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1950년대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스크린의 호남 탭 헌터가 8일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바바라에에서 86세로 타계했다. 헌터는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미남인데다가 우람찬 체격의 소유자여서 특히 10대 소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나도 어렸을 때 그의 팬이었다.
헌터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과 함께 작년 4월에 그를 인터뷰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답지 않게 젊고 건강한 모습의 헌터는 매우 겸손했는데 질문에 유머를 섞어가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매우 편안하고 서민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로버트 왜그너 등 생전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헌터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본명이 아서 앤드루 켈름으로 뉴욕 태생인 헌터의 전성기인 1950년대는 스튜디오들이 배우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때로 헌터도 진지한 배우가 되려는 자기 뜻과는 달리 잘 생긴 얼굴과 늠름한 체격 때문에 스튜디오에 의해 재생된 ‘비프케이크’(근육질 남자)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 자주 웃통을 벗어 제치고 늠름한 상반신을 뽐내곤 했는데 내가 헌터하면 제일 먼저 기억되는 영화도 나탈리 우드와 공연한 웨스턴 ‘버닝 힐즈’(The Burning Hills^1956)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서울 시청 앞의 경남극장에서 봤는데 그의 맨살이 드러난 상반신을 보면서 왠지 왜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인터뷰 때 “감독이 웃통을 벗으라고 지시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 때 스튜디오들은 늘 그랬다. 난 그 영화 외에도 심지어 전쟁영화인 ‘배틀 크라이’에서도 상반신을 벗어 제쳤다”면서 크게 웃었었다. 그런데 헌터는 제임스 딘과 폴 뉴만을 제치고 ‘배틀 크라이’(Battle Cry^1955)의 오디션에서 발탁됐다.
헌터는 나탈리 우드와 매우 가까웠던 사이로 팬들은 둘을 애인으로 알았지만 이는 사실 스튜디오가 동성애자인 헌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선전에 지나지 않았다. 헌터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배우는 ‘사이코’의 앤소니 퍼킨스로 둘의 관계는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었다. 헌터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2005년에 쓴 자서전 ‘탭 헌터 칸피덴셜’(Tab Hunter Confidential)에서 밝혔는데 책은 후에 흥미진진한 기록영화로 만들어졌다.
헌터는 가수로서도 빅 히트 곡을 냈다. 그가 1957년에 부른 ‘영 러브’(Young Love)는 싱글 넘버원에 올랐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다. 그의 또 다른 히트 곡들로는 ‘애플 블라섬 타임’과 ‘캔디’ 등이 있다.
말을 좋아하는 헌터는 남가주목장에서 일하다 에이전트에 의해 발탁돼 곧 이어 ‘비프케이크’로 제조됐는데 두 번째 출연 영화로 린다 다넬과 나온 ‘욕망의 섬’(Island of Desire^1952)에서 부터 맨살 상반신을 드러냈다. 당시 20세였던 헌터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별로 안 좋은 영화라며 웃었었다.
헌터는 여러 편의 웨스턴에 나왔는데 그 중 기억할만한 것이 밴 헤플린의 사이코 아들로 나온 ‘건맨즈 워크’(Gunman‘s Walk^1958). 어렸을 때 성당 성가대원이었던 헌터는 뮤지컬에도 나왔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전인 야구영화 ‘댐 양키즈’(Damn Yankees^1958)는 ‘왓에버 롤라 원츠’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는 즐거운 영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1960년대 들어 ‘올-아메리칸 보이’였던 헌터도 나이를 먹자 스크린 출연이 뜸해지게 된다. 조연과 B급 영화 및 TV에 게스트로 나왔고 1970년대에는 식당 식 극장을 돌며 출연했다.
이러던 헌터가 뒤 늦게 각광을 받은 영화가 미드나잇 무비의 1인자 존 워터스가 감독한 얄궂은 코미디 ‘폴리에스터’(Polyester^1981). 여기서 헌터는 여장남자 배우인 디바인과 공연했는데 이 영화와 함께 역시 디바인이 나온 ‘러스트 인 더 더스트’(Lust in the Dust^1985)는 컬트영화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클래식영화를 요즘 스튜디오영화 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옛날 배우들의 스타 파워 탓이다. 헌터도 인터뷰에서 “옛날엔 스타들에게 신비감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 것이 사라졌다”면서 공연한 라나 터너의 황홀한 존재를 그리워했었다.
헌터는 지난 35년간 함께 살아온 폭스사 제작자 출신의 남편 앨란 글래서를 자기 삶의 방향의 조타수로 여겨왔는데 사망하기 얼마 전 쓰러졌을 때도 앨란의 품에 안겼었다. 인터뷰에서 헌터는 젊음의 비결에 대해 “비누와 물이다. 그리고 이를 닦고 며칠에 한 번 면도를 한다. 그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 어깨를 힘차게 꼭 붙잡으며 큰 미소를 짓던 헌터(사진)를 만난 지가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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