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과 다이애나(왼쪽)가 케냐의 황혼 속에 사랑을 나누고 있다. |
“윌체어로는 막을 수 없다” 사랑과 생존 투쟁기
소아마비 환자로 의사의 예견과 권유를 무시하고 병원에서 나와 특수 윌체어에 의지해 살면서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영국의 로빈 캐븐디쉬와 그를 옆에서 돕고 격려하고 또 사랑한 아내 다이애나 블랙커의 생존 투쟁기이자 순애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가슴 울리는 멜로드라마이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고 밝고 맑게 그렸는데 영화가 너무 말끔하고 고운 것이 흠이라면 흠.
에디 레드메인이 오스카상을 탄 스티븐 호킹의 얘기 ‘모든 것의 이론’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배우인 앤디 서키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서키스는 ‘반지의 제왕’에서의 골룸 역과 ‘원숭이들의 혹성’ 시리즈에서 얼굴 표정과 움직임을 포착해 원숭이들의 리더인 시저를 연기한 배우로 연출 솜씨가 매우 스무스하다.
1950년대 중반 영국의 상류층 멋쟁이 로빈(앤드루 가필드)은 클럽하우스에서 크리켓을 하다 경기를 구경하던 아름다운 다이애나(클레어 포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다이애나도 마찬가지로 둘은 곧 결혼한다. 그리고 둘이 로빈의 업무차 케냐에 갔다가 로빈이 쓰러진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진단결과 악성 소아마비. 귀국한 로빈은 목 아래를 쓸 수 없게 되는데 의사는 몇 달 못 산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로빈과 다이애나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사랑과 삶의 의지와 용기로 똘똘 뭉쳐 감옥 같은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다. 이 때부터 두 부부의 치열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는데 이 투쟁의 주도자는 로빈이라기 보다 다이애나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이애나의 얘기기도 하다.
로빈은 과학자 테디 홀(휴 본느빌)이 만든 호흡기가 부착된 윌체어를 타고 우선 집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즐기다가 이어 차량을 개조해 멀리 나들이를 가고 마침내는 비행기에 윌체어를 싣고 스페인 등 유럽 여행까지 즐긴다.
남편을 돌보는 다이애나에게 좌절과 어려움이 없을 리 없으나 그는 때로 좌절하고 지치고 화를 내다가도 곧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투지와 정성 그리고 밝은 성격으로 인해 이를 극복한다. 그리고 두 사람 간에 육체적 애정의 표시도 은근히 묘사되는데 물론 이런 애정의 행위는 전적으로 다이애나에 의해 표현된다.
로빈은 이어 산송장 취급받는 자기 같은 사람들을 위해 독일을 방문, 의사들 앞에서 이들의 편의와 권익을 위해 보다 진취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호소한다. 로빈은 영국에서 호흡기가 부착된 윌체어를 이용해 집 밖으로 나간 첫 사람이다. 그는 의사의 예견과는 달리 소아아비로 쓰러진 뒤에도 36년을 더 살았다.
늘 진지한 가필드(핵소 리지)와 넷플릭스 시리즈 ‘크라운’(The Crown)에서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으로 급부상한 포이의 콤비가 보기 좋은데 두 사람의 인물이 빛과 그림자를 고루 섞어 묘사되진 못했다. 끝에 가서 손수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로빈과 다이애나의 사랑을 반주하듯이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트루 러브’가 흐른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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