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4월 2일 화요일

‘와일드 번치’ 50주년


올해는 생전 ‘폭력의 미학’ 추구자라 불린 샘 페킨파 감독의 대하 웨스턴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1969)가 개봉 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웨스턴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 페킨파의 많은 영화들은 난무하는 유혈폭력이 특징으로 ‘스트로 독스’와 ‘겟 어웨이’ 그리고 ‘킬러 엘리트’ 및 ‘크로스 오브 아이언’ 등이 그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유난히 살육의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것은 마지막 웨스턴이라 불리는 ‘와일드 번치’다. 페킨파가 말했듯이 이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의 악인들에 관한 단순한 얘기”다.
서부시대와 무법자 총잡이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20세기 초, 한물간 나이 먹은 무법자들의 한탕과 의리와 우정 그리고 자존과 자포자기적인 피의 살육전을 장렬하게 그린 작품으로 사나이들의 영화다. 이 영화는 존 웨인의 웨스턴에서 보여주던 전형적인 카우보이 웨스턴의 기본을 완전히 파괴한 작품이다. 기존 웨스턴이 간직한 서부의 도덕과 신화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다.
내용(오스카 각본상 후보)과 촬영(오스카상 후보)과 윌리엄 홀든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베테런 스타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모습과 묵직한 연기 그리고 라스트신의 슬로 모션으로 전개되는 장시간의 총격전 등 모든 것이 훌륭한 영화로 매우 비극적이요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현대화에 의해 서부시대가 사라져가는 1913년. 나이 먹은 무법자 파이크 비숍(홀든)이 이끄는강도단이 미·멕시코(멕시코서 촬영) 접경마을의 철도사무소를 터나 이들을 기다리며 잠복해 있던 바운티 헌터들에 의해 기습을 당한다. 헌터들의 리더는 한때 파이크의 동료였으나 지금은 옥살이를 하고 있는 디크 손턴(로버트 라이언)으로 그는 파이크 일당을 잡는 대가로 사면을 약속 받았다.
기습에서 살아남은 파이크는 일당인 더치 엥스트롬(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라일(워렌 오츠)과 텍터(벤 잔슨)형제 및 앙헬(하이메 산체스) 그리고 후에 만난 늙은 프레디 사익스(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등과 함께 추격하는 디크 일당을 피해 혁명의 와중에 빠진 멕시코로 도주한다.
여기서 파이크 일당은 마을을 지배하는 멕시칸 장군 마파체(멕시코 베테런 배우이자 감독인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와 계약을 맺는다. 미군용무기 수송열차를 털어 무기를 마파체에게 주고 대신 금화를 받기로 한다. 열차에는 디크일당이 타고 있다.
파이크 일당과 디크 일당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무기약탈은 성공한다. 파이크 일당은 마파체에게 무기를 전달하고 마을을 떠나려고 하나 마파체가 자기에게 거역하는 앙헬을 체포해 모진 고문을 하자 친구에 대한 의리와 충성이라는 서부 사나이들의 규약을 지키기 위해 마파체와 그의 병사들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노 무법자들인 파이크와 더치 그리고 라일과 텍터 등 4명과 마파체 휘하의 수백 명의 군인들 간에 유혈이 난무하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슬로 모션으로 장시간 계속되는 이 라스트 신은 피의 발레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한데 특히 파이크가 탈취한 브라우닝 연발기관총으로 멕시칸 군인들을 살육하는 장면(사진)이 압권이다.
할리웃 영화사에 길이 남는 이 살육전은 개봉 당시만 해도 일부 관객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지나친 유혈폭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존 웨인의 영화는 어떻게 된 거냐”며 불평을 했고 한 비평가는 “추하고 의미 없는 구역질나는 피범벅 영화”라고 비판했다.   
페킨파는 영화에서 현대화에 의해 침식당하는 옛 서부사나이들의 의리와 충성과 우정 그리고 그들만의 규약을 비탄하고 있다. 이 것들의 역사 속으로의 퇴장을 파이크 일당의 자살행위와도 같은 죽음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파이크 일당은 말로는 자신들의 도덕적 규율을 내세우나 그 것이 불편할 때는 외면하는 ‘악인들’이다. 그런 ‘악인들’이 뒤 늦게 자신들의 도덕률과 인간성을 되찾기로 하면서 격렬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본질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하겠다.
한물간 무법자인 파이크 역으로는 리 마빈, 버트 랭카스터, 찰턴 헤스턴 및 로버트 미첨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페킨파는 스타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윌리엄 홀든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극중 인물과 그를 표현하는 실제 인물이 잘 오버랩 되는 선택이다. 
이 영화의 폭력성은 개봉 당시 미국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로 국내정세는 혼란하고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는가 하면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등 미국이 국내외로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던 때였다. 당시 이 영화와 함께 또 다른 유혈폭력적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1967)와 같은 영화들이 나온 것은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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