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4월 24일 월요일

조용한 정열(A Quiet Passion)


에밀리(왼쪽)와 여동생 비니가 파티의 남자들을 관찰하고 있다.

여류시인 에밀리 딕킨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시적 감각을 지닌 영국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각본 겸)가 그린 19세기 중반 미 매사추세츠 주 앰허스트에 살았던 여류시인 에밀리 딕킨슨의 초상화로 아름답고 진지하며 유려하다. 마치 긴 시 구절로 이어진 한 폭의 시화를 보는 느낌인데 데이비스 특유의 느리고 서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인물들과 주변 환경을 화사하게 담아내고 있다.
종교적으로 또 남녀 간의 차별이 엄격하던 시절 독립적이요 반항적이며 사색하는 시인의 자기 정체성과 신념의 고수와 함께 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렸다. 대사가 많고 다소 흐름이 느려 서술이 고여 있는 것은 사실이나 딕킨슨 역의 신시아 닉슨을 비롯한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황홀한 촬영 그리고 데이비스의 사려 깊은 연출력 등 여러 모로 보기 좋은 훌륭한 작품이다. 딕킨슨은 처녀인 채 1886년 55세로 사망했다. 
영화는 처음에 젊은 딕킨슨(엠마 벨)이 자신의 독특한 신앙관 때문에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에서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딕킨슨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 장면으로 봐선 딕킨슨이 후에 입에서 불을 토하는 여권론자가 될 것 같지만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딕킨슨은 밤에 시를 쓰기 위해 아버지(키스 캐라딘)의 허락을 받는 양순한 딸이다.
그의 다른 가족은 어머니(조앤나 베이컨)와 오빠 오스틴(던칸 더프) 그리고 딕킥슨과 정반대의 성격이면서도 둘이 양손처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여동생 비니(제니퍼 엘). 딕킨슨에겐 고독이 타고난 권리나 마찬가지인데 그는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가차 없이 독설을 내뱉고 깔깔대고 웃으면서 희롱과 조롱을 아끼지 않는 여자다.
딕킨슨은 복종과 반항 그리고 철저한 도덕적 규범과 과격한 낭만주의에 사로잡혔던 사람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시달려 통곡을 하기도 한다. 자기 외모에 자신을 잃고 스스로 유배자의 처지를 선택하면서 오로지 시를 쓰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으나 생전에 그렇게 많은 시를 출판하지는 못 했다.
이런 까닭에 딕킨슨의 가족들도 그를 조심스럽게 다뤘는데 이렇게 복잡한 내면을 지녔던 딕킨슨의 행동과 내면 묘사를 쥐처럼 생긴 닉슨이 마치 정교하게 수를 놓듯이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얼굴을 잘 알아 볼 수 없는 캐라딘이 오래간만에 스크린에 등장해 엄격하게 연기하고 엘이 닉슨에 맞서서 태양처럼 빛나는 연기를 한다. 그런데 비니도 언니처럼 생전 결혼을 안 했다. 
저 세상 적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엄격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적 형식미를 갖춘 독특한 영화인데 데이비스의 영화들은 전부 이처럼 환상적인 면이 강하다. 
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감독으로 그의 영화들은 마치 시극과도 같다.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디스탄트 보이시즈, 스틸 라이브즈’ ‘롱 데이 클로지즈’ 및 ‘선셋 송’ 등이 있다. PG-13. 로열(310-478-3836).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올리 마키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The Happiest Day in the Life of Olli Maki)


올리가 챔피언전에 임하기 전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있다.

시골서 빵을 굽던 올리 마키의‘월드 페더급 복싱 챔피언’쟁탈전


1962년 벌어진 권투 세계 페더급 챔피언 미국 선수 데이비 모어와 핀랜드 시골에서 빵을 굽던 올리 마키의 챔피언쉽 쟁탈전 실화를 그린 우아한 핀랜드의 권투영화로 흑백이다. 
여느 권투영화의 투쟁과 인내와 승부 같은 상투적인 플롯을 배제하고 유머와 우수와 민감한 인간적 통찰력을 사용해 권투와 사랑의 이야기를 내용과 기술적인 면에서 모두 균형 있게 다룬 반-권투영화라고 하겠다.
인간적이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영화로 감상성을 회피하면서 권투선수이면서도 권투보다 먼저 정직과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서 살려고 하는 남자의 얘기를 재미있고 또 감동적으로 그렸다.
26세의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핀랜드의 시골마을 코콜라 태생인 올리(야르코 라티)는 매니저 엘리스(에로 밀로노프)에 의해 발탁돼 핀랜드의 차기 국민영웅으로 훈련을 받는다. 올리는 페더급이 되기 위해 체중을 줄이고 엘리가 하라는 대로 패션지의 모델로도 나선다. 
단 10회의 프로경력 밖에 없는 올리가 챔피언 전에서 싸울 상대는 64전 전승의 미국 선수 모어(존 보스코 주니어). 올리를 둘러싸고 미디어가 난리법석을 떨자 올리는 점점 불편을 느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트레이닝 때문에 올리의 개인적 문제가 침해를 받는 것.
올리는 고향의 한 결혼식에서 만난 라이야(오나 아이롤라)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데 라이야도 마찬 가지. 따스하고 근본이 튼튼한 라이야는 헬싱키에서 훈련하는 올리 곁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돌보나 점증하는 미디어의 사생활 침해에 질려 시골로 내려간다. 이로 인해 경기를 앞둔 올리의 초점도 흐려진다.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록키’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라 상냥한 인간 혼을 지닌 권투영화로 선한 눈과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미소를 지닌 라티의 인간적 연기가 영화의 숭고한 정신을 지고한 경지에까지 올려놓고 있다. 티 안 내는 한 점의 결함도 없는 연기다. 
이와 함께 아이롤라도 부드럽고 상냥한 연기를 잘 한다. 권투영화이긴 하나 액션보다는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남자의 내면세계를 그린 성격영화다.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졸업’




