을 차면서 노는 것. 이 때부터 펠레는 공차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이런 펠레에게 축구의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아버지(세우 호르헤). 그는 브라질 무술에서 개발한 ‘진가’라는 특이한 스타일의 공차기를 아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동네 경기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인 펠레를 눈여겨 본 스카웃의 종용으로 틴에이저가 된 펠레(케빈 데 파울라)는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들어간다.
여기서 펠레는 인종 및 계급차별을 받으면서도 축구에 매달리지만 코치는 펠레의 야만적인 ‘진가’ 스타일을 버리라고 지시한다. 물론 펠레의 이 독특한 공차기는 팀이 경기에서 열세를 보일 때 사용되면서 코치도 적극적으로 이를 후원한다.
그리고 펠레는 불과 17세의 어린 나이로 스톡홀름에서 열린 1958년 월드컵 경기에 출전한다. 국가대표팀 코치도 처음에는 펠레의 특이한 스타일을 나무라나 결국 펠레의 무술과 발레를 추는 것과도 같은 이 스타일 때문에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꺽고 우승한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함께 펠레가 직접 나와 공을 찬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포로 축구영화 ‘빅토리’가 생각는데 올스타 캐스트의 이 영화도 실은 맹물 같은 영화였다. 그러나 ‘빅토리’는 이 영화에 비하면 걸작이다. 축구영화가 살아 움직이질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듯이 비실비실해 보는 사람도 맥이 빠진다. 펠레가 잠깐 얼굴을 비친다. 감독은 제프와 마이클 짐발리스트 형제. PG. IFC.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몬고메리(몬티) 클리프트(1920~1966)의 영화


우수어린 눈빛과 섬세한 내면의 연기 영원히....


세상의 고독을 몽땅 혼자 등에 지고 다니는 분위기를 지녔던 아름다운 얼굴과 섬세하고 민감한 내면의 소유자로 절제되고 심오한 연기를 보여 주었던 몬고메리(몬티) 클리프트(1920~1966)의 영화 4편이 5월 매주 화요일 하오 1시에 LA카운티 뮤지엄(윌셔와 페어팩스) 내 빙극장에서 상영된다.     

■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1949)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의 ‘워싱턴 스퀘어’를 원작으로 만든 빈틈없이 잘 짜여지고 절제된 흑백명화다. 거장 윌리엄 와일러의 엄격한 연출솜씨가 뛰어난 부녀 간의 갈등과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로 내용과 연기, 음악(아론 코플랜드가 오스카상을 탔다)과 세트와 의상 등이 모두 훌륭한 영화로 계속해 봐도 매번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되는 걸작이다.
19세기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에 사는 유복하나 냉혹한 의사 슬로퍼(랄프 리처드슨)는 잔인할 정도로 엄격하게 외동딸 캐서린(올리비아 디 해빌랜드)을 통제한다. 그래서 소심한 캐서린은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안에서 수나 놓으며 사는 노처녀가 된다. 
이런 캐서린에게 그의 숙모가 미남 백수 모리스(몬티)를 소개하면서 사랑에 굶주린 캐서린은 이 말 수단 좋고 잘 생긴 건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모리스가 노리는 것은 캐서린의 재산. 건달의 심중을 파악한 슬로퍼는 딸에게 “네가 만약 상속녀가 아니더라도 그가 널 좋아할 것 같으냐”고 힐문하다. 그리고 캐서린은 유산상속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안 모리스가 둘이 함께 야반도주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나타나지 않는다. 디 해빌랜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탔고 그밖에도 의상과 미술상을 받았다. 


