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손수건을 꺼내라’ (Get Out Your Handkerchiefs


라울(왼쪽)과 스테판은 라울의 아내 솔랑지를 공유하고 사랑한다.

두 남자 한 여자 공유… 기이하고 발칙 프랑스영화


기이할 정도로 색다르고 독창적이며 귀엽고 경쾌한 프랑스 섹스 코미디로 프랑스영화답게 대사가 많지만 말들이 톡톡 튀도록 재치 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섹스를 다뤘는데 이런 영화는 프랑스가 아니면 만들지 못한다. 
프랑스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메나지 아 트롸’(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관계) 얘기인데 이 삼각관계는 후에 또 하나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사각관계로 변이한다. 그런데 마지막 남자의 나이가 불과 13세. 이 소년과 젊은 아내의 섹스를 보자니 루이 말르의 ‘가슴앓이’(Murmur of the Heart·1971)이 생각난다. 프랑스의 명장 베르트랑 블리에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1978년 작으로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대뜸 일요일 파리의 식당에서 젊은 부부 라울(제라르 드파르디외)과 솔랑지(카롤 로르)가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울은 솔랑지가 잘 먹지도 않고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며 가끔 졸도까지 하는 것이 자기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 탓이라며 이 ‘병’을 고쳐주겠다며 다른 남자와 사귀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식당에 앉아 있던 스테판(파트릭 드웨르)을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해 그에게 솔랑지를 소개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젖가슴을 드러낸 채 뜨개질을 즐기는 솔랑지는 라울과의 섹스에 만족을 못해 탈이 났는데 남편과 스테판과 돌아가면서 섹스를 하는데도(둘은 때로 어제 솔랑지가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잊어버려 혼란에 빠진다) ‘병’은 안 낫는다. 임신을 하면 ‘병’이 나을 것 같아 노력하나 그것도 안 된다. 
스테판은 모차르트 숭배자이자 독서광인 중학교선생.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엘비라 마디간’ 협주곡)과 클라리넷협주곡이 효과적으로 쓰이는데 이와 함께 프랑스 영화음악의 거장 조르지 들르뤼가 작곡한 음악이 아름답게 흐른다. 
스테판의 제자 중 한 명이 13세난 IQ 160짜리 크리스티앙(리통 리브망). 스테판이 돌보는 여름캠프에서 왈패들에게 시달리는 크리스티앙을 캠프에 라울과 함께 참석한 솔랑지가 보호를 한다. 어느 날 밤 솔랑지가 조숙한 크리스티앙을 자기 침대에 함께 들게 하면서 크리스티앙은 잠든 솔랑지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구하는데 이에 잠이 깬 솔랑지는 처음에 크리스티앙을 나무라다가 둘이 섹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솔랑지는 둘 다 아이 같은 라울과 스테판보다 비록 나이는 어리나 이 둘보다 어른다운 크리스티앙에게 의지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아들을 기숙사학교에 보내면서 솔랑지가 크리스티앙이 보고파 안달이 나자 솔랑지와 라울과 스테판이 학교를 찾아가 크리스티앙을 납치한다. 이어 솔랑지는 크리스티앙과 사랑의 줄행랑을 놓는다. 그리고 솔랑지는 마침내 크리스티앙의 아기를 임신한다. 마지막 장면은 납치 죄로 6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온 라울과 스테판이 밤에 솔랑지가 사는 집 쇠문을 붙잡고 멀리 창속으로 보이는 배가 부른 솔랑지를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떠나는 우습고도 가슴 싸하니 저려오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로맨틱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참신한 영화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연기들이 훌륭하다.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 Blvd. 310-478-3836)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독맨’ (Do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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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가 덩지가 큰 개의 발톱을 다듬어주고 있다.

