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하야오 미야자키



21일 개봉되는 일본의 저명한 만화영화 감독 하야오 미야자키(73)의 최근작이자 그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영화평 참조)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했다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3월2일에 열릴 올 오스카 시상식에서 만화영화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는데 사용된 폭격기 ‘제로’를 고안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항공담당 공학자 지로 호리코시의 삶을 다룬 것으로 내용과 그림이 모두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왜 하필이면 침략전쟁의 도구인 ‘제로’를 고안한 호리코시의 얘기를 다뤘는가”라면서 “영화가 아름답고 유연한 모양의 폭격기와 그것을 고안한 사람을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대사와 함께 호리코시가 “나는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름답고 성능 좋은 비행기를 고안하려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국인인 내가 보기엔 그런 말이 그저 사탕발림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요즘 정신 나간 아베 일본 수상의 군국주의적 사고방식과 발언 때문에 한일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영화가 뛰어나게 잘 만들었다고 감탄을 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한편 미야자키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지로 호리코시는 평화주의자로 그가 폭격기를 만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평양전쟁 당시 ‘제로’의 방향타를 고안한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나는 그처럼 위험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나의 아버지가 나쁜 일을 했다고 비난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야자키는 이 영화로 인해 일본의 극보수파들로부터는 ‘반 일본적 반역자’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다. 그 같은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일본과 독일은 패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대사와 함께 묘사된 반전 메시지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야자키는 군국주의자들과 함께 일본의 침략근성을 비판하는 측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야자키는 평소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아베의 전쟁을 금지한 일본 헌법 수정 의도와 전쟁 범죄행위 부정을 비판하면서 아울러 전쟁 위안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자신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을 때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뜻에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미야자키를 2009년 영화 ‘포뇨’를 위한 인터뷰 차 만났는데(사진) 백발에 흰 구레나룻을 하고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치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는 만화를 손으로 그리는 사람답게 “나는 컴퓨터도 안 쓰고 셀폰도 없다”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는데 사람이 아주 소박하고 털털한데다가 인자한 모습에서 진짜로 평화주의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더 왜 저런 평화주의자가 하필이면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느낌마저 드는 소재를 골랐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다분히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스튜디오 기블리를 통해 ‘하늘의 성’ ‘내 이웃 토토로’ ‘모노노케 공주’ 및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를 감독(각본 겸)한 미야자키는 작품에서 평화주의와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영화들로 마법적 영역 안에서 마법사와 마녀와 요정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여러 영화에서 개성과 독립심이 강한 소녀나 젊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미야자키는 페미니스트인데 ‘포뇨’에서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에 맞춰 파도를 타고 달리는 브륀힐데가 그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미야자키는 얼마 전 “이젠 늙어서 영화를 그만 만들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만화는 계속해 그릴 예정인데 그는 현재 사무라이 시리즈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이 분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또 한 번 생각나게 된 것이 예술작품을 순전한 예술적 안목으로만 볼 것이냐 또는 거기에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나는 순예술파이긴 하지만 이번에 미야자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기분이 언짢았던 것은 결국 내 혈관 안에서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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