■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1951)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상미가 만개한 이 영화는 강렬한 사랑의 얘기이자 인간영혼에 관한 힘찬 분석으로 디오더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의 비극’이 원작. 유난히 클로스업과 오버랩이 많은 영화다.
가난한 시골청년 조지(몬티)가 공장을 소유한 부유한 도시의 먼 친척집을 찾아와 공장에 취직한다. 
그는 여기서 역시 외로운 여공 앨리스(셸리 윈터스)와 사귀면서 앨리스가 임신을 하는데 조지가 회사사장의 아름다운 딸 앤젤라(17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그는 두 여자 사이에서 깊이 고뇌한다. 
그리고 조지는 함께 보트놀이를 갔다가 익사한 앨리스의 죽음을 방관,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두 아름다운 배우 몬티와 리즈의 콤비가 절묘한 화합을 이룬 작품으로 화면에 가득히 클로스업되는 둘의 얼굴이 지극히 아름답다. 
몬티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연기와 함께 첫 성숙한 여인의 역을 부드럽고 순수하고 또 강렬히 표현한 리즈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오스카 감독, 각색, 촬영(흑백), 편집, 의상 및 음악상을 탔다. 


■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1953)



일본의 진주만 습격 직전과 직후 하와이의 군 병영 내의 군인들의 우정과 의리 그리고 이들의 연인들을 함께 휩쓸고 간 모진 운명의 드라마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연출력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흑백영화다. 원작은 제임스 존스의 동명소설.
군대를 집으로 삼는 직업군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고독의 영화이자 압제에 저항하는 투쟁의 영화이기도 하다. 
세 남자 즉 말뚝상사인 워든(버트 랜카스터)과 권투선수인 고집불통의 졸병 프루(몬티) 그리고 ‘케세라 세라’ 스타일의 졸병 마지오(프랭크 시내트라)의 신념과 명예를 지키려는 고집과 범할 수 없는 인간정신의 드라마가 이들의 여인(데보라 카와 다나 리드)들과의 로맨스와 함께 소용돌이를 치면서 강력하고도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전개되는 걸작이다. 특히 유명한 장면은 밤의 와이키키 해변에서의 워든과 그의 애인으로 자기 상관의 아내인 캐런(데보라 카)과의 뜨거운 키스신.   
몬티와 랜카스터의 불타는 연기가 감동적인데 둘은 다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제17 포로수용소’의 윌리엄 홀든이 가져갔다. 
이 영화로 가수와 배우로서의 삶이 하락일로에 있던 시내트라가 오스카 조연상을 타면서 재생하게 되고 프루의 애인으로 클럽의 호스테스 알마 역을 한 다나 리드가 역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어려서 본 이 영화 때문에 필자가 영화광이 되고 말았다. 


■  ‘애정이 꽃 피는 나무’(Raintree County·1957)