평범한 시민 폭력적으로 변하는 과정 사실적 묘사


나폴리 인근 후진 동네의 갱의 범죄와 폭력을 사실적으로 다룬 ‘고모라’를 연출한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또 다른 범죄영화로 긴장감 팽팽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지녔는데 이런 범죄적 분위기를 가끔가다 블랙 코미디로 얼려주고 있다.
주인공은 착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이런 사람이라도 주변의 악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에게 대어들듯이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과 폭력 그리고 범죄와 무지 및 탐욕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실존적으로 그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품이다.
큰 눈에 다소 우스꽝스런 얼굴을 한 마르첼로(마르첼로 폰테)는 나폴리 인근 후진 해변마을에서 개미용사로 일하는 소시민이다. 아내와는 헤어졌고 성질 사나운 어머니(눈치아 스키아노)가 있다. 
마르첼로는 사랑하는 어린 딸 소피아(알리다 발다리 칼라브리아)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축구하면서 소일한다. 언젠가 돈을 벌어 딸과 함께 외국의 휴양지를 찾아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것이 꿈. 그래서 돈을 모아놓으려고 부업으로 서푼짜리 코케인 밀매를 한다. 그가 사는 동네는 마치 유령촌과도 같다. 아무렇게나 지은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칙칙한 색깔로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데 폐가나 같은 건물들이 보잘 것 없는 동네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사갈시 하고 있는 사람이 거구의 폭력적인 시모네(에도아르도 페스체). 시모네는 미친 개 같은 사람으로 험악하고 사납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가 마르첼로로 마르첼로는 자기에게도 가끔가다 폭력적으로 나오는 시모네를 참는데 그가 왜 시모네를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갱의 습격으로부터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범죄 친구를 동반한 시모네가 마르첼로를 윽박질러 아파트 털이에 운전사로 동원한다. 범죄 후 동네로 돌아오면서 시모네가 마르첼로에게 턴 집의 치와와가 짖어대 개를 냉장고 안에 처넣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내려놓은 뒤 아파트로 돌아가 냉장고 안의 개를 구해낸다. 마르첼로는 어찌 보면 사람보디 개를 더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르첼로에게 시모네가 찾아와 시모네 옆 가게의 금은방을 털자고 제의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금은방의 주인 프랑코(아다모 디오니시)가 자기 친구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시모네는 마르첼로가 저녁에 축구를 하러 나간 사이 마르첼로의 가게 안에 들어가 금은방과 붙은 벽을 뚫는다. 이로 인해 잔인하고 폭력적인 복수극이 벌어진다.  
폰테와 페스체의 연기가 뛰어나고 다색을 절제하고 화면을 퍼렇게 멍들게 채색한 컬러와 죽어가는 마을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잘 찍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침울하게 만드는 촬영도 아주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는 쿠바다’


