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그레이트 사일런스’


괴이하고 과장되고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이탈리아의 웨스턴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1960년대 한 때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었다. 이 웨스턴의 대명사와도 같은 감독이 세르지오 레오네로 그가 만든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는 레오네와 함께 그 때까지만 해도 무명씨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유명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대학생 때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시가릴로를 입 한쪽에 물고 가늘게 뜬 눈으로 째려보는 과묵한 건 맨 이스트우드의 카리스마와 채찍질과 휘파람 소리를 섞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그리고 미국 웨스턴과는 전연 다른 폭력에 ‘야, 이런 웨스턴도 있구나 ’하면서 넋을 잃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얼마 있다가 같은 극장에서 또 한 번 봤다.
아끼라 구로사와의 ‘요짐보’(Yojimbo^1961)를 바탕으로 만든 ‘황야의 무법자’는 빅 히트를 하면서 제2편 ‘속 황야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1965)와 제3편 ‘좋은 자,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 등이 나왔는데 편이 늘어날수록 재미도 더 있다.
그런데 레오네의 이름은 잘 알려졌지만 그와 같은 때 활동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또 다른 명장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코르부치의 웨스턴은 레오네의 그 것보다 훨씬 더 사납고 거칠고 무자비해 보고 있자면 속 피부가 얼얼해지는 쓴 맛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코르부치의 대표적 웨스턴이 ‘장고’라는 이름을 인정사정없는 웨스턴 킬러의 대명사처럼 만들어놓은 ‘장고’(Django^1966)다. 나는 장고로 나온 프랑코 네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이 폭력적이요 음습한 분위기의 영화를 국도극장에서 봤는데 개틀링 연발기관총을 관 속에 넣고 끌고 다니면서 악인들을 닥치는 대로 쏴 죽이는 장고의 액션과 비명과도 같은 독특한 사운드 트랙에 정신이 팔려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었다.
코르부치의 열렬한 팬이 유혈폭력에 있어 남보다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타란티노는 코르부치의 웨스턴을 “그의 서부는 웨스턴장르의 그 어느 감독의 것보다도 가장 폭력적이요 초현실적이며 인정사정없는 풍경”이라고 찬양한바 있다.
제이미 팍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타란티노의 ‘장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2012)는 코르부치의 ‘장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네로가 캐미오로 나오고 또 ‘장고’의 주제음악도 빌려다 썼다.
코르부치가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와 한판 겨뤄 보자고 만든 또 하나의 걸작 ‘스파게티’ 웨스턴이 만든지 50주년이 되는 올 해 최근에 와서야 LA등 대도시에서 잠깐 개봉된 ‘그레이트 사일런스’(The Great Silence^1968^사진)다. 천지사방이 눈으로 덮인 유타 주의 스노 힐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그렸는데 타란티노의 잔혹한 웨스턴 ‘가증스런 8인’(The Hateful Eight^2015)의 무대가 백설이 만건곤한 와이오밍 주인 것도 코르부치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레이트 사일런스’의 사일런스는 말을 못하는 정의의 건 맨 이름으로 프랑스의 명우 장-루이 트랭티냥이 나온다. 그가 이탈리아 산 웨스턴에 나온 까닭은 대사를 말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일런스의 천적은 현상금을 노리고 졸개들과 함께 사람 사냥을 하는 잔인한 로코. 로코로는 독일의 명우로 ‘속 황야의 무법자’에도 나온 클라우스 킨스키가 나온다. 클라우스는 ‘테스’에 주연한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다.
로코는 졸개들을 데리고 현상금이 걸린 범법자들로 몰려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을 사냥하는데 독일제 마우저 권총을 쓰는 속사의 명수 사일런스가 이들에 맞서면서 피의 살육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편 저 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이 영화는 전연 뜻 밖에 여느 웨스턴과는 달리 처절한 비극으로 끝난다. 
선과 악의 구별이 분명치 않은 이 영화처럼 염세적이요 비관적인 웨스턴도 보기 드문데 그래서 코르부치는 해피 엔딩 판을 따로 찍었다. 영화가 지독하게 염세적인 이유는 코르부치가 자기가 존경하던 체 게바라와 말콤 X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잔인하고 황량하고 사납고 야성적이며 무드 짙고 폭력적이며 고독한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무표정하고 무언인 트랭티냥과 간교하고 새디스틱한 푸른 눈의 킨스키의 적의에 찬 대결. 또 하나 특징은 당시만 해도 보기 힘든 사일런스와 흑인 미망인 폴린(미국배우 보네타 맥기)간의 흑백 로맨스. 영화의 음악은 모리코네가 작곡했는데 매우 아름답다. 촬영도 훌륭하다.
‘그레이트 사일런스’의 개봉 50주년을 맞아 필름 무브먼트(Film Movement)가 새 복원 판 DVD를 6월 5일에 출시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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