내가 올 해로 개봉 50주년이 되는 ‘졸업’(The Graduate^사진)을 본 것은 뒤 늦게 군에 입대해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그 때 장안에 이 영화가 과거 다른 영화들과는 전연 다른 특이한 영화라는 입소문이 무성해 종로3가에 있던 단성사에서 봤다.
당시만 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상낙원과도 같았던 미국의 상류층이 사는 풀이 있는 저택과 잘 차려입은 그들의 호화스런 삶 그리고 파격적인 섹스와 내용이 거의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었다. 이와 함께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르는 사운드트랙의 노래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졸업’은 물질을 대변하는 “플래스틱”이라는 말을 대뜸 신유행어로 만들어 놓은 영화다. 대학을 막 졸업한 어눌한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에게 벤자민의 아버지의 친구가 “너의 장래는 이 것에 달려 있다”면서 조언한 말이다.
이와 함께 또 유명한 대사가 벤자민이 자기를 유혹하는 미시즈 로빈슨(앤 밴크로프트)에게 “미시즈 로빈슨, 당신 지금 날 유혹하려고 하는 거지요”라고 하는 말. 이 때 카메라가 미시즈 로빈슨의 벌린 다리 아래로 당황해하는 벤자민을 잡는다. 미시즈 로빈슨은 후에 벤자민의 애인이 된 일레인(캐서린 로스)의 어머니로 모녀가 한 남자를 놓고 얄궂은 삼각관계를 이룬다.
미국서 개봉되자마자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젊은 층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으면서 빅 히트를 한 신 청춘영화의 효시인 ‘졸업’은 미 상류층의 물질주의와 위선 그리고 성적 관행과 세대 차이를 비판하고 풍자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된 1967년은 베트남전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히피문화의 절정기였는데 이 영화의 무정부적 분위기는 당시 젊은이들의 불안한 시대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풍자영화치곤 유유자적하는 분위기를 지녔는데 이런 분위기를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르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미시즈 로빈슨’ 및 ‘스카보로 페어’ 등이 부드럽게 다독여주고 있다. 이들의 사운드트랙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다.
21세의 벤자민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LA인근 부촌 패사디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벤자민은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집에서 떠돌이처럼 겉돌면서 성공한 변호사인 아버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 수동적 반항을 한다.
이런 벤자민이 아버지의 파트너인 로빈슨의 부인의 유혹에 걸려들면서 호된 성인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처음에는 미시즈 로빈슨의 유혹에 저항하던 벤자민은 부인의 무르익은 육탄공격에 항복, 호텔에서 섹스를 즐긴다. 이 호텔이 지금은 중학교가 된 LA 코리아타운에 있던 앰배서더호텔이다.
외톨이인 벤자민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버클리대학생인 일레인. 그러나 일레인은 벤자민이 자기 어머니와 동침했다는 것을 알고 벤자민을 떠나 서둘러 한 때 사귀던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산타바바라의 교회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달려온 벤자민이 “일레인”하고 소리치자 일레인이 “벤”하고 메아리치면서 식장에서 달아난다.
이어 벤자민은 대형 십자가를 휘둘러 추격자들을 물리친 뒤 일레인과 함께 달려오는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벤자민과 일레인은 서로를 보면서 미소를 짓지만 곧 이어 얼굴 표정이 어두워진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졸업’은 당시 29세였던 호프만의 첫 주연영화(출연료는 7,000달러)로 어설프게 보이는 그는 재정적 성공만을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삼는 속물들 사이에서 이들과의 대화 불통으로 인해 애를 먹는 청년의 모습을 어정쩡하게 표현, 일약 청춘문화의 영웅이 됐다. 그런데 제작진은 처음에 벤자민 역으로 금발미남 로버트 레드포드를 쓸 생각이었다.
호프만과 함께 밴크로프트가 섹스에 굶주린 자극적인 중년부인의 연기를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사실적으로 해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고 골든 글로브 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탔다. 미시즈 로빈슨 역도 당초 도리스 데이에게 제의됐었다.
영화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으로 당시만 해도 영화계에서는 풋내기였던 마이크 니콜스의 두 번째 감독 작품이다. 신인답지 않게 원숙한 연출력을 발휘, 미 문화비평의 걸작을 내놓았다. 원작은 찰스 웹의 소설. 한편 ‘졸업’ 개봉 50주년을 맞아 오는 23일과 26일 전미 700여개 극장에서 영화의 디지털 프린트 판이 상영된다.    
마침 이 달 초 영화의 노래를 부른 아트 가펑클(75-폴 사이먼과의 듀엣은 지난 1970년에 해체됐다)의 공연이 세리토스에서 열려 참석했다. “아직도 내가 노래를 부르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공연을 시작한 가펑클은 ‘졸업’의 노래들과 ‘박서’ 및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등 왕년의 자신의 히트곡들을 불러 올드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나이는 못 속인다고 가펑클은 고음에 가서는 다소 힘들어했고 가끔 가사도 잊었다. 내 청춘에로의 뒷걸음질과도 같은 향수에로의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들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탭 헌터’




“젊어 보인다고? 비누와 물, 며칠에 한번 면도가 전부”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잘 생긴 얼굴에 튼튼한 체격을 해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이 되었던 탭 헌터(85)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헌터는 이웃 집 소년처럼 친근감이 가는 분위기와 함께 건장한 호남스타일로 인해 왕년의 인기배우들인 나탈리 우드와 데비 레널즈 및 소피아 로렌과 같은 스타들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그가 나온 영화들로는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뮤지컬 ‘댐 S키즈’ 및 웨스턴 ‘불타는 언덕’ 등이 있다.
신심이 강한 가톨릭신자로 동성애자인 헌터는 가수로서도 성공했는데 그가 부른 ‘영 러브’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다. 그의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메이킹 오브 어 무비 스타’는 베스트셀러로 아직도 잘 팔리고 있으며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기록영화가 작년에 개봉됐었다. 그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와 오랜 관계를 가졌었는데 현재는 파트너 앨란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강건한 모습의 헌터는 유머를 섞어가며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가 자세히 알려주는 할리웃의 과거를 듣자니 어릴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할리웃을 동경하던 생각이 났다. 매우 편하고 서민적인 사람으로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왕년의 스튜디오들은 배우들의 이미지와 재능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겼는가.
“먼저 이미지고 재능은 그 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으로 스튜디오들은 대중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스타를 제조했다. 따라서 한번 코미디언이라고 여겨지면 그 딱지가 계속해 붙어 다녔다. 다른 역을 주질 않았다.”

-그런 제도 밑에서 일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가.
“그렇다. 난 배우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좋은 역이 주어져야 하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TV의 라이브 드라마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땐 스튜디오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쫓겨나던 때였다.”

-이제 와서 당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바꾸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가.
“나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물을 네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세상사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난 어머니 말씀대로 산다.”

-명성과 돈이란 무엇인가.
“나는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을 가져 그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서히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에 따라 살아야 한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이를 깨달았다.”

-배우 초년생 때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스타는 누구였는가.
“처음에는 전부 다였다. 내가 처음 주연한 영화는 린다 다넬과 공연한 별로 안 좋은 ‘욕망의 섬’이었다. 난 다넬의 팬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다넬이 나보고 ‘긴장을 풀어요. 난 신인들의 행운이에요’라며 달래줬다. 그는 재주만 있었을 뿐 아니라 우아한 사람이었다. 난 그를 무척 사랑했다.”

