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찬 하녀 애비게일은 미소와 친절로 앤 여왕(왼쪽)의 총애를 산다. |
화려한 궁정서 펼쳐지는 세 여인의 권력쟁탈전
신랄한 풍자가로 ‘랍스터’(The Lobster)와 ‘신성한 사슴 살해’(Killing of a Sacred Deer) 등을 만든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의 세 여인의 궁정 코미디 드라마로 기막히게 화려하고 재미있다. 란티모스는 관객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하겠는데 이번에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다시피 어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얄궂다시피 한 기지와 위트와 검은 티가 나는 유머 그리고 지적 자유를 마음껏 발휘해 관객의 지와 감성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세 주인공 여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눈부시게 화사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엮어간 각본 및 음악과 일사불란한 연출 등이 다 빼어난 영화로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세 여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우정으로 위장하고 배신과 음모를 자행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잔뜩 엮어 넣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궁정이 무대. 자녀를 17명이나 두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앤은 고독한 심술쟁이. 성질을 잘 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몹시 아파 윌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이를 옆에서 극진히 돌보는 여자가 젊은 귀족부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 사라는 앤의 친구이자 비서요 동성애 애인이자 참모인데 국정에 관심 없는 여왕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일을 처리하면서 권력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는 멍청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실속은 다 차리는 간교한 여자여서 사라의 속셈을 잘 안다.
이런 자리에 사라의 친척인 공손하고 겁먹은 표정을 한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하녀로 들어온다. 사라의 지시에 따라 부엌 막일을 맡은 애비게일이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앤의 아픈 다리에 발라 신통한 효과를 보면서 미소와 친절을 선심 쓰듯 하는 애비게일은 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앤을 둘러싸고 사라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쟁취 극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데 이런 둘의 미소로 덧칠한 독침의 공격과 방어를 앤은 나름대로 조종하며 즐긴다. 남자들도 여럿 나오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 위주의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서 논다.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위트가 날카롭고 사정없이 야박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매력적인 영화로 콜맨과 바이스와 스톤의 연기가 경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콜맨의 아이처럼 철없고 순진하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차릴 것 다 차릴 줄 아는 연기가 빛을 낸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부엌 하녀로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속 다 차리는 스톤과 표독스럽고 차고 간교한 표정의 바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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