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한 이병헌(사진 오른쪽)이 황야의 총잡이요 칼잡이 빌리 락스로 나오는 웨스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의 예고편이 최근 공개됐다. 얼핏 지나가는 이병헌을 보니 주먹질이 세고 날렵하다. 한국인 건맨이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한 이 영화는 율 브린너가 주연한 동명영화(1960)의 리메이크로 원전은 쿠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다.
웨스턴 원작의 내용은 미국에 접경한 멕시코 깡촌을 정기적으로 약탈하는 산적들에게 시달리다 못한 농부들이 미국으로 와서 고용한 건맨들과 산적들과의 치열한 대결. 리메이크의 무대는 미 서부의 한 작은 마을 로즈 크릭(뉴올리언스에서 찍었다). 이 마을을 말아먹으려는 탐욕적이요 무자비한 실업가 보그(피터 사스가드)와 그의 졸개들의 시달림을 받는 주민들을 위해 마을에 7인의 건맨이 도착하면서 유혈 총격전이 벌어진다.
흑인 감독 안트완 후콰가 연출한 리메이크에서 7인의 리더인 샘 치솜 역은 덴젤 워싱턴이 맡았는데 워싱턴의 첫 웨스턴이다. 구레나룻에 콧수염을 하고 검은 모자에 검은 말을 탄 워싱턴이 45구경 콜트권총을 쏜살같이 뽑아 적을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멋있다. 그런데 후콰와 워싱턴은 워싱턴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트레이닝 데이’와 ‘이퀄라이저’에서도 함께 일했다.
나는 원작을 서울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딜리 극장에서 봤는데 사나이들 중의 사나이들인 멋진 건맨들의 늠름한 자태와 총 쏘고 칼 던지면서 벌어지는 박진한 액션에 완전히 넋을 잃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타고 7인의 건맨들이 말을 타고 저 멀리서 내 앞으로 달려오는 첫 장면이 나올 때 출렁이듯 흘러나오는 교향곡적 음악이 경쾌하기 짝이 없어 엉덩이가 절로 흔들어졌었다. 엘머 번스틴이 작곡한 음악은 영화의 주인공들 못지않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리메이크의 음악은 최근에 작고한 오스카상 수상자인 제임스 호너가 작곡했다.
후콰 감독은 워싱턴과 이병헌 외에도 활을 잘 쏘는 코맨치 인디언 레드 하베스트 역에는 아메리칸 인디언 마틴 세스마이어를 그리고 멕시칸 배우 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등 다양한 인종을 기용했다. 하베스트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고 가르시아-룰포는 원작에서 로버트 번이 맡았던 리 역에 상응하는 노릇을 한다.
이들 외에 크리스 프랫이 시건방지나 매력적인 도박사 건맨 조시 패라디로 이산 호크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저격수 굿나잇 로비쇼로 그리고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도끼를 잘 쓰는 술꾼 잭 혼으로 각기 나온다. 이병헌의 빌리 역은 원작에서 과묵하고 칼 잘 쓰던 제임스 코번의 역에 상응하는 것인데 원작에서 독일 배우 호르스트 북홀츠가 7인의 한 사람인 멕시칸 건맨 치코로 나온 바 있다. 이병헌의 캐스팅만큼이나 희한한 것이다.
후콰는 다인종 캐스팅에 대해 “현대 관객들에게 원작과 거리를 둔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7인들은 쿠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의 본질을 지녔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이어 “배우들의 콤비가 기차게 좋다”면서 “이 영화는 결코 원작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원작 ‘황야의 7인’은 개봉됐을 때 흥행서 실패했고 비평가들도 찬반의견을 보였었다. 아직도 이 영화는 존 포드의 ‘수색자’나 게리 쿠퍼가 나온 ‘하이 눈’보다 한 등급 아래의 것으로 취급받고 있는데 이와 상관없이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명작 웨스턴이다. 영화는 율 브린너가 친구인 앤소니 퀸으로부터 ‘7인의 사무라이’를 소개 받고 리메이크권을 사 만들게 됐다.
브린너는 당초 출연이 아닌 감독을 맡으려고 했다가 ‘O.K. 목장의 결투’를 만든 존 스터지스에게 연출을 맡기고 자기는 건맨으로 나왔다. 브린너와 공연한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및 로버트 번 등은 당시만 해도 TV 배우로 더 잘 알려졌었는데 이 영화로 스크린 스타로 변신하게 되었다.
원작 ‘황야의 7인’의 장점은 신나는 액션 외에도 주·조연을 비롯해 단역까지도 다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특히 볼만한 것은 금이빨을 한 산적두목 칼베라 역의 일라이 왈랙. 그는 가난한 농부들을 터는 비열한 도적인데도 어딘가 품위가 있어 브린너의 총에 맞아 죽을 때 동정마저 간다.
또 다른 매력은 건맨들이 풍기는 낙조와도 같은 분위기. 시대가 문명이 서서히 서부를 잠식하고 들어오던 때여서 과거의 영웅적 역할이 더 이상 요구되지도 않고 또 존재의 의미도 상실케 된 건맨들은 마치 주인 없는 사무라이들인 낭인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브린너의 말대로 “건맨이 총보다 더 싼” 때로 영화에서 7명 중 달랑 3명만 살아남는 것이 오히려 그런 분위기에 걸맞는다. 리메이크 ‘황야의 7인’은 오는 9월23일에 개봉되며 등급은 아이들도 볼 수 있는 PG-13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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