-당신은 많은 웨스턴에서 자신의 말을 탔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탈리 우드와 나온 ‘버닝 힐즈’에서도 내 말을 탔다.”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불타는 언덕'

-어떻게 가수가 됐는가.
“그 전에 난 교회 성가대원이었다. 나탈리 우드와 내가 영화 홍보 차 전국을 순회하며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의 유명한 디스크 자키인 히워드 밀러가 내가 노래하는 것을 듣더니   음반 취입을 권유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가 소개한 닷 레코드로부터 내가 부르면 좋을 노래가 있다며 취입한 곡이 ‘영 러브’였다. 금요일에 녹음했는데 월요일에 차를 타고 선셋길을 달리다가 라디오로 들었다. 너무 놀라 팜트리와 충돌할 뻔했다.”

-책에서 자신 얘기하기가 고통스러웠는가 아니면 속 시원했는가.
“속이 시원한 편이었으나 난 사실 내 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쓰기가 쉽진 않았다. 쓰게 된 이유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내 얘기를 쓰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쓸 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쓰기로 했다.”

-앤소니 퍼킨스 등 당신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 유족으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냥 있는 사실대로 썼다.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필름 느와르의 전문가 에디 멀러였다.”

-당신은 ‘버닝 힐즈’에서 공연한 나탈리 우드 앞에서 웃통을 벗고 늠름한 상반신을 자랑했는데 감독이 벗으라고 했는가.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비프케익’(늠름한 남자)이라고 불렀다. 난 그 영화 뿐 아니라 도로시 말론과 나온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 그러다가 유럽영화의 영향으로 영화에서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 배우들은 자신의 동성애를 자유롭게 밝히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소감은.
“난 내 동성애에 대해 결코 얘기하지 않았다.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서 얘기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를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난 그 것이 싫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런 딱지가 아니라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다. 요즘에는 배우들이 자신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나 난 그 것이 별로 좋다고 생각 안 한다 아직도 할리웃은 동성애자 배우를 주연으로 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아가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지 않는가.
“내게 소셜 미디아는 무의미하다. 난 구식 사람이다.”

-당신과 일한 감독들 중에 누가 가장 인상적인가.
“내가 함께 일한 많은 감독들은 라이브 TV로 연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우들에게 씨를 심어주는 사람들로 그 것을 가꾸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달렸다. 내게 연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르쳐준 감독은 시드니 루멧이다. 그 때 우린 뉴욕에서 소피아 로렌과 공연하는  ‘마이 카인드 오브 우먼’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루멧이 내게 오더니 ‘탭 넌 너무 안전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러려면 하루 종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침대에서 보내’라고 말 했다. 난 그 뒤로 이 말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요즘엔 어떻게 하루를 지내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앨란과 함께 개들을 데리고 해변에 가서 산책을 한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만들고 컴퓨터를 검사한다. 이어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 헛간에 가서 내가 사랑하는 암말을 돌본다. 그리고는 다시 집에 돌아와 독서를 하거나 그냥 소일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다. 매우 덤덤한 삶이다.”

-당신 삶에 있어 어떤 때가 가장 행복했는가.
“난 좋고 행복했던 때가 여러 번이다. 어디로 가는가 하는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앨란을 만난 것이 내겐 매우 중요하다. 그로 인해 난 삶의 방향을 찾게 됐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어머니를 비롯한 내 가족과 앨란과 종교다. 난 이들에게 매일 감사한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는 언제인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다. 스키를 타다가 심장마비에 걸려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그 때 난 ‘이 게 마지막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린 그런 걱정과 염려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난 회복한 뒤에 내가 쓰러졌던 곳엘 찾아가 하늘을 보고 감사한 뒤 다시 스키를 타고 내려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가.
“조화 이상이다. 자연은 영적인 것이다. 

-배우 초년 시절에 당신의 넋을 앗아간 빅 스타는 누구였는가.
“그 땐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다.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 난 ‘시 체이스’라는 영화에서 존 웨인과 라나 터너와 공연했는데 라나를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난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팬이었다’고 말하면서 어쩔 줄 모르게 황홀해했었다. 라나는 참으로 멋진 여자였다.”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가. 비방이 무엇인가.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     
-아직도 당신의 노래를 듣는가.
“난 내 노래나 영화를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 다른 히트송 ‘애플 블라섬 타임’을 앨란의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아직도 내 노래를 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 노래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캔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분노한 자들의 운명(The Fate of the Furious)


마지못해 자기편이 된 돔에게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퍼(오른쪽)가 키스를하고 있다.

최악의 적이 되어버린 돔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


이제 제발 좀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15년 전에 만들어진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 제 1편이 빅히트하면서 속편이 줄줄이 만들어지고 지금 그 일곱 번째 속편이 나왔는데 굉음과 파괴와 자동차들의 스피드가 편을 거듭할수록 자심하기 짝이 없다. 
마치 어디까지 가나 보자면서 터무니없고 환상과도 같은 액션과 소음과 스턴트를 폐기물 덤핑하듯이 쏟아 놓는데 필자는 그런 소음 속에서 졸았다.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친 보잘 것 없는 잉여물의 퇴적과도 같은 꼴불견이다. 그러나 빅 히트할 것이다.   
내용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벌린 입이 안 다물어진다. 내용은 액션을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데 각본이 어린 아이의 작문수준으로 되는대로 썼다. 이런 영화에 샬리즈 테론과 헬렌 미렌과 같은 오스카 수상자들이 나온 것이 불가사의한데 주인공 빈 디즐에 의하면 미렌은 이 시리즈의 팬이라고 한다. 그래서 뒤 늦게 미렌의 역을 삽입했다. 
영화는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작된다. 돔(디즐)과 그의 일당인 ‘가족’은 이제 뿔뿔이 헤어졌고 돔은 변치 않는 연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스)와 결혼, 하바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하바나의 거리에서 초고속으로 돔이 모는 차가 경주를 벌인다. 차가 온통 불에 타면서도 맹속력으로 질주해 물론 돔이 이긴다. 
이어 돔 앞에 사이퍼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여자(테론)가 나타나 자기가 하는 일에 합류하라고  요구한다. “난 은퇴했다”라는 돔에게 사이퍼가 셀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돔의 얼굴이 이글어지고 그는 레티를 버리고 사이퍼와 함께 쿠바를 떠난다. 
사이퍼는 무정부주의자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가공할 무기로 세계를 초토화 하려고 벼르고 있는데 무기 탈취를 위해 돔을 억지 춘향 격으로 자기에게 합류케 한 것. 그러나 돔이 사이퍼의 편이 되면서 그는 레티를 비롯한 왕년의 ‘가족’의 배신자가 된다. 나머지 ‘가족’이란 코미디언 같은 ‘레이디즈 맨’ 로만(타이리스 깁슨)과 테크니션 테지(크리스 ‘루다크리스’ 브리지스) 등 전편들에 나온 서너 명.
사이퍼를 잡기 위해 정부요원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가 신참으로 엉성한 에릭(스캇 이스트우드-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을 데리고 교도소에 수감된 전직 특수요원 홉스(드웨인 잔슨)를 찾아와 협조를 요구한다. 그런데 같은 교도소에는 홉스가 집어넣은 입 건 암살자 데카드 원수는 외다리에서 만났다고 돔과 데카드가 서로 말로 티격태격하다가 육박전을 벌이는데 둘의 이런 앙앙불락이 시끄러워 골치 아픈 영화에 재미를 제공한다. 액션신이 장관인 홉스와 데카드의 교도소 탈출에 이어 ‘가족’도 이들과 합류해 배신자 돔과 사이퍼를 쫓으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뉴욕 맨해탄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과 북극 바렌츠해 얼음 벌판 위에서의 추격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비디오게임이요 만화로 높은 주차장에서 수십대의 동차들이 길바닥으로 떨어지고 로만은 얼음판 위에서 자동차 문짝에 매달려 아이스 서핑을 한다.
사이퍼의 초고성능 비행기 안에서 사이퍼와 그의 졸개들과 데카드 간에 총격전과 육박전이 벌어지는데 데카드는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살인을 한다. 주윤발의 ‘하드-보일드’를 흉내 냈다. 미렌은 스테이담의 어머니로 나와 아들의 따귀를 때린다. 
디즐을 비롯한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시리즈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만 또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난다. 갓 세이브 미! F. 게리 그레이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잃어버린 도시 Z(The Lost City of Z)


