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콜렛(Colette)


콜렛(키라 나이틀리)이 방에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여류 문학가의 성적 자각과 독립
나이틀리의 단단한 연기 인상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 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센세이셔널 한 레즈비언 여류 문학가 콜렛의 전기영화로 차분하게 잘 만들어 어른들이 즐길만한 드라마다. 정석적으로 전기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보기 좋은 것은 콜렛 역의 키라 나이틀리의 단단하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연기다. 콜렛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진 ‘지지’(Gigi)의 작자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소박한 시골 처녀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성적 기호를 자각하면서 자아와 독립을 찾는 문학적이요 개인적인 성장기라고 하겠는데 따라서 콜렛의 인물과 성격 묘사는 잘 된 반면 그녀의 재능을 갈취하는 남편 윌리의 그것은 다소 빈약하다. 윌리 역의 도미닉 웨스트는 이를 알고 그 점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돼지’라 불릴만한 저돌적이요 밉상스런 연기를 씩씩거리며 해댄다. 
버건디 지방 시골에 사는 10대 소녀 콜렛(나이틀리)은 자기 부모의 친구인 나이 먹은 윌리(웨스트)의 언변과 사내다움에 이끌려 그와 헛간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고 콜렛은 파리로 이사한다. 윌리는 파리에서 악명 높은 바람둥이로 일종의 문학작품 장사꾼. 젊은 문학인들을 싸구려로 고용해 소설과 평론을 쓰게 하고 그 것을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다. 그러나 그는 오입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해 늘 가난에 시달린다. 
한편 콜렛은 파리의 문화와 패션을 수용하면서 서서히 도시 여인으로 변모한다. 궁색에 쪼들리던 윌리는 콜렛에게 그녀가 자기에게 들려준 소녀 시절의 얘기를 소설로 쓰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쓴 글이 ‘클로딘’인데 윌리는 글이 평범하다고 원고를 내팽개친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윌리는 콜렛의 원고를 다시 보고 콜렛의 재능을 새삼 깨달으면서 콜렛과 함께 원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내용을 보다 야하게 만들어 낸 것이 ‘학창 시절의 콜렛’으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빅히트를 한다. 이어 윌리는 콜렛에게 속편을 쓰라면서 콜렛을 방에 가두는데 콜렛은 군소리 없이 글을 써 역시 히트한다. 이 역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콜렛은 자기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윌리에게 통보하는데 윌리는 놀란다기보다 오히려 콜렛을 격려한다. 그래서 만난 것이 미국서 온 젊은 바람둥이 여인 조지(엘리노어 탐린슨). 그런데 윌리도 이 여자와 놀아나면서 얄궂은 삼각관계가 이뤄진다. 그리고 콜렛은이 같은 관계를 소설로 쓴다. 역시 히트. ‘클로딘’ 시리즈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역시 히트를 한다.  
콜렛의 다음 연인은 남자처럼 차려 입는 귀족 여인 미시(드니즈 가우). 이 여인과의 사랑이 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고 콜렛은 연극무대에 자기가 직접 올라 연기생활을 즐기면서 순회공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콜렛은 윌리가 자기 작품의 판권을 마음대로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파란만장 했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콜렛은 후에 가서야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다. 워시 웨트모어랜드 감독.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아담은 자기를 살려준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 오른쪽)를 집요하게 쫓아 다닌다.


미성년 전담판사 역 엠마 톰슨
자비롭고 엄격한 연기 돋보여


오스카상 수상자인 엠마 톰슨의 자비롭고도 엄격한 연기가 돋보이는 어른들을 위한 영국영화로 제목은 미성년자에 관한 법령을 말한다. 일벌레 여판사의 가정문제와 법정 결정에 따른 후유증을 다루었는데 전반부가 멜로드라마가 되어버린 후반부보다 낫다.
판사가 불치병을 앓는 미성년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의 자신의 개인적 문제와 함께 이 결정을 둘러싼 긴장감이 막상 판결 이후에 거의 믿을 수 없는 뚱딴지같은 얘기로 비화해 어리둥절한데 이 같은 단점을 톰슨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연기가 보상해준다. 
처음에 런던의 미성년 문제 전담 판사인 피오나 메이(톰슨)가 갓난 샴 쌍둥이에 대한 분리수술 문제를 심리한다. 수술을 안 하면 둘 다 죽고 수술을 하면 하나는 사는데 부모는 수술을 반대한다. 이를 놓고 피오나는 나름대로 고민한다. 하나만 살린다 해도 다른 하나는 죽이는 것이어서 법을 따를 것이냐 도덕을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오나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남편 잭(스탠리 투치)이 자기는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바람을 피우겠다고 선언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알리고 바람을 피우겠다면서 둘이 지난 11개월 간 섹스를 하지 않았으며 애정의 표시라고 해야 고작해서 형식적인 볼 키스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오나가 일벌레라고 비판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상적이요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피오나의 가정에 파고가 일어나는 것과 함께 피오나는 법정에서 중대한 재판을 주재하게 된다. 피오나는 개인 문제와 직무 문제 양쪽으로 시달리는데 맡은 일은 백혈병을 앓는 미성년자인 17세난 아담(피온 와이트헤드)의 수혈.
아담이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수혈을 거부하는데 그의 부모도 마찬 가지다. 이를 둘러싸고 고발한 측과 아담네 변호사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피오나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입원한 아담을 방문한다. 이 면담에서 아담은 수혈을 거부하면서도 피오나의 자비와 지혜에 깊이 감복한다.
그리고 피오나는 수혈 판결을 내린다. 수혈 후 아담은 일단 건강을 회복하는데 그가 너무 건강해보여 백혈병을 앓은 사람 같지가 않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어 아담은 피오나를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아담의 피오나에 대한 감정이 거의 집념과도 같은 사랑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격식 있던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아담이 피오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자기 부모는 자기가 죽기를 바랐는데 당신이 날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아담은 스토커처럼 피오나를 쫓는데 남편이 집을 나간 뒤 고독과 상심에 시달리는 피오나도 아담의 집착에 이끌린다. 이것은 완전히 신파다. 그리고 이틀 간 집을 나가 바람을 피운 잭이 귀가하면서 터무니없이 가정문제를 해결한다. 와이트헤드가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튀어나온다.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은 톰슨의 감지하기 힘들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다부진 연기다. 리처드 아이어 감독. 등급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코와 그의 형제들’


