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4일 일요일

‘인간의 음성’ 소피아 로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생의 기본은 사랑”


과거 모국인 이탈리아와 할리웃에서 맹활약한 연기파이자 육체파 수퍼스타 소피아 로렌(80)과의 인터뷰가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는 로렌의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가 감독하고 로렌이 주연한 26분짜리 단편영화‘인간의 음성’(Human Voice)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로렌이 최근 출판한 자서전‘어제, 오늘, 내일: 나의 인생’(이 제목은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하고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공연한 1964년작 동명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딴 것이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셔츠 위에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로렌은 나이가 있어 젊은 시절만큼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그러나 터질 것 같은 육체미를 뽐내던 로렌의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금발의 긴 머리와 큰 눈에 옅은 갈색 선글라스를 낀 로렌은 액센트를 써가면서 질문에 위트와 유머를 섞어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했는데 생의 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로렌은 현재 스위스의 제네바에 살고 있다.      

-인생 80을 살면서 자기 삶에 대해 후회한 것이라도 있는가.
“왜 후회한 일이 없겠는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다 보면 후회도 하게 마련이나 난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써 왔다. 그것은 결국 양심대로 사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이제 과거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하는가.
“난 늘 내 감정에 따라 살아 왔기 때문에 현명하진 못하다. 그러나 난 전후의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많고 어려운 가정환경 하에서 고생을 하며 자라 그 같은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 같은 경험을 보석처럼 중하게 여기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삶의 예지를 빌려다 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며 또 기대하는가.
“난 이제 내가 과거에 원했던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평화로운 삶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좋은 가족과 아름다운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단 하나 유감이라면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지 못한 것이다. 그 꿈만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삶이 사랑에 관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사랑이란 인생의 모든 면의 기본이다. 그것 없이 무얼 할 수가 있겠는가. 난 사랑 없이 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늘 찾는 것이며 또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명성과 성공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난 명성과 성공이 내게 찾아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 함께 시골서 로마로 갔을 때 그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리라 다짐했었다. ‘쿼바디스’의 엑스트라부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 내가 성공한 큰 이유는 나와 같은 나폴리 출신의 비토리오 데 시카가 나를 나폴리가 무대인 영화에 썼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점차 무게 있는 역을 맡게 됐다. 난 데 시카와 함께 20년을 일했다. 그는 나의 꿈을 이뤄준 사람이다.”

-아들 감독과 다른 감독들과의 차이라도 있었는가.
“감독은 비교할 수 없다. 무슨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장 콕토의 1인 독백극이 원작인 ‘인간의 음성’은 나이 먹은 여자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난 늘 이 역을 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안 돼 못했다. 2년 전에야 작품의 여인과 나이가 비슷해 만들었다. 꿈의 실현과도 같은 영화다.”

-아직도 영화에 대한 정열을 지니고 있는가.
“아직도가 아니다. 난 늘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손주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도 있는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난 그들로부터 단순함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있을 때면 집에 생기가 돈다.”

-당신이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두 여인’에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
“원래 그 역은 안나 마냐니에게 제공됐고 난 그의 딸 역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마냐니가 역을 거절하는 바람에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정말로 좋은 역으로 역시 데 시카가 감독했다.”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난 육체적 운동을 싫어한다.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이런 저런 할 일들을 한다. 난 매사에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이젠 마치 아이들처럼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어 좋다.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난 쉬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힘과 열정과 추진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모르겠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아직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열성이 있다. 난 늘 그랬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요즘 미국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젤라(소비아 로렌)는 자기를 버리고 간 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영화‘인간의 음성’ 장면.
“시상시즌이 오면 영화들이 집으로 배달되는데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별로다. 난 음악과 뮤지컬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인’에도 나왔다. 난 이 영화를 몹시 좋아하는데 특히 공연한 대니얼 데이-루이스 때문에 더 좋아한다.”

-얼마 전에 미 영화학회(AFI)가 주는 생애업적상을 받은 소감은.
“아름다웠다. 마치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는데 유감인 것은 모두들 셀피를 찍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난 그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는데 아주 성가시더라. 나는 원래 그런 행사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엔 정말 즐겼다.”

-당신을 사모하던 그 멋진 사람들이 이젠 여기에 없는데 그들을 생각하면 고독해지는가.
“참 슬프다. 자기에게 매우 귀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내 남편 칼로 폰티(명 제작자)가 죽었을 때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사망했다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케리 그랜트가 당신에게 구혼했을 때 왜 거절했는가.
“그가 내게 구혼하진 않았다. 그와는 나의 첫 미국 영화 ‘자랑과 정열’에서 처음 만났다. 프랭크 시내트라도 나왔다. 그랜트는 정말로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는데 난 23세였고 그랜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었다. 나이 23세엔 사랑이 무언지도 잘 모른다. 그 후 난 이탈리아에서 칼로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쨌든 그랜트와 나는 오래 관계를 유지했다. 우린 좋은 우정을 지키면서 편지와 전화로 교통했다. 그랜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린 아름다운 우정을 지켰다.”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가.
“많이 안 먹는다. 난 파스타를 좋아하지만 체중을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 과식은 안 한다.”

-스위스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해 달라.
“작은 마을에 산다. 난 외출을 잘 안 한다. 가능하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7시 반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돌아와선 미국에 있는 아들과 손주들과 전화로 통화한다. 매우 단순한 일상으로 책과 각본을 많이 읽는다. 이 자서전을 쓰는데 1년이나 걸렸다. 누군가 날 저녁에 초대해도 난 거의 응하지 않는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날 보고 셀피 찍자고 요구하는데 다 들어준다.”

-과거 할리웃에서의 생활은 어땠는가.
“아주 즐겼다. 조지 큐커와 찰리 채플린 같은 훌륭한 감독들과 일한 것은 정말로 멋있는 일이었다. 특히 채플린과 일한 것에 대해선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아시아 영화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가.
“당장은 없지만 난 새 장소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다. 난 세계의 구석구석과 연결되고 싶다.”

-당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가까웠는가.
“아주 가까웠다. 내가 이렇게 된 근원은 어머니 때문이다.”

-혹시 미를 위해 당신 모습을 고쳐볼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를 먹게 마련인데 뭘 고치려고 하는가. 젊어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하다간 괴물이 되는 수가 있다. 주름살이 있지만 난 슬픈 주름살보다는 행복한 주름살을 갖고 싶다. 성형수술을 하면 영원히 슬픈 주름살을 갖게 된다.”                

-편지를 무엇으로 쓰는가.
“펜으로 종이에 쓴다. 난 컴맹이다. 내 생일에 팬들이 카드를 보내오면 난 일일이 친필로 글을 써 답신한다. 컴퓨터로 답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