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사랑의 힘



생일이니 무슨 기념일이니 하면서 날 잡아놓고 축하하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는 해마다 날 잡아놓고 사랑을 표시하는 밸런타인스 데이가 오면 작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과연 올해도 아내에게 밸런타인스 데이 선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이 것이 문제로구나. 카드와 붉은 장미 한 송이(초컬릿은 살이 쪄서 안 된다)를 사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39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동고동락 해온 아내에게 날 잡아놓고 애정의 표시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형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식적이라도 좋다는 것이 아내의 태도다.
도깨비장난에 불과한 것이 사랑이지만 그것은 페리 코모도 노래했듯이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사랑의 힘이란 기적을 낳고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로맨틱들의 예찬이다.
지난 일요일 내가 다니는 동부장로교회의 이용규 목사님이 ‘마음에 사랑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사랑의 힘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홀랜드에 사는 78세의 미망인이 80세의 할아버지를 사랑하게 돼 둘이 결혼을 다짐했다. 문제는 할머니가 과거 50년간 담배를 피워온 골초라는 것.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결혼조건으로 금연을 요구했고 이에 고민을 하던 할머니는 50년간 애호하던 담배를 끊고 할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해마다 밸런타인스 데이가 오면 영화사들은 로맨스 영화들을 개봉한다. 소위 데이트 영화들로 서로의 손을 잡고 보는 남녀의 감상성에 아첨하는 것들이다.
오늘 개봉되는 ‘겨울 이야기’(영화평 참조)는 사랑은 기적을 낳고 죽음도 이긴다는 전형적인 여성용 최루물이다. 역시 오늘 나오는 ‘어바웃 라스트 나잇’은 로브 로와 드미 모어가 나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이고 ‘엔드리스 러브’도 브룩 쉴즈가 나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다. 원작이나 리메이크나 다 타작이다.
이미 개봉된 로맨스 영화 중 여성 팬이 좋아할 만한 것이 자기 집에 숨겨준 탈옥수와 사랑을 하는 젊은 이혼녀(케이트 윈슬렛)의 드라마 ‘레이버 데이’다. 역시 현재 상영 중으로 모든 것이 기계화한 요즘 인간 접촉을 아쉬워하는 별난 로맨스 영화 ‘허’는 먼 그리움처럼 애잔하고 아름다운 얘기다. 고독한 청년(와킨 피닉스)과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인(스칼렛 조핸슨의 음성) 간의 사랑의 대화가 심금을 울린다.
며칠 전 TV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보면서 한숨 두숨 다 쉬었다. 아이오와 시골의 ‘전쟁신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와 떠돌이 사진작가 로버트(이스트우드)의 나흘간의 뜨거운 사랑의 얘기인데 프란체스카의 이별을 아파하는 모습에 육신의 통증마저 느꼈다. 피아노 위주의 영화음악과 비단결 음성을 지닌 자니 하트만이 부르는 ‘아이 시 유 비포 미’등이 담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로맨틱하다.
프랑스 영화 ‘미용사의 남편’은 사랑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꼬마 때부터 자기 머리를 감고 깎아주는 여자미용사의 흰 가운 사이로 드러나는 풍만한 젖무덤과 감촉과 냄새를 좋아하던 소년이 커서 여자미용사와 결혼한다. 그런데 사랑이란 어차피 한시적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던 미용사가 그것을 지키려고 과감한 행동을 취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영국인 환자’는 감각적이요 지적이며 정열적이자 비극적인 사랑의 영화로 감정적 충격에 호흡이 멎는 듯한 느낌을 겪게 된다. 레이프 화인즈와 크리스틴 스캇 토머스의 맺지 못할 사랑이 작품의 무대인 사하라사막처럼 지글거리며 타오르는데 연인들의 처절한 죽음으로 끝난다.
비극이 희극보다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어서 로맨스 영화도 비극적인 것이 더 잔상에 오래 머무른다. ‘의사 지바고’의 유리와 라라의 사랑도 그래서 더 강렬한데 이 아름다움을 한층 로맨틱하게 채색해 주는 것이 모리스 자르의 음악이다.
우디 알렌의 ‘맨해턴’은 42세의 TV작가(알렌)와 17세의 여고생(매리엘 헤밍웨이-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손녀)의 사랑을 그린 아이스크림 소다 맛 나는 맨해턴 송가다.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가 사랑하고 싶은 무드를 부추긴다.
브룩 벤튼과 에타 존스 등 많은 가수들이 노래한 ‘아임 인 더 무드 포 러브’에서 제목을 빌린 웡 카-와이 감독의 ‘인 더 무드 포 러브’(사진)는 고독과 잠깐이면 사라지는 미와 젊음과 사랑의 이야기. 매기 청이 입은 알록달록한 청삼이 곱기도해 계속해 엇갈리고마는 사랑이 더욱 안쓰럽다. 모두 밸런타인스 데이에 알맞은 사랑의 영화들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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