영화 ‘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의 쿠바의 하바나는 미 자본주의자들의 카리브해 판 베이가스였다. 방탕과 타락이 판을 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바티스타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그 후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이 되었다. 이런 두 나라가 반세기 전 단절했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 4년 전.
바티스타정권의 타락상과 카스트로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로 흑백화면에 기록영화 식으로 묘사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는 쿠바다’(I Am Cuba·사진 ★★★★★)이다. 이 영화는 1962년 소련핵무기의 쿠바배치로 미·소간 핵전쟁의 전운이 감돈지 2년 후인 1964년 소련과 쿠바가 합작한 쿠바혁명을 찬미한 불후의 명화다. 
비배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써 대사를 가급적 줄인 채 미 자본주의의 방탕과 부패를 비판하고 아울러 미 정부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정권의 붕괴를 찬양한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매 이미지가 마치 시 구절과 같이 절실하고 아름답다.
카메라의 리듬이 춤을 추듯 하고 그 동작이 물 찬 제비의 비상처럼 사뿐히 날렵한데 이제는 사라진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있지만 매우 엄숙하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가 찍은 촬영은 새 영화언어를 창조해 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클로스업과 와이드 앵글을 잽싸게 교체해 가면서 찍은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카스트로의 쿠바를 환호하는 군중 속에 동참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역시 영상미가 수려한 ‘두루미들의 비상’(The Cranes Are Flying·1957)을 만든 소련의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했고 각본은 각기 소련과 쿠바의 시인들인 예프게니 예프투셴코와 엔리케 바넷이 썼다.
영화는 데카당한 바티스타의 쿠바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노리개 여자를 거래하는 미국남자들과 해군 그리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과 굶주리고 일상의 고역에 시달리는 농촌과 도시 슬럼의 쿠바인들의 모습을 병행해 보여 준다. 손에 들고 찍은 카메라가 마치 리듬체조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카메라 테크닉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내 이웃처럼 연민하게 된다.
제작기간 2년 그리고 상영시간 141분짜리 영화는 *식민주의와 그 것이 하바나에 미친 영향 *농부들의 비극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 준비 및 *산 속에서의 투쟁과 승리로 구성됐다.
팜트리와 사탕수수가 검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흰 깃털처럼 출렁이는 꿈을 꾸는 듯한 첫 장면 부터 단숨에 우리의 감관을 사로잡는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마리아. 마리아는 밤에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야한 나이트클럽에서 일 하다가 새벽이 되면 하바나 교외의 썩어 문드러져 가는 달동네로 퇴근한다. 6.25후 G.I.가 주둔한 한국이 생각난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르네는 과일 수레행상을 하면서 혁명세력에게 암호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면한 농부 페드로는 자기 사탕수수밭을 외국의 대기업에 잃게 되자 밭을 불 태워 버린다. 페드로의 10대난 자식들은 마을에 나가 코카 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양키 팝송을 듣는다. 
대학생 엔리케는 혁명가로 부르주아들의 단골 드라이브-인 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을 투척하면서 공산혁명 동조자들에게 경찰의 물 폭탄과 총격에 맞서라고 촉구한다. 이 장면은 4.19혁명을 연상케 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농부 알베르토는 처음에는 부상당한 혁명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나 정부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파괴되면서 저항의 무기를 든다. 
카메라가 이들의 얘기를 장면에서 장면으로 뛰어 넘어 포착하면서 우리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자이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 쿠바의 명물은 시가와 럼과 맘보와 룸바. 내 미국인 친구로 시가를 태우는 마이크는 “쿠바시가는 일종의 지위의 상징으로 맛이 굉장히 강하다”고 알려 줬다. 해적들의 술 럼은 코카 콜라와 라임과 칵테일한 ‘쿠바 리브레’가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미국에서는 ‘럼 앤 코크’라 부르는데 옛날 옛적에 세 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스가 ‘럼 앤 코카 콜라’라는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했었다.   
‘나는 쿠바다’가 새 프린트로 복원돼 상영된다. *13일(하오 4시와 7시30분)-화인아츠(8556 윌셔) *13일과 14일(상오 10시와 하오 7시30분)-플레이하우스7(673 이스트 콜로라도, 패사디나) *15일(하오 7시30분)-렘리 글렌데일(207 노스 메릴랜드) *16일(하오 7시30분)-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샌타모니카) *17일(하오 7시30분)-노호7(5240 랭커심 Blvd.-노스 할리웃)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2일 화요일

‘직업여성’ (Working Woman)


오르나(왼쪽)는 회사 사장 베니로 부터 끈질긴 성적 공격을 당한다.

