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하숙생’




스크루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공연히 번잡하고 번거로운 시즌이다.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지독한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자꾸 슬퍼했다. 이 때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시즌의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마다 생각나는 터무니없는 과거는 대학생 때의 일이다. 그 때 통금이 있던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신년 전야에 통금을 해제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처럼 밤의 자유를 만끽하려고 거리로 몰려 나왔었다.
나와 대학 친구들도 음주창가하며 마치 풀어놓은 개떼들처럼 명동거리를 몰려다니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자축했었다. 그 때 느낀 가슴 속의 한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지곤 한다.
난 요즘 진짜 캐롤 대신에 내 고등학교 선배인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을 듣는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최희준이 약간 코가 막힌 듯한 저음으로 부르는 창법과 가사와 곡조가 청승맞기 짝이 없어 부운 같은 인생의 자락에 매달린채 가는 세월 말리지도 못하고 술 한 잔 하면서 따라 부르기에 딱 맞는 캐롤이다.      
KBS 라디오 동명 드라마의 주제곡이었던 ‘하숙생’은 신성일과 김지미 주연의 동명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나도 재미있게 봤다. 사랑과 배신과 복수의 멜로드라마로 흑백영화로 기억하는데 실연당한 남자가 보면 가슴 싸하니 아플 영화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즐겁고 행복해만 보이는 시즌이니 만큼 크리스마스 연휴에 듣고 보면서 즐길만한 캐롤과 영화를 찾아보았다. 캐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빙 크로스비가 솜사탕 같은 음성으로 부르는 ‘와이트 크리스마스’다. 어빙 벌린이 작곡한 이 노래는 크로스비가 주연한 시즌영화 ‘할러데이 인’의 주제가로 오스카상을 탔다.
짙은 초컬릿 맛 나는 벨벳 감촉의 음성을 지닌 냇 킹 코울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송’도 좋다. “체스넛 로스팅 온 언 오픈 파이어”라면서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면 늘 털스웨터를 입고 장작불이 타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되곤 한다.                    
캐롤 앨범을 8개나 출반해 ‘미스터 크리스마스’라 불리는 앤디 윌리엄스의 ‘이츠 더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여’와 역시 캐롤의 단골가수인 자니 마티스의 ‘아베 마리아’ 그리고 맑고 고운 음성의 팻 분의 ‘퍼스트 노엘’과 함께 크로스비와 음성이 비슷한 페리 코모의 ‘두 유 히어 왓 아이 히어’ 등도 좋다.
그리고 시내트라는 ‘아일 비 홈 포어 크리스마스’를 잘 부르고 주디 갈랜드가 부른 자기가 주연한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의 노래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도 시즌 송 18번이다. 합창으로 부르는 ‘리틀 드러머 보이’는 애잔해 더욱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당신 없는 크리스마스는 외롭다”고 궁상을 떠는 ‘블루 크리스마스’와 ‘실버 벨즈’도 재미있다.
이 밖에도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캐롤들로는 *어 할리 졸리 크리스마스 *오 홀리 나잇 *징글 벨 록 *록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윈터 원더랜드 *렛 잇 스노 *펠리스 나비다드 등이 있다. 앤젤리노들은 지금 KOST-FM(103.5)을 틀면 하루 종일 시즌 송들이 나와 이들 캐롤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올드 랭 자인’을 들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영화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고운 것이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사진)이다. O. 헨리의 단편소설이 원작으로 가족의 유물인 회중시계를 애지중지하는 말단 사원 짐(팔리 그레인저)과 탐스럽고 아름다운 긴 머리칼을 지닌 그의 아내 델라(진 크레인)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얘기다.
델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던 자신의 머리칼을 팔아 남편을 위해 백금시계줄을 사고 짐은 자기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고급 빗을 산다. 둘은 머리칼 없는 빗과 시계 없는 시계줄을 서로 교환하면서 자기들의 실수를 크게 웃는데 이 때 창 밖에서 캐롤이 울려 퍼진다.    
이 단편은 O. 헨리의 다른 단편들인 ‘마지막 잎새’와 ‘경찰과 성가’ 그리고 ‘클래리언 콜’ 및 ‘인디언추장의 몸값’ 등을 영화로 만들어 묶은 DVD ‘O. 헨리의 풀 하우스‘(O. Henry’s Full House)에 수록됐다.
크리스마스 단골영화로 해마다 이맘때면 TV로 마라톤 방영되는 3편의 영화가 있다. 꼬마 나탈리 우드가 나오는 진짜로 산타가 있다는 것을 법정에서 증명하는 ‘34가의 기적’(The Miracle on 34th Street)과 지미 스튜어트가 주연한 모든 개인의 중요성을 얘기한 ‘멋진 세상’(It’s a Wonderful Life) 그리고 빨간 장난감엽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파 안달이 난 소년 랄피의 소원성취를 우습게 그린 ‘크리스마스 이야기’(A Christmas Story)를 꼭 보세요.  “해피 뉴 이여!”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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