내가 고등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걸작 ‘로코와 그의 형제들’(Rocco and His Brothers^1960^사진)을 보면서 화면 속 모습에 단숨에 빨려들었던 여자가 프랑스 배우 아니 지라르도였다. 영화에서 창녀로 나온 지라르도는 마치 염가로 시장에 내놓은 매물 같은 모습이어서 음험토록 선정적이었다. 구름이 낀 얼굴에 드리워진 비굴한 색조를 띤 표정과 함께 방정치 못한 품행을 뽐내듯 과시하는 태도가 10대였던 내게는 과도하도록 육감적이었다.
후에 ‘표범’과 ‘이방인’ 및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같은 명작을 만든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정수로 사실성과 약간 멜로성을 갖춘 감정을 잘 조화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남부여대해 밀란으로 온 로코와 그의 네 형제 그리고 이들의 강인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존 포드가 만든 ‘분노의 포도’를 연상케 한다. 밀란의 달동네와 거리 현장에서 찍은 주세페 로툰노의 탁월한 흑백촬영과 니노 로타의 만가풍의 비감한 음악과 함께 연기가 뛰어난 영화로 1960년 베니스영화제서 삼사위원 특별상을 탔다.
비스콘티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영화로 그가 잘 다루는 현대화와 계급 간 갈등 및 가족의 결집력과 균열 등을 담대하게 서사적으로 다뤘는데 내가 이 영화에 심취했던 또 다른 이유는 로코 네 삶이 내가 어렸을 때 6.25를 겪은 우리 집 형편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
영화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에 살던 파론디 가족의 기둥인 어머니 로자리아(‘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카티나 팍시누)가 아들 넷과 함께 보따리를 싸들고 장남 빈첸조(스피로스 포카스)가 먼저 올라온 이탈리아의 북부 산업도시 밀란의 기차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력한 모권을 쥔 로자리아의 둘째는 촌티가 흐르는 건강한 체격의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 셋째는 착한 로코(알랭 들롱) 넷째는 평범한 치로(막스 카르티에) 그리고 막내는 아직 어린 루카(로코 비도라치). 밀란의 달동네 아파트를 전전하는 이들은 새로운 도시의 삶에 적응하면서 먹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빈첸조는 중류가정의 딸 지네타(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결혼한 뒤 자기 가족과 별 교류가 없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로코와 시모네와 시모네가 사랑하는 창녀 나디아(아니 지라르도)로 두 형제간에 나디아를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끝내 피를 부른다. 시모네와 로코의 관계가 마치 카인과 아벨의 그 것을 닮았다.
시모네는 부와 명성을 빨리 거머쥘 수 있는 권투선수가 되라는 나디아의 종용에 따라 링에 오른다. 그리고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창녀생활을 청산하고 자기 애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나 나디아는 이를 거절한다. 로코는 막일을 하다가 군에 입대, 투린에 주둔하는데 여기서 매춘 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나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나디아는 로코의 순진성과 마음의 순결에 감동, 창녀 생활을 버리고 로코의 애인이 된다. 제대 후 로코도 권투선수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주먹과 몸이 자산이다.
그러나 시모네가 로코와 나디아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시모네와 그의 일당이 로코와 나디아에게 가공할 폭력을 행사한다. 시모네의 나디아에 대한 끈질긴 사랑을 깨달은 로코는 나디아에게 시모네에게 돌아가라면서 그녀와 헤어진다. 그 뒤 로코는 챔피언이 된다. 창녀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디아는 자기에게 돌아오라는 시모네의 간청을 거부,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행사한다.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치로는 양가 규수와 결혼, 평온하게 살고 루카는 뒷전에서 형들의 삶을 관망하는데 마지막에 루카가 치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루카가 돌아가고파 하는 고향은 옛 모습 그대로일까.
작품의 주인공인 로코는 선의 상징으로 가족의 복지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시모네의 재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밀란에서 태어난 귀족가문의 비스콘티는 파론디 가족을 통해 이탈리아 남과 북의 지방색과 차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지켜내려는 가족의 결집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파론디네의 삶이 한국가족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이 영화로 비스콘티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들롱과 살바토리와 지라르도 및 카르디나레 등이 빅 스타로 부상했다. 들롱의 차분한 연기도 좋지만 뛰어난 것은 금방 터질 것 같은 살바토리의 야수적 연기와 지라르도의 오만하고 육감적이요 가엽고 또 자기를 내버리는 듯한 연기다. 이 영화는 지라르도의 데뷔작. 통렬하고 감각적이며 감정적으로 상처를 내는 걸작으로 마일스톤 필름(Milestone Film)에 의해 복원판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서칭’ 의 한인배우 존 조




존 조(46·한국명 조 요한)는 차분하고 의젓해 사람이 무게가 있어 보였다. 연기파로 알려진 그는 필자와는 구면이어서 인터뷰 전에 서로 포옹하면서 “그동안 잘 있었느냐”며 인사를 나누었다. 존은 스릴러 인도계 아네쉬 차간티가 감독한 ‘서칭’(Searching)에서 실종된 10대 딸을 찾기 위해 딸의 컴퓨터를 뒤지면서 딸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그동안 자기가 몰랐던 딸의 삶을 알게 되는 아버지 데이빗 김으로 나온다. 깊이와 무게를 지닌 좋은 연기를 한다. 존은 가끔 유머를 섞어가면서 신중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존은 일본계 부인과의 사이에 두 남매를 두고 있다. 