에드워드 드미트릭이 감독한 총천연색 182분짜리 멜로드라마로 원작은 로스 라크리지 주니어의 소설. 몬티와 리즈 테일러 그리고 에바 마리 세인트 및 리 마빈 등이 나온다. 
1859년. 인디애나주 레인트리 카운티가 무대. 이상주의자로 노예제 폐지론자인 잔(몬티)은 뉴올리언스에서 이 곳으로 방문 온 아름다운 부잣집 딸 수잰나(테일러)와 사랑에 빠져 고교시절 애인 넬(마리 세인트)을 버린다. 남으로 내려갔던 수잰나가 다시 잔을 찾아와 자기가 잔의 아기를 가졌다고 고백, 둘은 결혼해 뉴올리언스로 간다.
그리고 잔은 수잰나의 어머니가 광인의 돼 남편과 남편의 흑인노예 정부와 함께 불타는 집에서 소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 수잰나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둘은 다시 레인트리로 이주하고 아들 지미를 낳는데 수잰나가 점점 더 심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이윽고 수잰나는 지미를 데리고 자기 가족이 있는 조지아로 도주한다. 
남북전쟁이 나자 잔은 아내와 아들을 찾기 위해 북군에 입대한다. 잔은 수잰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아내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데려가나 아직도 남편이 넬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 수잰나는 늪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한다. 
이 영화를 찍던 중 몬티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는데 그래서 영화를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의 그의 얼굴 특히 코 모양이 다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돌아온 ‘황야의 7인’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한 이병헌(사진 오른쪽)이 황야의 총잡이요 칼잡이 빌리 락스로 나오는 웨스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의 예고편이 최근 공개됐다. 얼핏 지나가는 이병헌을 보니 주먹질이 세고 날렵하다. 한국인 건맨이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한 이 영화는 율 브린너가 주연한 동명영화(1960)의 리메이크로 원전은 쿠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다.
웨스턴 원작의 내용은 미국에 접경한 멕시코 깡촌을 정기적으로 약탈하는 산적들에게 시달리다 못한 농부들이 미국으로 와서 고용한 건맨들과 산적들과의 치열한 대결. 리메이크의 무대는 미 서부의 한 작은 마을 로즈 크릭(뉴올리언스에서 찍었다). 이 마을을 말아먹으려는 탐욕적이요 무자비한 실업가 보그(피터 사스가드)와 그의 졸개들의 시달림을 받는 주민들을 위해 마을에 7인의 건맨이 도착하면서 유혈 총격전이 벌어진다.  
흑인 감독 안트완 후콰가 연출한 리메이크에서 7인의 리더인 샘 치솜 역은 덴젤 워싱턴이 맡았는데 워싱턴의 첫 웨스턴이다. 구레나룻에 콧수염을 하고 검은 모자에 검은 말을 탄 워싱턴이 45구경 콜트권총을 쏜살같이 뽑아 적을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멋있다. 그런데 후콰와 워싱턴은 워싱턴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트레이닝 데이’와 ‘이퀄라이저’에서도 함께 일했다.
나는 원작을 서울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딜리 극장에서 봤는데 사나이들 중의 사나이들인 멋진  건맨들의 늠름한 자태와 총 쏘고 칼 던지면서 벌어지는 박진한 액션에 완전히 넋을 잃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타고 7인의 건맨들이 말을 타고 저 멀리서 내 앞으로 달려오는 첫 장면이 나올 때 출렁이듯 흘러나오는 교향곡적 음악이 경쾌하기 짝이 없어 엉덩이가 절로 흔들어졌었다. 엘머 번스틴이 작곡한 음악은 영화의 주인공들 못지않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리메이크의 음악은 최근에 작고한 오스카상 수상자인 제임스 호너가 작곡했다.
후콰 감독은 워싱턴과 이병헌 외에도 활을 잘 쏘는 코맨치 인디언 레드 하베스트 역에는 아메리칸 인디언 마틴 세스마이어를 그리고 멕시칸 배우 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등 다양한 인종을 기용했다. 하베스트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고 가르시아-룰포는 원작에서 로버트 번이 맡았던 리 역에 상응하는 노릇을 한다.
이들 외에 크리스 프랫이 시건방지나 매력적인 도박사 건맨 조시 패라디로 이산 호크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저격수 굿나잇 로비쇼로 그리고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도끼를 잘 쓰는 술꾼 잭 혼으로 각기 나온다. 이병헌의 빌리 역은 원작에서 과묵하고 칼 잘 쓰던 제임스 코번의 역에 상응하는 것인데 원작에서 독일 배우 호르스트 북홀츠가 7인의 한 사람인 멕시칸 건맨 치코로 나온 바 있다. 이병헌의 캐스팅만큼이나 희한한 것이다.
후콰는 다인종 캐스팅에 대해 “현대 관객들에게 원작과 거리를 둔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7인들은 쿠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의 본질을 지녔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이어 “배우들의 콤비가 기차게 좋다”면서 “이 영화는 결코 원작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원작 ‘황야의 7인’은 개봉됐을 때 흥행서 실패했고 비평가들도 찬반의견을 보였었다. 아직도 이 영화는 존 포드의 ‘수색자’나 게리 쿠퍼가 나온 ‘하이 눈’보다 한 등급 아래의 것으로 취급받고 있는데 이와 상관없이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명작 웨스턴이다. 영화는 율 브린너가 친구인 앤소니 퀸으로부터 ‘7인의 사무라이’를 소개 받고 리메이크권을 사 만들게 됐다.
브린너는 당초 출연이 아닌 감독을 맡으려고 했다가 ‘O.K. 목장의 결투’를 만든 존 스터지스에게 연출을 맡기고 자기는 건맨으로 나왔다. 브린너와 공연한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및 로버트 번 등은 당시만 해도 TV 배우로 더 잘 알려졌었는데 이 영화로 스크린 스타로 변신하게 되었다.        
원작 ‘황야의 7인’의 장점은 신나는 액션 외에도 주·조연을 비롯해 단역까지도 다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특히 볼만한 것은 금이빨을 한 산적두목 칼베라 역의 일라이 왈랙. 그는 가난한 농부들을 터는 비열한 도적인데도 어딘가 품위가 있어 브린너의 총에 맞아 죽을 때 동정마저 간다.
또 다른 매력은 건맨들이 풍기는 낙조와도 같은 분위기. 시대가 문명이 서서히 서부를 잠식하고 들어오던 때여서 과거의 영웅적 역할이 더 이상 요구되지도 않고 또 존재의 의미도 상실케 된 건맨들은 마치 주인 없는 사무라이들인 낭인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브린너의 말대로 “건맨이 총보다 더 싼” 때로 영화에서 7명 중 달랑 3명만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그런 분위기에 걸맞는다. 리메이크 ‘황야의 7인’은 오는 9월23일에 개봉되며 등급은 아이들도 볼 수 있는 PG-13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5월 2일 월요일

