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헌드레드-푸트 저니'헬렌 미렌



“음식이란 지구를 도는 인간문화의 표지석”


현재 상영중인‘헌드레드-푸트 저니’(Hundred-Foot Journey)에서 프랑스 남부 한 작은 마을의 자신이 경영하는 고급 식당 바로 앞에 인도 식당을 차린 인도에서 이민 온 일가족과 경쟁을 하게 된 본심은 착하나 다소 까다로운 여주인 말로리로 나오는 헬렌 미렌(69)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미렌과 인도의 베테런 배우 옴 푸리가 나오는 영화는 그림처럼 곱고 달콤하나 극적 깊이는 모자란다. 그러나 모두 연기파인 미렌과 푸리의 연기와 콤비는 보기 좋다. 우아한 백색 돌체 가바나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미렌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는데 단아하게 앉아 아름다운 앨토 음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면서 질문에 즐겁게 대답했다. 사람이 품위가 있으면서도 매우 겸손해 이웃집 착한 아주머니를 만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여왕’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타 영국 여왕으로부터‘데임’ 칭호를 받은 미렌은 군주제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미렌이 미국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을 때 여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을 때도 스케줄을 이유로 초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영화에 진수성찬 음식이 자주 나와 보면서 배가 고팠는데 촬영 때도 그랬는가.
“그렇다. 보기 전이 아니라 본 다음에 식사를 해야 하는 영화다.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영화를 본 다음에 식사하기를 권한다.”

―영화에서 당신의 식당은 식당의 질을 판정하는 미셸린 등급의 별 하나를 받았는데 최고등급인 별 세 개짜리 식당을 가본 적이 있는가.
“프랑스에서 가 봤다. 그 등급은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와 화장실과 카펫의 청결도 그리고 식기와 유리잔과 식사용 칼과 포크 등 모든 것이 완벽해야 받는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식당엘 가면 다소 불편하다.”

―영화를 감독한 스웨덴 태생의 라세 할스트롬과 일한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그는 세트 분위기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마법사의 술수를 지닌 사람으로 이런 영화에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영화를 어디서 찍었나.
“툴루즈 북쪽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한 마을에서 찍었다. 영화에서 보는 거리의 시장은 실제 시장이다. 식당의 음식도 정말 맛있더라. 영화를 찍는다기보다 휴가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의 혼합을 얘기하고도 있는데.
“그렇다.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의 음식들은 다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미국인들이 즐기는 피자나 베이글 등이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 듯이. 따라서 우리의 음식은 다양한 이민의 혼합이라고 하겠다. 음식이란 지구를 돌면서 행해지는 인간성의 움직임의 표지석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 영화도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 음식 좋아하는가.
“남편(‘사관과 신사’ ‘레이’를 감독한 테일러 핵포드)과 나는 해외에 있다가 영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인도 식당엘 간다. 외국에 있을 때 제일 생각나는 것이 인도 음식이다.”

―요리할 줄 아는가. 당신과 음식의 관계는 어떤가.
“잘 못한다. 수프가 고작이다. 나는 러시아계 후손이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음식을 좋아하고 양배추로 만든 음식은 다 좋아한다. 나보다는 남편이 음식 솜씨가 낫다.”

―당신은 세계를 돌면서 온갖 음식을 맛보았을 텐테 한국 음식 먹어봤는가.
“LA의 활기차고 대단한 코리아타운에서 먹었다. 맛있는 음식이 많더라. 내 의붓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한국인 급우들이 많아서 사실 한국 음식은 내 아들이 소개를 한 셈이다. 아들은 한국에 친구를 만나러가서 산 낙지도 먹었는데 그것을 유튜브에 올려 유명해졌다.”

―옛날과 달리 최근 들어 유색인종들이 이 영화에서처럼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경향이 계속되길 바란다. 경향이라기보다 우리의 세계관의 변화라고 해야겠다. 이런 변화가 오기까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은데 사실 우린 아직 그 곳에 진실로 이르진 못했다고 본다. 영화 ‘간디’가 있기 전만해도 보통 미국 사람들은 인도의 존재에 대해서 전연 알지 못했다고 해도 되겠다. ‘간디’ 이후 이런 생각을 고쳐 놓은 것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다문화와 함께 지구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또 평등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아직도 좀 더 가야 될 것 같다. 영화란 세상을 반영할 뿐이다. 따라서 먼저 세상을 변화시키면 영화는 그 변화를 반영하게 된다.”

―당신은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아는데 언어를 사랑하는가.
“나는 언어를 사랑한다. 나는 늘 외국에 가면 최소한 그 나라 말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같은 기본적인 인사말을 배워 쓴다. 또 영화제서 상을 줄 때면 인사말을 그 나라 말의 발음기호로 적은 글을 보고 읽는다.”

―당신의 인생철학은 무엇인가.
“나도 남들처럼 낙망하고 자신의 효용가치에 대해 의심하고 또 어리석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난 특별히 신을 믿진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커다란 영적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 난 철저한 실용주의자다. 난 그저 자신에 대해 솔직하려고 할 뿐이다.”

―당신은 다음 영화 ‘황금 옷의 여인’에서 화가 클림트의 여인으로 나오는데 미술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노력의 경이 중 하나다. 나는 미술을 좋아해 화랑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직접 그리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큰 기쁨 중 하나다. 음악보다 그림을 더 좋아한다. 나는 별로 음악적이지가 못하다. 그러나 음악회에 가서 생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레코드음악은 딱 질색이다.”

―프랑스 여인 역을 위해 어떻게 접근했는가.
“난 프랑스 광이어서 역을 제의 받고 아주 좋아했다. 난 프랑스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낫다고 으스대는 것까지 좋아한다. 그래서 난 언제나 남모르게 프랑스 배우가 되길 원했다. 난 프랑스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프랑스 영화는 미국이나 영국 영화보다 민감하고 흥미 있으며 인물 묘사도 깊다. 난 사실 이 영화의 내 역을 프랑스어로 하길 원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자막 읽기를 싫어한다. 특히 이 영화처럼 재미 위주의 디즈니 영화는 더 하다.”

―그렇다면 프랑스에 대해 싫어하는 점은 무엇인가.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에는 남을 비판 평가한다는 점이 있다. 그 건 별로 안 좋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못해 서툴게 해보려고 애를 쓸 경우에도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로 ‘당신 프랑스어 별로 잘 못하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그럴 경우 반응이 다르다. 그들은 외국인이 이탈리아어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이탈리아어로 ‘오 당신 이탈리아어 하네’하고 반긴다.”

―당신이 오래 전에 TV 시리즈 ‘프라임 서스펙트’에 나왔을 때만 해도 여자가 주연인 TV쇼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쇼가 많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가.
“참 놀라운 발전이다. 요즘은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그 시리즈에 나왔을 때만해도 제작진은 자신이 없어 출연계약은 3회분을 했는데도 1회만 찍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자는 식이었다. 이런 것이 변한 것은 우리의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자 경찰서장, 국무장관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여성의 위치가 부상하면서 드라마의 세계도 세상의 변화를 따른 것이라고 본다.”

―당신은 미술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종류의 미술을 좋아하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칸딘스키다. 따라서 현대와 클래식이 혼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나는 클래식 화가들도 좋아한다. 풍경화를 좋아하는데 특히 옛 덴마크 화가들의 그림이 아주 아름답다. 브뤼겔의 그림을 좋아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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