직장 상사 성희롱에 속수무책인 여성의 고뇌


세계적으로 #미투와 ‘타임스 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시의에 잘 어울리는 이스라엘 영화로 가족의 생계와 함께 자신의 야망과 자존을 위해 직장에서 행해지는 성적 희롱과 농락을 참아야 하는 여성의 갈등을 요란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여류 감독 미할 아비아드는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여기는 직장에 갇힌 여인의 수치와 고뇌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태워가면서 스릴러 식으로 긴장감 있게 처리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야단을 떨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감독은 이를 억제하면서 차분하게 다뤄 사실감이 더 절실하다.
젊고 아름답고 야심이 있는 오르나(리론 벤 슐러쉬)는 어린 세 아이의 어머니로 잘 나가는 부동산 개발회사에 판촉사원으로 들어간다. 남편 오페르(오쉬리 코엔)가 막 차린 식당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아 오르나가 생계를 도와야 하는 실정이다. 
자기를 친절히 대해주는 사장 베니(메나쉐 노이)와의 첫 대면에서 취업이 허락돼 희망에 부푼 오르나는 첫 세일즈에 성공해 베니로부터 칭찬을 받으나 이어 베니가 오르나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취해 오르나를 대경실색케 만든다. 
겉으로 보기엔 신사 같은 베니는 이튿날 오르나에게 사과를 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나 베니의 오르나에 대한 성적 공격은 갈수록 더 심해진다. 
영화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베니의 오르나에 대한 끈질긴 성적 공격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이와 함께 오르나가 자기 가족의 생계와 본인의 체면을 위해 이런 치욕을 참아야 하는 모습과 심정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베니는 오르나가 자신의 노골적인 성적 접근에 끈질기게 저항하자 처음에는 사과로 시작해 이어 공격적으로 나오더니 급기야는 마치 적에 대한 복수식으로 오르나를 괴롭힌다. 일단 자기 행동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오르나를 달랜 베니는 파리 출장에 오르나가 꼭 필요하다면서 함께 파리로 간다. 
베니와 함께 파리로 간 오르나의 결정이 다소 믿어지지가 않지만 가족 생계 문제와 함께 다시는 성적 희롱을 하지 않겠다는 베니를 믿어보자는 오르나의 심리상태를 전연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오르나는 술에 취한 베니의 노골적인 성적 공격을 받는다. 후에 오르나는 자기 어머니에게 파리에서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오르나는 베니의 이런 성적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 좌절감에 빠지고 심적으로 갈팡질팡 하면서 자신에 대해 회의까지 하는데 그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태를 슐러쉬가 티내지 않고 안으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와 함께 멀쩡한 신사 같은 베니의 악의와 위협을 노이가 거의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연기하고 있다.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뚜렷이 표현한 소품 메시지 영화로 마지막 오르나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호텔 종업원 아르준(데브 파텔)이 테러리스틀의 동향을 숨어서 살펴보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인질 총살극… 긴장·공포·참혹


2008년 인도 뭄바이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타지마할 팰리스호텔에서 일어난 무슬림 극렬분자들의 테러사건을 그린 실화로 긴장감 있게 만들었지만 매우 피상적이다. 
호주 감독 앤소니 마라스의 데뷔작으로 세트와 촬영과 일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초조와 불안감 등 그런대로 볼만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가상한 제작 의도가 제대로 결실을 맺진 못했다.
우선 큰 문제가 작중 중요한 인물들을 여러 사람으로 분산시켜 그 어느 사람에게도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 점이다. 필요 없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각시켰고 인물들을 너무 2차원적으로 그려 피와 살이 있는 산 사람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이와 함께 역경을 이긴 인간 승리라는 흔해빠진 주제를 상투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선감이 없다. 부유한 호텔 손님들과 호텔 종업원 그리고 테러리스들과 경찰 등 테러와 관계된 사람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얘기가 집중력을 잃고 산만하나 볼만은 하다. 
10여명의 젊은 무슬림 극렬테러리스트들이 인파로 북적거리는 뭄바이에 도착해 기차역과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테러를 자행한다. 테러는 실제로는 사흘간 계속됐지만 영화에서는 하루 만에 끝난다. 이어 이들 중 몇 명이 타지마할 호텔을 점령한다. 
호텔손님들 중 부각되는 사람들이 갓난 아기를 가진 데이빗(아미 해머)과 그의 무슬림 아내 자라(나자닌 보니아디)와 아기의 보모 샐리(틸다 코브햄-허비) 그리고 러시안 백만장자로 특공대 출신인 바실리(영국배우 제이슨 아이작스). 이들과 함께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남기로 한 호텔의 종업원들이 소개되는데 그들 중 중요한 사람들이 용감한 호텔 수석요리사 헤만트 오베로이(아누팜 커)와 젊은 웨이터 아르준(데브 파텔). 이들 외에도 호주에서 인도로 여행 온 젊은 부부와 호텔 리셉셔니스트 등이 소개된다. 
감독은 호텔 곳곳에 갇힌 이들 10여명의 인물들의 상황을 오락가락하면서 보여주는데 오베로이와 특히 아르준을 빼곤 나머지는 지나치게 가볍게 묘사돼 그들의 생사에 별 관심이 가질 않는다. 이들보다는 오히려 이름 없는 테러리스트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진짜 사람들 같다.  
영화는 장시간 계속되는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인질 총살로 보는 사람을 공포와 불안에 빠지게 만드는데 매우 사실적이긴 하지만 마치 다음엔 누가 죽나 하고 기다리는 식이어서 내가 사람 죽이는 것을 구경하려고 이 영화를 보고 있나 하는 자괴심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가끔 당시 상황을 찍은 실제 필름을 보여줘 사실감을 부추긴다. 
사건 당시 경찰 특공대가 뭄바이로부터 800마일 떨어진 뉴델리에 있어서 구조가 늦어졌다. 호텔 종업원들의 영웅정신을 제법 잘 그리긴 했지만 맹탕 같은 영화로 바실리와 샐리 역은 얘기에 전연 불필요한 인물들이다. 해머의 연기는 뻣뻣하기 짝이 없지만 파텔과 커가 실속 있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R등급. Bleecker Stree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재는 순백색’(Ash Is Purest White)