엘비스와 닉슨(Elvis & Nixon)


엘비스와 닉슨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1970년 백악관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



배꼽 빠지게 우습고 재미있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1970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닉슨 대통령을 만난 사실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일종의 풍자해학 영화로 당시 두 사람이 악수를 하면서 찍은 사진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큰 인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두 사람이 참관자 없이 단 둘이 만났을 때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본가들과 감독의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서로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둘이 만나 행동하고 나누는 대사가 기차게 재치 있고 요절복통하게 우스운데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짧은 영화(1시간반이 채 못 된다)에서 진짜로 볼만한 것은 엘비스 역의 마이클 섀넌과 닉슨 역의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 엘비스와 닉슨이 울다 갈 연기로 섀넌의 연기가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둘이 다 상감이다.
당시 미 젊은 층의 반문화 성향에 적대감을 표하면서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믿는 엘비스는 기찬 아이디어를 하나 낸다. 역시 젊은이들의 반문화적 성향을 증오하던 닉슨에게 자기를 연방 법집행자로 임명해 주면 자기가 젊은이들의 반문화 조직 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운동을 뒤집어놓겠다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그리고 엘비스는 친구 제리 쉴링(알렉스 페티퍼)과 함께 DC로 날아가 백악관 경비원에게 편지를 직접 전달한다. 이를 전달 받은 사람이 닉슨의 참모인 버드 크로우(탐 행스의 아들 칼린 행스). 버드는 편지를 비서실장인 H.R. 할데만(테이트 도노반)에게 가져가나 할데만으로부터 ‘웃기고 있네’라는 대답을 받는다.
그러나 버드는 닉슨과 엘비스의 만남이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멀고 또 젊은 유권자들의 인기를 잃은 닉슨의 표 획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 마침내 처음에 “엘비스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웃던 닉슨이 엘비스를 만나기로 한다. 특히 엘비스 팬인 자기 딸 줄리를 위해 엘비스의 사인을 받겠다는 지극한 부정도 이런 결정에 한 몫 한다.
여기서부터 권총을 소지하고 백악관엘 들어오려는 엘비스에 대한 사전 검문과 함께 그가 닉슨을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코믹하게 묘사되고 이윽고 엘비스와 닉슨이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다.
둘의 만남은 완전히 엘비스의 주도로 진행되는데 엘비스를 만나기 전에 참모에게 핑계를 대서 만남을 속히 중단시키라고 지시했던 닉슨이 엘비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휘말려들면서 면담시간이 자꾸 길어진다. 태권도와 가라테를 배운 엘비스가 닉슨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것을 비롯해 요절복통할 장면들이 많다.
이밖에도 재치와 재미를 겸한 에피소드들이 여럿 있다. 섀넌보다 연기를 훨씬 더 잘하는 것은 스페이시. 닉슨의 목소리와 태도와 동작과 제스처를 보면 죽은 닉슨이 되살아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상소리 잘하던 닉슨의 욕지거리 때문에 등급 R. 라이자 잔슨 감독.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국외자들의 무리(Band of Outsiders)


카페에서 ‘매디슨 댄스’를 추는 아르튀르(왼쪽부터), 오딜, 프란츠.

