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존 포드와 함께 ‘역마차’ ‘기병대 3부작’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명작웨스턴을 만든 존 웨인은 미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웨스턴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기독교신자로서 철저한 극우보수파 공화당원이었던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과 흑인과 동성애자 그리고 공산당과 좌파와 사회주의자 및 진보파 민주당원 등을 싸잡아 증오한 호전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그런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의형제쯤 되는 사람이다.
최근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힐직이 웨인의 텃밭인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인 ‘존 웨인 공항’(사진)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글을 쓰면서 새삼 웨인의 과거 인종차별과 편견에 관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인은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 땅을 간직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가 웨스턴에서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총으로 쏴 죽인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이다. 웨인은 ‘수색자’에서는 인디언 사체의 눈에 대고 총질을 하는데 그 이유는 눈이 없는 인디언의 영혼은 정처 없이 허공중을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웨인은 또 흑인도 하급인간으로 여겼다. 인터뷰에서 그는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에 관해서는 “스튜디오들은 지금 변태영화들을 양산하고 있다. 수년 내 사람들은 이에 넌덜머리를 낼 것”이라면서 그 대표적 영화로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들었다.
그는 또 공산주의를 사갈시 했는데 웨인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 탓이다. 그가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 가진 인터뷰에서 흑인들을 멸시하는 발언을 한 까닭도 이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웨인의 생일은 5월 26일로 2016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이 날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이유도 그의 이런 인종적 편견 때문이었다.
생전 ‘듀크’라 불린 웨인(본명 매리온 로버트 모리슨)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제임스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워 준장으로까지 진급했으나 웨인은 징집을 회피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약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무쌍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가히 희극적이다. 그러고 보니 웨인과 트럼프가 다 군대에 안 간 것도 서로 닮았다.
존 웨인하면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정복자’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영화에서 웨인은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그가 잘 쓰는 총 대신 칼로 적을 무찔렀다. 나는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렸었다.
아시안 배우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영화로 코가 오뚝한 내가 좋아하던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애그네스 모어헤드, 존 호잇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또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영화는 원폭실험장소에서 멀지 않은 유타 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딕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잇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 외에도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웨인은 1979년 위암으로 72세로 사망했다.
히칙은 칼럼에서 웨인의 웨스턴과 전쟁영화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기호에 달린 것이지만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인 국제공항이 인종차별주의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파의 아성인 오렌지카운티가 지난 중간선거에서 ‘블루 웨이브’에 세척 당했고 미남부에서 남북전쟁영웅들의 동상이 철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을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히칙은 이어 공항의 새 이름은 그냥 ‘오렌지카운티 공항’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LA에서 존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도색잡지 펜트하우스 발행사인 플린트출판사 건물 앞에 가면 된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이 서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포르노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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