“스튜디오들 아시안 기피 탓 출연 적은 건 사실”     


-제작진이 역을 제의했을 때 선뜻 응했는가.
“고백하건대 처음에 역을 거절했다. 내가 좋아하는 전형적인 스릴러인 얘기와 각본에 마음이 끌리긴 했지만 요즘처럼 블록버스터가 판을 치는 마당에 영화가 너무 예술적인 독립영화여서 극장에 나오자마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감독 아네쉬와 전화로 통화하면서 내용이 전부 컴퓨터 안에서 진행되는 얘기를 왜 영화로 만드느냐하는 의문도 있었다. 오해였지만 유 튜브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데 아네쉬가 날 놓아주질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그리고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네쉬가 내 마음을 돌려놓겠다면서 컴퓨터로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이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지식과 열정에 감복해 그를 믿게 되었다. 그는 진정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감독은 당신이 가장 재능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면서도 가장 덜 쓰이는 배우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아시안 배우로서 할리웃에서 어떤 한계를 느끼는가.
“가장 덜 쓰이는 배우 중의 하나라는 말엔 나도 동의한다. 그 말 널리 전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들이 아시안 배우를 쓰는데 주저하는 것은 사실이다. 스튜디오의 간부들은 아시안 배우를 사용하면 관객이 영화를 외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스튜디오들은 미국 관객들과 세계의 관객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관객들은 성공한 영화의 유형만 고집하는 영화 투자자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인도계 배우와 나온 ‘해롤드와 쿠마’시리즈가 흥행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아시안 배우를 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언가 다른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배역을 준 것은 한국 사람이어서인가 아니면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었는가.
“내가 아는 한 주인공은 늘 데이빗 김이었고 그 역은 나 아니면 안 된다고 감독이 고집했다. 각본도 쓴 아네쉬는 글을 쓰면서 유색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유색인인 그는 백인들만 나오는 영화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네쉬가 자기 가족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나로서도 아시안 아메리칸 가족이 스크린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참으로 뜻 깊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보통은 나 혼자만이 영화의 아시안인데 사랑으로 뭉친 일가가 아시안이라는 것은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컴퓨터로 인해 사람들 간에 접촉이 단절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컴퓨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맺어주는 일을 한다고 본다. 내가 어렸을 때 학급에서 아시안이라곤 나 하나였는데 컴퓨터를 통해 나처럼 외톨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면에 컴퓨터로 두렵고 사악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지금 미국은 컴퓨터를 이용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이런 모든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구상한 이유 중 하나가 제작비가 저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촬영 때 모든 것이 검소했는가.
“그렇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태도나 의도는 대규모 예산의 영화의 그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조직이 잘 되고 상호간 존경하는 태도로 영화를 만든다면 큰 영화나 다를 것이 없다. 웹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오히려 창조적인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데이빗이 실종된 딸의 컴퓨터를 뒤지면서 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아버지 역을 하는데 실제로 두 남매를 둔 것에서 영감이라도 얻었는지.
“아들은 10세인데 벌써 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다행이 어머니와는 안 그렇다. 벌써 10대의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데이빗의 역에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아이들이 나로부터 독립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아직도 그들이 내게는 아기들이라는 점에서였다. 아직도 나의 어머니는 날 다섯 살짜리로 여기면서 영원히 보호하려고 한다. 부모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을 준비해야 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실제로 우리 곁을 떠나면 당황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아이러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외톨이로 고독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교육과 배움이 새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내게 큰 위안이 된 것은 미술과 책이었다. 난 특히 잉갈스 가족의 얘기인 ‘초원의 작은 집’을 좋아해 아이들에게도 읽어준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내 가족도 잉갈스 네처럼 개척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은 그림으로써 사람들과 연결을 해주기 때문에 고독을 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컴퓨터로 사람들과 쉽게 연결이 되는데 위험한 것은 그 사람이 진짜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것이 연기에 어떤 영향이라도 미치는지.
“책을 많이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해 각본의 뉘앙스와 분위기도 잘 파악할 수 있다. 연기하게 전에 난 늘 혼자서 각본을 읽으면서 준비를 한다. 문을 닫고 전화도 끄고 중단 없이 각본을 읽으면서 내용을 머리로 그리면서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작품을 고르는가.
“나의 흥미를 끌면서 정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하려고 애쓴다.”

-데이빗은 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라도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딸의 실종보다도 더 비극적인 사실이다. 영화에서 심리적인 비극은 과연 딸이 누구냐 하는 사실이다. 나도 그 점에 깊이 연관되었다. 실제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내가 잘 알던 사람 하나가 마약중독자였는데 그가 내게 보여준 자신이란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말짱 허위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었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언어와도 같은 기술적인 컴퓨터 용어를 얼마나 잘 아는가.
“그 부분에서는 아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내가 집의 케이블박스 전문으로 부모 대신 내가 VCR 담당이었다. 그러다 나는 집에서 최초로 컴퓨터를 가지게 됐다. 그러더니 이젠 내 아들이 날 삽시간에 추월하고 있다. 난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그 아이의 뒤에 처져 있을 것이다. 아들이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하는지를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다소 걱정이 된다. 내가 아들의 것을 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결코 아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컴퓨터 용어는 언어일 뿐이고 사랑이나 돌봄은 아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그들의 컴퓨터 능력을 따라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자신을 값어치 있게 느끼게 되면 컴퓨터를 통해 낯 선 사람을 만나도 그를 자신 있게 대할 수가 있다고 본다.”