구오 빈이 키아오(앞)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중국 대륙 무대로 갱스터와 순애보


격변하는 중국사회와 이로 인한 전통의 파괴 및 경제성장에 현혹된 탐욕과 빈부의 차이에 관심이 깊은 중국의 명장 지아 장케(각본 겸)의 영화로 여기서도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와 함께 한 여인의 장구한 세월을 통한 순애보를 여유 있게 얘기하고 있다.
또 감독이 역시 잘 다루는 범죄세계에 매어달린 변두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갱스터와 그의 여인의 오랜 인간관계를 중국의 양자강을 비롯한 거대한 대륙 캔바스를 바탕으로 내밀하게 감정적으로 취급했다. 
서양문명과 현대화에 의해 침식당하는 중국 고유문화와 전통 그리고 이와 함께 기술과 자본주의에 의해 피멍이 드는 서민들의 정신적 상태를 갱스터영화와 러브스토리와 함께 3폭의 병풍화 식으로 그린 준수하면서 재미있는 영화다. 후반에 가서 얘기가 다소 반복되는 감이 있고 서술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잘 만든 작품이다.
얘기는 2001년에서 시작해 2018년 신년 전날에 끝난다. 중국 북서부 깡촌 탄광촌. 갱스터 구오 빈(리아오 판)은 동네 나이트클럽 뒷방에 차려 놓은 도박판을 지배하는 자로 부패한 부동산 개발업자를 모신다. 
빈에겐 아름다운 애인 키아오(자오 타오-감독의 아내)가 있는데 키아오는 연약하게 보이지만 강한 여자로 남자들이 함부로 여기질 못한다. 터프 레이디로 영화의 주인공은 키아오다. 키아오는 중국 고유의 것과 신문화를 모두 즐기는 개화여인이자 통이 큰 사람이다.
빈의 두목이 라이벌 갱에 의해 제거되면서 이들은 이번에는 빈을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키아오가 위기에 처한 빈을 총기를 사용해 구출해 주면서 키아오가 불법무기 소지죄로 5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키아오는 총의 주인인 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대신 감옥에 간 것. 
5년 후. 출옥한 키아오는 빈을 찾지만 옥중의 키아오를 한 번도 면회하지 않은 빈은 거주지를 옮긴 채 키아오를 외면한다. 그러나 키아오는 빈의 입으로 직접 그의 외면의 이유를 듣기 위해 빈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키아오에게 거의 코믹한 재난이 일어난다. 그러나 옥중에서 삶의 기술을 터득한 키아오는 이 재난을 재치 있게 넘긴다. 그리고 마침내 키아오는 빈을 만난다. 이 장면이 매우 감정적이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현재의 탄광촌에서 이어진다. 집으로 돌아온 키아오는 도박장의 여주인으로 마을에 군림한다. 그리고 키아오는 몸을 못 쓰게 된 빈을 집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키아오의 이런 마음자세는 그의 빈에 대한 사랑에서라기보다 용서와 인간성의 탓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리아오 판과 자오 타오의 연기가 훌륭하다. 두 사람 모두 차분하게 사실적이면서도 안으로 감정이 충실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큰 화폭에 풍경화를 그리듯이 대담하게 장면들을 찍은 촬영도 아주 좋다. Cohen Media Group.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와일드 번치’ 50주년