퍼시(앞)와 아들 잭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정글 깊은 곳 문명 찾기에 나선 영국 군인 퍼시 포셋 일대기


옛 할리우드 스타일의 사나이가 정글을 누비는 대하 액션 모험영화로 모양은 그럴듯하고 경치도 좋지만 기력이 모자란다. 허우대만 멀쩡한 영화로 보고 즐길 만은 하나 모험영회치곤 극적 높낮이와 폭 그리고 강렬한 흥분감이나 에너지가 부족해 건장하고 젊은 남자의 얘기인데도 노인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박력과 긴장감이나 추진력이 모자라 나태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2시간 20분의 상영시간에 정글과 도시와 전장을 넘나들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고 시도, 얘기 서술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흥미 있는 실화 내용과 정글의 경치를 잘 찍은 촬영 및 이름 난 배우들의 무난한 연기 등으로 인해 큰 기대를 안 한다면 볼만하다. 
주인공은 1906년부터 시작해 수십 년간 아마존 정글을 탐험하다 실종된 실존 인물인 영국의 퍼시 포셋(찰리 헌남). 영화는 한 남자의 집요하게 꿈을 좇는 드라마로 이 남자는 자신의 샹그릴라를 지상에서 찾으려다 사라졌는데 그 이상이 참으로 가상하다.
육군 소령인 퍼시는 왕립지리학회(RGS)의 지시에 따라 지도상에 아직 그려져 있지 않은 볼리비아와 브라질 사이의 국경을 지도에 올리기 위해 헌신적이요 독립적인 아내 니나(시에나 밀러가 소모됐다-남자의 영화여서 어쩔 수가 없다)와 아들 잭을 두고 정글로 떠난다. 동행하는 탐험가는 과묵한 학자 스타일의 헨리 코스틴(‘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
이들은 원시림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재해와 질병과 기아와 원주민의 습격 등을 받으면서 정글을 뚫고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퍼시는 깨어진 도기와 나무에 새겨진 얼굴을 발견하면서 오래 전 아마존에 문명이 있었다고 믿고 그 때부터 이 잃어버린 문명 찾기에 집념한다. 퍼시가 잃어버린 문명 찾기에 집념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 아버지로 인해 실추된 가문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것.               
퍼시는 귀국해 RGS에 아마존에 문명이 있었다고 보고하나 회원들의 야유만 받는다. 두 번째 정글탐험에 동반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요 배신자인 제임스 머리(앵거스 맥파디엔). 그러나 퍼시는 뜻을 못 이루고 귀국 한다. 1차 대전이 발발, 퍼시는 전장에 나가 혁혁한 무공을 세운다.  마지막 탐험에 동행하는 사람이 그 동안 집안을 돌보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잭(탐 홀랜드). 그리고 둘은 1925년 정글에서 실종된다. 과연 둘은 원주민들과 자연의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식인종에게 먹혔을까. 제임스 그레이 감독. PG-13.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등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태복음’


“내 양심은 신의 세계의 포로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한 말을 취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슬리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기릴 일도 못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다. 이 것이 내 입장이다. 신이여 날 도우소서. 아멘!”
이 말은 지난 1521년 4월18일 찰스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주재 하에 독일의 보름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라는 요구에 대해 마틴 루터가 대답한 최후 진술이다. 이어 루터는 파문당했다.    
오는 16일의 부활절을 얼마 앞두고 내 친구 C가 이 말을 E메일로 보내오면서 “나는 이 말이 역경에 처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읽을 때마다 깊이 감동 한다”고 루터의 용기를 찬양했다. 화형에 처해질 것을 각오하고 자기의 믿음을 지킨 용기야 말로 대단한 것이다.
오는 10월31일은 지난 1517년 루터가 면죄부를 팔아먹는 가톨릭을 개탄하면서 자기가 살던 색손 주의 작은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캐슬 처치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친구 C부부와 우리 부부는 작년 5월17일 독일여행 때 비텐베르크를 방문 했었다. 그 때 나는 캐슬 처치 안을 돌아보면서 작은 가슴으로 루터의 큰 신앙과 용기를 생각했었다.
동독의 잔영이 아직도 드리워져 있던 시골 마을 비텐베르크의 기차역에 걸린 도시 이름 표지판에는 루터슈타트(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가 묵은 루터호텔을 비롯해 루터 소시지와 루터 맥주잔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마을이었다. 살아서는 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영의 양식을 제공했던 루터는 죽어서도 육의 식량 보급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병기와 방패 되시니’라는 찬송가를 작곡하고 작사한 루터는 혁명가요 작곡가로 평소 위트 있는 논쟁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런 위트는 비텐베르크에서 산 카드에 잘 적혀 있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남자는 잠을 잘 잔다. 자는 남자는 죄를 안 짓는다. 그리고 죄를 안 짓는 남자는 천국에 간다!” “아멘!”이다.
부활절을 맞아 사랑과 용서를 가르쳤던 예수에 관한 영화들을 돌아보자. 예수 넓게는 성경에 관한 영화는 무성영화 사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무성영화 시대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던 사람이 후에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를 감독한 세실 B. 드밀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만든 예수영화들은 모두 예수를 금발에 미끈한 체격의 푸른 눈의 남자로 묘사했다. ‘왕 중 왕’의 제프리 헌터(말리부 예수라고 불렸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스웨덴 배우 막스 본 시도,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의 윌렘 다포 및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한 ‘그리스도의 수난’(16일과 17일 뉴베벌리 시네마에서 상영) 의 짐 캐비즐 등이 그 좋은 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진짜 예수는 할리웃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예수 시대 평균 남자 신장은 5피트 3인치, 평균 체중은 110파운드였다는 것. 그리고 예수는 금욕적 생활을 한데다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설교를 해 매력과는 거리가 먼 근육이 툭툭 불거진 남자로 추정하고 있다. 예수영화에 관한 책 ‘신성한 모습’을 쓴 로이 키나드와 팀 데이비스도 “푸른 눈에 백색의 길고 품이 큰 옷을 입은 유대 땅에서 온 보이스카웃이 할리웃에 의해 정형화한 예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많은 예수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동성애자 공산주의자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감독한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1964^사진)이다. 흑백영화로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묘사했는데 마태복음에 적힌 글을 그대로 대사로 쓴 엄격하고 표현력 풍부한 명작이다.                      
파졸리니는 요한복음은 너무 신비적이요 마가복음은 저속하고 누가복음은 감상적이어서 마태복음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기 시대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영화 내용에 포함시켰다. 그가 마태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대사로 쓴 이유는 “이미지로서는 도저히 예수의 신성의 시적 극치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수 역은 당시 19세였던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엔리케 이라소퀴가 맡았는데 척박하도록 꾸밈없는 얼굴이다. 나머지 역들도 비 배우들이 맡아해 영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예수를 말하면 절로 따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면한 범죄자 바라바스와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다. ‘바라바스’라는 영화에선 앤소니 퀸이 바라바스로 나와 그의 입장에서 예수를 얘기했고 내 중고교 친구인 소설가 황석영은 중학생 때 예수의 얘기를 유다의 입장에서 설명한 ‘부활 이전’으로 교내 문예대회에서 장원을 했었다.
예수영화 외에 부활절을 맞아 TV에서 단골로 방영하는 영화가 주디 갈랜드와 프레드 애스테어가 나온 뮤지컬 ‘이스터 퍼레이드’로 오스카 음악상을 탔다. 부활절에 들을만한 클래식 곡으로는 말러의 ‘부활’ 교향곡과 멘델스존의 ‘종교개혁’ 교향곡 등이 있다. 해피 이스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4월 10일 월요일