-재작자인 티무르 베캄베토브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영화 후반에 만났다. 그가 맨 처음 영화의 아이디어를 구상한 것으로 안다. 그가 요즘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영화로 만들자고 말을 꺼낸 것으로 안다. 그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이런 얘기를 극화하지 않는다면 현재를 사는 지구인으로서 우리삶의 중요한 부분을 극화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바 있다.”

-영화가 매우 즉흥적이요 극히 사실적인데 각본대로 했는가 아니면 즉흥적인 면이 많은가.
“처음에 컴퓨터를 통해 보여준 우리 가족의 과거와 면모가 가장 즉흥적인 것이고 나머지는 각본을 충실히 따랐다. 영화는 만화영화를 찍는 것처럼 만들었다. 처음에 장면의 스케치를 대강 그리고 이어 배우들을 찍어 그 안에 집어넣는 식이다. 그리고 1년 후에 가서야 진짜로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을 썼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성모 발현(The Apparition)


자크(뱅상 랭동-오른쪽)가 바티칸 신부의 안내를 받으며 고위 관리를 만나러 가고 있다.

‘성모 발현 목격’진위 조사 과정
 믿음과 의심, 광기… 진지한 접근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예비수녀의 증언을 조사하는 베테런 기자의 프랑스 드라마로 믿음과 의심에 관한 얘기이자 인간의 초현실적인 것에 대한 기대 그리고 대중의 광기와 교회의 탐욕 등을 다룬 볼 만한 작품이다. 결점이 적지 않지만 차분하고 진지하며 감정과 무게를 지녔는데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다.
믿음에 관한 얘기를 처음에 깊이 있게 다루다가 후반에 들어 엉뚱하게 수사영화 식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작품의 품위가 떨어지고 우연이 많아 신빈성도 약해지나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믿음에 관한 내용이어서 관심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특히 이 영화는 이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베테런 스타 뱅상 랭동의 카리스마 있고 지극히 사실적인 연기 때문에라도 볼 만하다. 다부진 체구에 과묵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흔적이 배인 얼굴의 그는 무슨 역을 해도 잘 해내는 연기파다.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다 폭탄이 터져 동료기자를 잃고 청각 장애자가 된 자크(랭동)는 귀국해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에게 바티칸에서 초청장이 날아온다. 프랑스 남부 알프스 지역에 있는 수도원의 18세 난 예비수녀 안나(갈라테아 벨루지)가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조사해달라는 것이다. 바티칸이 자크를 부른 것은 그의 기사를 신뢰하는 바티칸 고위관리가 객관적으로 성모 발현의 진위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뜻에서다.
자크가 현지에 도착했더니 성모가 발현했다는 곳에 마치 관광명소처럼 전 세계로부터 순례자들이 찾아와 장터를 방불케 하는데 수도원에서는 안나의 얼굴이 찍힌 각종 기념품을 판다. 자크가 안나를 만나 성모 발현 여부의 진위를 조사하면서 둘 간에 묘한 관계가 이어진다. 
물론 자크는 안나의 증언을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거짓이라고 단정 짓지도 못한다. 이런 믿음과 초현실적 현상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자크는 서서히 자기 영혼의 고통에 대한 정화작업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자크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성모 발현 시 그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동네 사람으로부터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듣는다. 그리고 자크는 안나에게 이 사실을 묻자 안나는 이를 부인한다. 이와 함께 안나에게 과거의 친구들로부터 편지가 전달되고 이어 플롯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스릴러 식으로 변화한다. 끝이 터무니없이 마무리되는 바람에 김이 새지만 특히 가톨릭 신자들을 비롯해 기독교 신자들에게 권할만하다. 촬영과 고전음악을 사용한 음악도 분위기에 어울린다. 사비에르 지아놀리 감독. 등급 G. ★★★ (5개 만점) 
*성모 발현에 관한 명작으로 제니퍼 존스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버나뎃의 노래’(The Song of Bernatte·1943)가 있다. 1800년대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신심 깊은 프랑스 처녀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9월 4일 화요일

농구 코미디 ‘엉클 드루’ 의 샤킬 오닐




거대한 암산이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샤킬 오닐은 정말로 컸다. 은퇴한 전직 미 프로농구 노인 올스타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뉴욕 할렘의 거리 농구 챔피언십에서 맞서는 농구 코미디 ‘엉클 드루’(Uncle Drew)에서 할아버지 선수로 뛰는 샤킬 오닐(46)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영화에는 오닐 외에도 카이리 어빙과 레지 밀러 등 전직 베테런 선수들이 나온다. 미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팀에게 챔피언십을 세 번이나 안겨준 오닐(애칭 ‘샤크’)은 이 영화 전에도 ‘카잠’ ‘블루 칩스’ ‘스틸’ 및 ‘워시’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오닐은 자리에 의젓이 앉아 굵은 저음으로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시치미를 뚝 뗀 농담을 잘 해 여러 번 폭소를 터뜨렸다. 매우 서민적이어서 친근감이 갔는데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받았다. 

“드웨인 존슨처럼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자녀가 여섯이나 되는데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난 3남 3녀를 가졌는데 그들에게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농구선수가 나올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변호사나 기술자 또는 회사 중역이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선 절대로 공짜가 없으니 뭔가 먹고픈 것이 있으면 좋은 학교 성적으로 그 값을 치르라고 가르친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꿈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남을 존경하고 삶을 즐기며 언제나 바른 일을 하라고 이른다. 난 아이들이 날 단순히 ‘샤크’라고만 알지 않게 하려고 뒤 늦게 대학에 가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아이들이 다 잘 자라줘 난 운 좋은 아버지다.”

