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리웃은 얼마 전에 발표된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후보자 20명이 몽땅 백인이라고 해서 불난리가 났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0명의 후보가 다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소리가 후렴처럼 되뇌어지고 있다.
이에 올해의 오스카 명예상을 받은 스파이크 리 감독과 수퍼스타 윌 스미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제이다 핑켓 스미스가 오는 오스카 시상식 불참을 밝혔다. 그리고 일부에서 오스카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면서 매스컴의 집중포화를 받자 아카데미는 부랴부랴 긴급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0년까지 흑인과 여성 등 소수계 회원을 현재보다 두 배로 늘리고 회원들의 영구투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치를 발표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어서 산수문제 풀듯이 할 수 없다. 아카데미 회원의 절대다수가 나이 먹은 백인 남자인 것은 사실이나 이들을 전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오스카 연기상 후보는 6,200여명 전체 아카데미 회원 중 1,100여명으로 구성된 연기분과위원들만이 뽑는다. 나머지 회원들은 각기 자기들 전문분야에 관해서만 후보를 고른다. 감독분과위는 감독상 후보 그리고 촬영분과위는 촬영상 후보를 뽑는다. 작품상 후보만 전 회원이 다 고른다.
골든 글로브상을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나는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을 보면서 동료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스라엘 태생의 고참 여회원은 “실력대로 하는 것이지 무슨 인종차별이냐”는 대답이고 방글라데시 태생의 회원은 “인종차별이 분명하다”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나는 이번 발표가 반드시 인종차별의 결과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의 원인은 연기상 후보에 오를 만한 흑인배우들인 마이클 B. 조단(크리드), 윌 스미스(컨커션), 새뮤얼 L. 잭슨(헤이트풀 에잇) 및 이드리스 엘바(나라 없는 짐승) 등이 다 탈락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된 ‘크리드’와 ‘스트레이트 아우타 캄튼’이 작품과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그런데 나도 지난 10일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각종 후보를 고를 때 이들을 전부 제외시켰다. 내가 보기엔 좋은 영화요 연기였지만 수상 후보로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인종차별주의자란 말인가.
다른 예술형태와 마찬가지로 영화예술도 작품의 질과 예술성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오스카 백색소동’에 본능적인 반사작용을 하듯이 만든 이번 긴급조치는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색채가 짙다. 물론 아카데미가 소수계를 보다 많이 영입하긴 해야겠지만 그들의 숫자를 늘려 소수계 작품과 배우들의 수상 기회를 늘려 보겠다는 생각은 ‘최고’에게 상을 주는 아카데미의 본의를 저해할 수도 있다.
흑인인 셰릴 분 아이잭스(사진)가 회장인 아카데미는 그동안 구조개혁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에 한국 영화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임권택, 박찬욱, 최민식 및 송강호 등이 아카데미 회원이 된 것도 이런 개혁 시도의 결과다. 그리고 이병헌이 오는 오스카 시상식에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자로 초대 받은 것도 내가 보기엔 ‘오스카 백색소동’의 진화작업의 한 수단으로 보인다.
흑백차별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오스카상을 탄 덴젤 워싱턴이다. 나는 수년 전 인터뷰에서 그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이 고쳐질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백년이 가도 안 고쳐져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단면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상 후보의 흑인 고갈현상의 진짜 원인은 아카데미에 있다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사에 있다고 해야 맞다.
메이저의 사장을 비롯해 영화제작에 청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은 백인 일색이다. 이들은 자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투표할 때 소수계 영화에 찍으려고 해도 찍을 게 있어야 찍지’라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소수계가 영화사의 고급 간부로 활동할 때 비로소 소수계 영화도 많이 제작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28일 할리웃과 하일랜드에 있는 돌비극장에서 ABC-TV 중계로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의 사회로 열린다. 독설가인 락의 입에서 ‘할리웃은 온통 백색이다’에 대해 어떤 말이 쏟아져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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