‘유언’(The Last Word) 셜리 매클레인




“자신을 알면 알수록 가능성에 한층 더 가까워져”


현재 상영 중인 드라마 ‘유언’(The Last Word)에서 자기 부음에 좋은 여자로 표현되려고 뒤 늦게 착한 일 한다고 부산을 떠는 심술 맞은 이혼녀 해리엣으로 나오는 할리웃의 베테런 스타 셜리 매클레인(81)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 힐즈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며 스크린과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매클레인은 특히 코미디 드라마에 능한데 두목(?) 프랭크 시내트라를 비롯해 딘 마틴, 피터 로포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및 조이 비숍 등으로 구성된 ‘랫 팩’의 준 멤버였다. ‘랫 팩’은 샌즈 호텔을 중심으로 베이가스의 쇼 무대를 주름 잡았던 마초 스타그룹이다.
이들이 나온 유명한 영화가 ‘오션의 11명’(1960)으로 이 영화는 후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의해 신판과 속편이 만들어져 빅히트했다. 현재 샌드라 불락을 주연으로 여성 판 ‘오션의 11명’이 제작 중이다.
매클레인은 비록 얼굴과 손에 주름이 잡혔지만 귀여운 할머니 같았는데 눈을 깜빡 거리면서 위트와 유머를 섞어 질문에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여왕처럼 우아하고 품위가 있었는데 유머 속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고 조리가 또렷했다. 대답 내용이 매우 철학적이었다.  

-해리엣이 당신 자신을 표현한 것인가.
“부분적으로 맞다. 해리엣이 능률과 균형을 좋아하고 또 매사를 쉽게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 나를 닮았다. 나의 작업 윤리가 바로 그렇다. 각본을 쓴 스튜어트 핑크도 나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고 했다.”

-당신은 환생에 관한 책을 몇 권 썼는데 환생을 믿는가.
“내 책들은 다 자아 발견에 관한 것이다. 해리엣 역도 그런 것이다. 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자아 반성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난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여자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어머니는 헤어스타일과 얼굴과 태도가 모두 예쁘고 고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그 것을 너머 나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애썼다. 내가 계속해 연기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기로 인해 난 내 자신의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세대에 전하고픈 삶의 교훈이라도 있는지.
“자신이 스스로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머물지 말고 더 자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늘 우리가 몰랐던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우리의 운명과 가능성에 한층 더 가까워 질 수가 있다.”

-당신의 인생에 후회할 것이라도 있는지.
“없다. 난 살면서 어려움에 처하고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다. 배운다는 것에 후회란 있을 수 없다.”

심술많은 해리엣은 죽기전에 좋은 일을 한다며 부산을 떤다.
-요즘의 할리웃을 어떻게 보는가.
“요즘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집념하는데 예전에는 배우들이 성격개발이나 인물 위주의 영화에 보다 신경을 썼다. 돈은 요즘처럼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도 또 있지도 않았다. 그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 때 배우 노릇 하기란 지금보다 힘들었지만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도전의 기회는 더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자신들 내면의 민주주의를 검사한 뒤 우리가 얼마나 아마추어에 대해 관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말 밖에 할 것이 없다.”

-첫 번째 오디션에 대해 말해 달라.
“난 오디션 없이 막 바로 히치콕의 ‘트러블 위드 해리’의 세트에 나가면서 데뷔했다. 난 히치콕의 작은 ‘황금의 아이’였다. 따라서 내겐 매 영화가 다음 영화를 위한 오디션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라 라 랜드’의 여주인공처럼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됐다. 나는 오히려 역을 맡은 뒤에 오디션을 한 셈으로 사실 그 것이 더 어렵다.”

-당신은 ‘랫 팩’과 매우 가까웠는데 그들 중 누가 가장 좋았는가.
“딘(마틴)이 제일 우스웠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우스운 사람이다. 그의 즉흥성과 타이밍이란 가히 천재적인 것이었다.
난 프랭크(시내트라)를 매우 존경한다. 그는 큰 가슴과 재주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미(데이비스 주니어)가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그를 돌봤다. 난 그들과 개성적인 면을 제외하곤 내적으로 그렇게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좌우간 그들은 내 타입이 아니었다. 내 타입은 존 웨인이나 로버트 미첨이다. 그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무대 매너였다. 즉흥성이다. 난 그들이 무척 그립다.”

