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의 황금기 ‘하늘에 뜬 별들보다 더 많은 스타를 보유했다’고 뽐내던 MGM의 수퍼스타로 에너지 덩어리였던 미키 루니가 6일 93세로 LA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5피트 2인치의 단구에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얼굴을 한 루니는 20대 때 역시 MGM 소속으로 ‘할리웃의 왕’이라 불린 클라크 게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가장 흥행성 있는 배우로서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MGM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래서 루이 B. 메이어 MGM 사장은 루니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는데 루니는 신적인 존재였던 메이어를 “아저씨”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루니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는 깨끗한 가족 드라마 ‘앤디 하디’ 시리즈다. 무려 15편이나 만들어진 시리즈에서 루니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틴에이저 앤디 하디로 나와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루니는 스크린에서는 앤디 하디였지만 실제로는 치마만 둘렀으면 섹스하자고 달려드는 플레이보이였다. 그는 ‘앤디 하디’ 시리즈에 나온 육체파 라나 터너 외에도 여러 다른 여배우들과도 잤다. 이 때문에 루니의 스크린에서의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야 할 메이어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는 또 성질이 급한데다가 술과 도박(특히 경마)과 파티에 탐닉했는데 철두철미한 배우여서 쉽게 잘 울었고 또 각광 받기를 좋아했다.
표면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수퍼스타로 알려진 루니가 진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19세에 그의 첫 번째 부인(그는 무려 8번이나 결혼했다)이 된 할리웃 최고의 글래머 스타 에이바 가드너의 자서전 ‘에이바 가드너: 비밀 대화’(Ava Gardner: The Secret Conversation-피터 에반스 저)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가드너는 루니를 사랑했고 그를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미키는 내 남편 중 가장 작은 남편이나 가장 큰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가드너는 또 “미키는 큰 늑대로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섹스를 즐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빅 스타였던 미키는 막 할리웃에 도착한 가드너에게 끈질기게 구애, 결혼했지만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는데 심지어 다른 여자를 가드너와 자는 자기 안방 침대에까지 불러 들였다가 후에 가드너에게 들키기까지 했다. 결국 둘의 결혼은 1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루니는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배우이자 성격파 배우의 능력을 지녔던 최고의 배우였다. 보드빌 배우인 부모를 둬 생후 18개월 만에 무대에 선 루니는 80세가 되기까지 300여편의 영화와 TV 프로에 나온 쇼맨이었다. 그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쇼맨 노릇을 해 일찌감치 거리의 지혜를 터득한 생활인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니의 영화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녀 기수로 나온 ‘녹원의 천사’와 미키가 신부 역의 스펜서 트레이시와 맞서는 불량소년으로 나온 ‘소년들의 도시’ 그리고 그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검은 종마’ 등이 있다. 루니는 생애 총 4번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2차례 명예상만 받았고 정신박약자로 나온 TV영화 ‘빌’로 에미상을 한 번 받았다.
그런데 루니의 영화를 생각하면 불쾌감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맨틱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그는 여기서 키모노를 입고 눈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뻐드렁니의 일본인으로 나와 심한 액센트를 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같은 아시안으로서 볼 때마다 역겹다. 참으로 지각없는 역이다.
루니와 스크린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는 역시 노래와 춤에 재질이 뛰어났던 주디 갈랜드다. 둘은 ‘앤디 하디’ 시리즈 외에도 뮤지컬 ‘베이브즈 인 암즈’ 등 여러 편에서 공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2차 대전 전 ‘앤디 하디’ 시리즈와 뮤지컬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루니는 전쟁 중 연예병으로 근무했다. 종전 후 귀국해 보니 자신의 과거 이미지로서는 배우로 살아남기 어려움을 깨달은 루니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기파로 변신을 시작했고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MGM과도 작별했다.
그러나 역시 루니 하면 늘 1930~40년대 MGM 시절의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 기억될 것이다. 가드너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루니가 빅 스타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 많은 여배우들이 꼬마에 미남도 아닌 그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지만 루니는 이젠 사라진 할리웃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생산해 낸 아주 잘 팔리는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나는 지난해 8월 웨스트우드의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에서 루니를 만났었다. 복원된 ‘세일즈맨의 죽음’ 상영 전 로비 파티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사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루니는 마치 물기가 다 빠져 말라비틀어진 오이지 같아 보였다. 난 그에게 달려가 “반갑다”며 악수를 나누면서도 ‘아, 그렇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활기찼던 루니가 세월 앞에선 이렇게 무기력하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었다. 루니는 이제 하늘에서 주디 갈랜드를 만나 춤추고 노래 부를 것이다. 굿 바이 미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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