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4일 일요일

‘골드핑거’



며칠 전에 지나가버린 2014년은 역대 007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들었다는 시리즈 세 번째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가 개봉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물론 살인면허를 지닌 영국 정보부 MI6 요원인 제임스 본드이지만 사실 본드보다 더 흥미 있는 인물은 본드의 적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인 ‘닥터 노’(1962)와 이 영화의 제목이 다 본드의 적의 이름인 것만 봐도 악한이 정의한보다 더 매력적이라는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본드가 “프랑스제 손발톱용 니스 이름 같다”고 비웃은 이름을 지닌 오릭 골드핑거(독일 배우 게르트 프뢰베)는 ‘색깔과 광채와 신성한 무게’ 때문에 황금을 사랑하는 황금광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골드핑거가 자기가 보유한 금값을 올려놓기 위해 켄터키주 포트낙스에 있는 미연방준비위의 금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는 ‘그랜드 슬램작전’을 본드가 저지한다는 것. ‘마이다스 터치’를 지닌 골드핑거는 억만장자이면서도 카드놀이와 내기골프에서 속임수를 쓰는 승부욕에 집착하는 ‘소어 루저’로 시리즈 중 하나인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처럼 황금총을 소지했다.
골드핑거는 비행하는 개인용 비행기 안에서 이 총을 본드에게 겨눈 채 “난 2시간 후면 쿠바에 있다”고 말하는데 얼마 후 미-쿠바 간 국교가 정상화될 요즘 같았으면 그런 말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골드핑거는 이 총으로 본드를 쏴 죽이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황천으로 날아간다.
골드핑거가 하늘로 날아간 뒤 본드걸 푸시 갤로어가 본드에게 “골드핑거 어디에 있어요”라고 묻자 본드는 “하늘에서 황금 하프를 켜고 있지”라며 이죽거린다.
골드핑거는 배신자를 살해할 때도 황금을 사용한다. 그는 자신을 배신하고 본드걸이 된 질(셜리 이튼)을 발가벗긴 뒤 온몸에 도금을 해(사진) 기공을 막아 질식사 시킨다. 
그런데 질을 죽인 사람은 한국인이다. 그는 골드핑거의 벙어리 바디가드 아드잡(잡일이라는 뜻으로 역은 일본인 올림픽 역도선수 해롤드 사카다)으로 거구에 검은 상의와 타이를 매고  치명적인 금속 테두리를 한 검은 실크햇을 쓰고 다니는데 히죽이 웃으면서 사람 잡는다.
골드핑거가 자기 소유의 골프클럽에서 본드와 골프를 치러 가면서 아드잡에게 “한국에선 아직 골프가 국민경기가 아니지”라고 빈정거리는데 한국은 그 때 막 보릿고개를 넘어선 때였으니 그 말이 틀리진 않다.
본드 시리즈에서 본드 악인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본드걸이다. 보통 본드는 진짜 본드걸을 만나기 전 여러 준 본드걸들과 동침을 하는데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천하의 플레이보이다. ‘골드핑거’의 본드걸 푸시 갤로어(Pussy Galore)는 그 외설적인 이름 때문에 미국에서 검열 때 논란이 됐었다. 푸시 역의 오너 블랙만은 역대 본드걸 중 가장 나이 먹고 성숙한 여인으로 본드와의 화학작용의 농도가 황금도 녹일 만큼 강렬하다. 
최근에 본드의 새 상관 M(주디 덴치)은 새 본드(대니얼 크레이그) 보고 “당신은 술과 색에 탐닉하는 공룡과도 같은 존재”라고 본드의 구세대적 남성행위를 비판했지만 본드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가슴에 시커먼 털이 무성한 늠름한 체격에 강한 마스크 그리고 멋과 맛을 아는 데다가 박학다식하고 출중한 정력을 지닌 이 ‘섹시 비스트’를 보고 자기 몸을 스스로 바치는 여자들도 문제다.
그런데 나는 수많은 본드걸 중에 넘버원이요 영원한 본드걸을 M의 비서 모니페니라고 본다.  모니페니는 본드가 플레이보이인 줄 알면서도 그를 간절한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데 이를 잘 알고 있는 본드가 모니페니와 나누는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사랑의 행위가 재미있다. 
시리즈의 또 다른 유명한 것이 주제가. 금관악기가 강조된 ‘골드핑거’의 음악은 이 영화 외에도 ‘선더볼’ 등 여러 편의 본드영화 음악을 작곡한 존 배리가 지었는데 노래는 셜리 배시가 불러 빅히트했다. 고함지르듯 하는 노래가 강철의 쓴맛이 느껴지도록 섹시하다. 배시는 이 노래 외에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등 3편의 시리즈 노래를 불렀다.
미디엄 마일드 보드카 마티니(셰이큰 낫 스터드)를 즐겨 마시는 본드의 또 다른 멋은 위기 속에서도 결코 냉정을 잃지 않고 툭툭 내뱉듯이 하는 위트 있는 말이다. 때로 냉소적인데 ‘골드핑거’에서도 “총을 늘 차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열등감 때문”이라고 답하고 물 담긴 욕조에 빠진 적을 감전사시킨 뒤 “쇼킹”이라고 한마디 한다. 그리고 M이 본드에게 아무 여자하고나 잔다고 나무라자 본드는 “나는 내 단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호색을 시인한다.  
본드는 영화 끝에 미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공로를 치하 받기 위해 백악관으로 가는데 영화에는 안 나오나 린든 존슨과 레이디 버드가 본드를 맞았음에 분명하다. ‘골드핑거’는 이 영화 외에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등 시리즈 4편을 만든 가이 해밀턴이 감독했다.
한편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하고 샘 멘데스가 감독하는 24번째 본드영화 ‘스펙터’(Spectre)가 11월에 개봉된다. 본드의 적으로는 크리스토프 월츠가 그리고 본드걸로는 레아 세이두와 모니카 벨루치(50)가 나온다. 벨루치는 역대 본드영화 사상 가장 나이 먹은 본드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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