-해리엣은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길 바래 뒤 늦게 개과천선 하는데 당신도 남이 당신을 좋아해주길 바라는가.
“그렇다. 난 셰익스피어가 ‘모든 세상은 극장이요 우리는 그 무대에서 우리 역을 하면서 관객이 우리를 좋아할지 어떨지를 몰라 염려 한다’라고 한 말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다 자기 친구와 직장 동료와 가족이 자기를 좋아해 주길 원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런 맥락에서 인생을 보다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다 자신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아야 한다.”

-남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 하는가.
“그렇게 많이 걱정하진 않는다. 그들은 지금까지 나를 잘 대해줬다. 사람들은 나의 솔직함을 좋아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내가 대중 앞에서 자기들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어떤 반응을 취할지는 미지수다.”

-당신의 집도 해리엣의 집처럼 정결하고 정돈이 잘 돼 있는가. 집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내 집은 외국에서 가져온 것들과 사진들로 가득 차있다. 사람들은 날 보러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인생의 벽이라고 부르는 사진들을 보러 온다.
그러나 나 지저분한 것보다는 정리정돈 된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땐 글을 쓰고 개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논다. 때론 그저 하늘을 쳐다본다. 물론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것이 더 좋다. 난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난 몇 가지의 내 문제도 해결했고 또 내 유머도 과거보다 더 신랄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당신의 사랑과 기쁨에 대한 정의는.
“사랑이란 공포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우리들이 배워온 로맨틱한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기쁨으로 말 할 것 같으면 따뜻한 변기 의자다. 내게 있어 진짜 기쁨이란 자유의 느낌이다.”

-개가 몇 마리나 있는가.
“네 마리다. 자유를 좋아하는 한 마리가 집을 나갔는데 그 것이 돌아오면 다섯 마리고. 한 때는 아홉 마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난 개들의 개성과 요구를 좋아한다. 난 그들의 지능을 존경하고 그들은 내 지능을 존경한다,”

-해리엣은 젊은 여자와 우정을 맺는데 당신도 그런 경우가 있는가.
“지금의 내 여자 친구들은 다 나보다 젊다. 난 젊은 여자들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모든 것이 일차원적이다.”

-올 해가 칸영화제 개막 70주년인데 영화제 심사위원을 한 당신의 칸에 대한 소감은.
“음식과 프랑스 언론이 기억된다. 심사위원은 출품된 영화를 다 봐야하기 때문에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난 칸영화제의 세련미와 함께 거리 산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참석했던 모든 외국 친구들이 그립다. 칸의 기억 중 가장 좋았던 것이 외국 친구들이다.”

-당신에게 명성과 돈이란 무엇인가.
“요즘엔 그 둘 없인 독립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난 그 것에 대해 신랄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인간적인 얘기를 하려면 그 둘이 다 절실히 필요하다. 난 운이 좋아 오래 동안 그 둘을 다 지녀왔다. 그들은 결코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지 않았다. 난 그것들을 내게 주어진 선물로 여겨왔다. 그래서 더 이상 요구한 적이 없다.
난 중하층 가족에서 자랐다. 우린 다 열심히 일 해서 먹고 살았다. 그래서 부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고잉 인 스타일(Going in Style)


알버트와 윌리와 조(왼쪽부터)가 자신들의 연금동결 통지서에 아연질색하고 있다.

연금동결에 채무까지… 은행 터는 3인조 할아버지


자신들의 연금을 말아먹은 은행을 터는 3인조 노인들의 강도질 코미디로 셋이 다 오스카 조연상을 탄 베테런 모간 프리맨(82), 마이클 케인(84) 및 앨라 아킨(79) 등이 심심풀이로 나온 영화다. 이들의 아이들 장난 같은 짓을 보면서 시간 보내기엔 큰 무리가 없지만 엉성하다.
철저히 어른(노인)들을 위한 영화로 내용 중에 서민을 기만하고 자기 영리만 채우는 은행을 비롯한 대기업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이 되어 딱총 질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즐기는 영화다. 
프리맨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 케인은 ‘사이더 하우스’와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아킨은 ‘리틀 미스 선샤인’으로 각기 오스카 조연상을 탄 연기파들. 터무니 없는 영화에서 이 셋의 콤비가 볼만한데 여기에 색다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 왕년의 빅 스타요 가수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애인이었던 앤-마그렛(75). 그로 인해 노인의 로맨스가 꽃핀다. 
이 영화는 마틴 브레스트가 1979년에 감독하고 조지 번즈와 아트 카니 그리고 리 스트라스버그가 나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요즘 시대에 맞게 현대화 했다. 
처음에 딸처럼 사랑하는 손녀 브루클린(조이 킹)과 싱글 맘인 딸과 함께 브루클린에서 사는 조(케인)가 모기지 페이먼트를 올린 은행을 찾아가 따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때 은행강도들이 들이닥친다. 이를 자세히 지켜보는 조. 
조에겐 같은 철공장에서 오래 동안 함께 일한 절친 한 두 친구가 있으니 하나는 서부에 딸과 손녀를 둔 윌리(프리맨)요 다른 하나는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되려다 못 된 투정꾼인 알버트(아킨). 윌리와 알버트는 한 아파트에서 동거한다. 이들이 함께 하는 일이란 조깅을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노인센터에 가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같은 다이너에 가서 밥 먹고 하는 것들. 
그런데 이들이 일했던 공장이 팔려 해외로 이사를 하면서 은행으로부터 자신들의 연금이 동결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특히 조는 한 달 안에 오른 모기지 페이먼트를 못 내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그래서 조는 자기가 경험한 은행강도를 셋이 함께 하자고 제의한다. 조가 보기엔 강도질이 아주 쉬웠는데 이 제의에 윌리와 알버트는 처음에는 조가 미친 소리 한다고 콧방귀를 뀐다. 
그러다가 둘이도 자기들의 돈을 말아먹은 은행이 미워 강도모의에 동참한다. 그리고 리허설로 셋의 단골인 동네의 작은 수퍼마켓에서 도둑질을 시도 한다. 상의와 하의 주머니에 달걀과 돼지고기 등을 쑤셔 넣고 줄행랑을 치다가 붙잡힌다. 
이 마켓의 할머니지만 아직도 섹시하고 정력적인 점원인 애니(앤-마그렛)가 좋아하는 사람이 알버트. 처음에는 애니의 적극적 공세에 수세를 취하던 알버트도 마침내 애니의 매력에 못 견뎌 둘이 침대로 뛰어든다. 노인이라고 섹스 못 하라는 법 없다는 사실이다. 
이어 셋은 랫팩의 복면을 쓰고 은행을 턴다. 그리고 모두가 그 후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맷 딜런이 엉성한 FBI요원으로 나온다. 감독은 배우이기도한 잭 브래프. PG-13.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콜로살(Colossal)


글로리아는 서울에 나타난 괴물과 자신의 연광성을 믿는다.

