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와인스틴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 고발로 비화된 돈과 힘과 명성이 있는 남자들의 성추행 문제가 연예계는 물론이요 정^관계와 언론계 및 사회 전반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급기야 클래식 음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명예감독 제임스 르바인(74)은 과거 청소년 연주자들을 그리고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샤를 뒤트와(81)는 여자 성악가와 연주자들을 성추행 했다는 고발이 있자 두 사람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트럼프가 또 무슨 망언을 했을까와 어떤 유명인사가 성추행자로 찍혔을까를 살피는 것이 일상사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성추행 및 폭행 문제는 그 어느 사회조직보다 남성위주인 할리웃에서 빈발하고 있다.
최근 성추행자로 거론된 영화인으로는 오스카상을 탄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서 TV시리즈 ‘매스터 오브 넌’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은 아시안 아지즈 안사리가 있다. 또 ‘디재스터 아티스트’로 역시 골든 글로브 남자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탄 제임스 프랭코도 성추행자로 거론됐다. 이 탓인지 프랭코는 지난 23일 발표된 오스카상 후보 발표 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성추행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들먹거려지는 우디 알렌도 무사하지 못하다. 과거 알렌의 아내였던 미아 패로가 입양한 딸 딜란 패로가 최근 다시 자기가 어렸을 때 알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많은 배우들이 다시는 알렌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알렌의 ‘뉴욕의 비 오는 날’에 나온 레베카 홀과 티모데 샬라메(‘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남자주연상 후보)는 이 영화 출연료를 전액 대 여성성폭력과 남녀불평등 퇴치를 위해 최근 조직된 ‘타임즈 업’(Time’s Up)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성추행 및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와 ’타임즈 업‘을 통한 여성들의 피해 사례가 소셜 미디아를 통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일각에서는 이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가벼운 성희롱마저 도매금으로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맷 데이먼도 최근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과 강간과 아동 성추행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가 바가지로 야단을 맞고 “앞으론 입 조심 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맞는 것이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미투’나 ‘타임즈 업’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게 마련이다. ‘레이디 버드’로 오스카 감독 및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레타 거윅도 최근 알렌에 대한 성추행 고발에 관한 질문에 “깊이 생각해 봤다.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만 말하고 더듬거리다가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이에 과거 알렌의 영화에 나온 거윅은 며칠 후 “다시는 그의 영화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한 할리웃 관계자는 이처럼 ‘#미투’나 ‘타임즈 업’에 대해 이견이나 심지어 “노 코멘트“를 할 경우 마치 죄인 취급을 받아 그에 대한 개인의 솔직한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잘 못 말했다가는 소셜 미디아에 의한 캥거루재판에 회부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베테런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74^사진)와 100여명의 연예계와 출판계 및 학계여성들이 최근 르 몽드지에 ‘#미투’와 프랑스판 ‘#미투’인 ‘너의 돼지를 폭로하라’를 비판하는 일종의 ‘농(non-아니다라는 뜻) #미투’의 글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운동의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글에서 “‘#미투’가 개인적 경험을 공개적으로 기소하고 있으며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도를 너머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은 이어 “남자가 여자의 무릎에 손을 대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등 서툴게 추근댔다고 해서 자기변호의 기회도 안 주고 벌로 직장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미리 정해놓은 정의의 성급한 집행”이라고 덧 붙였다.
드뇌브 등은 또 “여자들도 같은 날 직장의 리더가 되면서 아울러 남자의 성적 대상이 되는 기쁨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은 결론으로 여성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자유에 따르는 위험을 수용하라”면서 “여자의 육체에 영향을 주는 불상사가 반드시 자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의 내적 자유는 범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아끼는 이 자유는 위험과 책임을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매듭지었다.
섹스를 먹는 것이나 자는 것처럼 삶의 자연스런 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유럽과 그 것을 아직도 청교도적 입장에서 보는 미국의 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뇌브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어쩌면 이런 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미국에서 ‘#미투‘ 쓰나미를 일으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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