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뉴욕에서 마틴 스코르세이지 감독을 인터뷰할 때 내가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이 감독이 되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영화는 무엇인가.” 이에 그는 서슴없이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라고 대답했다.
내가 최근에 읽은 리처드 쉬클이 쓴 통찰력 있는 카잔의 전기 ’엘리아 카잔‘(Elia Kazan)에서도 스코르세이지는 “나는 12세 때 ’워터프론트‘를 보고 내 피의 한 부분처럼 느꼈었다”면서 “이 영화는 사실주의의 표본으로 인간의 자연적 행위인 표면 뒤의 진실을 드러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찬양했다. 스코르세이지는 후에 카잔이 자신의 후기작품인 ’어레인지먼트‘를 찍을 때 무보수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 ‘표면 뒤의 진실’은 카잔(사진)이 평생 짊어지고 다닌 부담이었다. 1909년 오토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카잔은 2003년 94세로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늘 ‘아나톨리안 미소’을 지으며 살았다. ‘아나톨리안(현재의 터키) 미소’란 속내와 다른 미소를 일컫는데 이는 평생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긴 이민자로서의 카잔의 삶의 한 모습이었다. 이민자인 나도 그 의미를 잘 알 것 같다.
영화와 연극감독이자 연기선생이며 각본가요 제작자이며 작가인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부터 연출활동을 시작했다. 그 대표적 작품이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이 두 작품은 종전의 무대의 역할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것들로 평가받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후에 카잔이 말론 브랜도와 비비안 리를 써 영화로 만들어 리가 오스카주연상을 탔다.
활기왕성하고 대담하고 창조적이면서도 사적이요 자기회의적이며 복잡한 성격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집념의 소유자였던 카잔은 배우들로부터 생생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배우들의 감독’이라 불리면서 사회의식이 강한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여럿 만들었다.
그 대표적 영화가 뉴욕부두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횡포를 폭로한 ‘워터프론트’다. 이 밖에도 미국 내 흑백문제를 그린 ‘핑키’와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신사협정’, 미디어의 대중우민화를 다룬 ‘군중 속의 얼굴’ 및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에 관한 ‘거친 강’ 등이 있다.
카잔은 명배우들을 배출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자로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및 줄리 해리스 등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을 키운 탁월한 스승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숨은 잠재력을 찾아 끌어낼 줄 아는 신통력을 지닌 선생이었다.
그는 특히 1950년대 여러 편의 명작들을 만들었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와 함께 역시 브랜도 주연의 ’혁명아 자파타!‘와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 그리고 ’베이비 달‘ 및 ’군중 속의 얼굴‘ 등이 이 때 작품들. 뛰어난 비전과 왕성한 추진력을 지녔던 카잔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감독이었다.
그의 또 다른 영화들로는 한국에서 개봉됐을 때 10대 여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은 워렌 베이티와 나탈리 우드가 공연한 ‘초원의 빛’과 자기 가족의 자화상인 ‘아메리카 아메리카’가 있다. 마지막 영화는 F. 스캇 핏제럴드의 미완성 소설로 MGM의 요절한 명제작자 어빙 달버그를 모델로 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라스트 타이쿤’(1976).
카잔은 생전 명성과 오명을 함께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탔고 1983년에는 미 정부가 주는 케네디센터 생애업적상을 그리고 1999년에는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그의 이런 영광은 그의 사후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배신자’라는 오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한 때 공산당원이었다가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카잔은 미국 내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이 불던 1952년 연방하원의 ‘반미활동 조사위’의 청문회에 출두, 공산당과 관계한 동료 영화·연극인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래서 카잔이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탈 때 많은 참석자들은 기립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의 수상에 반감을 표했었다.
그러나 카잔의 ‘고자질’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 중 한 사람이 책을 쓴 쉬클이다. 이들은 카잔이 청문회에서 밝힌 이름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이름들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며 아울러 국가에 해가되는 단체 소속원들을 고발한 것이 왜 나쁘냐는 주장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카잔이 ‘워터프론트’의 주인공으로 부두노동자들을 착취하다 뒤 늦게 각성하는 깡패 테리 말로이(브랜도)를 통해 자기 입장을 대변한 점이다. 테리는 동료깡패들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면서 정의 수호자가 되는데 카잔은 이런 동료에 대한 배신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고발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엘리아 카잔’의 저자 고 리처드 쉬클은 내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타임지 영화비평가로 오래 활동한 그는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많은 저서와 함께 찰리 채플린, 우디 알렌 및 엘리아 카잔 등 여러 영화인들에 관한 30여 편의 기록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쉬클은 책에서 카잔의 60년에 이르는 감독으로서의 삶과 작품들을 지적이요 폭넓게 조명하면서 아울러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카잔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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