무의미해보이는 존재에서‘여성 파워’를 보여주는 영화


희한한 공상과학 드라마이자 코미디이긴 하지만 장르를 구분할 수 없게끔 온갖 스타일을 혼성한 독특한 영화다. 영화에 나와 서울을 유린하는 고질라(또는 용가리)처럼 상상을 초월한 기발난 아이디어의 작품으로 궁극적인 결론은 여성 파워의 얘기다.
여자가 아직도 남자의 종속물처럼 취급 받고 있는 세상에서 겉으로는 약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자가 남자들의 주인 노릇을 참고 참다가 마침내 이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독립을 찾는 얘기다. 
왜 고질라가 서울에 나타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한국의 남성 위주 사회 관습 때문일까) 이 고질라는 분명히 주인공 여자의 심리와 행동을 상징하고 은유하고 있는데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를 지녔으면서도 감독은 보는 사람이 너무 심각하구나 하고 생각할 때면 이를 재치 있게 거의 터무니없는 코미디로 뒤집어 놓는다. 
뉴욕에서 애인 팀(댄 스티븐스)과 동거하는 글로리아(앤 해사웨이)는 실직한 인터넷 잡지 기자. 술과 자기가 이름도 모르는 친구(?)와의 파티로 날을 보내다가 팀으로부터 쫓겨나 뉴욕주의 작은 마을에 부모가 남겨준 집으로 이사한다. 
여기서 글로리아는 동네 바를 경영하는 학교 동창생 오스카(제이슨 수데이키스)를 만난다. 사람 좋은 오스카는 글로리아를 바의 웨이트리스로 고용하고 또 TV를 비롯해 온갖 가구를 거저 준다. 
그런데 서울에 거대한 고질라가 나타나 건물들이 파괴되고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퍼진다. 영화는 처음에 밤에 서울에서 한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잃어버린 인형을 찾는데 고질라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 그로부터 25년 후의 얘기로 이어진다. 
고질라 출현을 TV로 보던 글로리아는 자기와 고질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괴물로 취급받던 고질라가 자기에 도전하는 로봇이 나타나면서 두 괴물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진다. 
여성들이 박수를 칠 ‘여성 파워 만세’ 영화로 해사웨이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친절을 베풀면서 그 대가로 사랑이나 섹스를 요구하는 남자들에게 짓눌려 살던 연약한 여자에서 과감히 자립하는 여자의 모습을 깊고 민감하고 힘차고 아름답게 연기한다. 수데이키스의 연기도 좋다. 
스페인의 나초 비가론도 감독. PG-13.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아크라이트(선셋&바인),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4월 3일 월요일

사육사의 아내(The Zookeeper‘s Wife)


안토니나(제시카 채스테인)가 사자 새끼들을 아기 돌보듯 하고있다.


나치로부터 유대인 탈출시킨 동물원 사육사 부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홀로코스트영화요 전쟁영화이자 동물영화이며 또 인간의 선과 영웅주의 및 용기를 그린 드라마로 극적이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액션마저 있는 내용을 너무 말끔하게 처리해 깊이나 충격 그리고 진정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실 속에 담긴 다양한 얘기를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고 감상적으로 처리해 참담하고 대담하고 과감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뉴질랜드의 여류 감독 니키 카로(‘웨일 라이더’)는 복잡한 얘기를 너무 단순화 했고 또 윤택을 냈는데 마치 벅찬 과제를 받은 학생이 어쩔 줄을 몰라 대충 뭉뚱그려 내놓은 답안지 같다.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과 주인공 역의 연기파 제시카 채스테인의 모습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및 음악 등 여러 모로 중간 수준은 되나 기대에 못 미치는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타작이다. 
나치의 폴랜드 바르샤바 점령 때 동물원을 지키면서 300명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탈출시켰던 동물원 사육사 부부 안토니나(채스테인)와 얀(요한 헬덴버그) 자빈스키의 실화로 안토니나의 일기를 바탕으로 다이앤 애커만이 쓴 베스트셀러가 원전이다.
나치가 폴랜드를 폭격하면서 어린 아들을 둔 얀과 안토니나가 돌보는 동물원이 쑥대밭이 된 채 동물들이 대량으로 죽고 호랑이와 낙타가 시내를 방황 한다(이 장면이 재미있다). 그리고 나치군인들은 우리 밖으로 나온 코끼리를 쏴 죽인다. 
전쟁 전부터 얀과 안토니나를 알고 있던 나치의 권위 있는 동물학자 루츠 헥크(다니엘 브륄)는 자빈스키 부부에게 살아남은 동물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서 보호하자며 이들을 이동시킨다. 그리고 동물원의 폐쇄를 꺼리는 자빈스키 부부는 루츠에게 동물원을 독일군들을 위한 식량 조달처인 돼지농장으로 운영하겠다고 부탁해 허락을 받는다. 
돼지들의 먹이는 유대인들을 격리한 게토의 음식쓰레기. 얀은 아들과 함께 트럭을 몰고 게토로 가서 쓰레기를 옮기는데 이 때 쓰레기 속에 유대인들을 숨겨 나온다. 그리고 이들은 자빈스키 집의 지하실에 숨어 안토니나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집에 숨어든 뒤 바르샤바를 탈출한 유대인들은 무려 300여명.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게토의 참상을 자주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런 참상이나 유대인 탈출과 지하실 피신 장면 등이 아무런 공포감이나 충격을 주지 못한다. 솜방망이 터치다. 영화에 약간의 액센트를 주는 것이 안토니나를 사랑하는 루츠의 모습. 안토니나가 자기 집을 찾은 루츠가 지하실에서 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의 귀를 막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서투르다. 이어 얀을 포함한 폴랜드 게릴라들과 독일군과의 시가전 장면이 나오나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연기를 잘 하는 채스테인이 겉으로는 연약하나 속은 대담무쌍한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나 폴랜드 액센트는 어색하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덤덤하다. 인간들보다는 컴퓨터 특수 이미지 효과를 거의 안 쓴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이 무미건조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PG-13. Focus.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지역.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 히트(The Big Heat·1953)


갱스터의 애인 데비(왼쪽)는 자기를 보호해주는 데이브에게 애인의 범죄사실을 털어 놓는다.

