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6월 29일 금요일

‘불복종’ 의 레이철 바이스




영화 ‘불복종’(Disobedience)에서 유대교 랍비인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오래간만에 뉴욕으로부터 자기가 뛰쳐나온 런던 북부의 정통 보수 유대인 동네를 찾아와 결혼한 옛 동성애 연인과 사랑을 재점화시키는 사진사 로닛으로 나오는 레이철 바이스(48)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감독은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팬타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을 만든 칠레의 세바스티안 렐리오.
짙고 뚜렷한 윤곽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지적인 바이스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물음에 대답했는데 친근감이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엄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바이스는 현재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는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다.


“정통 유대교·동성애 소재로 자유를 찾는 여정”


▲당신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로닛의 상대역인 에스티로 레이철 맥애담스를 선택한 것도 당신인가.
“감독인 렐리오와 상의해 처음으로 고른 사람이 맥애담스였다. 맥애담스는 각본을 읽고 당장에 반해 내게 ‘내 가슴이 에스티 역을 하고파서 피를 흘리고 있다’며 역을 달라고 했다. 맥애담스에게 처음으로 역을 제공한 우리는 참 운이 좋았다.” 

▲배우로서 역에 깊이 함몰되기 위해 때로 음악에 의존하는가.
“맡은 역의 감정에 빠져들기 위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면 감정이 용솟음치곤 했다. 로닛과 에스티가 오래간만에 만나 사랑을 재점화시키는데 그들이 옛날에 듣던 팝뮤직이 크게 작용을 한 것처럼 오래된 팝뮤직은 그 어느 다른 것들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로닛은 매우 강하고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로닛은 강하다기보다 반항적이라고 봐야겠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연약하고 허점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오래 전에 떠난 집으로 잠시나마 돌아온 것은 자신으로부터 절단된 과거와의 재연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언가로부터 계속해 도망 다니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개인의 자유를 찾는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이 영화는 렐리오의 첫 영어 영화인데 그와 일한 경험은.
“렐리오는 영어를 잘 구사하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내가 이 영화의 원작인 책을 그에게 보냈는데 가톨릭신자로 동성애자가 아닌 그가 연출을 쾌히 수락한데 대해 처음엔 놀랐다. 그는 각본에도 참여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렐리오가 런던에 사는 유대인들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대만 사람인 앙리가 옛날 영국 사람들의 얘기인 ‘이성과 감성’을 연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렐리오는 책과는 아주 거리가 먼 문화권에 속하나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렐리오를 감독으로 선정했는가
“58세 난 여인의 성적욕망과 데이트의 실패를 사실적이면서도 우습게 그린 ‘글로리아’(Gloria)를 보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미국영화 같았으면 글로리아는 할머니로나 나왔을 것이다. 렐리오는 58세 여자도 성적 욕망이 강하고 또 그 나이가 생의 성숙기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영화야 말로 걸작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맡긴 것이다.”

옛 연인 사이인 로닛과 에스티(왼쪽)가 밀회장소를 찾아가고 있다.

▲무엇 때문에 영화의 소재에 이끌렸는가.
“정통 보수 유대교인들의 사회라는 외부와 차단된 사람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난 두 여자의 얘기를 찾고 있었다. 소설은 내가 자란 런던 북부 사람들의 얘기이면서도 내가 전연 몰랐던 사회의 얘기라는 점에 이끌렸다. 그들의 사회는 철저히 사적인 사회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로닛이 어렸을 때 자기 사회를 떠났듯이 사라질 수 있는 용기다. 또 어떻게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어떻게 자신이 되고픈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통 보수 유대교인 사회의 얘기이면서도 모든 집단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얘기로 보는가.
“자기 사회에만 집념하는 모든 다른 집단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무슬림과 기독교를 비롯해 극단적으로 자기 집단에만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렐리오가 이 얘기에 이끌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소설을 쓴 네이오미 알더만의 경험담이다.”

▲로닛은 사진사인데 당신도 사진촬영에 능한가.
“사진사는 아니지만 사진 작품을 수집한다. 하셀블라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은 배웠다.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재능은 없지만 사진을 사랑하고 사진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당신의 부모는 유대인인데 그 부모 아래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아버지는 유대인이나 어머니는 엄격한 가톨릭 집안 태생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려고 개종했다. 따라서 나는 두 종교를 다 이해하며 자랐다. 그러나 난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자란 사회의 사람들은 신에 집착하는 극보수파 유대인들이어서 내겐 이상하게 보였다. 하지만 믿음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난 아직 그 것을 찾지 못했으나 언젠가 신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로닛과 에스티의 섹스 신은 매우 뜨겁고 또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데 그 장면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섹스 신을 찍을 때면 늘 이것이 정말로 얘기에 필요한 것이냐는 점을 생각하곤 한다. 우리의 섹스 신은 얘기의 중심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성적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에스티가 로닛을 만나면서 비로소 둘만이 서로의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감정적인 부분이다. 감독이나 나나 연기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만을 위해선 준비했다. 렐리오가 미리 구상한대로 섹스 신을 찍었는데 하루 종일 찍었지만 영화에는 단 6분간만 계속된다. 그리고 잘 보면 알겠지만 노골적인 나체장면은 없다. 나체를 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것이 더 에로틱하다. 그러나 우리의 섹스 신은 단지 섹스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영혼이자 마음의 표현이다. 매우 깊은 것이다.”

▲바쁜 연기자로서의 삶과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의 삶에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내 아들 헨리 챈스 아로노프스키(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마더!’ 감독)는 11살이다. 다른 모든 직업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직업과 가정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직업여성으로 어머니 노릇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일하다가도 시간을 내 아이에게 그 시간을 할애하는 수밖에 없다. 난 지금 직업여성으로서나 어머니로서 모두 스스로를 즐기고 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가을에 나올 ‘페이보릿’(The Favorite)으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연출했다. 1608년 영국의 앤 여왕시대 궁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힘든 성격을 지닌 3명의 여자들의 권력쟁취 드라마다. 나와 엠마 스톤과 올리비아 콜만이 주연이다. 아직 완성된 영화는 안 봤지만 각본이 아주 좋다.”

▲에스티의 남편인 젊은 랍비 역의 알레산드로 니볼라는 어떻게 선정했는가.
“우린 20여 년 전에 마이클 윈터바틈 감독의 ‘나는 너를 원해’(I Want You)라는 영화에서 공연한 바 있다. 그래서 우린 그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가 각본을 읽은 뒤 완전히 자기 역에 몰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역은 초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또 완전히 자기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정말로 하기를 원해야 되는 역이다. 니볼라는 참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완전히 역과 동일 인물이 된 연기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인도 아니고 또 그런 사회에서도 자라지 않았다. 그런데도 니볼라는 자기 역을 진실로 이해했다. 그는 훌륭한 배우다.”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가 자유라고 말했는데 당신에게 있어 자유는 어떤 뜻을 지녔는가.
“자유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도전이다. 그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힘든 도전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다. 난 그저 하나의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 얘기를 사랑한 까닭은 그것이 자유에 대한 명상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우려면 불복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인데 따라서 불복종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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