진지하지 않은 범죄 귀여운 로맨스를 다룬 영화



프랑스 누벨 바그의 장인 장-뤽 고다르의 1964년작 갱스터 로맨스 영화로 미풍처럼 상쾌하고 신선하다. 짤막한 대사와 겨울 파리를 찍은 그림 같이 아름다운 촬영(라울 쿠타르) 그리고 경쾌한 음악(미셸 르그랑)이 있는 로맨틱하고 서정적이며 또 비극적 코미디로 정말 매력적이다.  프랑스 영화인들이 즐겨 다루는 ‘메나지 아 트롸’(남녀 삼각관계) 영화이자 미국의 싸구려 펄프소설과 갱영화에 대한 시적 헌사이기도 한데 영화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프란츠 카프카의 만남’이라고 말한 고다르가 해설한다. 
친구인 아르튀르(클로드 브롸세르)와 프란츠(사미 프라이)는 돈도 직업도 장래도 없는 백수건달들. 가진 것이라곤 아르튀르의 작은 컨버터블 하나로 둘은 서부영화 흉내를 내면서 장난을 치는 어른 아이들이다.
어느 날 프란츠는 영어학원에서 꿈꾸는 듯한 눈이 커다란 오딜(안나 카리나-한 때 고다르의 부인이었다)을 만나 친해지면서 오딜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프란츠는 오딜을 아르튀르에게 소개, 두 남자가 다 오딜을 좋아하나 오딜은 아르튀르에게 간다.
그리고 오딜은 둘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파리 교외 이모집에 정체가 수상한 대량의 현찰이 있는 것을 안다며 셋이 이를 털자고 제의한다. 여기에 아르튀르의 삼촌이 개입하면서 배신과 죽음이 잇따른다.
영화에서 멋진 장면은 셋이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추는 ‘매디슨 댄스’. 이 아름다운 춤 장면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펄프 픽션’에서 잔 트라볼타와 우마 서만으로 하여금 재연케 했다. 그리고 타란티노의 제박사 이름도 이 영화의 프랑스 이름인 ‘Bande a Part’의 영어명 ‘A Band Apart’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장면은 오딜 일행이 루브르 관람 세계기록을 올리겠다며 함께 미술관의 전시실을 관통해 질주하는 것. 해설이 9분43초라고 알려 준다. 그리고 해설자는 마지막에 오딜과 프란츠의 열대지방에서의 모험을 테크니칼러 속편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이 약속은 공약이 되고 말았다. 갈수록 난해의 극치를 달하는 영화를 만드는 고다르의 청순하고 순진했던 시절의 고운 영화다. 꼭 보시도록.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바의 귀환




