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아메리칸 스나이퍼’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간이 계속 싸우고 죽이는 건 유전자 탓”


이라크전 실화를 다룬‘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84)와의 인터뷰가 LA 다운타운에 있는 애슬레틱 클럽에서 있었다. 
총을 휘두르는‘황야의 무법자’요‘더티 해리’로 거칠고 사나운 남성의 대표상으로 여겨졌던 그도 나이는 못 속이는지 잿빛 머리에 고목의 등걸처럼 주름진 목을 한 모습이 다소 쇠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상표와도 같은 째려보는 눈매는 여전했다. 
이스트우드는 질문에 위트와 유머를 섞어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는데 기분이 좋은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가며 상냥하게 굴었다. 자기 여자문제에 관해 얘기할 때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때 군에 징집됐으나 미국에서 근무했는데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는“이젠 한국에 가야지. 그러나 1951년에는 안 간 것이 나았지”라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한국에 가보라. 아름다운 나라”라고 종용하자 그는 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9.11사태 후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며 해군 특공대(SEAL)에 자원 입대해 이라크전에서 저격수로 활약, 160여명의 적을 사살한 텍사스 태생의 크리스 카일의 호전적인 실화로 카일로는 브래들리 쿠퍼가 나온다. 카일은 이라크전에 4차례나 참전한 뒤 제대, 2013년 2월 고향의 사격장에서 전투경험 후유증을 앓던 제대 해병의 총에 맞아 38세로 사망했다. 
이 영화는 15일에 발표한 제87회 오스카상 후보에서 작품과 남우주연 및 각색상 등 총 6개 부문에 올랐다.

―브래들리 쿠퍼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일단 카일 역을 맡은 뒤로는 세트를 떠나서도 카일과 같이 살다시피 했다. 저녁을 먹을 때도 텍사스 액센트를 써가며 말을 했는데 영화를 다 찍을 때까지 카일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가.
“신문에 난 카일의 얘기와 그의 전투경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워너 브라더스에서 전화가 걸려와 영화를 감독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각본을 받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브래들리 쿠퍼가 전화를 걸어 연출을 맡아 달라고 해서 오케이를 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쿠퍼와 함께 텍사스로 내려가 카일의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을 만났다.”

-성조기 앞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이며 당신의 군대 경험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난 1930년대와 40년대에 자랐다. 11세 때 2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그 땐 모두가 열렬한 애국자였다. 따라서 나도 애국주의 세대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 돼 한국전이 일어났고 나도 1951년에 군에 징집됐다. 그러나 이 땐 2차 대전과 달리 우린 도대체 우리가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회의들을 했다. 베트남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왜 우린 이렇게 계속해 싸우는 것이며 전쟁은 도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 하고 크게 회의를 하게끔 됐다. 내 생각엔 역사는 평화의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전쟁에는 창의적인 면도 있다. 전쟁 중에는 인간성과 함께 기술이 크게 발전한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 군대 경험을 말하자면 M1 같은 장총을 쏠 줄 안다. 여러 분의 눈알을 쏴 빼낼 수도 있다.”

―이라크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카일(오른쪽·브래들리 쿠퍼)이 전우와 함께 적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처음에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들어갔을 때 난 그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전을 비롯해 모든 다른 전쟁에 반대한 이유와 같다. 전쟁은 많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매우 과감한 사람인 줄 아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겁이 없나.
“겁 없이 살 수야 없겠지. 공포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 삶이 행복할 수는 없으니 긍정적인 것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영웅이란 전쟁에서 자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며 불타는 집 안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곳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다. 요즘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을 다 영웅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웬만해선 영웅이라고 안 했다. 전에 나는 뭔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혀 하는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때 날 보고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 것은 결코 영웅적 행동이 아니었다.”

―특수효과가 큰 구실을 하는 가상현실을 다룬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는지.
“나도 여러 분야의 영화를 좋아하고 또 영화는 장르마다 특색이 있지만 난 만화 속의 인물을 다루거나 미래를 그린 아이들의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난 이오지마 전투와 같은 옛 역사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 전투를 일본군의 눈으로 본 영화도 만든 것이다.”

―왜 인간은 성서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죽인다고 생각하는가.
“거 참 훌륭한 질문이다. 나도 그 문제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전인자 탓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원치도 않는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어놓으려고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철학가들은 언제나 인간은 이성을 찾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왔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결코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삶의 하나의 사실이라고 하겠다.”

―요즘처럼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 때에 이런 전쟁영화들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얘기하며 또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는가.
“전쟁이란 극적이요 삶과 죽음이며 또 고난으로 결국 충돌과 갈등이다. 따라서 이런 것은 좋은 극적 소재다. 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전쟁에 가족 드라마가 포함됐다. 요즘 전쟁영화가 여러 편 나온 것은 영화계의 정기적인 사이클이다. 어느 한 장르의 영화가 특정기간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좋고 흥미 있는 얘기가 있다면 만들라는 것이다.”

―당신의 여성관계와 사랑과 결혼관이 과거와 달라졌으며 또 아직도 사랑을 추구하기를 원하는지.
“그것들은 내게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이 영화도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카일과 그의 아내와의 관계와 그것의 유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랑과 결혼에 성공한 편이 못되네. 두어 번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순간 순간적으론 성공하기도 했다. 나는 사랑이 매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특히 요즘엔 그러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너무 많고 또 각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서 그렇다. 내 나이에 다시는 사랑을 안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그것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결코 아니다 라는 말을 결코 하지 말라’고 했거든.”

―당신은 16세짜리 막내를 비롯해 자손들이 많은데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가.
“난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게도 깊은 정을 느낀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특히 교육을 비롯해 여러 문제에 있어서 도움과 조언을 주면서 그들이 가능한 최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동안 내 유전인자가 맹활동을 해 아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젠 다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지.”           

―배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무엇인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망친다. 배우로서 최고의 것은 본능을 따르라는 것인데 본능이 옳다고 느끼지 않을 땐 안 하면 된다. 난 배우들이 자기가 낫다고 느끼는 연기를 할 때면 그것이 얘기의 방향과 반대로 가지만 않는다면 허락하는 유연성이 있다.”  

-미국의 애국주의를 강조한 이 영화의 해외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는지.
“난 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나 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기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 당신에게 충고를 준다면 무엇입니까.
“난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다. 배우는 것이 아주 느렸지. 따라서 ‘속도 좀 내라’고 조언하겠다. ‘좀 더 많이 연습해라’고.”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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