올해는 생전 ‘폭력의 미학’ 추구자라 불린 샘 페킨파 감독의 대하 웨스턴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1969)가 개봉 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웨스턴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 페킨파의 많은 영화들은 난무하는 유혈폭력이 특징으로 ‘스트로 독스’와 ‘겟 어웨이’ 그리고 ‘킬러 엘리트’ 및 ‘크로스 오브 아이언’ 등이 그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유난히 살육의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것은 마지막 웨스턴이라 불리는 ‘와일드 번치’다. 페킨파가 말했듯이 이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의 악인들에 관한 단순한 얘기”다.
서부시대와 무법자 총잡이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20세기 초, 한물간 나이 먹은 무법자들의 한탕과 의리와 우정 그리고 자존과 자포자기적인 피의 살육전을 장렬하게 그린 작품으로 사나이들의 영화다. 이 영화는 존 웨인의 웨스턴에서 보여주던 전형적인 카우보이 웨스턴의 기본을 완전히 파괴한 작품이다. 기존 웨스턴이 간직한 서부의 도덕과 신화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다.
내용(오스카 각본상 후보)과 촬영(오스카상 후보)과 윌리엄 홀든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베테런 스타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모습과 묵직한 연기 그리고 라스트신의 슬로 모션으로 전개되는 장시간의 총격전 등 모든 것이 훌륭한 영화로 매우 비극적이요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현대화에 의해 서부시대가 사라져가는 1913년. 나이 먹은 무법자 파이크 비숍(홀든)이 이끄는강도단이 미·멕시코(멕시코서 촬영) 접경마을의 철도사무소를 터나 이들을 기다리며 잠복해 있던 바운티 헌터들에 의해 기습을 당한다. 헌터들의 리더는 한때 파이크의 동료였으나 지금은 옥살이를 하고 있는 디크 손턴(로버트 라이언)으로 그는 파이크 일당을 잡는 대가로 사면을 약속 받았다.
기습에서 살아남은 파이크는 일당인 더치 엥스트롬(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라일(워렌 오츠)과 텍터(벤 잔슨)형제 및 앙헬(하이메 산체스) 그리고 후에 만난 늙은 프레디 사익스(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등과 함께 추격하는 디크 일당을 피해 혁명의 와중에 빠진 멕시코로 도주한다.
여기서 파이크 일당은 마을을 지배하는 멕시칸 장군 마파체(멕시코 베테런 배우이자 감독인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와 계약을 맺는다. 미군용무기 수송열차를 털어 무기를 마파체에게 주고 대신 금화를 받기로 한다. 열차에는 디크일당이 타고 있다.
파이크 일당과 디크 일당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무기약탈은 성공한다. 파이크 일당은 마파체에게 무기를 전달하고 마을을 떠나려고 하나 마파체가 자기에게 거역하는 앙헬을 체포해 모진 고문을 하자 친구에 대한 의리와 충성이라는 서부 사나이들의 규약을 지키기 위해 마파체와 그의 병사들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노 무법자들인 파이크와 더치 그리고 라일과 텍터 등 4명과 마파체 휘하의 수백 명의 군인들 간에 유혈이 난무하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슬로 모션으로 장시간 계속되는 이 라스트 신은 피의 발레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한데 특히 파이크가 탈취한 브라우닝 연발기관총으로 멕시칸 군인들을 살육하는 장면(사진)이 압권이다.
할리웃 영화사에 길이 남는 이 살육전은 개봉 당시만 해도 일부 관객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지나친 유혈폭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존 웨인의 영화는 어떻게 된 거냐”며 불평을 했고 한 비평가는 “추하고 의미 없는 구역질나는 피범벅 영화”라고 비판했다.   
페킨파는 영화에서 현대화에 의해 침식당하는 옛 서부사나이들의 의리와 충성과 우정 그리고 그들만의 규약을 비탄하고 있다. 이 것들의 역사 속으로의 퇴장을 파이크 일당의 자살행위와도 같은 죽음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파이크 일당은 말로는 자신들의 도덕적 규율을 내세우나 그 것이 불편할 때는 외면하는 ‘악인들’이다. 그런 ‘악인들’이 뒤 늦게 자신들의 도덕률과 인간성을 되찾기로 하면서 격렬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본질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하겠다.
한물간 무법자인 파이크 역으로는 리 마빈, 버트 랭카스터, 찰턴 헤스턴 및 로버트 미첨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페킨파는 스타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윌리엄 홀든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극중 인물과 그를 표현하는 실제 인물이 잘 오버랩 되는 선택이다. 
이 영화의 폭력성은 개봉 당시 미국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로 국내정세는 혼란하고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는가 하면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등 미국이 국내외로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던 때였다. 당시 이 영화와 함께 또 다른 유혈폭력적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1967)와 같은 영화들이 나온 것은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웨인 공항


