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딘(왼쪽)이 자기에 등을 돌린 아내 니할에게 독선적인 말을 보내고 있다. |
빈자와 부자의 세상에 대한 엄숙한 탐구
독선적이요 지적으로 오만한 남편과 그의 편견과 냉정한 가슴으로 인해 영육이 피폐해진 젊은 부인과의 부식해 가는 결혼관계를 해부하고 또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여러 겹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를 탐구한 터키 영화로 궁극적으로 영혼 탐구의 엄숙한 걸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15일에 발표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사실. 기자가 지난해에 본 외국어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다. 머리를 질끈 싸매고 입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봐야 할 대사가 많고 느린 상영시간 196분짜리의 진지한 영화다. 체홉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영혼을 압도하는 영화로 칸영화제서 이미 상을 두 번이나 탄 터키의 명장 누리 빌지 세일란(‘기후’ ‘옛날 옛적 아나톨리아에’)이 연출했는데 롱샷으로 찍은 촬영과 암석과 말 달리는 초원 등 황홀한 정경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감동적인 작품이다.
때로는 대사가 너무 길어 부담감을 느끼게도 되지만 그 대사 안에서 인물들의 성격이 표현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작품이 서술되기에 인내심을 갖고 보면 큰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다. 특히 중간 부분에 이르기까지가 인내심이 필요한데 후반으로 가면서 유머마저 곁들여 극적 재미를 주면서 끝에 이르러선 충분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동쪽에 있는 카파도시아의 작은 시골마을이 무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의 은퇴한 배우 아이딘(할룩 빌지너)은 대지주. 그에게는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이 있으나 니할은 남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에 내몰리다시피 해 남편과 거의 대화나 관계가 없다.
카파도시아는 기암괴석과 함께 푸른 초원이 공존하는 풍광이 수려한 곳으로 아이딘은 암석에 난 동굴들을 개조해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을 만들고 이름을 오텔로라고 지었다. 그리고 자기는 거실에 죽치고 앉아 동네 신문용 칼럼을 쓴다. 아이딘과 니할을 비롯해 아이딘의 집에 묵고 있는 그의 이혼한 도시 누나 네클라(데멧 크박) 등이 자아내는 을씨년스런 고독의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어느 날 아이딘이 충실한 하인 히다옛(아이베르크 펙칸)이 모는 지프를 타고 마을로 가던 중 아이딘의 소유인 집에 세든 가족의 어린 소년이 지프에 돌팔매질을 하면서 큰 사고가 날 뻔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출소한 전과자로 실의에 빠져 술만 마신다. 그런데 아이딘은 자기 땅에 사는 여러 못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잘 알면서도 이를 못 본 체한다.
이에 반해 니할은 동정심이 많은 여자로 동네 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걷는데 열심인데 이를 안 아이딘이 니할을 윽박질러 그녀의 좋은 뜻을 뭉개버린다.
길긴 해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은 아이딘과 니할의 상호 충돌하는 대화와 네클라와 아이딘의 대화. 네클라와의 대화에서 부자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냉소주의가 스며나온다. 아이딘이 오랫동안 도시에 가 있겠다고 나갔다가 샛길로 빠져 들른 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음주장면 등 몇 개의 이색적인 에피소드가 엄숙한 분위기를 다소 녹여줘 보는 마음도 쉬게 한다. 그리고 끝에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경직되다시피 듬직한 빌지너의 연기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와 멀리 대자연 안에 하나의 점처럼 있는 인간과 장엄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길게 잡은 촬영이 출중하다.
성인용. 로열(310-478-3836) 등 일부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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