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오스카는 백색이다




해도 너무 했다. 15일 발표된 오스카 각 부문 후보 발표에서 연기상 후보 총 20명 중 흑인은 단 1명도 없었다. 흑인이 이런 처지니 라티노나 아시안은 말할 것도 없다. 연기상 후보 20명이 모두 백인인 것은 1998년 이후 두 번째 있는 일이다.
LA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소수계 푸대접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연기와 감독 및 각본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35명 중 소수계는 멕시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버드맨) 단 1명뿐이라고 개탄했다.
6,000명에 이르는 회원들 중 94%가 백인이요 72%가 남자 그리고 중간 연령이 62세(2012년 통계)인 아카데미 회원들의 소수계 푸대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카데미는 그동안 여성을 비롯한 소수계를 보다 많이 수용하고 또 현 회장인 셰릴 분 아이잭스도 흑인 여성이긴 하지만 이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카데미는 은퇴한 백인 남자 세상이다.
이번에 다시 아카데미의 흑색에 대한 색맹증세가 논란이 된 까닭은 비평가의 격찬과 함께 관객의 큰 호응을 받고 있는 흑인영화 ‘셀마’(Selma·사진) 때문이다. 1965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에 이르기까지의 민권운동 행진을 그린 이 영화는 작품과 주제가상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흑인 여류감독 에이바 뒤버네이와 킹 박사 역의 데이빗 오이엘로는 각기 해당부문에서 탈락했다.
15일은 킹 박사의 생일이고 19일은 이를 기리는 공휴일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킹 박사는 자기 영화가 푸대접을 받는 생일선물을 받은 셈이다. 아카데미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데 후보 발표가 있은 뒤 다넬 헌트 UCLA 아프리칸 아메리칸 연구센터 소장은 “이는 할리웃과 미국과의 불통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흑인 민권운동가인 알 샤프턴은 할리웃 지도자들과의 비상회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에는 흑인 노예문제를 다룬 ‘12년간 노예생활’이 오스카 작품과 각색 및 노예 역의 루피타 니온고가 여우조연상을 각기 탔다. 또 2011년에는 역시 흑인인 옥타비아 스펜서가 ‘헬프’에서의 하녀 역으로 조연상을 탔는데 일부 냉소적인 사람들은 1939년 ‘비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하녀 역으로 흑인 최초의 오스카상 수상자가 된 해티 맥대니얼처럼 흑인은 하녀나 노예로 나와야 상을 탄다고 비아냥거렸다.
아카데미가 흑인을 차별한다는 것은 1963년에 가서야 시드니 포이티에가 ‘들에 핀 백합’으로 흑인으로선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것만 봐도 안다. 그 후 무려 38년이 지난 2001년에  가서야 덴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로 흑인으로선 두 번째로 주연상을 받았다.
흑인 여배우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 2001년 할리 배리가 ‘몬스터즈 볼’로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주연상을 탔으니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으로서는 첫 오스카상을 탄지 무려 62년만의 경사였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셀마’가 오스카 회원들로부터 물을 먹은 까닭이 제작사인 파라마운트가 영화의 제작마감이 늦어져 회원들에게 스크리너(영화 DVD)를 못 보내 많은 회원들이 후보 선정 마감일 안에 영화를 못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셀마’를 작품(드라마 부문), 감독, 남우주연 및 주제가상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 주제가 ‘글로리’에 상을 주었다.      
LA타임스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수상 후보들을 고르는 것은 회원 각자에게 달린 일이라면서 이들의 소수계 푸대접보다 진짜로 중요한 문제는 할리웃 연예산업계에서의 소수계 종사자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00편의 흥행 탑 영화감독 중 흑인 감독은 단 5명뿐이고 흑인 여류감독은 단 1명도 없다. 이번 오스카 후보 발표에서도 감독·각본가 및 촬영감독 중에서 여성은 단 1명도 없었다.
흑인과 여성뿐 아니라 할리웃에 종사하는 라티노 영화인들도 태부족이다. 통계에 의하면 라티노는 미 전체인구의 16%를 차지하는데도 2013년 흥행 탑 영화들 중에서 말하는 역을 맡은 라티노 배우는 불과 4.9%에 지나지 않았다.
LA타임스는 이어 유색인종이 오스카 경쟁에서 매번 불리한 입장에 빠지는 것은 할리웃에서 일하는 유색인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매듭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스카는 황금색이 아니라 백색이다.
얼마 전에 미국인 친구 마이크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마이크는 마침 TV에서 중계하는 농구경기를 가리키면서 “농구선수의 절대다수가 흑인이라고 해서 백인들이 불공평하다고 하는 말 들어본 적 있느냐”면서 “오스카 후보 발표 때마다 인종차별을 들먹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배우도 운동선수처럼 실력에 따라 상을 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흥분했다. 물론 마이크는 백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