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자를 약하다고 했는가. 올 여름 할리웃은 주먹과 총과 칼을 마구 휘두르는 겁 없고 사나운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들을 여러 편 내놓는다. 이 막강한 여자들은 남자와 외계인은 물론이요 남자 수퍼 스타인 탐 크루즈와도 결전을 벌이며 여성 파워를 과시한다.
남녀의 인구비율이 절반씩인데도 할리웃이 여자를 주인공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흥행 때문이다. 특히 액션과 모험영화의 경우는 더하다. 그러나 ‘헝거 게임’이나 올 해 빅히트한 ‘미녀와 야수’의 경우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도 얼마든지 손님이 들 수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여름에 나올 여성 파워 영화들 중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배우 갤 개도가 주연하는 ‘원더 우먼’(Wonder Woman-6월 2일 개봉^사진)이다. 미모에 늘씬한 키 커브 진 몸매를 가진 개도는 작년에 나온 ‘배트맨 대 수퍼맨:정의의 새벽’에서 이미 원더 우먼으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 만화가 원전인 ‘원더 우먼’은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 히트했었다.
오스카상을 탄 샬리즈 테론이 제작하고 주연하는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7월 28일 개봉)도 기대작. 테론은 영국 정보부 MI6의 스파이 로레인 브러턴으로 나와 옛 베를린을 무대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전형적인 남자 주연의 스파이 액션영화에서 테론은 모두 자기보다 크고 강한 남자들을 상대로 기술과 계략과 담력을 무기로 맞선다. 그리고 음모와 배신에 휘말려 들고 치열한 격투를 벌이면서 아울러 여자 파트너를 상대로 화끈한 섹스까지 치른다. 테론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 나이 41세에 이런 영화에 나온 것은 하나의 업적”이라면서 “보다 많은 여배우들이 이런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왕년의 명우 보리스 칼로프가 주연해 그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머미’(Mummy)를 부활시킨 동명영화(6월 9일 개봉)에서 미라로 나오는 소피아 부텔라도 괴력을 발휘하면서 파괴와 살상을 자행한다. 부텔라의 상대역은 탐 크루즈. 크루즈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부텔라와 싸우면서 죽을 고생을 한다. 한편 부텔라는 ‘아토믹 블론드’에서 테론의 상대역으로도 나온다.
‘라 팜므 니키타’ ‘프로페셔널’ 및 ‘제5의 요소’ 등에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프랑스감독 뤽 베송의 ‘발레리안과 1천개 혹성의 도시’(Valerian and the City of Thousand Planets-7월 21일 개봉) 역시 여자가 남자와 나란히 서서 악의 세력과 대결하는 영화. 프랑스 공상과학 액션만화 ‘발레리안과 로렐라인’이 원전인 영화에서 로렐라인(카라 델비녜)은 남자 주인공인 발레리안(데인 디한)과 함께 위기에 처한 혹성을 수호하는 정부요원으로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영화제목에서 원제의 여자이름 로렐라인을 빼버린 것. 베송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는 만화에서 보다 로렐라인의 역을 크게 확대했다고 말했으나 제목에 남자 이름만 쓴 것은 여성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전문가들은 이들 영화 중에서 흥행 성공이 거의 분명한 것으로 ‘원더 우먼’과 ‘아토믹 블론드’를 들고 있다. 이들 여성 파워영화가 흥행서 성공하면 속편은 물론이요 이와 유사한 영화들이 당분간 쏟아져 나올 것이다.
주먹과 총칼을 휘두르지 않고도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 파워를 보여주는 영화가 클래식 명화 ‘올 해의 여성’(Woman of the Year^1942)이다. 이 영화는 할리웃의 전설적 커플 ‘트레이시와 헵번’(여기서도 남자 이름이 먼저다)의 첫 공동 출연 영화로 ‘셰인’과 ‘자이언트’를 만든 조지 스티븐스가 감독한 흑백 명품이다.
신문사의 유명 정치 평론가 헵번과 이 신문의 라이벌 매체의 유명 스포츠 기자 트레이시가 서로 대결의식으로 맞서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고보니 자신들의 경력이 원만한 부부생활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헵번과 트레이시가 이를 지혜롭게 해결한다는 코미디성 드라마다. 헵번이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오스카 각본상을 탔다.
이 영화는 헵번의 영화라고 해도 되겠는데 헵번은 트레이시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그를 자기 상대역으로 요구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헵번과 유부남인 트레이시는 평생 연인으로 지냈다. 둘은 이 영화 후에 모두 8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둘의 마지막 영화는 시드니 퐈티에가 공연하고 스탠리 크레이머가 감독한 흑백문제를 다룬 ‘초대 받지 않은 손님’으로 이 영화는 트레이시의 유작이다. ‘올 해의 여성’이 최근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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