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버드맨’은 큰 축복… 세번이나 다시 봐”
‘배트맨’성공이 짐 된 적 없어, 그냥 꾸준히 일할뿐
진취적 사고·다양한 인종의 캘리포니아 너무 좋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및 촬영상을 받은‘버드맨’(Birdman)에 주연한 마이클 키튼(63)과의 인터뷰가 뉴욕의 팰리스 호텔에서 있었다. 키튼은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로 나온 영국의 젊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탔다.‘버드맨’은 한물간 할리웃 스타 리간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의 재기를 시도하는 블랙 코미디다. 영화에서 열연을 한 키튼은 지난 1월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받았다. 간편한 차림에 머리를 짧게 깎은 대머리인 키튼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처음에는 긴장한 태도로 질문에 대답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을 풀고“헤 헤”하며 웃고 농담도 섞어가면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눈초리가 강렬하고 탄탄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다소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에는 대사가 많고 또 말하는 속도도 빠른데 사전에 충분한 리허설을 했는가.
“알레한드로의 뜻대로 만들기 위해선 리허설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한 달간 리허설을 했다. 마치 실제 연기하듯이 모든 배우가 참가해 단어 하나도 빼지 않고 또 동작도 실연과 똑같이 했다.”
―당신은 히트작 ‘배트맨’으로 빅스타가 됐다가 그 후 활동이 뜸했는데 마치 그 상황이 이 영화와 비슷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버드맨’의 망령에 시달린 것처럼 당신도 ‘배트맨’의 망령에 시달렸는가.
“난 그런 망령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배트맨’에 나온 것은 행운이었지만 이 영화에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행운이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만들어본 적이 없고 또 나도 해본 적이 없는 아주 독특한 영화다. 매우 하기 어려운 영화요 순수예술인데 나는 어려운 것과 순수예술을 좋아한다.”
―영화는 명성과 자만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명성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았나.
“명성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 난 명성이 주는 부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 젊은 여배우들이 명성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들은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사람들이 그들에게 집착하고 따라다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와 반면에 난 아주 따분한 삶을 살고 있다.”
“일반인이나 배우들 중 진짜 연기는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연극은 철저한 훈련과 나름대로의 엄격한 규율이 있어서 모두가 다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리간이 무대를 선택한 까닭에도 그런 이유가 조금은 있다. 그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무대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제발 날 사랑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팬티바람으로 타임스퀘어를 걸은 기분은 어땠는지.
“내가 진짜 돈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배우란 무언가를 저지르고자 하는 사람들이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게 된다. 아마 수영을 못하는 배우에게 영불해협을 수영해 건너라고 해도 할 것이다. 난 그 장면에 대해 너무 심각히 생각 안 하고 일상사 하듯이 했다.”
―감독은 영화를 의식의 흐름의 영화라고 했는데 당신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의식이었는가.
“그에 관해 우리는 리허설과 함께 실연을 할 때도 계속해 얘기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난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으로 각본 속 인물의 마음상태에 어떻게 감정적으로 다다를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리간은 깊은 어둠에 빠졌다가 삽시간에 우스워지는가 하면 또 진지하다가 곧 이어 불안한 상태가 되는 역이어서 촬영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서 때론 집에 와서도 그를 떠나지 못했다.”
―당신은 그동안 활동이 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도 보진 않았으나 한 일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별로 신통치 못한 영화에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당신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오랜 연예계 생활을 해왔는데 그 동안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올바른 사람인 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리간처럼 할리웃의 사사건건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본능을 믿는다.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나는 독창적이요 흥미 있고 또 흥분되는 것을 늘 찾고 있다. 난 적기에 적소에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특히 ‘비틀주스’와 ‘배트맨’을 감독한 팀 버튼과 함께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팀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배트맨’의 성공 이후의 당신의 여정에 관해 말해 달라. 편했나 아니면 힘들었나.
“그것은 큰 결실로 난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내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있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배트맨’으로 국제적으로 성공하는 축복을 받은 이후 더러 영화에 나오긴 했지만 활동이 뜸했던 것은 아내와 헤어진 뒤 혼자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공되는 영화들이 엉터리가 많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나는 영화에 나오려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리간처럼 자신의 과거 성공의 그림자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당신은 목장에서 사는 것으로 아는데.
“연중 일부분은 거기서 산다. 난 어렸을 때 펜실베니아주 서부의 시골에서 자라 우리 7남매가 모두 숲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살았다. 변소도 집 밖에 있었다. 그래도 난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집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그래서 방 안에 오래 있지 못한다. 늘 신체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 그렇게 동부에서 자란 나는 늘 영화를 보면서 서부를 그리워했다. 언제나 서부에 가고 싶어서 20세 때 쯤에는 애리조나주의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일도 했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것은 나의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내가 사는 목장은 작가와 화가와 사진작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끓여 마시고 이메일 보고 개와 산책을 하고 이웃과 할 일을 얘기하다 보면 어느 새 저녁이 된다.”
―LA에서의 삶과 목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나는 목장 없이는 못 살지만 LA와 캘리포니아도 매우 좋아한다. 캘리포니아는 훌륭한 곳이다. 사람들이 이 곳을 비판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앞서 생각하는 곳으로 그 생각이 처음에는 미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결국은 세계가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또 이곳은 인종적으로도 온갖 인종이 모여 살아 아주 흥미 있다. 차로 5시간만 달리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캘리포니아다.”
―이 영화에서처럼 왜 영화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영화와 연극은 완전히 다른 근육을 지녔다. 연극의 이점은 오랜 리허설이다. 3~4주씩 연습하다 보면 극중 인물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연극은 매일 같이 달리 연기할 수 있지만 영화는 단 한 번의 연기가 필름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나는 대학 때 연극을 잠깐 한 뒤로는 별 경험이 없는데 아주 즐거웠다. 최근에 와서 나는 연극 대본을 많이 읽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것은 연극배우가 영화배우보다 반드시 나은 배우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연기가 격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이 영화가 당신 생애의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기분이 좋다. 새 전기라는 면에서는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꾸준히 같은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 영화에 나오게 된 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난 벌써 영화를 세 번이나 봤는데 앞으로도 얼마를 더 볼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영화에 너무 몰입해 내가 나온 것도 잊을 정도다.”
―이 영화 이후 당신에게 출연 제의가 쇄도할 것이 뻔한데 그것을 원하는가.
“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사람에겐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난 지금 ‘스팟라이트’라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보스턴 글로브가 폭로한 보스턴 가톨릭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실화인데 각본과 감독(탐 맥카시)과 배우들이(마크 러팔로와 레이철 맥애담스) 다 좋다. 그러니 난 2연타 히트를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흥분하지 않고 내 갈 길로 서서히 가고 있다. 한 가지 신통한 일은 이 영화 후 그 동안 몇 년간 한 마디 없던 영화계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와 ‘아이 러브 유 마이클’이라고 축하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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