-배우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난 ‘록’(프로 레슬러 출신의 액션 배우 드웨인 존슨의 별명)에게 심한 질투를 느낀다. 내가 할 역을 그가 다 가져갔다. 내가 덴젤 워싱턴과 같은 연기파는 아닌 만큼 ‘록’이 나온 것 같은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영화에 나오고 싶다.” 

-의사 출신의 한국계 코미디언 켄 정과 함께 만들 TV시리즈는 어떤 것이며 켄과 ‘샤크’ 중 누가 더 우스운가.
“압도적으로 켄이 더 우습다. 우린 다 우습고 똑똑하며 또 박사들이다. 우리의 콤비는 ‘러시 아워’에 나온 재키 챈과 크리스 터커의 콤비에 버금가도록 일품이다. 그래서 켄과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 웃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리가 만들 리얼리티 쇼는 유명인사들의 랩 경연대회를 다룬 ‘드롭 더 믹’이라는 것인데 켄이 너무나 잽싸고 재치가 있는데다가 우스워 난 그에 의해 묵사발이 된 느낌이다. 쇼가 크게 성공해 사람들이 퇴근 후 빨리 집으로 돌아가 TV 앞에 앉아 쇼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게 되기를 바란다.”

-아들 중 하나가 농구 소질이 뛰어나다고 아는데 프로로 진출할 것인지.
“그렇다. 샤리프(18)는 내가 질투가 날 정도로 소질이 있다. 15세 때부터 내가 코치를 했는데 한 번 가르치면 모든 것을 숙지한다. 나의 후원 없이 자기 실력으로 UCLA에 장학생으로 합격해 농구선수로 뛴다. 자랑스럽다. 난 사실 아이들에게 늘 운동보다 공부를 하도록 독촉했다. 그는 프로선수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생애 중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은 무엇인가.
“먼저 프로선수로 뽑혔을 때다 우린 그 때까지 가난했었다. 선수로 선발되고 나서 큰 집을 은행 융자 없이 수표 한 장으로 샀는데 어머니는 집이 너무 크다고 오히려 걱정을 했다. 둘째는 부모의 독촉에 따라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세 번째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해 레이커스를 챔피언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석사와 박사학위 받은 것과 아이들을 낳은 것도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이다.”

-영화에서 분장한 노인 모습은 누구의 것을 본 땄는가.
“딱 한 번 본 내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농부였던 할아버지도 나처럼 키가 컸는데 신장이 6피트 11인치였다. 분장사가 날 노인으로 만든다고 해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 사진대로 회색 수염과 머리를 한 노인이 됐다. 분장하는데 매일 4시간이나 걸렸다.” 

-선수로 뛰면서 탈의실에서 겪었던 기억할 만한 일은 무엇인가.
“탈의실 장면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수들의 흥분한 모습이고 다른 것은 팀의 리더가 선수들을 훈계하는 엄숙한 모습이다. 나도 리더로서 선수들을 훈계도 하고 격려도 했는데 1분 정도 야단치면 5분 정도는 사기를 북돋워 주곤 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야 뭐들 해, 저녁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약체 팀에게 지고나면 선수들을 호되게 나무라곤 했다.”

-농구가 없었더라면 무슨 일을 했겠는가.
“군인이나 경찰이 됐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군 훈련교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어렸을 때 키다리로 농구를 좋아만 했지 아직 기술이 빈약했을 때만 해도 날 보면 ”너도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나의 삼촌은 경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내가 뭔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되뇌이곤 했다.”

샤킬 오닐(왼쪽)을 비롯해 왕년의 프로농구 베테런들이 젊은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서 농구에서 찾게 되었는가.
“난 TV를 통해 내 정체성을 찾게 됐다 내가 TV를 통해 본 첫 영화가 농구영화인 ‘피츠버그를 구한 물고기’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농구선수인 닥터 J(줄리어스 어빙)가 나왔는데 영화에서 그가 화면을 압도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나도 저렇게 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영화배우가 되겠니”하고 묻길래 “아니 닥터 J처럼 되겠다”고 대답을 했다. 이에 아버지는 “그래 좋아, 그러나 먼저 학교부터 졸업해야지”하며 날 격려했다. 난 그 때 이미 스포츠에 관심이 컸고 TV를 통해 닥터 J와 매직(존슨)과 (래리)버드 등에 관해 열심히 연구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선수로 뛰면서 경기에서 이기면 동네 사람들이 박수로 환영해주던 것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가게에서도 잘 했다고 물건을 공짜로 줬다. TV에서는 농구가 아니면 영화를 봤는데 한 번은 한국인이 브루스 리와 싸우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난 영화배우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호텔에 묵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날 보고 “내가 ‘블루 칩스’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데 거기에 나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로 인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코비(레이커스 선수로 오닐과 함께 뛴 코비 브라이언트)가 올 해 단편 만화영화로 오스카상을 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은퇴 후 경쟁심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코비에 대해선 몹시 질투가 나고 때론 분통이 터진다. 그가 상을 타자마자 ‘축하’ 트위트를 보냈다. 그가 자랑스럽다. 난 은퇴해서도 경기할 때처럼 경쟁심이 강하다. 그래서 회사도 여럿 가지고 있는데 농구에서 터득한 기술을 회사 경영에 사용한다. 아이젠하워가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지도자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고용할 줄 안다’고. 그래서 나도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일이 간섭을 안 하고 그들에게 업무를 맡긴다. 난 현재 실리콘 밸리의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늘 제일 먼저가 되고 또 최고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빨리 돈을 벌려고 투자 했을 때마다 크게 잃곤 했는데 나는 이를 내 투자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드림 팀을 어떤 선수들로 구성하겠는가.
“마이클 조단, 매직 존슨, 칼 말론, 스테판 커리 그리고 닥터 J다.”  

