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출연 망설였는데, 아내가 결정했죠”
3월2일에 열릴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총 10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코미디‘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의 주연배우 크리스천 베일(40)과의 인터뷰가 뉴욕의 런던 호텔에서 있었다. 베일은 1980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지시로 뉴저지를 무대로 정치인들과 마피아를 상대로 한 부정부패 함정수사의 앞잡이로 사기를 친 실존인물 어빙 로즌펠드 역을 맡아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페인에서 찍고 있는‘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아 촬영 중에 뉴욕으로 날아온 그는 긴 머리에 텁수룩한 모세의 수염을 하고 검은 셔츠의 간편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액센트가 있는 빠른 어조로 마치 연기하듯이 상체와 두 손 그리고 얼굴 표정을 다채롭게 사용하면서 질문에 답했는데 가끔 농담을 섞긴 했지만 매우 진지했다. 눈초리가 아주 매서웠는데 인터뷰장 뒤에는 부인 시비가 앉아 남편의 대답을 경청했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 역사적 드라마라는 점과 개성 있는 인물들에 깊은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서 감독 데이빗(O. 러셀)과 작품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를 했는데 다른 영화 출연 스케줄 때문에 도저히 이 영화에 나올 수가 없어 데이빗에게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도 미련이 크게 남아 망설이고 있으니까 아내가 데이빗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영화에 나오기로 결정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니까 아내 때문에 영화에 나오게 된 셈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수사 대상으로 친구가 되다시피 한 사람에게 크게 상처를 주는데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는가.
- 난 매우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영화와 달리 누군가와 갈등이 있게 되면 내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때로 서로가 잔인해야 할 정도로 솔직함을 요구한다. 난 뒤에서 칼로 등을 찌르는 사업에는 종사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영화계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당신은 영화에서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는데 실제로도 외모와 옷에 신경을 쓰는가.
- 난 다행히 어빙처럼 대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나 내 아내 모두 옷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아무 것이나 입는다. 난 똑같은 셔츠 3벌과 팬츠 3벌밖에 없다.
*당신은 영화를 위해 체중을 많이 늘렸는데.
- 그건 데이빗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내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완벽한 사기꾼이 외모가 멋쟁이가 아니라 배가 나온 몸을 했다는 것에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자꾸 체중을 늘렸더니 데이빗이 나보고 “너 뭐 하는 짓이냐”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리고 키도 내 키보다 작게 보이려고 상체를 자꾸 짓눌러 내렸더니 배가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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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어빙역의 크리스천 베일과 사기 파트너이자 정부인 에이미 애담스. |
*옷이 주인공의 개성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는가.
- 물론이다. 특히 사기꾼은 어떤 옷을 입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에서 어빙은 옷을 매우 주도면밀하게 선택했다.
*당신은 아직도 말에 액센트가 있는데.
- 난 웨일즈 태생으로 이젠 영국에서 산 것보다 미국에서 산 것이 더 오래인데도 아직도 액센트가 남아 있다. 영국에 살 때 굉장히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액센트를 얻은 것 같다.
*영화에서 당신의 아내로 나온 제니퍼 로렌스에게 선배로서 무슨 조언이라도 했는가.
- 제니퍼는 생각이 똑바른 사람이어서 충고가 필요 없다. 그리고 난 우리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니 만큼 내 경험을 들어 남에게 충고를 해 준다는 것이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데이빗이 제니퍼를 골랐을 때 난 제니퍼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셋이 앉아서 얘기를 나눈 결과 난 제니퍼가 얼마나 재능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역 소화와 연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사기 당해 본 적이 있는가.
- 물론이다. 난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아니어서 사기를 잘 당한다. 사기를 당하면 그냥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대머리가 된 기분은 어땠으며 체중을 늘리려고 무엇을 먹었는가.
- 닥치는 대로 다 먹었다. 머리를 면도로 밀고 나니 시원해서 좋더라. 특히 내 어린 딸 엠마린(8)이 대머리를 신나게 때리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한 번은 선스크린을 안 발랐다가 머리가 불타는 줄 알았다.
*성공한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 어떻게 삶에 대처하는가.
- 자기 성공의 죄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 배우니까 어떻게 행동해야지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자기 길을 만드는 것이다. 난 연기 후에 아름답고 훌륭한 가족과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곤 한다. 그들이 내가 사는 까닭이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
*한 영화와 다른 영화 사이에 쉴 때 무엇을 하는가.
- 난 한 영화에 나온 뒤 다음 영화를 만들 때까지 어느 정도 쉬어야 한다. 쉴 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나 자신을 즐긴다. 영화에서 남이 된 후에 다시 자기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더 이상 배트맨 역은 안 하겠는가.
- 안 한다.
*어빙은 아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뒀는데 당신에게 있어 충실은 어느 정도 중요한가.
-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난 저 뒤에 앉아 있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로부터 유혹을 받았다. 평생의 반려자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 감독과 각본 그리고 공연 배우들도 다 중요하나 난 절대로 통상적인 것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난 실험하는 자세로 역을 택하기 때문에 데뷔하는 감독과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가능성만 보고 일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완전히 실패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영국엔 자주 가며 축구팬인가.
- 영국엔 주로 영화 때문에 자주 간다. 난 아마추어 축구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뛰어난 연기파인데 어떻게 그런 재능을 갖게 되었는가.
- 아이 때 연극공부를 좀 했지만 그것은 YMCA 수준이다. 따라서 난 주로 세트에서 배웠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 이 직업에 대해 애증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 것이 일방적인 사랑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 애증이 공존해야만 모방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해보겠다는 욕망이 생긴다. 난 언제나 연기자로서 높낮이가 지극히 극단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난 역을 맡을 때 때로는 그것이 내 첫 영화라는 자세로 대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때로는 그것이 내 마지막 작품이라는 자세로 대할 때도 있다. 그 어느 경우건 간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좋은 연기란 감독 없이는 나올 수가 없다.
*당신은 이제 나이 40인 됐는데 소감이 어떠며 어떻게 생일을 축하할 것이며 또 지금까지 이룬 것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
- 40이 되니 좋다. 난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선 최근 영화에 여러 편 나와 당분간 쉬겠다. 사람들이 날 보기가 지겹다고 말하기 전에 말이다. 난 내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다.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내 딸이다. 자식이란 사람이 열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예술이다.
*당신은 유명스타로서 어떻게 그렇게 사생활을 철저히 지킬 수가 있는가.
- 잘 모르겠다. 난 스타라고 불리는 것이 다소 민망하다. 스타는 나와 달리 엄청나게 매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난 배우라는 직업이 좋다. 난 운이 좋은 편이다. 난 누가 날보고 스타라고 부르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스타라는 범주에 빠지지 않으면 보다 자유스럽다.
*파파라치들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는가.
- 솔직히 말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에 파파라치가 따라 붙는다. 회견이 없다면 파파라치도 없을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