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1993년 여름(Summer 1993)


안나(왼쪽)와 프리다가 1993년 여름을 함께 보내고 있다.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애잔한 어린 시절 회상


이 영화로 데뷔한 스페인의 여류 감독 칼라 시몬이 1993년 여름 여섯 살 때 경험한 시골에서의 삶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따스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린 꾸밈없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얘기는 자칫하면 감상적이 되기 쉬우나 시몬은 감상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직선적이며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섬세한 솜씨로 상세히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연인 소녀 프리다 역을 맡은 라이아 아티가스와 프리다의 세 살짜리 사촌 소녀 안나 역의 파울라 로블레스의 연기가 뛰어난데 특히 영혼이 가득한 시선을 지닌 아티가스의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두 소녀가 영화를 튼튼히 받쳐주고 있다. 
도시 소녀 프리다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으면서 산악지대 시골에 사는 친삼촌 에스테베(다비드 베르다구에르)와 그의 부인 마르가(브루나 쿠시)와 두 사람의 세 살 난 딸 안나가 사는 집으로 온다. 영화는 시몬이 실제로 여름을 보낸 곳에서 찍었는데 마당의 닭들과 호수와 숲을 찍은 촬영이 전원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낯설고 물 설은 프리다는 외롭고 슬퍼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 앞에 찾아가 하소연을 한다. 이런 신앙심은 프리다의 할머니 마리아(이사벨 로카티)로 부터 물려받은 것. 
그리고 프리다는 화풀이를 어린 안나에게 해댄다. 프리다는 안나에게 놀이를 하자며 숲 속으로 깊이 데리고 들어가 버려 놓고 오는가하면 안나의 팔까지 부러뜨리게 만들어 마르가의 미움을 산다. 그러나 에스테베는 프리다를 극진히 아낀다. 영화는 두 어른을 좋거나 나쁜 사람들로 양분하지 않고 아주 공평하게 다루고 있다.
프리다와 안나는 비록 나이 차가 있긴 하지만 친구가 되는데 시몬은 두 아이의 감정과 심정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마치 아동 심리학자처럼 사실적이요 긴장감마저 감돌도록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극적 충격이나 파고는 심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이 벌어지는 일들에 의해 받는 심리적 영향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차분하고 조용하며 또 주도면밀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시골에서 프리다가 보낸 삶을 마치 꿈과도 같이 회상한 감동적인 영화로 아티가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연기가 정말로 경이롭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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