-농구선수가 되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 주겠는가.
“첫째 위대한 선수들이 범한 실수를 살펴보고 그를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실수란 금전적일 수고 있고 시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내게 해준 충고이기도 하다. 둘째는 그들의 꿈을 좇으라는 것이고 셋째는 돈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돈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의 65%가 선수 생활이 끝나면 무일푼이 되는 것은 그들이 훗날을 위해 돈을 저축하지 않고 낭비한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다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한번은 내가 아버지에게 ‘나는 매직 존슨처럼 되고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내 멱살을 잡으면서 ‘다음 매직 존슨은 없으니 샤킬 오닐이 되라’고 했다. 따라서 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나처럼 되는 것도 좋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을 목표로 삼아라. 그러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될 것이다.’”

-흑인 선수들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국가연주 때 무릎을 꿇거나 백악관 초청도 거절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정치 얘긴 안 한다. 내 상표는 재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기 자기 의견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할 말은 뭔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략적으로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그들을 이해한다.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어서 국기를 무시하면 노발대발 했다. 사람들은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지만 뭔가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주장을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성질나게 만들면 둘은 더욱 더 갈라서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떠나 나의 일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을 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나를 보면 미소를 짓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피날레 작전(Operation Finale)


모사드 요원 말킨(왼쪽)과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르헨티나 도피 나치 전범 잡아라”   모사드 요원의 납치 다룬 스파이물


유대인 멸살 계획인 ‘마지막 해결’을 마련한 장본인인 나치 친위대 고위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살한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인 괴벨스나 히믈러와는 달리 전후 나치들을 받아들인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숨어서 살았다. 이 영화는 1960년 아이히만을 납치해 이스라엘로 수송, 법정에 세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의 치밀한 납치 계획과 실제 작전을 다룬 스파이 스릴러다. 
영화는 드문드문 재미가 있긴 하나 충분히 만족감은 주지 못한다. 
한편의 잘 구성된 스파이 영화라기보다 스케치 식의 TV드라마나 연극 같은데 스릴러의 흥분감이나 긴장감을 연출하는 대신 대사와 심리전에 치중하는 고급 드라마 티를 내고 있으나 멜로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아이히만 납치 후의 중간 부분이 너무 지지부진해 납치와 아르헨티나 탈출 등에서 분출되는 박진감이 부족해 맥이 빠진다. 
그러나 흥미 있는 실화인 만큼 큰 기대를 안 하면 볼만은 하다. 
모사드에 아르헨티나에 아이히만(벤 킹슬리)의 아들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던 모사드 측은 이어 그 정보에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데이빗 벤-구리온 수상의 허락 하에 아이히만 납치 계획을 짠다. 
납치 요원들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자기 누나와 누나의 아이들이 나치의 희생자가 된 젊은 피터 말킨(오스카 아이작). 그 외에도 말킨의 과거 애인인 한나 엘리안(프랑스 배우 멜라니 로랑) 등 몇 명으로 구성된 납치 요원들은 아르헨티나에 도착, 교외의 외딴 집에서 아내와 아들과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히만의 하루 행적을 주도면밀하게 감시한다.
매일 시계추처럼 정확히 일과가 짜진 아이히만을 모사드 요원들은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납치해 자신들의 은신처에 가둔다. 그리고 말킨 등은 아이히만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에 응하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하나 아이히만은 이를 완강히 거절한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간다. 그냥 이스라엘로 아이히만을 공수하면 될 것인데 그를 공수할 이스라엘 항공기인 엘 알 측이 아이히만이 서명한 문서 없이는 그를 나르지 못하겠다고 주장한다는 얘기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활한 아이히만과 그를 설득하는 말킨 간에 여러 차례 장시간에 걸친 대화를 통한 심리전이 벌어진다. 이 부분이 지루하다. 아르헨티나 경찰과 나치 동조자들이 혈안이 되어 아이히만을 찾는 중에 마침내 문서에 서명한 아이히만에게 엘 알 제복을 입혀 비행기에 태운다. 이 부분 스릴이 부족한 맹탕이다.
아이히만은 1961년 전 세계로 TV 중계가 되는 가운데 재판에 회부돼 유죄 판결을 받고 이듬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죄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아 역사학자 한나 아렌트로부터 ‘악의 진부’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작과 킹슬리의 연기 대결이 괜찮은데 킹슬리의 내면 연기가 다소 피상적인 반면 아이작의 연기가 힘차다. 크리스 와이츠 감독. PG-13. MGM.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페퍼민트 소다(Peppermint Soda)


13세난 안은 1963-64년 학년 동안 가정과 학교생활을 통해 부쩍 성장한다.