죽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죄조직을 파헤치는 형사


펄펄 끓는 커피가 충격적인 효과물로 사용되는 뛰어난 필름 느와르다. 
거칠고 가차 없는 야수적인 영화로 명암이 뚜렷한 촬영과 불연속적인 음악 및 에누리 없는 대사가 작품의 살벌한 분위기를 극대화 하고 있다.           
정의롭고 과묵한 형사 데이브 배니언(글렌 포드)이 동료형사의 의문의 자살을 수사하면서 상사로부터 수사 중단 명령을 받는다. 자살한 동료 형사가 시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기록한 노트를 미끼로 형사의 아내 버타가 부패사건에 연루된 범죄단의 두목 알렉산더를 협박하면서 버타가 사체로 발견된다.
이어 데이브는 알렉산더를 찾아가 그와 정면대결 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졸개들이 데이브의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데이브의 아내 케이티(조슬린 브랜도-말론 브랜도의 누나)가 숨진다. 악이 난 데이브가 알렉산더 체포에 열을 올리자 그의 상사가 다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하면서 데이브는 경찰배지를 내던지고 개인적으로 아내 살해범을 찾아 나선다.
데이브는 알렉산더의 오른 팔인 빈스(리 마빈)의 애인 데비(글로리아 그래암)를 찾아가 아는 대로 고백하라고 윽박지른다. 이를 안 빈스가 데비의 얼굴에 펄펄 끓는 커피를 들어부으면서 데비의 얼굴 반쪽에 흉한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데비는 데이브를 찾아가 알렉산더와 빈스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해 털어놓는다. 
이어 데비는 빈스를 찾아가 이번에는 자기가 빈스의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어붓는다. 격분한 빈스가 데비를 사살하고 이 때 현장에 도착한 데이브는 빈스를 걸레가 되도록 두들겨 팬 뒤 경찰에 인계한다. 데비는 입고 있는 밍크코트로 얼굴의 흉터를 가린 채 자기를 내려다보는 데이브를 바라보면서 숨진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그 중에서도 무지막지한 살인자의 모습을 촌티가 나면서도 냉혹하게 보여준 마빈의 것이 기억에 남는다)를 통한 다양한 성격 묘사와 사실적이요 긴박감 있는 내용을 잘 뒷 받침해주는 촬영 등이 돋보이는 명작 범죄영화다. 프리츠 랭 감독. 
이 영화와 함께 여러 남자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는 웨이트리스의 행각을 다룬 또 다른 필름 느와르 ‘사악한 여인’(The Wicked Woman^1954)이 4월 2일(하오 7시30분) 이집션극장(6712 할리웃)에서 동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우 보이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편의 연애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의 눈은 모두 매우 크다. 데이빗 린이 감독한 ‘짧은 만남’의 실리아 존슨과 어빙 래퍼가 연출한 ‘나우, 보이저’의 베티 데이비스의 눈은 다 크고 수심이 깊어 그들의 영화 내용처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걸 맞는다.
둘 중에서도 도톰한 눈두덩 아래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지녔던 데이비스의 눈은 사이렌의 노래 소리와도 같은 치명적인 흡인력을 지녔다. 그래서 킴 칸즈는 ‘베티 데이비스 눈’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데이비스는 내가 흠모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데이비스는 할리웃 황금기인 1930년대와 40년대 탑 박스 오피스 스타로 시대를 군림했던 신경 과민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성질이 불같아 자기에게 주어지는 각본이 나쁘다고 당시 할리웃의 제왕과도 같았던 전속 사 워너 브라더스의 잭 워너 사장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였던 시대를 앞서간 여권운동의 선봉자이기도 했다.
데이비스는 또 경쟁심도 강해 자기와 같은 시대의 또 다른 스타 조운 크로포드와 벌였던 스크린 주도권 쟁탈전은 할리웃의 전설적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이들은 나이 먹어 퇴물 취급을 받을 때 괴이한 드라마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에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치열하게 대결, 영화가 히트하고 데이비스는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둘이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얘기는 최근 FX-TV에 의해 ‘불화’(Feud)라는 시리즈로 만들어져 방영됐다. 데이비스 역은 수잔 서랜든이 크로포드 역은 제시카 랭이 각기 맡았다.
데이비스는 ‘여성 영화’에 강했다. ‘제저벨’(Jezebel^1938) ‘다크 빅토리‘(Dark Victory^1939) ’편지’(The Letter^1940) ‘작은 여우들’(The Little Foxes^1941) 및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등에서 모두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그 중에서도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나우, 보이저’(Now, Voyger^1942)다.
이 영화는 어빙 래퍼가 올리브 히긴스 프라우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한 화사한 흑백 멜로드라마다. 소설 제목은 월트 위트맨의 시 ‘풀잎’ 중 ‘자, 항해자여 구하고 찾기 위해 돛을 올리세’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샬롯 베일(데이비스)은 보스턴 상류층의 폭군적인 어머니(글래디스 쿠퍼)의 가혹한 통제 밑에서 자란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혼기를 놓친 여자. 샬롯이 가정의 정신과의사 자퀴즈(클로드 레인즈)의 권유에 따라 남미 행 여객선을 탄 뒤 동승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제리 던스(폴 헨리드-레인즈와 함께 데이비스가 가장 좋아한 남자배우)를 만나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희열에 젖는다.
둘은 짧은 로맨스를 남긴 채 헤어지는데 샬롯은 이 사랑으로 미운 오리새끼로부터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로 화사하게 변신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재회,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나 결합하지 못하고 둘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영화에서 샬롯이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할리웃이 남긴 최고의 대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샬롯이 제리에게 “오, 제리, 우리 달을 요구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카메라가 서서히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영화에서의 ‘담배 두 개비’장면(사진)은 영화의 그 어느 면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이다. 제리가 담배 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자기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이어 제리가 건네준 담배 한 개비를 샬롯이 입에 무는데 두 입술의 뜨거운 접촉을 실제의 키스를 대신해 아름답게 상징한 장면이다. 이 제스처는 헨리드가 생각해낸 것이다.
영화는 빅 히트를 했고 데이비스와 쿠퍼가 각기 오스카 주^조연 상 후보에 오르고 풍성하고 로맨틱한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오스카상을 탔다. 이 영화는 고도의 오락성과 로맨티시즘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에 거역하는 여성의 힘이라는 주제를 지닌 주옥같은 명화다.
데이비스는 반세기간의 연기생애를 통해 ‘데인저러스’(Dangerous^1935)와 자기 애인이었던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제저벨’로 두 차례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다크 빅토리’ ‘편지’ ‘작은 여우들’ ‘미스터 스케핑턴’(Mr. Skeffington^1944) ‘이브의 모든 것’ 및 ‘스타’(The Star^1952) 등으로 모두 여덟 차례 주연상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데이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브의 모든 것’의 베테런 연극배우 마고 채닝 역으로 오스카상을 탔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의 작은 남자상에 오스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데이비스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이 남자상을 보고 그 뒷모습이 미들 네임이 오스카인 자기 첫 남편의 것을 닮았다고 말해 그 뒤로 오스카로 불리고 있다.
렘리극장은 ‘나우, 보이저’ 개봉 75주년을 맞아 오는 4월 4일 이 영화와 역시 데이비스가 주연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공연한 갱스터 드라마 ‘마크트 우먼’(Marked Woman^1939)을 화인아츠(8556 윌셔)와 노호7(노스 할리웃) 및 플레이하우스7(패사디나)에서 동시상영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