명장 존 포드와 함께 ‘역마차’ ‘기병대 3부작’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명작웨스턴을 만든 존 웨인은 미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웨스턴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기독교신자로서 철저한 극우보수파 공화당원이었던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과 흑인과 동성애자 그리고 공산당과 좌파와 사회주의자 및 진보파 민주당원 등을 싸잡아 증오한 호전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그런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의형제쯤 되는 사람이다.   
최근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힐직이 웨인의 텃밭인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인 ‘존 웨인 공항’(사진)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글을 쓰면서 새삼 웨인의 과거 인종차별과 편견에 관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인은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 땅을 간직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가 웨스턴에서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총으로 쏴 죽인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이다. 웨인은 ‘수색자’에서는 인디언 사체의 눈에 대고 총질을 하는데 그 이유는 눈이 없는 인디언의 영혼은 정처 없이 허공중을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웨인은 또 흑인도 하급인간으로 여겼다. 인터뷰에서 그는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에 관해서는 “스튜디오들은 지금 변태영화들을 양산하고 있다. 수년 내 사람들은 이에 넌덜머리를 낼 것”이라면서 그 대표적 영화로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들었다.
그는 또 공산주의를 사갈시 했는데 웨인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 탓이다. 그가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 가진 인터뷰에서 흑인들을 멸시하는 발언을 한 까닭도 이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웨인의 생일은 5월 26일로 2016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이 날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이유도 그의 이런 인종적 편견 때문이었다.
생전 ‘듀크’라 불린 웨인(본명 매리온 로버트 모리슨)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제임스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워 준장으로까지 진급했으나 웨인은 징집을 회피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약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무쌍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가히 희극적이다. 그러고 보니 웨인과 트럼프가 다 군대에 안 간 것도 서로 닮았다.
존 웨인하면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정복자’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영화에서 웨인은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그가 잘 쓰는 총 대신 칼로 적을 무찔렀다. 나는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렸었다.
아시안 배우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영화로 코가 오뚝한 내가 좋아하던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애그네스 모어헤드, 존 호잇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또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영화는 원폭실험장소에서 멀지 않은 유타 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딕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잇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 외에도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웨인은 1979년 위암으로 72세로 사망했다.
히칙은 칼럼에서 웨인의 웨스턴과 전쟁영화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기호에 달린 것이지만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인 국제공항이 인종차별주의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파의 아성인 오렌지카운티가 지난 중간선거에서 ‘블루 웨이브’에 세척 당했고 미남부에서 남북전쟁영웅들의 동상이 철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을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히칙은 이어 공항의 새 이름은 그냥 ‘오렌지카운티 공항’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LA에서 존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도색잡지 펜트하우스 발행사인 플린트출판사 건물 앞에 가면 된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이 서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포르노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