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5월 2일 월요일

디바의 귀환




청아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을 지닌 프리 마돈나 캐슬린 배틀(67·사진)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쫓겨난 지 무려 20여년만에 무대로 귀환한다. 그래미 수상자로 메트의 단골이었던 배틀은 지난 1994년 당시 메트의 총감독인 조셉 볼피에 의해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공연 불과 1주 전 해고를 당했었다. 이유는 배틀의 지나친 디바 같은 오만불손한 태도.          
리허설에 늦거나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리허설에서 다른 가수들을 내쫓는가 하면 리허설에서 듀엣을 부를 때는 상대에게 아예 자기 입을 보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지휘자와의 갈등으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출연을 거부했고 시즌 개막연주를 맡은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에게 입장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 뒤로 배틀은 오페라 무대를 떠나 리사이틀에 전념했는데 오는 11월13일의 메트 복귀도 ‘캐슬린 배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영적 여정’이라는 제목의 흑인영가 리사이틀로 꾸며진다. 배틀의 메트 복귀를 성사시킨 것은 오랫동안 이를 시도해온 피터 겔브 현 메트 총감독.
흑인인 배틀은 메트 복귀에 대해 “흑인영가는 영혼을 고양시키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는 지금 이것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서 “이것은 메트의 찬란한 음향 속에 내 음악적 배경과 문화적 유산을 결합시킬 프로그램”이라며 들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그런데 메트에서 배틀 이전에 먼저 쫓겨난 또 다른 프리 마돈나가 마리아 칼라스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칼라스도 지난 1958년 총감독과의 갈등으로 해고됐다가 1965년에 복귀, 자신의 메트 마지막 공연으로 ‘토스카’를 불렀다. 그런데 볼피는 배틀을 해고할 때 “캐시 배틀은 칼라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볼피는 배틀의 메트 귀환에 대해 “메트에서의 그의 리사이틀을 볼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배틀은 1948년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에서 철강노동자인 아버지와 아프리칸 감리교회 자원봉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창가수가 되기 전 신시내티 초등학교의 음악선생이었던 배틀의 열렬한 후원자는 이번 시즌으로 메트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직을 물러날 제임스 르바인. 르바인은 1977년 배틀이 양치기로 노래 부르며 메트에 데뷔한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비롯해 배틀의 많은 공연을 지휘했다.
신선하고 정결한 음성으로 자유롭게 음색을 바꿔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배틀은 특히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에 능통해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이들 노래를 취입한 도이체 그라마폰의 빅 스타가 됐지만 무대 뒤의 갈등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배틀과 함께 무대에 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단원들은 ‘나는 배틀(전투)에서 살아남았다’고 적힌 T셔츠를 입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1월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배틀의 리사이틀을 참관한 바 있다. 아름답고 맑고 달콤한 음성으로 기교가 화려한 창법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적어둔 기록을 보니 이렇게 써있다.
‘어깨가 활짝 드러난 길고 푸른 드레스를 입고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만한 여왕 같았다. 배틀은 이날 헨델, 볼프, 리스트, 슈트라우스 및 벨리니의 아리아와 가곡들과 함께 흑인영가를 불렀는데 음성처럼 노래하는 얼굴 모습과 제스처도 자극적이리만치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울며 조르는 듯 간절하다가 두 눈을 감고 으스대 듯 얼굴과 상반신을 앞으로 쑥 밀어내며 노래하는 그의 음성과 자태가 이 세상 것 같지가 않았다. 가는 하복부에서 한 없이 멜로디를 끌어내며 온 몸과 영혼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때론 한 곡만 부르고 무대에서 퇴장을 했다. 배틀의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가도 유혹녀의 그것처럼 고혹적이기도 했다. 두 팔을 높이 들어 춤을 추는 듯 우아하고 표현력 풍부하게 제스처를 써가며 부르는 노래들은 서정미를 지녔을 뿐 아니라 거룩하기까지 했다.
턱을 앞으로 삐죽이 내밀고 마치 물고기와 새처럼 입을 앞으로 동그랗게 오므렸다가 다시 찡그리듯 동그라미를 풀어내면서 부르는 노래들은 한곡 한곡이 피와 땀의 결정들이었다. 배틀은 한곡을 부른 뒤에 청중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다음 노래의 분위기를 몸 안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일부 청중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자 배틀은 그 쪽을 향해 쏘아보듯이 인상을 쓴 뒤 잠시 있다가 노래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표정에 섬뜩했었다. 디바다운 기질이다. 그러나 배틀은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앙코르를 두 곡이나 불렀는데 마지막 노래는 평소 자기가 좋아한다는 흑인영가 ‘귀하신 주님’.                
귀한 경험이었는데 그 후 나는 배틀의 앨범으로 벨리니의 ‘몽유병자’와 도니제티의 ‘돈 파스쿠알레’ 그리고 로시니의 ‘탄크레디’의 아리아들이 담긴 도이체 그라마폰의 ‘벨 칸토’를 사 한동안 애청했었다. ‘웰컴 백 캐슬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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