이혼 부모와 번갈아 생활
10대 소녀의 감성·일상사
스냅샷 찍듯 아름답게 포착


어린 소녀의 마음을 참으로 솔직하고 사실적이며 또 곱고 순수하게도 그렸다. 가슴 속까지 싸하게 스며드는 신선한 소다 마시는 기분이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우리들끼리만’(Entre Nous·1983)을 감독한 프랑스의 여류 디안 퀴리스의 감독의 1977년 데뷔작인데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스크랩북을 들춰보는 식으로 그렸다. 
소녀의 가정과 학교생활 그리고 우정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 및 별 것도 아니지만 당사자에겐 중요한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스냅샷 찍듯이 묘사했는데 위트가 있고 매력적이며 어디 하나 흠이 없는 아담한 작품이다. 
13세난 소녀 안 웨베르(엘레오노어 클라웽)의 1963-64년 1년간의 이야기로 여름방학을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보낸 뒤 어머니와 언니가 있는 집에 돌아와 학교를 다닌 뒤 다시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에게로 가는 형식을 취했다. 안의 언니 프레데릭(오딜 미셸)은 동생에게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 둘이 툭하면 다툰다. 안의 어머니(아눅 페르작)는 겉으로는 가끔 엄격하나 속은 다정한 사람으로 애인이 있는데 안은 이 애인에게 시큰둥한 태도다. 안은 어머니의 애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딸들이 보고파 찾아온 아버지에게도 시큰둥한 태도다. 
프레데릭에겐 애인이 있는데 안은 언니에게 오는 연애편지를 몰래 뜯어본다. 그런데 프레데릭의 애인인 매우 조숙한 친구가 안을 몰래 연모한다. 이를 어쩌나 프레데릭이 애인에게 버림을 받으면서 프레데릭은 깊은 슬픔에 빠지는데 평소 언니와 싸움이 잦던 안은 가슴 아파하는 언니를 열심히 위로한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이로 인해 어니와 동생은 관계가 아주 돈독해진다. 
학교생활이 오밀조밀하게 묘사되는데 괴짜인 체육선생과 제자들을 무서워하는 수학선생 그리고 새디스트인 미술선생 등에 관한 스케치가 재미있다. 이와 함께 안과 그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가 상세하고 자상하게 그려진다. 
매우 직선적이요 있는 그대로 소녀의 일상과 속내를 그렸는데 진지하고 사실적이면서도 경쾌하고 가볍다. 순진하고 달콤하며 또 기분이 좋은 작품으로 클라웽이 귀염성 있으면서도 어른스런 성숙한 연기를 아주 잘 한다. 제목은 안과 친구들이 카페에 들려 시켰다가 언니에게 들켜 야단을 맞은 어른들이 마시는 음료수 이름이다. 프랑스의 명 촬영감독 필립 루슬로가 찍은 촬영도 곱다. PG. 복원판이 화인 아츠(8556 윌셔)에서 상영된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칭(Searching)


실종된 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데이빗(존 조)은 딸의 컴퓨터를 뒤지면서 단서를 찾는다.

“사라진 딸 검색하라”주연 존 조 열연 돋보여 


참으로 기발 난 아이디어다. 영화 전체가 컴퓨터 화면 안에서 이야기 되는데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보는 사람의 관심을 (컴퓨터) 화면 안으로 잡아끈다. 구글 광고를 만든 인도계 아네쉬 차간티의 감독(공동 각본) 데뷔작인데 컴퓨터에 중독된 현 시대에 잘 부응하는 영화다.
컴퓨터에 매달려 살면서 이로 인해 상호간 대화를 상실한 가족의 문제를 범죄영화와 서스펜스 스릴러 식으로 다룬 영화로 기술적인 면과 드라마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가족 드라마이자 컴퓨터 스릴러로 구성이 빈 틈 없이 튼튼하고 서서히 초조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 솜씨가 빼어나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주인공이 한국인이요 그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존 조(감독은 조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가 주연하면서 거의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데 감정적으로 복잡다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해 작품에 무게를 주고 있다.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좋아 할 영화지만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 획기적인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상처를 한 데이빗 김(존 조)은 16세난 딸 마고(미셸 라)와 둘이 산호세에서 살고 있다. 데이빗 가족의 역사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소개되는데 마고의 출산과 첫 학교 등교와 피아노 연주 그리고 데이빗의 아내 파멜라(새라 손)의 병과 사망 등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물론 데이빗과 마고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마고가 온라인과 페이스북에 매달려 살고 있어 서로 별 대화가 없는데 어느 날 마고가 밤이 늦도록 귀가를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극적 흥미를 자아내기 시작한다. 데이빗은 마고의 피아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행방을 묻는데 선생은 마고가 지나 6개월간 교습을 받지 않았다는 말만 듣는다.
이 때부터 불안이 극도에 다다른 우선 경찰에 딸의 실종신고를 하는데 이를 수사하는 사람이 여자경찰 로즈메리(데브라 메싱). 역시 10대 아들을 둔 로즈메리는 남의 일 같지 않게 수사에 매달린다. 그리고 데이빗은 마고가 집에 놓고 간 랩탑을 열어 딸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그 때까지 전연 몰랐던 딸의 타인과의 관계와 일상사 등에 관해 알게 된다.
데이빗은 랩탑을 통해 마고의 일상을 알게 되면서 놀라고 당황하고 또 좌절감에 빠지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던 딸에 대해 전혀 무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데이빗은 마고의 생존여부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미칠 지경이 된다. 계속해 마고의 컴퓨터를 뒤지는 데이빗의 초조와 불안과 공포가 압도적이다.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답답해질 수도 있는 영화를 감독은 유려하고 매끈한 솜씨로 컴퓨터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게 살려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다시 한 번 칭찬할만한 것은 존 조의 안으로 힘이 배인 뉘앙스가 다양한 연기다. PG-13. Screen Gem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피용(Papillion)


파피용(찰리 헌남-왼쪽)과 데가(라미 말렉)는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강인한 우정으로 맺어진다.