청아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을 지닌 프리 마돈나 캐슬린 배틀(67·사진)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쫓겨난 지 무려 20여년만에 무대로 귀환한다. 그래미 수상자로 메트의 단골이었던 배틀은 지난 1994년 당시 메트의 총감독인 조셉 볼피에 의해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공연 불과 1주 전 해고를 당했었다. 이유는 배틀의 지나친 디바 같은 오만불손한 태도.          
리허설에 늦거나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리허설에서 다른 가수들을 내쫓는가 하면 리허설에서 듀엣을 부를 때는 상대에게 아예 자기 입을 보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지휘자와의 갈등으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출연을 거부했고 시즌 개막연주를 맡은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에게 입장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 뒤로 배틀은 오페라 무대를 떠나 리사이틀에 전념했는데 오는 11월13일의 메트 복귀도 ‘캐슬린 배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영적 여정’이라는 제목의 흑인영가 리사이틀로 꾸며진다. 배틀의 메트 복귀를 성사시킨 것은 오랫동안 이를 시도해온 피터 겔브 현 메트 총감독.
흑인인 배틀은 메트 복귀에 대해 “흑인영가는 영혼을 고양시키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는 지금 이것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서 “이것은 메트의 찬란한 음향 속에 내 음악적 배경과 문화적 유산을 결합시킬 프로그램”이라며 들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그런데 메트에서 배틀 이전에 먼저 쫓겨난 또 다른 프리 마돈나가 마리아 칼라스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칼라스도 지난 1958년 총감독과의 갈등으로 해고됐다가 1965년에 복귀, 자신의 메트 마지막 공연으로 ‘토스카’를 불렀다. 그런데 볼피는 배틀을 해고할 때 “캐시 배틀은 칼라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볼피는 배틀의 메트 귀환에 대해 “메트에서의 그의 리사이틀을 볼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배틀은 1948년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에서 철강노동자인 아버지와 아프리칸 감리교회 자원봉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창가수가 되기 전 신시내티 초등학교의 음악선생이었던 배틀의 열렬한 후원자는 이번 시즌으로 메트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직을 물러날 제임스 르바인. 르바인은 1977년 배틀이 양치기로 노래 부르며 메트에 데뷔한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비롯해 배틀의 많은 공연을 지휘했다.
신선하고 정결한 음성으로 자유롭게 음색을 바꿔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배틀은 특히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에 능통해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이들 노래를 취입한 도이체 그라마폰의 빅 스타가 됐지만 무대 뒤의 갈등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배틀과 함께 무대에 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단원들은 ‘나는 배틀(전투)에서 살아남았다’고 적힌 T셔츠를 입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1월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배틀의 리사이틀을 참관한 바 있다. 아름답고 맑고 달콤한 음성으로 기교가 화려한 창법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적어둔 기록을 보니 이렇게 써있다.
‘어깨가 활짝 드러난 길고 푸른 드레스를 입고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만한 여왕 같았다. 배틀은 이날 헨델, 볼프, 리스트, 슈트라우스 및 벨리니의 아리아와 가곡들과 함께 흑인영가를 불렀는데 음성처럼 노래하는 얼굴 모습과 제스처도 자극적이리만치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울며 조르는 듯 간절하다가 두 눈을 감고 으스대 듯 얼굴과 상반신을 앞으로 쑥 밀어내며 노래하는 그의 음성과 자태가 이 세상 것 같지가 않았다. 가는 하복부에서 한 없이 멜로디를 끌어내며 온 몸과 영혼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때론 한 곡만 부르고 무대에서 퇴장을 했다. 배틀의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가도 유혹녀의 그것처럼 고혹적이기도 했다. 두 팔을 높이 들어 춤을 추는 듯 우아하고 표현력 풍부하게 제스처를 써가며 부르는 노래들은 서정미를 지녔을 뿐 아니라 거룩하기까지 했다.
턱을 앞으로 삐죽이 내밀고 마치 물고기와 새처럼 입을 앞으로 동그랗게 오므렸다가 다시 찡그리듯 동그라미를 풀어내면서 부르는 노래들은 한곡 한곡이 피와 땀의 결정들이었다. 배틀은 한곡을 부른 뒤에 청중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다음 노래의 분위기를 몸 안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일부 청중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자 배틀은 그 쪽을 향해 쏘아보듯이 인상을 쓴 뒤 잠시 있다가 노래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표정에 섬뜩했었다. 디바다운 기질이다. 그러나 배틀은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앙코르를 두 곡이나 불렀는데 마지막 노래는 평소 자기가 좋아한다는 흑인영가 ‘귀하신 주님’.                
귀한 경험이었는데 그 후 나는 배틀의 앨범으로 벨리니의 ‘몽유병자’와 도니제티의 ‘돈 파스쿠알레’ 그리고 로시니의 ‘탄크레디’의 아리아들이 담긴 도이체 그라마폰의 ‘벨 칸토’를 사 한동안 애청했었다. ‘웰컴 백 캐슬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