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탭 헌터’




“젊어 보인다고? 비누와 물, 며칠에 한번 면도가 전부”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잘 생긴 얼굴에 튼튼한 체격을 해 1950년대 10대여자 팬들의 우상이 되었던 탭 헌터(85)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헌터는 이웃 집 소년처럼 친근감이 가는 분위기와 함께 건장한 호남스타일로 인해 왕년의 인기배우들인 나탈리 우드와 데비 레널즈 및 소피아 로렌과 같은 스타들의 상대역으로 나왔다. 그가 나온 영화들로는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뮤지컬 ‘댐 S키즈’ 및 웨스턴 ‘불타는 언덕’ 등이 있다.
신심이 강한 가톨릭신자로 동성애자인 헌터는 가수로서도 성공했는데 그가 부른 ‘영 러브’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했다. 그의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메이킹 오브 어 무비 스타’는 베스트셀러로 아직도 잘 팔리고 있으며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기록영화가 작년에 개봉됐었다. 그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와 오랜 관계를 가졌었는데 현재는 파트너 앨란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강건한 모습의 헌터는 유머를 섞어가며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가 자세히 알려주는 할리웃의 과거를 듣자니 어릴 때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할리웃을 동경하던 생각이 났다. 매우 편하고 서민적인 사람으로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다.

-왕년의 스튜디오들은 배우들의 이미지와 재능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겼는가.
“먼저 이미지고 재능은 그 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으로 스튜디오들은 대중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스타를 제조했다. 따라서 한번 코미디언이라고 여겨지면 그 딱지가 계속해 붙어 다녔다. 다른 역을 주질 않았다.”

-그런 제도 밑에서 일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가.
“그렇다. 난 배우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좋은 역이 주어져야 하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TV의 라이브 드라마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땐 스튜디오가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쫓겨나던 때였다.”

-이제 와서 당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바꾸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가.
“나의 어머니는 늘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물을 네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세상사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난 어머니 말씀대로 산다.”

-명성과 돈이란 무엇인가.
“나는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을 가져 그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서히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에 따라 살아야 한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이를 깨달았다.”

-배우 초년생 때 당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스타는 누구였는가.
“처음에는 전부 다였다. 내가 처음 주연한 영화는 린다 다넬과 공연한 별로 안 좋은 ‘욕망의 섬’이었다. 난 다넬의 팬이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다넬이 나보고 ‘긴장을 풀어요. 난 신인들의 행운이에요’라며 달래줬다. 그는 재주만 있었을 뿐 아니라 우아한 사람이었다. 난 그를 무척 사랑했다.”

-당신은 많은 웨스턴에서 자신의 말을 탔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탈리 우드와 나온 ‘버닝 힐즈’에서도 내 말을 탔다.”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불타는 언덕'

-어떻게 가수가 됐는가.
“그 전에 난 교회 성가대원이었다. 나탈리 우드와 내가 영화 홍보 차 전국을 순회하며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의 유명한 디스크 자키인 히워드 밀러가 내가 노래하는 것을 듣더니   음반 취입을 권유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가 소개한 닷 레코드로부터 내가 부르면 좋을 노래가 있다며 취입한 곡이 ‘영 러브’였다. 금요일에 녹음했는데 월요일에 차를 타고 선셋길을 달리다가 라디오로 들었다. 너무 놀라 팜트리와 충돌할 뻔했다.”

-책에서 자신 얘기하기가 고통스러웠는가 아니면 속 시원했는가.
“속이 시원한 편이었으나 난 사실 내 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쓰기가 쉽진 않았다. 쓰게 된 이유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내 얘기를 쓰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쓸 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쓰기로 했다.”

-앤소니 퍼킨스 등 당신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 유족으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냥 있는 사실대로 썼다.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필름 느와르의 전문가 에디 멀러였다.”

-당신은 ‘버닝 힐즈’에서 공연한 나탈리 우드 앞에서 웃통을 벗고 늠름한 상반신을 자랑했는데 감독이 벗으라고 했는가.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비프케익’(늠름한 남자)이라고 불렀다. 난 그 영화 뿐 아니라 도로시 말론과 나온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 그러다가 유럽영화의 영향으로 영화에서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 배우들은 자신의 동성애를 자유롭게 밝히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소감은.
“난 내 동성애에 대해 결코 얘기하지 않았다.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서 얘기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를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난 그 것이 싫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런 딱지가 아니라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다. 요즘에는 배우들이 자신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나 난 그 것이 별로 좋다고 생각 안 한다 아직도 할리웃은 동성애자 배우를 주연으로 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아가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지 않는가.
“내게 소셜 미디아는 무의미하다. 난 구식 사람이다.”

-당신과 일한 감독들 중에 누가 가장 인상적인가.
“내가 함께 일한 많은 감독들은 라이브 TV로 연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우들에게 씨를 심어주는 사람들로 그 것을 가꾸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달렸다. 내게 연기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르쳐준 감독은 시드니 루멧이다. 그 때 우린 뉴욕에서 소피아 로렌과 공연하는  ‘마이 카인드 오브 우먼’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루멧이 내게 오더니 ‘탭 넌 너무 안전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러려면 하루 종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침대에서 보내’라고 말 했다. 난 그 뒤로 이 말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요즘엔 어떻게 하루를 지내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그리고 앨란과 함께 개들을 데리고 해변에 가서 산책을 한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만들고 컴퓨터를 검사한다. 이어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 헛간에 가서 내가 사랑하는 암말을 돌본다. 그리고는 다시 집에 돌아와 독서를 하거나 그냥 소일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다. 매우 덤덤한 삶이다.”

-당신 삶에 있어 어떤 때가 가장 행복했는가.
“난 좋고 행복했던 때가 여러 번이다. 어디로 가는가 하는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앨란을 만난 것이 내겐 매우 중요하다. 그로 인해 난 삶의 방향을 찾게 됐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어머니를 비롯한 내 가족과 앨란과 종교다. 난 이들에게 매일 감사한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는 언제인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다. 스키를 타다가 심장마비에 걸려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그 때 난 ‘이 게 마지막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린 그런 걱정과 염려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난 회복한 뒤에 내가 쓰러졌던 곳엘 찾아가 하늘을 보고 감사한 뒤 다시 스키를 타고 내려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가.
“조화 이상이다. 자연은 영적인 것이다. 

-배우 초년 시절에 당신의 넋을 앗아간 빅 스타는 누구였는가.
“그 땐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다.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 난 ‘시 체이스’라는 영화에서 존 웨인과 라나 터너와 공연했는데 라나를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난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팬이었다’고 말하면서 어쩔 줄 모르게 황홀해했었다. 라나는 참으로 멋진 여자였다.”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가. 비방이 무엇인가.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     
-아직도 당신의 노래를 듣는가.
“난 내 노래나 영화를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 다른 히트송 ‘애플 블라섬 타임’을 앨란의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아직도 내 노래를 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 노래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캔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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