폭력적이고 사나운 서스펜스물로 재미 더해진 리메이크‘파피용’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을 주연으로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한 실화인 ‘파피용’(1973)을 어쩌자고 리메이크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 스타일이나 작품의 무게 면에서는 원작이 보다 낫지만 이 리메이크는 순수 오락영화로서 옛 영화를 본 사람은 물론이요 안 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것이다. 
전편보다 짧고(133분) 속도감 있고 직선적인데 본격적인 액션 서스펜스 영화로 폭력적이요 사납다. 극적으로도 역동적인데 두 주인공 역의 찰리 헌남과 라미 말렉의 연기도 훌륭하다. 왕년의 두 수퍼 스타가 주연해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한 원작을 넘어서지는 못하나 흡인력 있고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는 리메이크다. 
‘파피용’은 1930년대 남미의 프랑스령 가이아나의 교도소와 절해고도 ‘악마의 섬’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출해 베네수엘라 시민이 된 앙리 샤리에르(별명은 나비라는 뜻의 파피용)의 실화로 영화는 불굴의 인간 혼과 끈질긴 우정을 그렸다.
서론 식으로 1931년 파리에서 파피용(헌남)이 금고를 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와 그의 글래머 걸 애인 네넷(이브 휴선)의 호사스런 암흑가 생활은 파피용이 살인누명을 뒤집어 쓰면서 끝난다. 파피용은 가이아나의 교도소로 이송되고 여기서 그는 부자인 위폐범 루이 데가(말렉)를 만나게 된다.
험악한 교도소에서 호시탐탐 탈출 기회만 노리는 파피용은 많은 돈을 소지한 데가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탈출자금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우정이 영글게 된다. 둘은 교도소의 혹독하고 살벌한 삶을 견디어 내는데 파피용은 데가를 구타하는 간수를 때려 누였다가 2년간의 독방살이를 하게 된다.
2년 후 재회한 파피용과 데가는 다른 죄수 2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 콜럼비아에 도착하나 수녀의 고발로 다시 가이아나로 이송됐다가 ‘악마의 섬’으로 이감된다. 여기서도 끊임없이 탈출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파피용은 바다의 조류를 이용해 탈출한다. 데가는 섬에 남기로 결정한다. 
보기에 끔찍한 폭력이 있지만 손색없이 잘 만든 영화로 헌남과 말렉이 호연하고 둘 간의 호흡도 잘 맞는다. 또 세트와 촬영과 음악 등도 좋다. 마이클 노어 감독. R. Bleecker Stree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시안들이 온다


아시안 감독이 연출하고 전 배역이 아시안들인 로맨틱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사진)가 지난 15일에 개봉돼 예상을 앞지르고 주말까지 5일간 총 3,54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이어 개봉 2주째에도 주말 3일간 총 2,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면서 연 2주 박스오피스 탑을 기록했다. 개봉 12일째인 27일 현재 총 7,680만 달러의 수입을 낸 것이다. 영화의 총 제작비는 3,000만 달러다. 이런 기록은 아시안 배우들을 기용해 할리웃의 메이저가 만든 영화로선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할리웃이 이 영화 전에 아시안 감독과 배우들을 써 만든 영화는 1993년에 나온 ‘조이 럭 클럽’이었다.
중국계 존 추가 싱가포르 태생의 중국계 케빈 콴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는 사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 주연남녀로는 영국인과 말레지아인을 부모를 둔 헨리 골딩과 대만계인 콘스탄스 우가 나온다. 이 밖에도 한국계인 켄 정과 아콰피나(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와 함께 각기 말레이지아와 중국 태생의 베테런들인 미셸 여와 리사 루를 비롯해 중국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영화가 흥행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내용이 난관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배급한 워너 브라더스에 따르면 첫 주말 관객 중 아시안이 38%, 백인은 41%, 라티노가 11% 그리고 흑인이 6%로 집계된 것만 보아도 영화가 인종을 초월한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이 영화가 흥행서 대박을 터뜨리자 지금 할리웃에선 ‘아시안 돌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오스카는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은 할리웃에서 아시안 영화인들은 개밥의 도토리 같은 존재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이다. USC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17년 흥행 탑 100편의 영화 중 말하는 아시안 배우의 역은 달랑 4.8%였다.
CBS-TV의 인기 수사물 ‘하와이 화이브-0’에서 두 백인 배우 알렉스 오‘러플린과 스캇 칸과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수사요원으로 나온 한국계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이 백인 배우들보다 출연료가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 도중하차한 것만 봐도 할리웃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대우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가 빅 히트를 하면서 할리웃은 이제야 비로소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성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양성이야 말로 좋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상영중인 스릴러 ‘서칭’에 주연한 한국계 존 조도 인터뷰에서 “할리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관객들이 다양성을 원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서칭’의 감독도 아시안인 인도계 아네쉬 차간티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성공으로 콴의 시리즈 두 번째 소설인 ‘차이나 리치 걸’도 영화로 만들어진다. 또 폭스 2000는 K-팝 경연대회에 나간 아시안 아메리칸 대학생의 얘기를 영화화 할 예정이고 일부 네트웍들도 전 배역이 아시안인 시리즈 파일롯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할리웃에서 아시안 영화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문이 보다 활짝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존 추 감독도 그의 영화의 성공으로 자기에게 아시안 배우들을 기용한 작품을 만들자는 제의가 답지하고 있다면서 “내 영화에 나온 아시안 배우들도 반드시 아시안 얘기가 아닌 다른 영화에의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존 추는 얼마 전 동굴에 갇혔다 구조된 태국소년들의 얘기를 영화화 할 예정이다.
할리웃이 이제 더 이상 아시안을 못 본 척 하기가 어렵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안 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할리웃 영화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은 중국으로 몇 년 후면 북미시장을 제치고 제일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중국 자본의 할리웃에 대한 투자도 증가일로로 요즘 웬만한 할리웃 영화에는 중국배우들이 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지금 히트 중인 거대한 식인 상어가 여름 바다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멕’이 그 한 예다.
할리웃이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을 기용하고 서울에서 촬영을 하면서 한국배우를 단역으로 쓰는 것도 할리웃 영화를 사들이는 한국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성공은 할리웃으로 하여금 새 음성과 관점을 경청하고 목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 할리웃에서는 이 영화로 인해 전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아시안 영화들을 보다 많이 만들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가 왔으며 할리웃의 기상이 이미 변화하고 있다는 다소 이른 듯한 낙관론이 돌고 있다.
이런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할리웃의 철칙은 오로지 흥행 성공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아시안 영화들이 흥행서 실패하면 할리웃은 잽싸게 다시 옛날 공식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